마침내, 서동재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히하하! 원래 오리지널이었다가 갑자기 채널로도 가게 됐는데, 이모님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어른들은 OTT를 어려워하실 수 있으니까.
홍보에도 아주 진심이던데요? 주인공의 무게인가요?
내가 진심인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웃음) 시키면 해야죠. 모두가 열심히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사람을 직접적으로 만나면 안 돼요. 만나면 뭔가 막 준비하느라고 고생한 걸 보잖아요. 뭐 하나 하려고 해도, 그 모습이 계속 밟히는 거죠. 상사한테 치이고 그래도 열심히 하는 그런 모습들요.
마치 회사 다녀본 것처럼!
촬영장에서도 그런 게 많아요. 옛날 선배도, ‘쎈’ 감독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런 걸 겪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배우생활도 사회생활이라는 거군요.
그럼요. 당연히, 완전히 사회생활이죠. 많게는 100명 속의 사회생활이죠. 오히려 매번 현장이 바뀌고 매번 다른 리더를 만나니까 더 아슬아슬하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막 돌아왔죠? 지금 배우, 미디어, 매니지먼트 가리지 않고 다들 골골합니다. 컨디션 어떤가요?
저도 꽤 지친 상태예요. 보통 집에만 있는데 3년간 만날 사람을 거기서 다 만났어요. 저는 일단 ‘I’라서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기자님은 E죠? E는 E의 에너지와 눈빛이 있어요. 좋은 에너지죠. 저 같은 경우는 숨으려는 에너지가 있고요.
오늘 ‘E’와 ‘I’의 팽팽한 대결이 예상됩니다. 작년 <얼루어> 인터뷰에서 “서동재는 참 생명력이 질기다. 끈질기게 쫓아다닌다”고 한 그 작품이 나왔네요.
다양하게 보는 걸 즐기다 보니까, ‘다른 분들도 새로운 거를 보고 싶지 않을까?’ 했던 거죠. 하지만 저도 최근 <에일리언> 시리즈를 시청하면서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됐고, 여러분의 관심을 느끼면서 좀 더 자신감이 생긴 부분이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사실은.(웃음)
뭐가 가장 부담스러워요?
<비밀의 숲>은 워낙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이고, 승우(조승우) 형이나 두나(배두나) 누나의 작품에 저는 조연으로 출연한 건데, 갑자기 주인공으로 나오니 부담스럽죠. 장르가 완전히 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신선도가 있고, 좀 독특하잖아요? 그러면서 점점 긍정적으로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도 2화까지 봤는데, 동재의 삶은 이번도 고단하다.(웃음) 1화 말부터 죽을 뻔하는 데다, 분량도 대사도 상당하더군요.
그래서 싫어요. 얘는 대사 암기량이 다른 작품의 한 4배 됩니다. 정말 제 ‘필모’에서노동량에 대해서는 부끄럽지 않은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연기를 18년째 노동량으로 하는 것 같아요. 완전 동재랑 반대인 거죠. 동재는 주인공 됐다고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저는 만약 생계에 지장이 없다면 적게 나오는 걸 선호하는….(웃음)
황시목도 한여진도 떠났지만, 서동재는 남았어요. 그런 말 있잖아요. 오래가는 사람이 승리자다, 가늘고 길게 가야 한다. 동의하나요?
빨리 승리해서 오래가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웃음) 할리우드 보면 아직도 그 형님들이 그 형님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가늘게 오래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대단한 거죠. 동재도 마찬가지예요. 가늘고 길게 가려면 어느 시점에서 올라가지 않으면 잘리니까 승진에 목매죠. 배우도 마찬가지고, 모든 직종이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번 작품에도 배우 김상호 씨가 나오는데, 다작하는 동시에 항상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시잖아요?
김상호 선배는 이제 장인, 문화재죠. 정말 어렵게 모셨고 너무 감사해요.
배우 이준혁도 언젠가 후배에게 그런 ‘문화재’가 될 수도 있죠.
원대한 꿈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 후배들을 상호 선배처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먼 생각은 해요.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지, 큰 계획은 없어요. 오히려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이죠.
매번 마지막 작품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늘 해요.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지금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해왔어요. 저희 정말 아슬아슬한 직업이에요. 저도 <다크홀> 이후에 작품 없었던 기간도 있었고요. 그럴 때는 정말 초조해요. 왜냐하면 그건 휴식이 아니에요. 내가 ‘스톱’ 버튼을 눌러서 쉬는 게 아니니까요. 마치 그냥 ‘지금 너는 안 돼’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 같죠.
짧은 호황기가 끝나고, 요즘 특히 K-드라마 시장은 불황기가 시작되고 있는데 그런 분위기에 영향도 받나요?
그런 호황기에도 제가 월등히 나아진 적도 없고,(웃음) 뭔가 중간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괜찮아요. 좋아요.
경기를 타지 않는 맛집이 진짜 맛집 아닐까요?
메뉴를 자주 바꾸는 중이죠.(웃음) 이번 서동재는 메뉴를 없애려고 했는데 손님들이 자꾸 찾는 메뉴.
이수연 작가가 말하길, 서동재는 죽이기엔 너무 잘생겼다고 하죠. 이게 설득력을 가지는 건 배우의 힘 아닌가요?
제발 그런 얘기 좀 안 하면 좋겠어!(웃음) 저도 작가님께 부담되는 얘기 좀 해야겠습니다. “안 하기엔 너무 천재적인 글”이었다고. 작가님 글을 저는 정말 좋아해요. 진지하다가도 블랙코미디 요소가 있는데, 제가 그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특히 동재 캐릭터에 작가님의 웃긴 성향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받은 것 같기도 해요.
그 재미있는 부분을, 준혁 씨가 더 웃기게 만드는 것 같은데요. 애드리브로 말이죠. 조승우 씨와 팥빵 하나를 찍어도 매번 다르게 애드리브를 치던데요?
하하! 워낙 팥빵을 싫어해서 치기 시작한 건데요. 그 부분에서 개그감이 작가님과 저랑 맞는 걸 수도 있어요. 또 그걸 승우 형이나 다른 배우들이 잘 받아주시니까요.
이번에도 매번 애드리브를 시도했나요?
자주 했죠. 할 만한 상황이 너무 많으니까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해야 하는 장르고. 성웅이(박성웅) 형도, 봉식이(현봉식)도 너무 잘 받아줘요.
사람들이 서동재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요?
극이라는 게 실제 옆에 있는 사람보다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훨씬 크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씩 선을 넘어야 더 재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선 넘었을 때 같이 놀리기도 좋고, ‘나는 이렇게 할까, 나는 저렇게 안 해’ 이렇게 양면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영화는 선을 자주 넘잖아요. 예술 영화는 ‘막장’인 경우도 많아요. 선을 넘으면서 자꾸 생각하고, 반추하게 되죠.
드라마가 많다고 해도 입체적 캐릭터를 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또 대중이 전형적 캐릭터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서동재는 드물게 매력 있는 캐릭터고, 극에서도 계속 변화하죠. 이번에는 어떻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신선도를 제일 중요시했어요. 시즌1 때도 동재가 신선해서 좋았어요. 나쁜 짓을 하더라도 꼭 마지막에 눈물 흘리면서 참회하는데, 동재는 안 그래서 좋았고. 시즌2 때도 새로운 개인사가 있었죠. 이번에는 또 장르가 바뀌어서 재미있었어요. 저는 다르게 하려고 했어요. 만약 그전의 것을 반복했으면 저 자신이 너무 재미없었겠죠.
2화 안에도 오피스물, 슬랩스틱물, 스릴러와 드라마, 블랙코미디 다 있습니다. 복합 장르죠. 이번엔 좀 새롭게 살아보려고 하는 동재인데, 기억도 안 나는 과거가 나타나서 발목을 탁 잡습니다.
맞습니다. <좋거나 나쁜 동재>라는 게 실제로 좋고 나쁨도 있지만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의 반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게 계속 오락가락할 때, 동재가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느냐를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팬들이 응원해서 나온 작품이니 최대한 많은 놀이터를 만들자고 접근한 것 같아요.
장르가 확확 바뀌면, 배우의 순발력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
그러다 보니 이제 동료 배우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껴요. ‘정말 다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주는구나’를 요즘에 더 많이 느낍니다. 되게 고마워요. 최근 저의 가장 좋은 발견이죠. 정말 대단한 배우들이 제 눈앞에서 고화질로 연기를 해주잖아요. 너무 좋다.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 여유가 좀 생겨서 그런 걸 볼 수 있는 거겠죠.
이 마음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어요? 아니면 표현도 좀 하나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순간에는 고맙다고 얘기해요. 되게 좋았다고 얘기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 잘 간직했다가 이렇게 인터뷰할 때 꺼내놓죠.
‘서동재’는 승진만 못했다뿐이지 다 가진 사람이죠. 검사에 아내도 있고 토끼 같은 자식도 있습니다. 동재의 삶과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어요?
저보다 많이 가졌죠. 저는 동재처럼 바쁘게는 살 수 없고요. 하지만 그 회복력만큼은 배우고 싶어요. 여러 사건에 휘말렸는데도 살아남는 거 보면 강인한 거 같아서 부러워요. 또 확실히 부인 유안(최희서 분)을 좋아하는 것 같고, ‘찐사랑’이 아닐까라는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 중 인생을 바꾸고 싶은 캐릭터는 없었나요?
힘들었던 기억만 있는데. 다들 굳이 그렇게까지 살 이유가 없잖아.(웃음) 그래서 촬영 때도 몸이 고생해요.
연기하면서 고초를 많이 겪나요?
저 정말 많이 겪어요. <맨몸의 소방관>은 트라우마까지 있어요. 야외 세트를 지었는데, 천장까지 진짜 다 불을 질렀어요. 불로 채워서 그거를 무너뜨려요. 베테랑 배우인 조희봉 선배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표정을 본 적이 없어요. 너무 무서웠고, 지금도 생생해요. <다크홀> 때는 액션 찍다가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줄줄 났는데, 사람들이 분장인 줄 알고 계속 찍었어요. 분장팀이 와서 이거 우리가 한 거 아니라고 해서 응급실에 갔는데, 막 피가 나는데도 “사인해주세요” 하셔서 해드렸어요. 그런데 응급실에는 워낙 중환자가 많잖아요? 그걸 보니 나는 아픈 게 아니구나 싶어 바로 다시 돌아가서 촬영했어요.
하하, 실제 인생도 블랙코미디 장르 쪽으로 가네요.
맞아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코미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동재가 한 30% 정도 저의 취향인 블랙코미디가 들어간 것 같은데, 100%로 나오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완전 100% 블랙코미디! 원래 블랙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고, 제 인생 장르가 블랙코미디더라도, 그게 마음에 듭니다.
그림책을 쓰고, 게임을 만들고. 워낙 새로운 기술에도 관심이 많죠? 챗GPT는 계속 유료 결제하면서 사용하고 있어요?
아직 잘 써요. 맞춤법 교정에 큰 도움이 돼요. 그런 거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신기하잖아요. 되게 신기한 영역과 되게 실망스러운 영역, 두 가지가 공존한달까. 진짜 써보면 말이 안 돼요.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다 되고요, 실망스러운 부분은 짜깁기에 가까운 게 많고, 거짓말도 막 해요.
챗GPT한테 ‘배우 이준혁’에 대해 물어본 적 있어요?
저는 말고 친구들이 궁금하다고 해서 다른 배우를 물어본 적은 있어요. 그때는 거짓말을 했어요. 정보가 없으니까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나이스하게 말해주면 좋아하고, 거짓말도 하고 참 신기하죠. 그런 게 다 윤리적 관점을 가지고 있고, 영화도 작품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거고, 그런 윤리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죠. 한때 영화도 새로운 기술이었듯이, 그런 걸 생각하는 게 좋아요.
언젠가 이준혁이 직접 쓴 이야기를 보고 싶네요. 아까 이야기한 100% 블랙코미디를 직접 써보면 어때요? 아까 보니 1화는 나온 거 같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요.
요즘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는 방식도 있으니 곧 이준혁이 참여한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방식은 정말 해보고 싶어요. 여유가 있어야 하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라면 어떤 장르라도 좋죠. 호러 영화로 시작해볼까요? 명감독들이 호러 영화를 참 잘 찍어요. 호러 영화가 인간의 심연을 다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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