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뷰티가 잘 맞는 피부는 따로 있다?

값 나가는 크림의 인기, 일종의 허세나 거품이라 여겼다. 그랬던 내가 추종자가 될 줄이야.

라 메르, 라프레리, 스위스퍼펙션, 겔랑, 시슬리, 에스티 로더 등. 백화점 1층의 우아함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들이다. 브랜드별, 라인별로 차이가 크지만, 이런 브랜드의 크림 한 통 가격은 30만원대가 기본이고, 기능성을 강조한 프레스티지 라인은 100만원을 웃돌기도 한다. 뷰티 에디터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있다면 이런 럭셔리 크림을 사용해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하지만 이도 간택받은 피부, 관리할 줄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화장품을 제대로 고를 줄 몰랐다. 그저 ‘좋아 보이는 것’을 발라보기에 분주했을 뿐.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내 피부는 원하지도 않는 과도한 영양 공급과 보호막까지 뜯어내는 각질 제거, 예민도만 높이는 자극적 시술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부 톤이 환해지기는커녕 여기저기 붉어졌고, 탄력이 붙기도 전에 뾰루지가 올라왔다. 피부가 피로한 탓이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품은 고기능성 제품이 출시되는 족족 ‘역시 화장품은 날로 좋아지는군. 이번엔 다르겠지’ ‘홍보 문구처럼 피부가 달라질 거야’라고 기대하며 매달, 아니 매주 다른 스킨케어를 탐했다. 이런 무분별한 신제품 과식은 나로 하여금 ‘내 피부는 고기능성이나 럭셔리 브랜드가 맞지 않는구나. 난 피부가 민감하니 보습에 초점을 맞춘 기본적이고 순한 제품을 써야지’라는 극단적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5년 정도를 고기능성 화장품을 내가 가질 수 없는 하이 주얼리나 그림의 떡이라 여기며 테스트해보는 것도 조심하며 지냈다. 더모 코스메틱과 클린뷰티의 부상이 ‘기능성 화장품 절식’을 선언한 내 스킨케어 루틴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심지어 자가면역질환까지 발병하며 피부가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악화하던 때도 있었으니, 일과 별개로 현실에서는 고기능성 스킨케어나 럭셔리 브랜드와는 점점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었다. 신생아 다루듯 하는 순하고 가벼운 관리는 피부에 평온함을 되찾아주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어딘가 힘 빠져 보이는 피부를 마주한 거다. 예전과 달리 힘없고 칙칙해 보이는 얼굴. 피부 건강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시간의 흔적, 노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거다. 

노화는 막을 수 없지만 아름답게 나이 들 수는 있다고 믿는다. 즉 ‘뷰티풀 에이징(Beautiful-Aging)’을 위해 멀리하던 고기능성 화장품을 곁에 두기 시작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원래 사용하던 스킨케어에 세럼 하나만 고기능성으로 바꾸거나 크림 하나만 바꿔보는 식으로. 효과가 보이면 같은 라인의 아이 크림이나 토너를 더했다. 또 화장품의 메인 성분을 확인하고 기능성 제품을 두 개 이상 사용할 때는 성분 간의 합이 안전한지도 고려했고, 바른 직후와 그다음 날의 피부 상태를 면밀히 살폈다. 이런 접근 방식은 고기능성 럭셔리 화장품의 진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줬다. 소싯적엔 럭셔리 뷰티 뷔페를 다녔다면, 이제는 별점 높은 럭셔리 맛집의 메인 메뉴 하나를 공략한다. 소문난 음식이라고 모두 내게 잘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주재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를 알아본 후 맛본 화장품은 확실히 다른 효과를 안겨준다.

내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대표적 화장품은 라 메르의 ‘크렘 드 라 메르’다. ‘기적의 크림’이라는 별칭이 있는 데다 여배우의 간증까지 더해진 대표 럭셔리 크림! 하지만 예전 내 기억엔 향만 좋고, 흡수도 잘 안 되는 데다 바르면 조금 따갑기까지 한 크림이었다. 주변 뷰티 에디터 선배들이 인생 크림으로 꼽기도 했는데, 속으로는 ‘향에 홀린 건가’라고 의심했을 정도. 이 크림에 재도전하고자 마음먹은 건 2023년 2월, 라 메르의 새로운 크림 론칭을 기념하는 행사에 다녀온 뒤부터다. 
이때 브랜드 교육부에서 ‘스킨케어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며, ‘크렘 드 라 메르’는 애초에 화상 치료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손바닥에 녹여 얼굴을 감싸듯 발라야 효과적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교육 후 다시 발라본 ‘크렘 드 라 메르’는 전혀 따갑지도 피부에서 겉돌지도 않았다. 교육팀장님에게 피부까지 가스라이팅할 수 있는 신비로운 기술이 있지 않은 이상, 이건 클래스만의 효과는 아닌 것 같았다. 꾸덕한 크림을 손바닥에 덜어 체온으로 충분히 녹인 후 얼굴에 대고 뭉근하게 꾹 눌러준다. 그러고 나면 피부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보습과 영양감이 채워지고 즉각적으로 피부 표면이 반질반질해진다! 누가 봐도 제대로 관리한 고급스러운 피부가 되는 것. 그제야 ‘와, 이래서 선배들이 좋다고 했구나!’를 느끼며 나도 이제 ‘라 메르 잘 맞는’ 여자가 되었음을 자축했다. 돈 걱정은 그다음이었다.

라 메르뿐이 아니다. 테스트만 슬쩍 해보고 엄마 화장대로 옮겨둔 귀한 제품, 예를 들면 설화수 자음생 크림, 스위스퍼펙션의 RS-28 리주베네이션 크림, 뽀아레의 압솔리프트 크렘과 최근 출시된 폴라의 B.A 그랑럭스 O까지. 예전엔 엄두도 못 내던 고기능성 크림이 피부에 착 달라붙어 그 효과를 뽐내기에, 이젠 비싼 크림을 탐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전엔 분명 별 효과를 못 느꼈는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일반적으로 고기능성 화장품은 피부에 자극을 일으키는 성분을 어느 정도 함유합니다. 대표적으로 레티놀이 그렇죠. 피부가 따끔거리거나 각질이 일 수 있어요. 20대에는 피부의 모든 기능이 가장 좋은 상태 인데, 이처럼 과도한 자극을 주는 제품을 사용하면 되레 피부장벽이 손상되거나 피부 염증을 유발해 노화를 촉진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미파문피부과 문득곤 원장의 설명이다. 20대, 즉 노화가 진행되지 않고 특별한 개선이 필요 없는 피부에는 고기능성 화장품이 오히려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르웰의원 이현희 원장은 젊은 피부의 ‘민첩함’이 고기능성 제품이 잘 맞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피부는 피부장벽 기능이 활발하고 세포의 턴오버율도 높아요. 그래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죠. 고농도의 활성 성분을 포함한 고기능성 제품에 과민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유 때문에 브랜드에서 고기능성 제품의 주요 타깃을 35세 이상, 피부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연령대로 잡는 것 아닐까요?”

정리해보면 이렇다. 고기능성 화장품은 노화가 진행되었고, 피부의 민감도가 낮아진 피부에서 효과가 십분 발휘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고기능성 화장품이 효과적이고 피부는 더 무뎌지는 걸까? 문득곤 원장과 이현희 원장에 따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50대 전후로 피부는 또 한 번 변한다. 보통 ‘피부가 얇아졌다’고 호소하는 시기가 오는데, 이때는 피부 면역반응이 변하면서 특정 자극에 더 강한 염증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폐경기 이후 에스트로겐 감소도 피부를 더 건조하고 민감하게 하는 원인이다. 노화된 피부라고 해서 누구나 고기능성 제품이 잘 맞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피부는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한다. 작년에 잘 맞았던 레티놀 세럼이 올해는 자극적일 수 있고, 어젯밤 내 피부를 반짝이게 만들어준 슬리핑 마스크가 다음 달엔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는 것. 요즘 내 피부는 럭셔리에 제대로 맛들렸다. 노화가 적당히 진행되었고, 건강상 문제도 없기에 민감도가 낮아진 상태니까. 하지만 5년 후에는 또 모를 일이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을 만끽하려고 한다. 효과, 제형, 향, 패키징, 그 안에 담긴 브랜드의 헤리티지까지 충분히 알아보고 음미하면서 이번 겨울을 귀티 나게 보내야겠다. 좀 더 아름답게 나이 들기 위해서.

    포토그래퍼
    현경준
    도움말
    문득곤(미파문피부과 원장), 이현희(르웰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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