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칭의 힘

내 몸 곳곳을 늘이고 줄이며 틀어진 균형을 바로잡고 알맞은 근육의 길이를 찾는다. 스트레칭 기반 저강도 운동이 불러오는 몸의 변화.

MOVFLEX

움직임(Move)과 유연성(Flexibility)을 결합한 스트레칭 기반 저강도 운동. 몸 상태를 진단하고 장비 10가지를 통해 어긋난 신체의 균형을 회복한다.

모브플렉스 스튜디오에 놓여 있는 힙(Hip)와 체스트(Chest) 장비.

긴장한 근육과 힘줄, 인대 등을 늘여 이완하고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는 스트레칭은 본래 인간의 본능적 행위다.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하는 걸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우리 몸에 필요한 활동인 스트레칭은 그 효과를 주목받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보조적 움직임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유산소나 근력, 여러 활동적 스포츠를 즐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는 걸 권장할 정도로 스트레칭 효과는 대단하다. 유연성 유지와 향상, 혈액순환 촉진, 근육 강화, 상해 예방, 바른 자세 확립, 스트레스 해소 등 굉장한 잠재력을 가진 스트레칭이 하나의 운동이 된다면 어떨까? 스트레칭 기반 운동 두 가지를 직접 경험하고, 스트레칭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봤다.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넓은 통창으로 스며든다. 온기가 감도는 이곳은 장비 10가지를 통해 불균형한 근육의 길이를 회복하는 ‘액티브 스트레칭’을 선보이는 ‘모브플렉스’의 스튜디오. 움직임(Move)과 유연성(Flexibility)을 결합한 모브플렉스는 2024년 2월 론칭 이후, 건강한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의 유연성을 회복하는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 오랜 트레이너 생활을 이어온 이미래 대표는 다양한 몸 상태를 가진 회원들을 만나며 모빌리티(Mobility), 즉 신체적 불균형과 가동성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몸이 안 좋고 아파서 무작정 운동을 시작하려는 분이 많았어요. 근육을 사용하는 동작을 하려면 우선 올바른 동작을 할 수 있는 몸이 갖춰져야 하거든요. 생존을 위해 운동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모브플렉스는 ‘저강도 회복 운동’을 지향한다. 가벼운 움직임만으로도 우리 몸이 더 나은 기능과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는 걸 모토로 삼는다. 단순하고 간단한 동작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관절의 가동성이 낮거나 근골격계 통증으로 고강도 운동을 바로 시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알맞다.

움직이기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장 먼저 할 일은 ‘웰니스 로드맵 진단’.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습관, 스트레스, 수면 등 몸 상태와 마음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설문 20여 가지에 답하면 끝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출된 결과지는 일대일 맞춤형 웰니스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데 활용된다. 나의 경우, 점수가 높을수록 위험한 ‘웰니스 위험 점수’가 78점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가 절실한 상태라 진단받았다. 신체 가동성과 심폐 지구력, 근력이 모두 부족하다는 결과도 함께였다. 그중 신체 가동성이 좋지 않았고, 근기능 및 신체 활성도 저하로 전반적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였다.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식사, 운동 부족, 짧은 수면 시간이 낳은 결과다. 수분 섭취 부족 역시 몸 상태를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근육은 약 8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어요. 물은 근육의 회복을 돕거든요. 수분 부족은 근육의 피로도를 높이고 근력 저하를 불러옵니다.” 나를 진단한 웰니스 코치의 말이다. 전신 근육 중 최근 피로도가 가장 높았던 부위는 목과 어깨, 등, 허리. 장시간 잘못된 자세로 앉아 업무를 보고,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나도 모르게 긴장도가 높아진 탓이었다. 이렇게 상세한 진단을 받고 보니 생각보다 몸이 무너져 있었다. 해소되지 않은 피로와 온몸의 미세한 통증, 소화불량 같은 증상의 원인은 바로 굳은 몸이었다.

앞선 웰니스 로드맵 진단에 따라 ‘근막 이완 마사지’가 이어졌다. 웰니스 코치와 함께 목, 어깨, 등, 허리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평소 편두통이 심했기 때문에 흉쇄유돌근과 판상근, 견갑거근, 사각근 같은 목 주변 근육부터 하나씩 천천히 풀었다. 마냥 시원하게 느껴지는 근육이 있는 반면, 조금만 눌러도 통증이 심한 근육도 있었다. 어떤 근육을 만질 때는 손끝에 저릿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혼자 근막까지 깊이 있게 마사지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자기 전에 손으로 가볍게만 만져줘도 근육이 훨씬 부드러워질 거예요.” 어깨와 등, 통증이 있던 허리까지 모두 마사지하며 나의 오른쪽 골반이 앞으로 빠져 있음을 알게 됐다. 기립근이 약한 이유도 찾을 수 있었다. 둔근을 과하게 사용해 상대적으로 허리 힘을 쓰지 않게 됐기 때문. 꽉 조였던 근육의 긴장이 풀려서인지 마사지가 끝나고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맑아 보였다. 약간은 몽롱한 기분도 들었다. 

근육 하나하나를 돌보며 상세한 진단과 섬세한 케어를 마쳤으니 어긋난 근육의 길이와 기능을 회복할 차례. 신체 부위별 특화된 독일의 모빌리티 장비 10가지를 사용하는 ‘액티브 스트레칭’이 이어졌다. 발바닥 근막을 이완해 전신의 긴장도를 낮추고 관절 부담을 줄이는 풋보드(Footboard), 흉추의 가동성을 회복해 말린 등, 어깨와 경직된 가슴을 펴는 체스트(Chest), 근육의 길이와 기능에 차이가 있는 좌우 측면 근육의 밸런스를 잡는 사이드 틸트(Side Tilt), 단축된 전면 근육을 이완하고 척추를 신전해 후면 근육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브리지(Bridge),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인해 경직되고 뻣뻣해진 목 주위 근육을 이완해 경추 안정성을 회복하는 넥(Neck), 짧아진 고관절 굴곡근을 이완해 골반 안정성을 챙기는 레그 익스텐션(Leg Extension), 발목부터 종아리, 허벅지 뒤쪽까지 긴장된 후면 근육을 이완하는 카프(Calf), 좌식 생활로 인해 타이트해진 햄스트링과 골반 근육을 풀어 골반의 회전 기능을 회복하는 스플릿(Split), 경직된 둔근과 골반 근육을 이완하고, 약해진 엉덩이 근육의 기능을 강화하는 글루티어스(Gluteus), 척추 안정성 근육과 몸통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 힙(Hip)까지. 해부학적 기전에 기반해 장비의 기능을 연결하면 각각의 루틴이 설계된다.

나는 풋보드와 체스트, 사이드 틸트, 브리지, 글루티어스를 사용해 루틴을 만들었다. 지압판을 연상시키는 풋보드를 밟으며 전신의 감각을 깨우고, 브리지와 체스트에 등을 기대 짧아진 전면 근육을 늘였다. 평소 몸에 힘을 준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막상 기구에 몸을 맡겨보니 갈비뼈 사이사이 작은 근육까지 잔뜩 힘을 주고 있는 게 느껴졌다. 힘을 탁 풀고 시원함을 느껴야 했지만, 처음에는 겁이 나서 완전히 힘을 풀지 못했다.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자세가 익숙해져 점차 가동성이 넓어졌다. 사이드 틸트에 몸을 맞추고 팔과 목, 어깨, 옆구리까지 측면을 한 번에 늘이고, 양쪽 다리를 번갈아 글루티어스 위에 90도로 접어 올려 고관절의 균형을 잡고 둔근의 긴장을 내려놨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차 6가지 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따뜻하게 우려 마시면 몸은 어느 때보다 생기 있고 건강한 상태가 된다.

약 90분간 이뤄진 프로그램은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고, 구석구석을 탐구하는 소중한 재정비의 시간이었다. 복잡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놀라움의 연속일 것. 내 몸이지만 미처 알지 못한 문제의 원인을 마주하고, 스트레칭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서 행복감이 밀려왔다. 몸의 정렬을 바로 세우는 건 진정한 운동 효과를 누리고 유연한 마음을 장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ELASKO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 10명에게 영감 받은 시퀀스를 음악과 음성, 빛과 결합한 스트레칭 운동. 경직된 몸은 물론, 움츠러든 마음까지 활짝 펴준다.

엘라스코의 메인 기구인 프레임과 볼.

“바깥 세상의 걱정과 고민은 모두 내려놓고 이 순간은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앞에 있는 프레임은 나의 무대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무대 위로 입장.” 수업이 시작되자 눈을 감고 매트 위에 선 수강생에게 계유림 강사가 마치 대사를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프레임 위에 선 50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시간. 한 편의 연극이 떠오르는 이 운동은 스토리텔링 기반의 수십 가지 시퀀스 플로우를 통한 ‘다이나믹 스트레칭’을 전개하는 ‘엘라스코’. 프레임이라 불리는 ‘ㄴ’ 자형 기구와 길고 짧은 스트랩이 달린 볼을 활용하는 엘라스코는 작년 겨울 국내에 첫선을 보이고, 2024년 6월에 첫 전문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해외에서 30년 넘게 지도자로 활동한 소냐 라스코프스키(Sonja Laskowski)가 개발한 이 움직임은 ‘Where Art Meets Wellness’라는 슬로건 아래 ‘몸과 마음의 해방’을 주된 콘셉트로 삼는다. 먼저 마음을 열고 몸의 움직임을 받아들인 뒤 예술적 특별함을 더해 오감을 깨우는 거다. 근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스트레칭에 지도자의 음성과 음악으로 전하는 감성적 스토리를 더해 지친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탓에 ‘이모셔널 스트레칭’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시퀀스는 그리스 신화 속 신 10명에게서 영감 받았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사랑의 여신 비너스, 저승의 신 하데스(플루토),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전령·여행·상업·도둑의 신 헤르메스, 주신인 제우스, 전쟁의 여신 아테나, 달의 여신 셀레네, 상상의 동물 페가수스까지. 시그너처 시퀀스 10개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흰색 5가지 조명 및 그에 맞는 강사의 음성 5가지와 결합한다. 프레임과 볼을 사용하는 시퀀스는 각각 베이직(Basic), 인터미디에이트(Intermediate), 어드벤스드(Advenced)의 세 단계에 따라 30가지로 변형할 수 있고, 각 시퀀스를 연결하거나 쪼개서 동작을 무궁무진하게 창조할 수도 있다.

어두운 동굴을 연상시키는 엘라스코 스튜디오에는 창문이나 거울이 없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수업에 앞서 엘라스코의 기본이 되는 누에고치(Cocoon) 자세를 배웠다. 두 발을 골반 너비로 벌리고 서서 무릎을 반쯤 접는다. 꼬리뼈부터 척추를 앞으로 둥글게 말면 된다. ‘몸을 둥글게 말아’ 또는 ‘코쿤’이라는 멘트가 나오면 어느 위치에서든 이 동작을 취해야 하는데, 이는 애벌레가 우화해 나비가 되듯, 무겁고 얽매인 몸과 마음이 해방돼 몸을 강화하고 마음의 자유를 찾는 과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 평소 척추를 잘 쓰지 않아서인지 척추 마디마디를 부드럽게 말아내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특히 한쪽 다리를 바에 올리고 있을 때는 더 힘들고 도전적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마냥 몸을 늘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필요한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평소 약하거나 부족한 근육은 강화하고 반대로 경직된 근육은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것처럼.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눈을 감고 매트 위에 올라 한발 한발 발끝부터 천천히 내디디며 전신의 감각을 일깨운다. 뒤꿈치를 들어 올려 다리 근육을 활성화하기를 반복하다 이내 바와 몸이 가까워지면 원목으로 만든 바와 루프를 쓰다듬는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거친 듯 부드러운 나무의 촉감은 좀 더 유연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도록 도왔다. 마치 제3의 세계로 향해가는 기분이랄까. 이제야 계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서 영감 받은 ‘나의 빛을 찾아서’, 여름을 표현한 ‘사막의 여름’, 가을을 담은 ‘가을을 품다’, 한국의 정서에 맞게 구성한 시즈널 플로우 3개는 각각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진다. “각 플로우마다, 조명과 시퀀스마다 표현하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 목소리도 그 흐름에 맞게 바뀌어요. 물결을 표현하는 푸른빛 아래서는 제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강인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붉은빛 아래서는 좀 더 당당하고 단호한 말투를 사용하죠.” 계유림 강사의 말이다. 프레임은 각 플로우 속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볼은 플로우에 따라 빛이 되기도, 물동이가 되기도, 꿈이 되기도 한다.

“깊은 바다, 요동치는 파도.” 계유림 강사의 내레이션과 함께 푸른빛이 공간을 채웠다. 깊은 호흡으로 코어를 활성화하고, 유연한 척추를 만드는 ‘나의 빛을 찾아서’ 플로우는 바닷속에서 나의 빛을 찾아 꺼내고 그 빛을 보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포세이돈, 셀레네, 아테나, 하데스 4가지 시퀀스로 구성되었다고. 하이 루프를 잡고 엉덩이를 뒤로 빼서 체중을 뒤쪽에 실었다. 상체와 하체를 길게 늘인 상태에서 일렁이는 물결처럼 몸을 말았다 펴기를 반복한다. 그 상태로 볼을 들고 깊은 물속에서 나의 빛을 건져 올린다는 상상을 하며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린다. 한 자세로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임을 주다 보니 굳은 몸이 한결 편해지고 가동성에 깊이가 있어졌다. 이어지는 동작은 달빛 아래 나의 빛을 꺼내어 보여주는 셀레네. 한 손으로 하이 루프를 잡고 한쪽 다리를 바에 올린 채 몸으로 큰 원을 그리며 볼을 든 팔을 하늘을 향해 높이 뻗는다. 길게 신전하는 온몸의 근육에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요가의 전사 자세처럼 바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아테나 시퀀스는 나의 빛을 지키기 위한 가장 동적인 플로우였다. 붉은빛 아래서 밸런스를 잡으려고 하체 근육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근력 강화를 중심으로 도전적인 플로우와 자유로움을 느끼는 ‘사막의 여름’과 변화를 느끼는 감각적 플로우인 ‘가을을 품다’ 역시 저마다의 이야기 안에서 근육을 늘이고 강화하며 주인공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했다.

은근한 근육통이 밀려왔지만 웨이트트레이닝과는 사뭇 달랐다. 평소 긴장한 근육을 이완해서인지 불필요한 승모근의 뻣뻣함은 없었고, 몸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잘 쓰지 않던 근육이 미세하게 자극되는 느낌! 엘라스코를 체험한 날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꿀잠’에 빠지기도 했다. “감정적 표현과 움직임이 필요한 분들은 엘라스코를 통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지’라는 생각을 한대요. 이 순간만큼은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한 소중한 순간임을 느껴보세요.” 걱정과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음악과 빛, 흐름에 몸을 맡겨보자. 몸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길러줄 테니.

    포토그래퍼
    오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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