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고티에의 패션세계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 했던가. 패션계의 대표적인‘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장 폴 고티에가 기성복 사업을 철수하고 앞으로 오트 쿠튀르와 향수 사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히면서 그가 펼쳐온 디자인 세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마지막으로 선보인 2015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은 1976년 데뷔 후 지금까지 장 폴 고티에라는 이름을 만들어온 수많은 아이디어와 상징으로 가득해 마치 그의 회고전을 보는 듯했다. 코르셋 드레스와 데님 앙상블, 테일러드 슈트와 머메이드 드레스부터 에스닉 프린트, 마린 스트라이프까지 그의 마지막 기성복 컬렉션을 통해 본 장 폴 고티에의 기상천외한 패션세계!

1 1990년 ‘블론드 앰비션’ 투어의 마돈나. 2 폴 고티에의 2015년 봄/여름 컬렉션의 피날레 무대. 3 ‘미스 앙팡 테리블’ 콘셉트로 진행된 장 폴 고티에의 2015년 봄/여름 컬렉션.

The Corset

코르셋을 비롯해 브래지어, 슬립 드레스, 파자마 등 여자 속옷을 연상시키는 아이템은 장 폴 고티에 컬렉션의 단골 메뉴였다. 특히 1990년 마돈나의 ‘블론드 앰비션(Blond Ambition)’ 투어를 위해 디자인한, 원뿔 모양의 가슴컵이 달린 코르셋 드레스는 그와 마돈나의 커리어에 가장 아이코닉한 의상으로 남았다. 메탈릭 소재로 반 나누어진 이번 시즌의 코르셋 드레스는 장 폴 고티에의 21세기 뮤즈, 코코 로샤가 선보였다.

2007년 봄/여름 컬렉션의 데님 쿠튀르 드레스.

Denim Couture

데님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 또한 장 폴 고티에가 즐기던 작업 중 하나. 그는 데님을 찢고, 다시 엮으며 소재의 조직과 질감이 얼마나 다양해질 수 있는지 선보였고, 데님이 가진 다양한 톤의 블루 컬러를 통해 다채로운 색감을 연출해냈다. 늘 쿠튀르 컬렉션을 능가하는 데님 아이템을 만들어온 그가 이번 시즌 선보인 데님 룩은 데님 재킷에 레이스와 페이즐리 패턴의 실크 패트릭을 덧댄 가볍고 사랑스러운 앙상블이었다.

On Screen

장 폴 고티에의 무한한 상상력은 스크린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제5원소>,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와 그녀의 정부>, <키카>, <나쁜 교육> 등 그간 그가 의상을 디자인한 영화는 모두 완벽한 미장센을 자랑한다. 특히 <제5원소> 속 밀라 요보비치의 화이트 ‘붕대’ 보디 슈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의상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는 이런 장 폴 고티에의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의상들이 줄지어 나왔다.

2008년 봄/여름 컬렉션의 스트라이프 룩.

The Stripe

그의 남자 향수 ‘르 말(Le Male)’의 병 디자인에서도 볼 수 있듯 선원은 그의 디자인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는 프랑스 브레타뉴 지방의 선원들이 자주 입던 브레통 티셔츠의 줄무늬를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실험하며 다양한 룩을 만들어냈고, 이번 시즌에는 비늘처럼 반짝이는 시스루 블라우스와 컬러풀한 스트라이프 팬츠를 매치해 경쾌하게 풀어냈다.

The Suit

스스로는 스커트를 즐겨 입었고, 여자 모델에게는 남성성 강한 재킷을 즐겨 입힌 장 폴 고티에에게 슈트는 곧 성별의 벽을 허무는 상징이었다. 그는 40년 가까이 브랜드를 이끌어오는 동안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슈트를 선보였고, 이번 시즌에는 한 쪽은 날카로운 테일러링으로 구성되고, 한 쪽은 드레이핑된 하이브리드 슈트가 컬렉션의 주를 이뤘다.

The Mix

장 폴 고티에의 영감은 국경과 시대, 문화를 초월했다. 북유럽 전설 속 요정에 스페인의 투우사 재킷을 입히는가 하면 동양적인 자수의 공단 드레스에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를 씌우는 등 다양한 영감의 조합을 즐겼다. 이번 시즌의 기상천외한 조합은 화려한 프린트의 블라우스와 풀 스커트를 입고, 영화 <나초 리브레> 속 프로 레슬러의 가면을 쓴 모델에게서 볼 수 있었다.

The Mermaid

극적인 콘셉트를 좋아한 장 폴 고티에는 해적, 마녀, 요정 등 전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자주 런웨이에 등장시키곤 했다. 2008년에는 섬세한 실크와 비즈 드레스로 구성된, 인어를 주제로 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리옹 코티아르가 그의 비늘 패턴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또 다른 시그니처가 되었다. 이번 시즌의 머메이드 드레스는 어깨에 재킷을 걸쳐 모던하게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정하
    Photography
    InDigital, Gettyimages/Multi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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