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작품 촬영에만 매진한 결과, 곳간이 그득해졌습니다.
촬영만 계속한 것 같아요. 열심히 연달아서 찍기는 했네요.
<더 글로리>의 하도영으로 유명해졌지만, <99억의 여자>에서의 모습도 기억에 선명해요. 조여정 씨의 이복오빠 역할이었죠? 어둠의 세계에 있는.
그 작품에서 저를 보셨다는 분은 처음 봐요. 맞아요. 설정상 조직의 그런 거였는데.
그때부터 이제 매체 연기로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무대는 좀 쉬고 있는데, 그리운가요?
<더 글로리> 끝나자마자 바로 하고, 그 이후로는 못했어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연극, 하고 싶죠. 내년에는 꼭 하려고 지금 마음먹고 있어요.
무대에 오를 땐 어떤 작품을 선호하나요?
창작 작품을 좀 더 좋아해요. 초연이든 재연이든 처음부터 만드는 재미를 좀 느끼고 싶어서. 기존 좋은 작품도 재미있는 것은 또 하고 싶고요. 공연을 너무 좋아해서.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처럼 동시에 두 가지를 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요?
양쪽에 민폐가 안 돼야 하죠. 그게 제일 중요해요. 무대는 이번에는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는 것 같고, 매체는 대본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기존에 해보지 않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어요.
최근 공개된 영화 <전,란>도 그랬나요?
<더 글로리> 하도영이라는 캐릭터로 관심 받다 보니 같은 결의 캐릭터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도영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너무 한 가지 색으로 치우칠 것 같다는 고민을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전,란> 대본이 들어오고 이거다 싶었죠. 그다음에 <인터뷰>라는 작품을 하고. 다른 느낌의 <트리거>도 찍었죠.
그뿐인가요?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도 있죠. 차기작이 무려 4~5편에 달하고 다음 달부터 차례차례 공개될 예정입니다. 화제작에 계속 참여하는 건 어떤가요?
너무 기분 좋죠. 하지만 저는 어떤 작품도 기대는 안 하는 편이거든요.
기대작인데 막상 기대가 없다니요?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는 걸 알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최선을 다해보고 결과는 맡기는 거죠. <더 글로리>도 다른 작품도 완성도 있게 잘 나와서 잘된 거예요. 내가 작품을 잘 고르고 잘 해서가 아니죠. 그런 작품이 들어왔을 때 할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게 운 같아요. 그 결과가 좋았을 때 너무 감사하죠. 제작진, 스태프, 동료 배우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더 글로리>나 <전,란>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의 현장은 더 고된가요?
의외로 테이크를 많이 가지는 않았어요. <전,란>도 그렇고. 특히 <더 글로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감독님이 자기 그림이 명확하게 있으시면 빨리 넘어가더라고요. 제가 엄청 불안했죠. 정말 오케이일까? <전,란>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인터뷰는 <전,란>과 곧 공개될 디즈니플러스 <트리거> 사이에서 진행 중입니다. <전,란>의 겐신은 어떻게 남았나요?
저는 일단 6번 봤는데, 볼 때마다 재미있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볼 수 있더라고요. 저는 또 한동안 선조한테 빠져서.(웃음) 여기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 잘하고, 좋은 배우들이라 그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미있어요. 또 전쟁의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요.
겐신은 적군이지만 굉장히 충실한 직업인, 직업 군인입니다. 배우의 삶도 비슷할 거 같은데요. 서로의 무예에 감탄하듯 연기에 감탄하게 되는.
현장에서 여러 배우에게 진짜 많이 배워요. 제가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요즘 친구들은 연기를 이렇게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도 배우고요. 그들이 지향하는 어떤 연기나 요즘 관객이 좋아하는 어떤 호흡이나 템포나 그런 것을. 어쨌든 도태되지 않으려면 늘 무대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도태’될 것을 걱정한다고요?
늘 걱정하죠. 저는 노력형이에요. 그걸 아니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불안감이 있어요. 불안함이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도 같고요.
그 불안감은 어떨 때 해소되나요?
저는 해소가 안 돼요.(웃음) 30대 초반에는 주위에서 막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제가 진짜 잘하는 줄 알던 때가 있었는데, 그다음 작품에서 바로 박살 났거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연습할 장소가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연습하면서 피눈물 나게 노력했어요. 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구나. 진짜 이 정도면 정말 난 최선을 다했어! 하고 집에 가도 불과 며칠 있으면 최선을 다한 건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죠. 스트레스죠, 저도.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웃음)
그래서 그렇게 마른 몸이 유지되는 건가 싶습니다.
살은 먹으면 찌고요.(웃음) 지난번 작품할 땐 얼굴이 아주 동그래졌어요. 오늘도 아침에 달리고 왔는 걸요. 요즘 또 뛰는 거에 재미가 들려서.
요즘은 러닝이 대세라고 하죠. 루틴이 어떻게 되나요?
동네를 뛰는데 눈뜨면 그냥 공복에 나가요. 처음에 100m도 못 뛰었어요. 그러다가 200m, 300m 뛰면 죽을 거 같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이제 10km는 뛰어요. 조금씩 늘기는 하더라고요. 뛰면 또 늘고 그 거리에 대한 성취감도 있고, 거리가 늘면 또 시간을 당기는 거에 대한 성취감도 있고.
인터뷰가 되게 자기 계발서 같네요. ‘노력은 모든 것을 이긴다’?
하하! 진짜예요. 나는 뭐든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구나. 한 번에 안 되고. 단번의 도약은 없다. 인생도 그렇고. 대신 내가 하는 만큼 결과는 늘 거둔 거 같아요.
그거면 됐죠.
그러니까 그 노력의 맛을 아는 거죠. 내가 노력한 만큼의 어떤 결과가 온다는 걸 아니까, 그 결과를 받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게 돼요.
지금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어요?
늘 첫 번째는 연기인 것 같아요. 얼마 전 <햄릿>을 보러 갔거든요. 조승우 배우를 보면서 ‘난 사람이 노력까지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너무 기분 좋은 자극이었어요. 내가 지금 딴생각할 때가 아니다. 연기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구나 싶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이 더 길어진 느낌. 목표가 뭔가 생긴 느낌. 그게 너무 좋았어요.
인터뷰에서 항상 다른 배우들과 일하는 즐거움을 언급하곤 해요. 차기작인 <트리거>를 생각해보면 함께 주연을 맡은 김혜수 씨는 우리 시대의 대단한 배우잖아요. 호흡은 어땠나요?
최고였죠. 그러니까 왜 그분이 ‘김혜수’고 그 위치에 있는지 알게 됐죠. 많이 보고 배웠어요. 연기적으로, 인간적으로, 일적으로 다요. 오랜 시간 많이 붙어 있다 보니 이제 ‘베프’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요즘은 공연도 같이 보러 가고 해요. 그리고 뭘 또 많이 보내주세요. 혜수 누나가 건강에 진짜 관심이 많은데 건강에 대한 정보도 항상 알려주죠. 어떨 때는 누나 같고, 어떨 때는 친구 같고, 어떨 때는 동생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진짜 말도 못했어요. 첫 미팅할 때 차에서 진짜 한 15분인가, 20분 떨다가 올라갔어요. ‘어떻게 인사드려야 하지?’ 고민하다가.
하하, 팬 마인드로 긴장했군요.
팬심이 너무 크다 보니. 동경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러 가기 전에 떨림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막상 만나니까 누나는 그냥 ‘앞면’만 있으신 분.(웃음) 인복이 있는 거 같아요. 작품마다 이렇게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아요.
차기작 <트리거> <메이드 인 코리아> <전지적 독자 시점> <인터뷰> 모두 빠트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작품에 대한 관심을 특히 당부한다면?
그럼 <트리거>! 관심을 꼭! 당부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보니 계속 코미디에 대한 애정 또는 갈구가 있는데, 사실 굉장히 조용하고 농담 한번 못할 것 같네요. <트리거>에서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탐사보도 PD’가 되어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한다면서요?
(매니저를 보며) 나 웃기지 않아? 낯을 많이 가리는데, 웃기는 면이 있습니다. 이번 <트리거>에서는 코미디적인 부분이 좀 나오거든요. 오랜만에 좀 많이 풀어졌죠. 망가지기도 했고. 원래 공연에서도 코미디를 많이 좋아했어요. 사람들을 웃기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보는 게 좋았거든요.
쉴 틈 없이 작품이 이어졌는데, 휴식이 필요하진 않나요?
쉬는 거는 길어봐야 2주인 것 같아요. 열흘이 넘어가면 쉬는 것도 이제 좀 불편한 거죠.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웃음)
하도영을 수식하는 ‘나이스한 개새끼’라는 말이 한동안 유명했죠. ‘나이스한 000’를 새롭게 채워본다면 뭘로 하겠어요?
다른 단어 말고 그냥 정성일. 아직도 ‘연진이 남편’ ‘예솔이 아빠’ 아니면 ‘하도영’으로 불리거든요. 한번은 누가 너무 반갑게 인사하는데, 정성일과 하도영을 섞어서 하도일 씨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저는 그냥 정성일이면 충분합니다. 정성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분들이 아직은 많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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