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후에 오는 것들
단순히 일손을 덜어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마음까지 차분하게 해주는 정리 정돈의 효과를 제대로 맛봤으니까.
만약 “살면서 괴롭고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첫째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 둘째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사람, 셋째는 정리 정돈이라 답할 것이다. 물건을 줄이고 보기 좋게 정리하는 일은 내게 ‘인생의 숙제’다. 어질러진 주변에 불편도 느끼지 않는 성격이면 좋았겠지만, 정리를 못하고 어려워하는 만큼 정리되지 않은 주변을 매우 싫어한다. 정리,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리에는 영 소질 없는 내가 가장 고난도인 이사 후 정리 정돈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정리는 정리 전문가에게
궁할 때는 구할 수밖에. 꾸준히 눈여겨보던 정리 정돈 업체에 연락했다. 요즘 정리 정돈 서비스는 단순히 정리만 하는 건 아니다. ‘베러앤’은 일종의 ‘정리 컨설팅’도 해준다. 이사 후 정리 정돈은 이사 전에 미리 집을 방문해 가구와 짐의 양을 파악하고, 어떤 것을 버리고 가져갈지 묻는다. 이사 갈 곳의 공간이 넉넉하지 않으면 가구 배치와 수납공간 확보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한다. 특히 우리는 집 크기를 13평이나 줄여야 했기에 이 부분에서 배러앤 이현앵 본부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PART. 1 이사 전 정리 준비
정리 정돈 서비스, 특히 이사 후 정리 서비스는 업체가 모든 걸 해주는 건 아니다. 고객도 서비스를 십분 활용할 준비 및 참여를 해야 한다. 내가 이사 전 컨설팅에서 받은 과제는 ‘최대한 버리기’. 실제 이사 후 정리 과정에서 버릴 것을 골라내는 소모적 시간을 줄이고 정리 자체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 ‘인건비×시간’으로 책정되는 비용을 줄이는 팁이다. 이사하기 한 달 전부터 버리기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아이를 재우고 밤마다 버리기 야근의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은 가전이나 가구 같은 큰 짐을 정리하며 당근 거래를 하느라 분주했고, 나는 옷과 약, 신발, 문구류 등 자잘한 짐을 버렸다. 공교롭게도 이삿날은 <얼루어> 마감 기간이자, <얼루어 도쿄 페어> 바로 전날이었다. 드디어 이사하는 날. 이삿짐 트럭은 새집으로, 나는 회사로 출발했고, 그다음은 남편의 몫이었다. 야근 후 집에 가보니 안주인의 부재와 평수가 좁아진 탓에 온갖 짐이 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미리 아파트 도면 파일을 구해 가구를 배치하며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가구 몇 개는 심지어 ‘입뺀’! 그 속에서 간신히 옷가지와 화장품을 찾아 출장 짐을 쌌고, 돌아온 뒤 정리 정돈 서비스받을 날을 기대하며 이 카오스를 견뎠다.
PART. 2 D-DAY 대 정리의 날
정리 서비스는 보통 오전 10시에서 시작해 오후 7시에 마무리되고, 25평 이상이면 기본적으로 시니어 전문가 5명에 주니어 전문가 2~3명이 투입된다. 드디어 그날! 유니폼을 차려입은 전문가 7명이 등장, 각 담당 공간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해 서랍 속 모든 물건을 꺼내놓았다.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한 다음 제자리를 찾는 과정을 위해서다. 전문가는 이 과정에서 고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상의한다. 예를 들면 “이 프라이팬은 많이 상했는데 그대로 두실 건가요?” “이 그릇은 자주 사용하는 건가요?” “이 옷은 실내복인가요, 외출복인가요?” “이 고데기는 자주 사용하세요?’ 등이다. 그 때문에 고객의 참여가 필수다. 타 서비스와 달리 맡겨놓고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드레스 룸 담당자, 주방 담당자, 침실 담당자와 동시다발적으로 긴밀하게 소통해야 하기에 어찌 보면 가장 집중해야 하는 사람이 고객인 셈. 아이에게 작아진 옷을 고르는 것도, 자주 입는 옷을 분류하는 것도 내 몫이다. 이건 정리 정돈의 신이 와도 대신할 수 없는 일! 그렇게 1초의 유튜브 눈팅할 새도 없이 어느새 오후 4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돈이 완료된 부분이 없어 ‘아, 이러다 시간이 초과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7시가 다 되어가자 나도 모르게 ‘대박’ 소리가 나올 만큼 말끔히 정리된 공간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은 남편의 옷장. 무채색을 주로 입는 취향 덕에 화이트, 그레이, 블랙 컬러로 옷장에 가지런히 걸린 장면을 보니 흡사 남성복 매장 진열대를 보는 듯했다. 이불장도 놀라웠다. 이사 직전까지 광고에 뜨는 이불 커버를 살지 말지 고민했는데, 사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 정리 수납 전문가에 따르면 이불 커버를 사용하면 통풍이 잘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이 공간 활용에 더 유리하다고. 분명 이불로 빼곡했던 이불장이 정돈 후, 공간의 30% 이상이 비어 있어 절로 물개 박수를 쳤다. 옷은 옷걸이를 활용해 최대한 많은 의류를 걸어 정리해줬는데, 이는 추천받아 구매해둔 슬림한 형태의 옷걸이가 큰 역할을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걸어두는 옷과 보관하는 옷을 바꾸느라 애먹었던 과거는 안녕이다. 이제는 사계절 옷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1년 내내 대대적인 옷 정리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또 로망이던 그릇 하나 나와 있지 않은 주방이 현실이 됐다. 베러앤 전문가들이 등장할 때 각종 흰 바구니를 너무 많이 가져온 것 같아 의아했는데 다 쓰임이 있었다. 수납장 곳곳에 자리 잡으며 좁은 공간에 여유를 더해준 것. 대미는 라벨링이다. 서랍마다 어떤 물건이 있는지 붙여두는 거다. 그 후 각 공간의 담당자가 고객에게 어떤 것이 어떻게 자리를 찾았는지 브리핑하는 것으로 서비스가 마무리된다.
정리 정돈 서비스 후
그렇게 버렸는데도 정리하면서 나온 폐기물이 20L 종량제 봉투에 한가득 담겼다. 혼돈에서 우리 가족을 구원해 ‘싹싹핑(사물이 저절로 정리 정돈되는 마법을 부리는 티니핑 이름)’ 선생님들이 가시고, 드디어 숨을 돌렸다. 다시 말하지만 고객이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개운하게 샤워하려고 ‘속옷’ 라벨링 테이프가 붙여진 서랍을 열었는데, 완벽한 정렬이 망가질 것 같아 선뜻 팬티 하나 꺼내기가 무서웠다. 정리 정돈 서비스 부작용이 있다면 이런 거다. 집 안에서의 모든 행동이 어색해진다는 것. 정돈된 상태를 허물고 싶지 않아 전문가가 옷을 갠 모양을 연구해 따라 하기도 하고, 한번 사용한 물건은 정리해준 자리에 넣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수하는 정리 비법은 ‘정리 습관을 조금씩 익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정리하는 것’으로 의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끌어내는 데 있다”고. 이는 극적 변화를 경험하고 거기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에 의식이 변화하고, 좋든 싫든 생활 습관도 바뀌는 것이라고 한다. 정리는 한 번에, 왕창 하는 게 답이라는 것! 매일 조금씩 꾸준히 정리하는 것으로는 의식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단언컨대 정리 정돈 컨설팅은 살면서 경험한 ‘사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3년 전, 이사 후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는 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그동안 ‘집 정리 언제 하지’라는 걱정을 품고 산 것까지 생각하면 이번 서비스는 내게 일종의 ‘라이프스타일 테라피’에 가깝다.
정리 정돈 서비스 기본 정보
– 집 전체가 아닌 부분 공간 정리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 공간이 아닌 시간제로 정리 서비스와 정리 코칭을 받을 수 있다.
– 비용은 인건비 기준이고, 시니어와 주니어의 비용이 다르다.
– 바구니 등 수납 도구는 서비스 업체에서 준비해주고, 서비스 후 실비가 추가된다.
– 기본 정리 정돈 시간에서 초과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 가정뿐 아니라 회사나 작업 공간 서비스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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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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