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신조어의 굴레
우리의 콤플렉스를 계속 자극하는 새로운 뷰티 신조어. 이 끝없는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콤플렉스가 장착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특정 시대와 문화가 만들어낸 미의 기준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것. 1950년대 패션 광고에서는 잘록한 허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트렌드는 반세기가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고, 깡마르고 퇴폐적 병약미를 추구하던 이른바 ‘헤로인 시크(Heroin Chic)’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온갖 매체에선 ‘러브 핸들(Love Handles, 옆구리 살)’이나 ‘캥클(Cankles, 코끼리 발목)’ 같은 단어로 신체 부위에 대한 비판을 일삼았다. 2010년대 후반 블로그 플랫폼 ‘텀블러’에서 시작된 ‘사이 갭(Thigh Gap, 허벅지 사이 틈)’ 유행은 밀레니얼 세대가 허벅지 사이의 틈을 만드는 데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힙 딥(Hip Dip, 골반과 허벅지 사이 움푹한 부분)’이 새로운 이슈로 부상하며 우리에게 또 다른 콤플렉스가 추가되었다.
2024년 1월, 틱톡에서 ‘신스피레이션(날씬한(Thin)과 영감(Inspiration)의 합성어. 마른 몸매를 위한 경험과 노하우를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것)’의 일환으로 유행한 ‘#레깅스 레그(Legging Legs)’ 챌린지는 2014년 당시 유행하던 트렌드가 Z세대 취향에 맞게 변형되어 부활한 듯 보였다. 논란이 커지자 틱톡은 관련 해시태그를 차단했고 해당 검색어를 입력하면 섭식장애 치료 화면으로 연결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해시태그를 금지했다고 틱톡의 빠른 알고리즘과 반복되는 외모 트렌드의 굴레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신체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보는 ‘미시적 외모 강박’에 의해 스스로를 평가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외모 관련 용어는 특정 신체 부위에 나타나는 사소한 특징에서 시작된다. ‘코르티솔 페이스(Cortisol Face)’는 얼굴이 보름달처럼 붓는 현상을, ‘배드 페이셜 하모니(Bad Facial Harmony)’는 비율이 어긋난 얼굴을 일컫는다. ‘셉텀 암(Septum Arms)’은 팔뚝을 제외한 외모는 괜찮다는 의미로, ‘(Ex)cept ’em arms’라는 발음에서 유래한 신조어다. 여기에 피부와 입술 사이 경계가 뚜렷한 ‘더블 립 라인(Double Lip Lines)’이나 ‘근막 불균형(Myofascial Imbalance)’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특정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특정 표현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니 어느새 평범하던 신체 부위도 이상이 있는 것 같고, 개선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신체 결점을 지적하는 표현이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알고리즘을 타면 손으로 스크롤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확산한다.
일부 신조어는 이미 많은 사람이 가진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특정 신체 부위를 ‘결함’으로 낙인찍는 뷰티 트렌드의 가장 큰 문제는 영속성에 있다. 내면의 열등감을 자극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트렌드가 끝없이 이어지며 과열되는 사이, 우리는 반항하려는 마음을 접고 무력한 관망자로 전락한다. 변덕스러운 알고리즘의 농간에 놀아나듯 자신의 몸을 더 엄격하게 검열하고, 자기 비하의 빈도와 강도는 전례 없이 높아졌다.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뷰티 트렌드의 영향력과 당위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영국 워릭 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뷰티 문화 윤리 연구자 헤더 위도스(Heather Widdows)는 “사람들은 사회가 규정한 멋진 외모를 가지면 자연스레 ‘좋은 인생’이라는 보상이 따라올 거라고 믿어요.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 이미지 중심 사회에서 이 같은 뷰티 트렌드 콘텐츠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올바른’ 몸매 가꾸기에 몰두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무엇이 ‘옳은’ 몸인지에 대한 기준이 변하는 속도는 이례적이다. 최근 외모 트렌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겼다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퍼진다. 또 나이, 성별, 직업, 온라인 영향력과 상관없이 외모 콤플렉스를 자극할 소재만 있다면 누구든 유행을 주도하는 환경이라는 것이 전과 확연히 다르다.
이런 외모 강박 트렌드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처럼 보여도, 사람들에겐 깊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 힙 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걸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 힙 딥이 있는 것이 정상 골반 형태임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 부분이 계속 눈에 밟히고 신경 쓰이고 심할 때는 위축되기까지 한다. 미국 심리학자 에밀리 그린(Emily Green)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뷰티 트렌드가 온라인에서 확산되면 사람들은 이게 누구나 다 아는 이슈라고 착각합니다. 실제로 그 내용을 접한 사람이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새로운 트렌드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군중심리가 발동해 그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거든요. 많은 이들이 관련 게시물을 공유한다면 완전 근거 없는 뜬소문일 리 없다는 믿음이 생겨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대세를 따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기도 하고요.”
지난해 7월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키아라 설리반(Keara Sullivan)이 ‘부부젤라 팔뚝(Vuvuzela Arms)’이라는 표현을 썼다. 부부젤라 팔뚝은 ‘가느다란 손목에서 어깨로 올라갈수록 굵어지는 팔’, 즉 그냥 평범한 팔을 지칭한 것으로 아프리카 전통악기인 부부젤라에서 착안해 만든 신조어다. 외모 강박을 조장하는 인터넷 문화의 황당한 세태를 풍자하기 위한 부부젤라 팔뚝이 그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풍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신체 결함으로 인식되며 틱톡에서 화제가 되었다. “정상 팔뚝에 과장된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제 농담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 사람이 이 표현을 실제 결함으로 받아들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설리반의 의도와 달리 우스꽝스러운 표현이 새로운 신체 결함으로 둔갑한 해프닝은, 우리가 콘텐츠를 얼마나 빠르게 소비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채 비현실적 미의 기준에 자신을 대입하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있다. 사소한 외모 강박을 조장하는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은 오프라인에서도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검열하며 몸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못하게 되는 거다.
“인터넷에서 본 외모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신체의 사소한 부분에 불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큰 문제가 아님에도 큰 결함으로 해석하고, 정도가 심하면 타인의 신체를 의식적으로 보기도 하죠.” 그린 박사는 이런 신체 검열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모 지적 콘텐츠는 대부분 조회수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 콘텐츠를 만든 사람의 내면 깊숙한 콤플렉스가 표출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종종 이런 콘텐츠를 만들기도 합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기인하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외모 개선을 위해 노력해도 자존감이나 행복감이 올라가지 않죠. 결국 자신의 콤플렉스를 타인에게 투영하게 됩니다.” 그린 박사가 설명하는 사람들의 심리처럼 수치심은 예상보다 전염성이 강하다.
우리가 소셜미디어 피드를 내리며 명심할 사실은, 이런 자극적 콘텐츠는 오로지 ‘관심 끌기용’이라는 거다. 애초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의 사실 여부는 신뢰하기 어렵다. “사소한 신체 특징은 개인의 키나 발 사이즈처럼 타고난 것이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린 박사는 덧붙여 설명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며 재생산되는 미시적 외모 강박의 굴레. 여기서 벗어날 최선의 방법은 어쩌면 소셜미디어에서 로그아웃해 강박에 찌든 뇌를 해방시키는 것뿐일지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처받은 자존감은 더욱 곪을 것이고, 어느 순간 ‘몸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의 지옥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 글
- MARIA SANTA POG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