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을 위한 시

작고 소중한 것들이 주는 소소한 행복으로 시작하는 2025년. 그 끝은 창대하리라. 

몇 년 전, 한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임원희가 돌멩이를 ‘반려돌’이라고 소개하며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준 적이 있다. 돌멩이에게 말을 걸고,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돌멩이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듯한 모양새는 폭소를 유발했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오늘, 반려돌과 연관된 사물들이(때로는 사람도) 2025년 트렌드 키워드로 떠올랐다.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해력’이라는 이름으로. 무해력이라는 용어는 트렌드 예측 전문가인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는 “작고 귀엽고 순수한 무해한 사물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을 무해력으로 정의하며, 우리 사회가 더 많은 해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사회의 성취감이 약해지면서 권력감을 느끼는 부분이 사라짐에 따라 다시 작은 것에 애정과 가치를 두게 되었음을 뜻한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환경을 지키는 것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사라질까 걱정하게 되었고, 이런 기술의 압박 속에서 무해력은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되찾으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30세대는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한 행복을 찾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패션계에서도 이런 경향은 예외가 아니다. 

해를 끼치지 않는 것들의 힘

작고 귀여운 것에서 위로받고, 서투르거나 완벽하지 않은 것에 공감하는 점에서 캐릭터는 좋은 예다. 최근 유한킴벌리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큰 화제를 모은 ‘빤쮸토끼’는 일본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불쌍해서 귀엽다’는 뜻의 ‘후빈카와이’를 대표하는 이 캐릭터는 작고 약하기 때문에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무해력의 핵심을 잘 나타낸다. 빤쮸토끼를 모티프로 하는 앙증맞은 패션 아이템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은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며, 착용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케이스티파이는 쿠로미를 대표 캐릭터로 세 번에 걸쳐 협업 아이템을 선보였으며, 쿠로미 후드 티와 모자, 가방, 키링 등 다양한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도산 플래그십 매장은 ‘케이스티파이 쿠로미 은하계 본부’라는 이름으로, 쿠로미 팬을 불러모으면서 스토어 전체를 쿠로미 테마로 꾸며 젠지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쿠로미 마니아인 한 지인은 “쿠로미는 불쌍한 아이예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도 마이 멜로디의 착한 설정의 반대 급부로 나쁜 외모와 성깔 등이 부각되거든요. 저는 그런 쿠로미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 좋아요.”

브랜드들은 이런 현상을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친근한 캐릭터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있다. MCM과 헬로키티, 로에베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캡슐 컬렉션, 멀버리와 미피의 리미티드 에디션, 여러 차례 협업한 지미추와 세일러문 컬렉션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한정판 아이템은 희소성을 강조하며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을 주고, 작은 굿즈를 통해 소비자가 럭셔리 브랜드에 쉽게 접근하도록 장벽을 낮추고 있다. 또 자연을 담은 아름다운 색채와 시각적 피로감을 줄이는 파스텔 톤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 홈웨어나 파자마 룩처럼 편하게 입는 의상이 데일리 복장으로 활용되는 트렌드 역시 무해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콰이어트 럭셔리처럼 타인에게 과시하기보다는 나만의 만족과 내면의 안정감을 추구하는 소비 패턴이나 고급스러운 품질과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심리적 편안함을 주는 무해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을 쏟아내고 자극적인 광고가 펼쳐지는 패션계에서 “이 옷을 사지 마세요”라고 다소 이상한(?) 캠페인을 벌인 파타고니아의 경우를 보자. 매해 블랙프라이데이 때마다 옷을 사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고객에게 중고 의류를 추천하고, 바느질 도구를 제공해 수선하는 방법을 벌일수록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본인이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고객은 ‘돈쭐’로 응수, 파타고니아는 계속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때문에 패션 심리학자는 무해력 트렌드가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분석한다. 무해한 사물과 서비스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과 친근함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작은 안식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귀여움의 미학과 긍정적인 영향의 선순환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무해력 트렌드는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으며, 간단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은 것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을 패션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면 무해력을 당신의 스타일에 접목해보자.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템이 당신의 일상에 고요하고도 거대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거다.

    일러스트레이터
    M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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