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여자, 코코 로샤
아름답고 상냥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다. 코코 로샤는 톱 모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포즈는 흔들림이 없었고, 맑은 두 눈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갈 줄 아는 여자의 지혜로 빛나고 있었다.
코코 로샤를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서도 그녀와 가장 어울리는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단연 현명함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패션계에서 지난 10년 동안 톱모델의 자리를 지켜온 그녀였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중심을 잃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명 ‘포즈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발렌시아가와 랑방, 샤넬의 아이코닉한 광고에 잇따라 등장할 때나 경쾌한 아이리시 댄스로 장 폴 고티에 런웨이 쇼의 오프닝을 열며 ‘코코 모멘트’라는 말을 만들어낼 때도 그녀는 캐나다의 작은 무용 대회에서 에이전트의 명함을 처음 건네받던 15살 소녀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어린 모델들을 위해 모델 조합을 만들고, 청소년의 섭식 장애 문제와 캄보디아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는 등 자신이 가진 자산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쓸 줄 아는 그녀가 최근 사진가 스티븐 세브링과 함께 작업한 새로운 책 를 출간했다. 문학과 예술, 패션을 모두 아우르는 ‘포즈의 바이블’로 불릴 이 책은 코코 로샤의 모든 것을 쏟아낸 결과물이자 모델에서 뮤즈로, 또 사회의 롤모델로 자신의 역할을 바꿔나가는 그녀의 디딤돌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 커리어와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컨트롤해나가는 코코 로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의 새로운 책, ‘Study of Pose’의 출간을 축하해요.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작업을 시작한 건 아마 2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스티븐 세브링은 그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가 1990년대부터 언젠가 꼭 하리라 꿈꿔온 프로젝트였어요. 단지 함께 작업할 모델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죠. 얘기를 처음 듣는 순간 꽤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그때 남편 제임스가 1000개의 포즈에 도전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렇게 패션과 미술사, 영화, 무용 등에서 영감을 받은 포즈의 백과사전을 만들게 되었어요. 정말 고되었지만 순수한 애정과 열정이 깃든 시간이었죠.
1000개라니! 정말 놀랍네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정말 어려웠어요! 제 자신과 경쟁하는 느낌이었죠. 한 650번째쯤에 다다랐을 때에는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절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제임스와 스티븐이 곁에서 격려해주었어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둘 중 한 사람이 유명 인사의 이름을 얘기하면 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몸짓을 표현했고 그런 식으로 다시 페이스를 찾아갔죠. 찰리 채플린, 마이클 잭슨, 싸이의 ‘강남 스타일’까지 생각나는 건 다 했어요!
유튜브에 올라온 책의 티저 영상을 보니 마치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춘 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데뷔 전 무용수로서의 경험이 묻어나온 걸까요?
무성영화 속 배우처럼, 언어 없이 오로지 몸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사진가가 정해준 상황과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걸 몸짓으로 표현하면서 빈 공간을 풍성하게 채워나간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모든 촬영을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무용수로서의 기본기는 제가 모델 활동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체력과 몸을 사용하는 기술, 끈기와 근성을 남겨주었죠. 촬영이 끝난 뒤 지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매사에 참 열심인 것 같아요. 오늘 촬영장에도 20분이나 먼저 오고.
어떤 이는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하나의 근사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직업 의식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늘 충실하게 임하죠. 살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책 작업은 기존의 모델 일에서 한발 더 나아간 느낌이 들어요.
책 자체는 고전적인 흑백 사진으로 채워져 있지만 곧 출시될 디지털 앱 버전이 무척 흥미로워요. 영화 <매트릭스>의 총알을 피하는 장면처럼, 모든 포즈를 360도에서 3D로 촬영했거든요. 1000개의 포즈를 모두 손가락으로 돌려가며 다각도로 볼 수 있어요. 또 하드 카피에서는 볼 수 없는 사진이 무려 10만 장이나 들어 있고요. 엄청나죠!
이번 작업은 모델뿐만 아니라 조각가, 배우, 예술가, 무용수 등 다양 한 분야의 사람들이 반길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친구들의 아이패드에 저장된 앱, 이웃집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즐길 수 있게요.
2년 전에는 사진을 찍은 뒤 초점을 맞추는 리트로 다초점 카메라로 패션 화보를 찍기도 했어요. 그것도 당신이 그쪽에 먼저 문의해서요. 이번 책도 그렇고, 평소 새로운 형식의 작업에 많은 관심이 있나 봐요?
예술과 패션을 대할 때, 아티스트로서, 또 뮤즈로서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한 말이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놀라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 시대에는 별로 놀라거나 감동할 일이 없잖아요. 하지만 그런 일이 한 번씩 찾아오는 순간, 기쁨은 배가돼요. 예를 들어 지난해 가을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저의 홀로그램과 함께 무대에서 춤추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때가 바로 그런 놀라운 순간이었죠.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당신의 SNS 계정을 모두 들여다봤어요. 텀블러부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까지 정말 많은 계정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SNS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10년 전 데뷔 때만 해도 SNS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델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죠. 본질적으로 우리는 항상 뭔가를 홍보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구두, 드레스, 때로는 라이프스타일까지도요. 그러니 모델로서 SNS에 소통의 채널을 만들고 자신만의 청중을 관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미지를 직접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유용하죠. 1400만 명의 팔로워를 상대하다 보면 어떤 말을 올릴지, 또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고심하게 돼요. 가벼운 일상 못지않게 제가 참여하는 자선 사업 소식을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거든요.
사회활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당신은 어린 모델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어요. 선배 모델로서 사명감을 느끼나요?
문제는 그거예요. 모델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다는 것. 몸이 채 다 성장하기도 전인 13~14살에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다 보면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굴곡에 대해 적응을 못하거든요.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게 괜찮다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해주지 않아요. 오히려 에지가 사라졌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홀로 내던져지는가 하면 캐스팅장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다 반사예요. 모두 어린 아이가 겪을 일은 아니죠.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일단 미성년자인 모델은 무조건 보호자가 촬영장에 동행해야 해요. 사진가의 스튜디오에 10대 모델이 홀로 찾아간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인 여성을 위한 옷을 팔고, 어른들의 패션과 문화를 홍보하는 데 과연 14살짜리 모델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잡지사와 브랜드들이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말 많고 피상적인 패션 업계에서 당신만의 가치관을 지켜나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일을 하면서 저의 도덕적 원칙과 결정으로 인해 손해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여러번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또 그 성공을 제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궈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예나 지금이나 저의 목표는 업계에 입문할 때와 변함없이 같은 사람으로 떠나는 것이거든요. 그냥 조금 더 나이 들고, 현명해져서 말이에요.
당신의 사진으로 도배된 제임스의 SNS 계정을 보니 당신이 얼마나 남편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자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성공적인 커리어와 행복한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다행히 제 남편은 아티스트이자 저의 매니저이기도 해서 늘 함께 붙어 있어요. 촬영도, 행사도 모두 같이 다니죠. 그렇다 보니 여느 커플들보다 는 좀 더 서로를 알고, 더 많이 서로의 사진을 찍을 수 있죠. 또 저희는 뉴저지의 시골에 있는 작은 농가에 사는데 집에서 조용히 함께 있는 것도 좋아해요. 단 둘만의 공간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당신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아요. 다음에 펼쳐질 새로운 일은 무엇인가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저 곧 엄마가 돼요! 제 삶의 새로운 역할이죠. 내년 봄 출산 예정이에요. 남편도 저도, 무척 기뻐하고 있어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균형은 금방 다시 찾을 수 있겠죠. 그리고 이후의 삶은 장 폴 고티에의 말처럼 즐거운 놀라움의 연속이 될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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