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마주하는 새로운 태도, 신체중립성
보디 포지티브가 아닌 보디 뉴트럴.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몸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 ‘신체중립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전히 우울한 보디 포지티브
‘보디 포지티브’ 시대가 저물어간다. 1960년대에 등장해 2010년대 SNS 시대 이후 다시 주목받은 보디 포지티브 운동은 저마다 체형과 크기,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존중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해왔다. 처음엔 신세계를 마주한 듯했다. 더 이상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모든 몸이 완벽하다고 인정받는 게 얼마나 이상적인가? 실제로 보디 포지티브는 많은 사람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시선을 의식해 숨어 살던 이들은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드러냈고, 스스로를 사랑함으로써 타인의 평가가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보디 포지티브는 곧 한계에 부딪혔다. 이 운동은 자신의 불완전함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과시하도록 유도했고, 완벽하지 않은 몸을 ‘옳다’고 생각하길 강요하며 정서적 불안을 초래했다. ‘모든 몸은 아름답다’라는 외침이 미의 기준을 선명하게 각인한, 역설적 결과를 낳아버렸다.
신체중립성은 뭐가 다른데?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사고방식에 주목한다. 몸은 그저 ‘몸’일 뿐 그 이상의 해석이나 의미,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 사랑할 필요도 혐오할 이유도 없이 신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 섭식장애 전문가 앤 포이리어(Anne Poirier)가 2015년 처음 제시한 ‘신체중립성(Body Neutrality)’이다. 포이리어는 신체중립성의 핵심을 “외적 매력과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대신, 내 몸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체중립성은 보디 포지티브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다. 두 개념 중 어느 것이 더 옳으냐는 질문도 무의미하다. 신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싫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튼살 자국은 체중 변화나 호르몬 이상이 몸에 남긴 흔적이다. 어떤 이는 이를 없애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중립성의 관점에서는 그저 몸에 튼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싫어하는 감정조차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몸에 대해 좋은 감정만 느껴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허용하는 거다. 같은 의미로, 체형이 표준 이상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미디어 속 모델처럼 되고 싶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신체중립성은 특정한 몸을 이상적으로 여기거나 사랑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다. 다만 체중이 증가해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정도다.
완벽한 몸을 향한 집착의 말로
영화 <서브스턴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신비의 약물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몸 ‘수(마가렛 퀄리 분)’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데미 무어 그 자체다. 엘리자베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길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진 배우지만, 나이가 들어 연예계에서 점차 소외되며 하나 남은 TV 쇼에서마저 잘린다. 데미 무어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때 세계에서 아름다운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혔고, <사랑과 영혼>과 <지. 아이. 제인> 등 많은 대표작을 가진 배우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 관리에도 불구하고 점차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약 7억원을 들여 전신 성형까지 감행했다. 같은 또래의 남성 배우는 외모에 관계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도. 영화관을 나서며 아름다움을 위해 철저하게 망가진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곱씹던 나는 어느새 마가렛 퀄리가 얼마나 예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튼살 자국은 체중 변화나 호르몬 이상이 몸에 남긴 흔적이다. 어떤 이는 이를 없애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체중립성의 관점에서는 그저 몸에 튼살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싫어하는 감정조차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몸에 대해 좋은 감정만 느껴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허용하는 거다. 같은 의미로, 체형이 표준 이상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미디어 속 모델처럼 되고 싶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신체중립성은 특정한 몸을 이상적으로 여기거나 사랑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다. 다만 체중이 증가해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정도다.
완벽한 몸을 향한 집착의 말로
영화 <서브스턴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신비의 약물을 통해 젊고 아름다운 몸 ‘수(마가렛 퀄리 분)’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 중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데미 무어 그 자체다. 엘리자베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새길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진 배우지만, 나이가 들어 연예계에서 점차 소외되며 하나 남은 TV 쇼에서마저 잘린다. 데미 무어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때 세계에서 아름다운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혔고, <사랑과 영혼>과 <지. 아이. 제인> 등 많은 대표작을 가진 배우였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 관리에도 불구하고 점차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약 7억원을 들여 전신 성형까지 감행했다. 같은 또래의 남성 배우는 외모에 관계없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도. 영화관을 나서며 아름다움을 위해 철저하게 망가진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곱씹던 나는 어느새 마가렛 퀄리가 얼마나 예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현대사회의 모순을 자각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노화와 아름다움에 관한 극단적 비교가 펼쳐진 영화였지만, 무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용기 덕에 생애 첫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예쁘지 않다고, 충분히 날씬하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그냥 다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죠. 그런 순간에 한 여성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저는 이것을 제 온전함의 표시이자 저를 이끄는 사랑,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축하하는 선물로 삼고 싶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무어의 말처럼 아무리 ‘완벽한’ 몸을 가진다 해도, 외모 불안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의 강박에서 벗어날 시간
문제는 아름다운 몸은 옳고 그렇지 않은 몸은 실패했다고 여기는 태도다. 우리는 신체를 지나치게 외적 기준, 도덕적 잣대와 흑백논리를 적용해 바라본다. 미의 압박에 시달리는 몸은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기에 앞서 두려움부터 떠오른다. 정작 몸을 통해 얻은 기쁨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가 몸을 통해 얻는 건 ‘좋아 보이는 몸’이 아닌 몸을 통해 경험하는 자기 효능감이다.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일 필요는 없다. 이제는 몸에 대한 정보를 저항이나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몸을 향한 집착적 에너지를 꺼야 할 때다. 신체중립성은 바로 그 시작점이다.
최신기사
- 포토그래퍼
- 정원영
- 참고 서적
- <바디 뉴트럴>(제시 닐랜드, 옐로브릭), <몸의 말들>(강혜영 외 7인, 아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