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김유정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될게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 막 피어난, 이토록 말갛고 투명한 얼굴로 영원히 피어 있을 것만 같은 열네 살의 김유정이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TV와 영화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얼굴, 여느 어린 배우와 다른 눈빛이 읽혔고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싶었지만 그녀는 어찌 되었든 아역 배우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해를 품은 달>에서 연우를 연기하는 김유정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흔히들 갸름해진 얼굴과 부쩍 자란 키를 두고 폭풍성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댔지만 그녀를 달리 보이게 한 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표현해낼 줄 아는 영민함에 있었다. 스스로 알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놓칠 수도 있었던 것, 김유정은 여유롭게 자신만의 영역에 들어섰다. “화보 촬영하려고 집에서 샐러드만 먹고 왔어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딸기를 베어 먹으며 말을 이었다.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하다고 말할 때, 모니터에 담긴 자신의 사진을 바라볼 때, 고양이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눌 때, 그녀의 얼굴은 시시각각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요소들로 반짝였다. 스스로 얼마나 예쁜지 아느냐고 묻고, 다시 딸기를 베어 먹는 그녀를 바라본다.
본인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저는 제가 그렇게 예쁜 줄 모르겠어요. 예쁜 애들이 정말 많잖아요. 어디서 들었는데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예뻐진대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지난 명절 때부터 먹고 자기만 해서 완전 동그래졌어요. 얼마 전에 화면에도 엄청 동그랗게 나왔는데 눈치 못챘어요?
유정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이런 말 하면 다 아니라고 하는데 한두 명쯤은 그렇다고 해요. 너무 많이 먹어서 좀 자제하려고 하고 있어요. 먹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오늘 화보 찍으려고 밥도 적게 먹고 운동도 많이 했어요.
벌써 관리하는 거예요? 역시 배우는 다르군요.
오랜만에 사진 찍는 거니까 예쁘게 나오고 싶어서요.
<해를 품은 달>에서 연우를 연기하는 건 어땠어요?
일년 만에 하는 작품이어서 초반에는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걸 알더라고요. 대사를 녹음하고 들어가면서 더 열심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중이 되었어요. <구미호>의 연이와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때를 떠올리면서 연기했는데 그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캐릭터에 완전히 빠졌다 싶을 때 아역 부분이 끝나서 아쉬웠어요.
어린 나이에 절제하는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연우는 슬퍼도 펑펑 울지 않고 기뻐도 소리내 웃지 않아요. 아버지가 사약을 줄 때 눈물이 너무 많이 났어요. 감독님이 울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서 애를 먹었어요.
야외 촬영이 유난히 많았죠? 볼이랑 손이 빨갛더라고요.
정말 엄청 추웠어요. 너무 추우니까 발음이 막 꼬여서 힘들었어요. 손에 핫팩을 들고 촬영하기도 하고 매일 담요와 함께했어요.
같은 또래가 많아서 심심하지는 않았겠어요.
쉬는 시간에 진희랑 소현이랑 장난도 치고 의상실, 분장실로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그랬어요.
연인인 여진구와의 촬영은 어땠어요?
진구 오빠랑 같이 찍은 장면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진구 오빠와의 장면을 기억하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오빠랑은 거의 A팀, B팀으로 떨어져서 촬영했어요. 마지막 촬영 때도 떨어져서 찍었고요.
두 사람을 더 애틋하게 만들려고 떨어뜨려놓았나봐요. 여진구, 이민호와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죠?
민호 오빠는 아역 모임도 있고 해서 자주 만났는데 진구 오빠는 <일지매> 촬영 이후 처음 만났어요. 다시 만나니 생전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더라고요. 그러다 금방 다시 친해지긴 했지만요.
어제 <해를 품은 달>은 본방 사수 했어요?
그럼요! 저는 수요일, 목요일만 목 빠지게 기다려요. 어제 수현 오빠 연기 무지 슬펐어요. 빨리 가인 언니가 연우라는 걸 알아차려야 할 텐데.
중간 중간에 어린 연우가 나와서 반가웠어요.
요즘에는 ‘아역이 나오면 흐름을 깬다,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아요. 감독님이 3월까지 출국 금지령을 내렸어요. 많지는 않지만 계속 나오게 될 것 같아요. 그저께도 촬영장에 다녀왔어요.
계속 볼 수 있다니 좋네요. 이제 촬영장 가면 어른인 훤을 만나겠네요.
수현 오빠는 저를 보면 ‘우리 예쁜 유정이’ 그러는데 진구 오빠는 저보고 남동생 같다고 해요. 지난 촬영 때 수현 오빠랑 같이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짧아서 아쉬웠어요.
유정이 추울까봐 안아주는 사진도 봤어요.
추울 때 자주 안아주는데 그걸 누가 찍어서 기사에 났나봐요.
드라마에 대한 반응만큼 유정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요.
친구들과 함께 있는데 다가오셔서 막 만지고 사진 찍고 하면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요. 아빠는 자만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세요. 자만하는 순간 무너진다고 하시면서요. 그 말씀을 항상 생각해요. 자꾸 제 기사가 뜨니까 신기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스키장에 다녀온 것도 인터넷 기사에 올라왔어요.
미니홈피를 엄마가 관리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제 사진이 올라가고 기사가 나와요. 엄마가 올릴 때 말을 안 하고 올려서 정말 깜짝깜짝 놀라요. 오늘 아침에는 1년 전에 아이유 언니랑 같이 방송했던게 기사로 나왔어요. 뜬금없이 그게 왜 떴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비해 팬들 연령층이 다양해졌죠?
제 또래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팬분들 중에 특히 여자분이 많아요. 댓글 보면 ‘언니가 사랑한다’, ‘언니가 아낀다’. 그래요. 오빠는 없나봐요. 하지만 여자분들이 좋아해주는 게 좋아요. 동성이 안티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드라마 이후에 안티가 꽤 생기긴 했지만요.
유정에게도 안티가 있어요?
어제 인터넷을 하다가 봤는데 ‘김유정은 사인해달라고 하면 돈 달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어요. 없는 사실을 가지고 그렇다, 아니다 싸우고 있는데 어이는 없었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저는 악플에 좀 강한 것 같아요. 악플도 관심이라고 생각해요.엄마는 보지 말라는데 자꾸 보게 되요. 피하는 것보다 알고 맞서는 게 좋잖아요.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정말 대인배군요.
대인배라 하니까 생각나는데 학교에서 적성 검사할 때도 대인배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예술분야에 소질이 있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직업을 갖는다고 나오더라고요.
타고난 거죠. 그 어려운 대사를 술술 외우는 거 봐요.
저는 대사를 미리 외우지 않고 그때그때 외워요. 익혀놓긴 하는데 외우지는 않아요. 현장 가서 상대방이 하는 대사를 듣고 앞뒤 상황을 연결하면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신기한 건 대사는 정말 잘 외워지는데 공부할 때는 안 외워진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대사 잘 외우니 공부도 잘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대본은 안 헷갈리는데 교과서는 보면 볼수록 헷갈려서 큰일이에요.
연기하길 정말 잘했네요.
촬영 끝나고 나면 대사를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공부도 자꾸 잊어버리게 되요. 차곡차곡 쌓여야 하는데 한번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그런데 점점 더 공부에 대한 오기가 생겨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4살 때부터 시작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어렸을 때 CF를 많이 찍었는데 오디션 볼 때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울기만 했대요. <뽀뽀뽀> 할 때도 다른 애들은 열심히 춤추는데 하기 싫어서 화장실 가겠다고 꾀 부리고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연기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작품을 쉬지 않고 한 것 같아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정의 얼굴을 계속 봤어요.
2년 전에는 드라마만 다섯 작품을 찍었어요. <동이> 촬영한 후부터 계속 드라마만 들어왔어요. 이제 다시 영화를 찍고 싶어요. 착하고 순한, 비슷한 역할만 들어와서 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고요. 로맨틱 코미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액션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정말 하고 싶은 건 악역 이에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보경이 역할이 정말 탐났어요. 맨날 보경이 대사 외워서 혼자 연습하고 그랬어요.
원래 성격은 어때요?
애들이랑 잘 어울리고 학교 끝나면 떡볶이랑 피자 먹고 사진 찍고 게임하고 또래 친구들처럼 놀아요. 친구들이 저보고 털털하대요.
언니랑 오빠가 있죠? 막내에다 이렇게 예쁘니 사랑을 듬뿍 받겠어요.
막내가 사랑받는다는 건 저희 집에는 해당되지 않아요. 전 맨날 집에서 심부름만 해요. 엄마가 오빠한테 시키면 오빠가 언니한테 시키고 언니는 또 저한테 시키거든요. 그런데 요즘 저한테 그런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그런 시기라뇨?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요. 원래 애교 있는 딸이었는데 아빠한테 접근 금지령을 내렸어요. 가족들은 왠지 내 맘을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잘 통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짜증을 내는 시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맞는 말인데 저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요. 작년에는 언니도 발랄하고 저도 발랄해서 신나게 잘 놀았는데 올해는 좀 시큰둥해요.
생각보다 엉뚱한 면이 있어서 더 매력적인데요? 오늘 오랜만의 화보 촬영은 어땠어요?
예전에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는데 요즘은 재미있어요. <해를 품은 달>의 꽃도령 4명이서 화보 찍은 거 보면서 저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민호 오빠와 진구 오빠와 함께 찍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연기 말고도 잘하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자신 있는 분야는 뭐예요?
요리요! ‘계란프라이에 라면 정도 끓이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쿠키도 만들고 웬만한 찌개랑 스파게티도 만들 수 있어요. 배운 적은 없고 레시피 보면서 마음대로 만들어요.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하면 잘할 것 같아요. 사진 작가나 패션 디자이너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나중에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요리를 만들어서 사진으로 찍고 그 작품을 전시하는 거예요.
말만 들어도 멋지네요. 도대체 못하는 게 뭐예요?
영어를 정말 못해요. 영어를 하라고 하니까 더 스트레스 받고 하기 싫어져요. 제 앞에서 친구들이 영어 하면 저리 가라고 해요. 영어를 포기하면 안 되는데 자꾸 포기하고 싶어져요.
챙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어요?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봐요. 유재석 아저씨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유정에게도 고민이 있겠죠?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참아야 하는 게 고민이에요. 가리는 거 없이 다 좋아해요. 회도 좋아하고 산낙지도 잘 먹고요. 드라마 촬영할 때는 많이 못 먹었는데 촬영 끝나고 원 없이 먹은 것 같아요.
한창 클 나인데 잘 먹는 게 좋죠. 키는 얼마까지 크고 싶어요?
170cm는 너무 클 것 같고 165에서 168cm 정도까지 크면 좋을 것 같아요.
168cm 키의 어른이 되면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너무 긴데 다 말해도 되요?
그럼요.
일단 키가 커야 되요. 저랑 7cm 이상 차이가 나고 어깨가 넓고 잔근육이 있어야 해요. 제가 품에 쏙 안겨야 하니까 저보다 마르면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제게는 따뜻한 사람이어야 해요. 제 고민을 잘 들어 주고 저만 바라보는…. 그리고 악기를 잘 다루면 좋겠어요. 노래를 잘 부르고 춤까지 잘 추면 더 좋겠죠? 가장 중요한 건 성격이에요. 저와 잘 맞아야 하니까. 아, 너무 복잡하니까 한마디로 ‘엄친아’라고 할게요. 그런데 공부는 좀 못 해도 괜찮아요.
‘앞으로 이런 배우가 될 거다’라고 약속을 해준다면요?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될게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 많은 사람이 유정이 그런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유정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나요?
빨리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촬영을 쉬면 불안하고 심심해요. 이번에 맡은 연우는 너무 슬펐으니까 다음 작품에서는 행복한 로맨스를 연기하고 싶어요. 아, 키가 쑥쑥 크고 살이 쏙 빠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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