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내내 스태프들이 호종의 높은 텐션을 보고 깜짝 놀라더라.
호종 지금까지 촬영한 화보 중 오늘 가장 편안하게 촬영했다. 혁중, 효준이와 함께 촬영해서 그런 것 같다.
세 사람은 <스테이지 파이터>(이하 <스테파>)에 함께 출연한 데 이어 무용단 ‘SAL’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언제 처음 만났나?
혁중 호종이 형과 효준이 모두 SAL에서 만났다. 호종이 형은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자주 봤다. 검은 배경에 웃통 벗고 추는 사람이 자꾸 뜨는데 너무 잘하는 거다. 서로 장르가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SAL에서 인연이 닿았다. 합류한 지는 2년이 좀 넘었다.
효준 혁중이 형은 현대무용 쪽에서 원래 유명해 이름은 알고 있었다. 호종이 형은 같은 한국 무용 장르라 콩쿠르에서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알고만 있다가 2021년 SAL 초창기 멤버로 합류하면서 형을 처음 봤다.
호종 배지훈 단장이 SAL을 기획할 때 연락을 받고 부단장으로 함께하게 됐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이라는 뜻을 담은 SAL(Subverted Anatomical Landscape)은 어떤 무용을 추구하나?
호종 세상의 시스템이나 고착된 시선을 안무를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제안한다. 안무를 하나의 해부 행위로 간주해 몸과 정신에서 일어나는 일을 드러내거나, 다양한 장르와 협업해 전위적으로 표현하려고도 한다. ‘크리틱스 초이스’라는 경연을 위해 프로젝트성으로 모였다가 해를 거듭하며 똘똘 뭉치게 됐다. 더 규모 있고 심도 있는 작품을 연출하고 우리만의 고유성을 지키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력은 물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무용수들이 모여 있다.
다들 SAL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 같다. 이곳에 들어와 크게 성장한 점이 있나?
효준 무용수들과의 교류와 화합이 특별하다. SAL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안무가 있으면 ‘지금 이 표현이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설득해줄 수 있을까요?’ 하고 요청하는 게 자연스럽다. 서로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이런 열린 소통이 이뤄지니 나 역시 타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것에서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걸 실감했다.
혁중 무용을 한 10년의 시간보다 SAL을 만난 2년 동안 바뀐 게 더 많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안무를 마주했을 때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췄다면, SAL에 와서는 ‘끝이 없다’라는 생각을 한다. 더 배우고,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커졌다. 무용 인생에 있어 제2의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효준 연습 시간이 5시면, 단원 대부분이 3~4시부터 와서 연습하고 있다. 심지어 너무 즐겁게!
호종 국립무용단 부수석으로 있을 때는 동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미장센이나 미적 가치의 정점을 향해 달렸다. SAL은 그와 달리 새로운 장르나 움직임으로 확장된 스펙트럼을 추구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갈증이 있던 터라 묵은 갈증을 마음껏 해소하고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익숙한 아름다움을 배반하며,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중이다. 이런 낯선 안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큰 전환점이 됐다.
이러한 열린 문화는 예술가에게 천국과도 같을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나?
호종 서로에 대한 리스펙이 엄청나다. 개성이 강할수록 자기만의 영역이 커지기 마련인데, 그 영역을 작품에 할애할 수 있다는 건 댄서와 안무가, 지도자 모두의 역량이다. 개인으로서 훌륭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시너지를 내는 건 드문 일이다.
SAL에서는 동료였지만, <스테파>에서는 경쟁자로 만났다. 서로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나?
호종 멋지게 춤추는 모습만 보다 까불고, 장난치고,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놓고 무장해제된 모습을 다 봤다. 서로의 인간적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적 친밀감이 더 커진 것 같다.
효준 진짜 전쟁터였다.
혁중 호종이 형한테 귀여운 면이 있다. 낯선 사람들과 있을 때 형만의 의젓한 가면이 있는데, 우리가 등장하면 살짝 장난스러운 모습이 올라온다.
효준 맞아. 뭔가 장난기가 시동 걸릴 때 표정이 있다.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 호종 역시 동생들이 든든했나?
호종 물론이다. 혁중, 효준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저 친구들이 좋은 성과를 내거나 괜찮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 ‘역시 잘하네’ 하면서 내심 뿌듯했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경연이 끝나고 나서는 서로 놀리기에 바빴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혁중 촬영이 진행될수록 형 동작 따라 하고 서로 조롱하기 바빴다. 시간이 갈수록 오늘은 어떻게 장난을 걸지? 훈수 두지? 하면서 출근했다.
그런 뜨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 어떤 자극을 주고받나?
혁중 호종이 형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무용수다. ‘이런 무용수가 또 언제 나올까?’ 싶다. 형을 볼 때면 좋은 의미로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삶이 무용을 위해 맞춰져 있다. 화장실 가는 시간, 손톱 깎는 시간까지 계산할 것 같은 치밀함과 계획성, 디테일이 징그러울 정도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대를 위해 연구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존경할 부분밖에 안 보인다.
효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존경하는 부분이 더 커진다. 온종일 스케줄을 소화한 날에도 연습실 가서 연습한다. SAL에서 ‘Cosmo’라는 공연을 할 당시 형이 횡문근융해증이라고 근육이 녹는 병을 앓았다. 형이 안무가로 참여한 작품인데 연습할 때 직접 보여줘야 한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시범을 보이더라. 직접 보여줘야 느낌을 알 수 있다며 절뚝절뚝 걸어와서는 또 완벽하게 추는 거다.
호종의 시선에서 혁중과 효준은 어떤 무용수인가?
호종 무대 위 혁중을 보면 ‘가장 이상적인 남자 무용수’라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안무가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지 않을까 싶다. 무용수는 몸으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기에 많은 것을 갖춰야 하는데, 타고난 것 이상으로 끊임없이 완성형을 위해 연마한다. 단순히 몸이 좋은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베이스가 훌륭하고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기에 무용수의 이상적인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동년배 남자 무용수들에게 질투나 시샘도 받을 것 같은데, 잘 이겨낼 수 있지?
효준 예쁜 몸이 무대에서 빛을 발하려면 동작이 정확해야 하는데, 혁중이 형은 진짜 훌륭하다. 나와 몸의 쓰임을 다르게 할 때가 많아 형을 보면서 새로운 시선을 키운다. 그래서 질문도 많이 하고 배우려고 하는 부분도 많다. 형 특유의 긍정 에너지와 밝음 덕분에 형이 있고 없을 때 연습실 분위기도 크게 다르다. 이런 얘기를 하면 형은 또 엄청 근질근질해할 거다.
혁중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칭찬으로 이렇게 맞으니 너무 기분 좋다. 이제 효준이 갈까요?
자, 효준 무용수도 시작해보자.
호종 효준이는 항상 이렇게 옷으로 몸을 가린다. 그런데 이 안에 엄청난 것이.(웃음) 발달한 근육이 무용수의 것이라기보다는 야성미가 있다. 짐승의 것 같달까. 실제로 이 친구 춤이 유려한 것 같으면서도 파워풀하다. 한국 무용을 전공했음에도 컨템퍼러리적 요소를 연마한 흔적도 보인다. 그 부분에 본인이 갈증을 느꼈다는 방증 같은데, 스스로 개척점을 발견한 것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다 보니 저 친구 동작을 보면 ‘어떻게 한 거지?’ 하면서 배울 때도 많다. 무용이라는 건 춤뿐 아니라 감정을 내포하기도 해서 때로는 캐릭터에 깊이 빠져야 할 때도 있는데, 효준은 그 부분에서 압도적이다. SAL에서 했던 작품 중‘KILL’을 보면 집중력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장면에서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이다.
혁중 호종이 형이 아주 큰 칭찬 펀치를 날렸다.(웃음) 나는 효준이의 춤을 눈앞에서 제대로 본 게 <스테파> 메가 스테이지 미션 때다. 전 장르가 다 모이는 미션이었는데, 얘가 어떻게 출지 전혀 몰랐다. 내 순서가 끝나고 효준이 무대를 보는데 에너지가 엄청나더라. ‘내가 떨어져도 할 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Zen’ 무대에서도 효준이의 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근데 효준이 입꼬리가 승천할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효준 나이를 떠나서 이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관찰하고, 생각해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다. 우리 SAL 멤버들이 이래서 참 좋다.
무용 외에 세 사람을 끈끈하게 묶는 주제는 무엇인가?
호종 게임할 때. 연습이 많다 보니 맨날 붙어 있어서 사적으로 더 봐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안 든다.(웃음)
혁중 게임상으로만 만난다.
효준 확실히 <스테파>를 하면서 더 친해진 것 같다. 먼저 장난치고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렇게 편한 형들이 생긴 건 처음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할 때 얻는 최고의 시너지는 무엇인가?
호종 자극. 댄서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자극을 얻는다.
혁중 혼자라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끌어냄으로써 무대 위에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다.
효준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이 없을 때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힘이 된다.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잘 가고 있다는 확신과 위로를 얻는다.
각자의 삶에 무용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나?
호종 운명이 됐다. 무용하지 않는 나, 무대에 서지 않는 나, 춤을 추지 않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내 삶과 완전히 융합됐다. 춤이 일종의 언어이자 내게는 춤을 통해 모든 것이 촉발된다. 춤을 통해 희로애락을 얻기 때문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혁중 어릴 때부터 음악, 미술 등 여러 예술을 배웠는데, 무용을 제외하곤 전부 한두 달 안에 그만뒀다. 무용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용을 배우면서 유일한 목표였던 콩쿠르에서 상을 받고 나서 공허함이 찾아와 1~2년간 방황하기도 했지만, 다른 일을 생각할수록 무용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계속 춤추고 싶고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더라. 더 오래 춤을 추는 게 새로운 목표가 됐다.
효준 질긴 운명인 것 같다. 무용을 하기 싫어 연기과에 진학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무용과로 갔다. 전과를 하겠다 다짐했는데 기회를 놓쳤고, 군대도 춤을 관두려고 갔다. 그런데 무용할 때면 나도 모르게 진심이 되더라. 피하려고 해도 돌아보면 ‘내가 너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황하면서도 몸은 계속 춤추고, 머릿속에도 무용 생각이 가득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호종 SAL이 5주년을 맞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당장은 7월 권재헌 단원과 내가 안무가로 참여하는 작품이 있다. SAL의 고유함을 녹여내면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것 같다. 더 과감해지고 더 강단 있고, 더 명확한 사람이 되어 흔들리지 않고 이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다. 개인으로서는 5월 말 새로운 형태의 콘서트를 기획 중이다.
혁중 지금까지 난 무용수 윤혁중으로만 살았다. 많은 이들의 움직임과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 영감과 스타일을 총집합해 내 것으로 소화해 안무에도 도전하고 싶다.
효준 나 역시 요즘 키워드는 ‘도전’이다. 아직 그 방향은 모호하지만 뭐든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자는 마음이다. 요즘은 그 도전을 위해 용기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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