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의 존재가 촬영장 분위기를 따듯하게 녹였다. 이렇게 또 한 번 반려동물의 위력을 실감한다.
JDZ 사람을 무장해제하는 반려동물만의 마법이 있다. 해내야 하는 몫이 정확히 있는 촬영 현장에서 그 능력은 더 빛을 발한다. 나도 턱스를 키울 당시 가능한 한 촬영장에 데리고 다녔다. 예민해진 스태프에게 힐링을 줄 뿐 아니라, 단순하게 감각하고 표현하는 턱스를 보고 있으면 카메라 너머 시선과 감정도 간결해졌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면 턱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종현 형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진이와 있을 때 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강아지와 아이는 거짓말을 못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쓰는 가면이 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허스키와 진도 믹스견 진이, 래브라도리트리버 턱스는 엄청난 덩치만큼 존재감도 상당할 것 같다.
JDZ 아기 때 턱스 발을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얘는 엄청 클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가 본 리트리버 중 우리 턱스가 제일 컸다.
종현 이 친구가 성견이 되면 꽤 크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어릴 때부터 교육을 엄격하게 시켰다. 요즘은 가끔 그 점이 미안하기도 하다. 다행히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다.
비슷한 듯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
종현 하와이에서 사진가와 모델로 처음 만났다. 팬데믹 이후 처음 간 출장이었는데 며칠간 함께 지내며 가까워졌다.
JDZ 촬영이 끝나고 종현이는 혼자 여행을 하는 일정이었다. “심심하면 연락해요”라고 했는데, 진짜 연락이 왔다.
한 번의 촬영으로 인연이 길게 이어지기는 어렵다. 어떻게 먼저 그런 용기를 냈나?
종현 용기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촬영장 분위기가 워낙 편안했고, 관심사도 통하는 게 많았다. 혼자 여행하는 건 또 기회가 있을 것 같아 형과 하루이틀 정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당시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종현 둘 다 골프에 미쳐 있었다.(웃음) 형은 직업으로 사진을 찍지만, 나 역시 사진 찍는 취미가 있고, ‘반려견’을 키운다는 공통점도 컸다. 좋아하는 게 비슷하니 얘기가 잘 통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형 집에 자주 놀러 갔다.
JDZ 시기가 참 묘했다. 당시 나와 아내는 12년간 키우던 턱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직후라 집이 굉장히 허전했다. 종현이와 진이가 오는 게 오히려 반가워 자주 불렀다.
종현 진이가 워낙 대형견이고 털도 많이 빠지는데 함께 초대해주니 무척 고마웠다. “민폐 아닐까요?” 하면 “제발 데려와” 할 정도였으니까. 진이 혼자 집에 두고 개인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불편한데 함께 놀 수 있으니 좋았다.
JDZ와 턱스와의 이별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며 진이와의 이별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나?
종현 당시에는 그 슬픔을 짐작할 수 없었다. 아홉 살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작년부터 진이가 나이 든 티가 확 나더라. 진이가 올해 열한 살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슬픔이 두려웠는데, 요즘은 마지막까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JDZ 우리 턱스는 딱 이틀 정도 아팠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갔더니 턱스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더라.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날은 숨소리가 이상했고, 생전 가지 않던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눕더라. 밤새 애를 보다가 아침 일찍 병원에 데리고 갔다.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네 발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는데, 확 안 좋아졌다. 검사를 하고 보니 귀 염증이 뇌로 퍼져 급성 쇼크가 왔다고 하더라. 수술만 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기에 이틀 뒤로 날을 잡았는데, 수술 당일 아침에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용감한 턱스가 우리가 인사할 수 있게 기다려줬다. 이별하는 순간까지도 최고의 효자였다.
당시 SNS에 턱스의 추모 포스팅이 많이 올라왔다.
JDZ 많은 사랑을 받은 행복한 강아지였다. 반려견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친구들이 30명 가까이 모였다. 일하시는 분이 놀라더라. 당시에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었지만, 실컷 울고 나니 좋은 마음만 남았다.
종현 그래서 나도 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잘 이별하기 위해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두 사람에게 반려견은 어떤 존재인가?
종현 보호자로서 보살피는 것보다 한두 살 어린 동생을 챙기는 느낌이다. 든든한 동거인이랄까. 우울한 일이 생겼을 때 진이가 발을 내밀면 위로해주는 것 같고, 힘들 때 눈을 보면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다.
JDZ 턱스가 떠나고 존재 의미가 더 선명해졌다. 알게 모르게 내가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더라. 퇴근하면 얘를 안거나 같이 누워만 있었던 터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지난해에는 홍종현의 반려견 포토 에세이북 <우리 함개, 웃고 놀개, 쭈-욱 행복하개>를 함께 작업했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종현 진이와 10년 정도 살다 보니 찍어놓은 사진이 정말 많았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전문 사진가도 아닌 내가 사진집을 낸다는 게 부끄러웠는데, ‘진이를 위한 선물을 만들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JDZ 사진집을 기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멋진 작업이라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나 역시 턱스의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지만 미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책을 만들면서 오랜 시간을 할애한 작업은 무엇인가?
종현 사진을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의 양이 방대했고,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자꾸 딴 길로 새서 집중하기 어렵더라.
JDZ 나도 턱스 사진이 사라질까 예전에 쓰던 휴대폰을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데이터를 옮긴다고 해도 혹시나 누락되는 컷이 있을까 걱정되더라.
그 많은 사진을 추리고도 JDZ에게 따로 촬영을 부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종현 진이를 촬영한 사진은 많은데, 막상 나와 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더라. 표지로 사용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찍고 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 표지로 활용하게 됐다.
두 사람이 함께 펼치고 싶은 일이 있나?
종현 형과 하는 모든 일은 늘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앖지만 언젠가 함께 로드 트립을 떠나고 싶다. 우리 둘 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니 차에 짐 가득 싣고 이런저런 풍경을 찍으러 다니는 거다.
JDZ 우리 사이에는 힐링이 더 중요하다. 마음 맞는 친구와 수다 떠는 시간이 진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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