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 예측할 수 없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깊고 고혹적인 눈을 깜빡이다가도 세상을 다 가진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말로 채워지지 않는, 하나를 벗기면 열을 드러내는 한지민을 어느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정확히 9년 전, 한지민은 그녀와 같은 나이의 여배우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당대의 여배우’라는 리스트에 가뿐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함께한 6시간 동안 한지민은 많이 웃었다. 맨발로 계단을 뛰어오르기도 했고 머리를 질끈 묶고서 밥을 쓱쓱 비벼 먹기도 했다. “왜 벌서고 있어요? 여기 앉아요”라며 어시스턴트의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휴대폰에 저장된 조카 사진을 보여줄 때는 세상에 없는 신통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예쁘다, 착하다는 시쳇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기꺼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그녀에게서 누구도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듣고 예상하고 기대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지민이 조금은 불안했던 지난날과 행복한 지금, 꿈꾸는 내일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녀는 아직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굴이 없어지겠어요.
작품 들어가면 살이 자연스럽게 빠져요. 친구들이 살 좀 그만 빼래요. 면봉 같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면봉이 어디 있단 말인가요!
그러게 말이에요. 하하.
드라마 끝나고 좀 쉬었어요?
며칠 동안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서만 놀다가 인터뷰하고 화보 촬영하고,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그랬어요.
여행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어디 좀 다녀왔어요?
<얼루어> 인터뷰 때문에 뒤로 좀 미뤘어요. 조만간 어디든 떠나려고요.
<빠담빠담> 촬영 중에 <옥탑방 왕세자> 대본이 들어온 거죠? 지나와 박하의 세계를 연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네.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빠담빠담>에서 지나가 제일 힘든 시기에 <옥탑방 왕세자> 대본을 받았거든요. 안 읽고 미루다가 읽게 되었는데 너무 힘든 상황에서 박하를 만나니까 뭔가 복잡한 생각이 정리가 되고 그녀의 밝은 에너지를 받아서 더 신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리도 지르고 농담도 하는 당신을 만나서 반가웠어요.
네. 박하는 정말 씩씩한 아이죠. 그래서 대리만족을 한 것 같아요. 4명의 남자 배우와 함께 하는 장면이 많다보니 초반에는 호흡 맞추기가 어려웠는데 적응이 되면서부터는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들의 얼굴만 봐도 웃겨서 난처한 상황도 있었지만요.
네 남자들의 사랑을 원 없이 받았겠네요.
절대 아니에요. 드라마 끝나고 인터뷰한 걸 보니까 저보고 털털하다, 남자 같다, 하더라고요. 내가 너무 편하게 대했나, 하고 후회했죠. 어딜 가나 막내였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제가 나이가 가장 많은 거예요. 후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잘해주려고 한 건데 남자로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
그들만의 남다른 애정 표현법이겠죠. 드라마 끝나고도 모였어요?
연락은 자주 하는데 매번 만나자 하면서 못 났어요. 제가 어린 친구들 사이에 좀 끼고 싶어 해요. 모르죠. 저 빼고 모였는지. 하하.
드라마 종방연 할 때마다 그렇게 많이 운다면서요?
스태프들을 또다시 그대로 만나기는 힘들잖아요. 그 생각에 끝날 때마다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스태프들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근데 10년 차가 되다 보니 어떻게든 또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아쉽기는 해도 예전만큼 슬프고 힘들진 않아요.
수많은 남자 배우와 함께 연기했잖아요. 함께한 남자 배우들 중에 다시 한번 만났으면 하면 배우가 있다면요?
제가 파트너 복이 많아요. 항상 저를 배려해주는 상대 배우를 만났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끝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아요. 굳이 한 명을 꼽으라면 제가 가장 부족할 때 만난 신하균 선배를 꼽을 수 있겠네요.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았을 거예요.
한지민도 때론 화를 내겠죠?
그럼요. 예전에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쌓아두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언니한테 얘기도 하고 친구들과 술 한잔하면서 털어놓기도 하고 그래요.
예민한 편인가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3, 4를 본다면 저는 30, 40을 본대요.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느낄 만큼 예민한 성격인 거죠. 스태프들 중에 누군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계속 신경이 쓰여요. 그런 거 보면 제가 아주 착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예민하다기보다는 정이 많은 거죠. 이 사람도 챙기고 싶고 저 사람도 챙기고 싶으니까.
오지랖이 넓은 것 같긴 해요.
사랑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죠? 가족들에게는 더할 테고요.
할머니에게서 무한 사랑을 받아요. 할머니는 아직도 저보고 새끼 강아지 라고 해요. 제가 나가서 힘든 일을 한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래서 늘 안쓰러워하세요.
TV에 지민 씨가 나오면 무척 좋아하시겠어요.
제가 나오는 드라마는 무조건 챙겨 보시는데 이번 드라마를 특히 좋아하셨어요. 방송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옥탑방 왕세자>에 푹 빠져 계세요.
인터뷰를 보면 가족 이야기가 빠지지 않더라고요.
가족은 저를 오롯한 저로 봐주죠. 언니와 엄마는 제일 친한 친구고 조카는 ‘어메이징’ 그 자체예요. 제가 아기를 워낙 좋아하는데 조카랑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행복해요. 자기 전에는 휴대폰에 있는 조카 사진을 꼭 한번 보고 자요.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요?
태어나서 한번도 빈집에 혼자 있었던 적이 없어요. 항상 할머니나 다른 가족들이 함께 있었어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요즘 독립도 생각하고 있어요.
할머니가 엄청 반대하실 것 같은데요.
네. 말 꺼내면 정말 싫어하세요. 근데 더 늦기 전에 혼자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어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요. 한 가지를 정독해서 끝내지는 않는 편이에요. 힘들 때는 스님들이 쓰신 책을 보고, 딴 생각하기 싫을 때는 소설책을 읽어요. 아침에는 올드 팝송을 많이 듣고 와인 마실 때 소주 마실 때 듣는 음악이 다 다르고요.
욕심 나는 캐릭터가 있나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교복 입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스릴러물의 의사나 형사 같은 전문직 역할도 욕심이 있고요.
한지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만족하나요?
저 어떤 이미지인데요?
착하다, 그리고 참하다?
생각하시는 것만큼 착하거나 참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분 좋은 오해들이라서 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네요. TV에 비치는 모습이 실제 저의 모습보다 더 예쁘게 나와서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거겠죠. 사람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여러 가지 면이 있어요.
그래 보여요. 여배우로 살아가는 거, 때로는 버겁지 않아요?
여배우로 살면 좋은 점이 굉장히 많아요. 일단 어딜 가나 서비스가 나와요. 우리 형부가 그래요. 한지민이랑 다니면 서비스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물론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많죠. 삶의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말고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안티팬이 없는 여배우라 가능한 생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감사하게도 안티팬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요즘은 많이 걸러서 보는 편이에요.
차근차근 밟아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어요. 스스로도 좀 대견하죠?
원래 성격이 천천히 익숙해지고 적응하는 편이라 배우의 길도 그렇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때마다 기회가 찾아왔고요. 점점 일을 좋아하게 되고 자부심도 생기고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한번에 오른 것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오른 거라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불완전한 요소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인기를 얻고 사랑을 받으면 그렇지 않은 순간이 오기 마련이고 그 시간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해요. 늘 사랑받기만을 바란다면 나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 하는 일에 감사해하고 무엇보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좀 더 멀리,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언제 배우하길 잘했다 싶어요?
할머니가 행복해하실 때요. 제가 배우를 하는 것만으로 효도하는 기분이라 좋아요. 그 외에도 너무 많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먼 길을 와주고, 작품 끝내면 잘봤다고 인사해주고, 제 작품을 보며 웃었다 울었다 공감 해주는 모든 게 다 감사하죠.
입에 달고 사는 말은 뭐예요?
배고플 때 ‘배고파’, 밥 먹고 나서 ‘배 아파’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배고파, 뭐 먹지, 배불러, 배 아파’가 한 세트인 것 같네요.
제가 봤을 땐 ‘좋아요’, ‘감사해요’인 것 같은데요? 인터뷰 끝나면 뭐 할 거예요?
집에 가서 쉬어야죠. 그런데 엄마가 나 이렇게 화장한 거 보면 예쁘게 화장하고 왜 집에 왔냐고, 나가서 놀라고 할 것 같아요. 음, 지금이라도 약속을 잡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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