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맨얼굴

김재원과 햇살이 쏟아지는 빈집에 앉아, 늦은 오후를 함께 보냈다. 그는 참 괜찮은 남자였고 한순간도 안주하지 않는 어른이었다. 지금 김재원은, 퇴로 없는 전장에 배우라는 이름으로 확고히 서 있다.

스웨터는 토가 바이 분더숍 맨(Togaby Boon the Shop Men).팬츠는 에르메스(Hermes). 팔찌는타테오시안(Tateossian).

스웨터는 토가 바이 분더숍 맨(Toga
by Boon the Shop Men).
팬츠는 에르메스(Hermes). 팔찌는
타테오시안(Tateossian).

셔츠는 펜디 바이 분더숍 맨(Fendiby Boon The Shop Men). 팬츠는우영미(Wooyoungmi). 레이스업 슈즈는제냐 스포츠(Zegna Sport).

셔츠는 펜디 바이 분더숍 맨(Fendi
by Boon The Shop Men).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레이스업 슈즈는
제냐 스포츠(Zegna Sport).

오늘 촬영 의상이 자주 입는 스타일은 아니죠?
제가 패션을 잘 몰라요. 패션 테러리스트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예쁜 셔츠를 입고 왔는데, 그럴 리가요.
겸손하게 말하자면요. 하하.

이곳처럼 늦은 오후, 빈집에 혼자 있을 때는 뭘 하나요?
영화를 봐요. 스케줄 없을 때는 하루에 대여섯 편씩 볼 때도 있어요.

그렇게나 많이요? 요즘은 어떤 영화를 봤나요?
홍콩 영화를 많이 봤어요. 이번에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에서 형사 역할을 맡았거든요. 남성스러움을 표현하기에 홍콩 누아르만 한 게 없잖아요. 양조위, 유덕화, 금성무, 곽부성 다 너무 멋지죠.

예전부터 홍콩 영화를 즐겨 봤나요?
같은 작품이라도 10살 때 볼 때와, 20살 때, 30살 때 보는 게 다 달라요. 경험한 만큼 보이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요. 어제도 영화를 보는데, ‘아,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했었구나’ 하면서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되고, 그 호흡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의 경험과 시간이 축적되는 만큼 더 많은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유덕화가 <천장지구>, <열혈남아>를 찍었을 때가 30대였죠?
맞아요. 딱 지금의 제 나이인 거죠. 30대는 남자의 멋도 알고 20대의 치기 어림도 아는, 동생과 형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꽤 괜찮은 나이인 것 같아요. 요즘 할리우드 영화는 블록버스터 위주로 돌아가잖아요. 캐릭터의 감성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위주로 담아내니까 자주 찾아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정말 좋아해요. 특히 샤룩 칸은 최고의 배우예요. 만능 엔터테이너죠. 어릴 때부터 춤, 노래를 배우고 즐기는 민족이다 보니까 영화에도 꼭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해요. 연기도 연기지만 그 많은 사람이 합을 맞춘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게 느껴져요. 대중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유일하게 활발한 매체인 영화에서 종합 예술을 보여주는 거죠. 러닝타임이 3시간 반, 4시간인 영화도 많은데 전혀 지겹지 않아요. 발리우드 영화의 힘이죠.

영화를 보는 취미 활동은 더 나은 연기를 위함인가요?
모든 걸 경험할 수 없으니까 영화와 책을 통해서 흡입하려고 해요. 최대한 다양한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거죠. 그걸 통해 뭔가를 끄집어내고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이 일을 하는 동안 계속될 거예요.

나름 14년 차인데 그렇게 꾸준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해요?
이병헌 선배는 아직도 매일 서너 편의 영화를 보신대요. 저는 더 봐야죠.

그럼 연기를 벗어난 취미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요즘은 암벽등반에 푹 빠져 있어요. 덕분에 이렇게 손바닥이 다 까졌을 정도예요. 원래 등산을 좋아했어요. 좋은 공기를 마시면 복잡한 생각도 정리되고, 몸이 힘들어지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지죠. 그러다 정상에 오르면 ‘그래, 다시 한 번 해보자’ 하는 ‘파이팅’이 생겨나잖아요. 암벽등반은 등산의 과정을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해요. 보통 15m를 오르는 데 10분 만에 끝내거든요.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더 얇아진 느낌이에요.
암벽등반을 하면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좋아져요. 헬스는 근육을 팽창시키는 운동이지만 암벽등반은 매달리는 운동이다 보니 잔 근육이 생기는거죠. 마치 이소룡의 근육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몸이 더 얇아졌어요. 곧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니까 관리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암벽등반도 결국 연기를 위한 취미 생활이었군요.
덩치가 커지면 옷발이 안 받긴 하죠.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하면 할수록 매력에 빠져들어요. 아침부터 운동하고 출근하는 사람도 꽤 많더라고요.

덕분에 드라마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에서 더 날렵해진 형사 하은중을 만날 수 있겠네요. <메이퀸> 이후 6개월 만이죠?
지난해 진행을 맡았어요. 거기서 배유미 작가님을 11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죠. 무척 반가워하시며 “나중에 작품 제의하면 할 거죠?”라고 하시더라고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해야죠” 그랬어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를 할 수 있게 한 작품이 <로망스>라 생각해요 . 신인인 저에게 미니시리즈 주인공이라는 엄청난 자리를 맡겨준 분이죠.

그 시절 <로망스> 인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아직 최관우를 잊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요.
저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감독님도 작가님도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해서 정말 신나서 했었죠. 대본 받으면 빽빽하게 메모해가면서 말이에요. 하루에 두 시간씩 자면서 했는데 힘든 줄도 몰랐어요. 저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 고마운 분이 작품을 쓰자마자 저에게 다시 연락을 주신 거예요. 작품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연출인 김진만 감독과의 인연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김진만 감독님 또한 무척 고마운 분이죠. <나도, 꽃!>의 첫 회, 첫 신을 찍을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어깨 골절을 입었어요. 그때 김진만 감독님이 총괄 PD였는데 계속 병문안을 오셨어요. 나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하셨는데 수술 판정을 받으면서 더 이상 늦출 수가 없게 된 거죠. 다음에 꼭 함께 하자 하셨는데 감독님, 작가님과 감사하게도 이렇게 한 드라마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세 사람의 시너지가 정말 기대되네요. 상대 배우 조윤희 씨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조윤희 씨도 벌써 데뷔 10년 차예요. 잔뼈가 굵은 배우죠. 요즘 한창 좋은 기운을 타고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윤희 씨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이제 막 시작해서 대본 연습만 한 상태인데, 촬영장 분위기가 기대되요.

군대 다녀온 후에 한 작품들이 다 잘됐어요.
대중들에게 소외받지는 않은 정도죠.

드라마 시청률에 비해 김재원이라는 배우에 대한 주목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이 서운하지는 않았나요?
상관없어요. 작품이 잘되는 게 먼저예요. 작품도 잘되고,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받으면 물론 더 좋겠죠. CF도 찍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좋겠지만 그걸 바라고 연기하는 건 아니에요. <내 마음이 들리니>란 작품에서는 청각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메이퀸>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드라마와 영화,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어해요. 저는 연기를 통해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해요. 게다가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팬츠는 시스템 옴므(SystemHomme). 로퍼는 프라다(Prada).선글라스는 지안프랑코 페레바이 다리 F&S(GianfrancoFerre by Dari F&S).

셔츠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Ermenegildo Zegna).
팬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로퍼는 프라다(Prada).
선글라스는 지안프랑코 페레
바이 다리 F&S(Gianfranco
Ferre by Dari F&S).

다시 한 번 <로망스> 때처럼 정점을 찍고 싶지 않나요?
전혀요.

어떻게 그렇게 단호해요?
다 때가 있는 거니까요. 또 모르죠. 40대 때 또 한 번의 기회가 올지도. 하지만 그걸 좇지는 않아요. 이제는 신인으로서 줄 수 있는 신선함, 풋풋함을 전달하기는 힘들어요. 10년 넘게 봐온 김재원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각인시키고 인정받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계속 노력을 하겠지만 그 정점이란 걸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배우는 많은데 드라마 편수는 많지 않아요.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공중파 드라마는 1년에 20개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고 있어요. 더 욕심을 부리는 건 안 될 일이죠.

군대에서의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지금 이 인터뷰를 통해서도 분명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허투루 지나가는 시간은 단 하나도 없어요. 스쳐가는 인연과 만남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배우는 게 있어요. 순간순간 우리도 모르게 몸으로 체득되고 있는 거죠. 군대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걸 경험했겠어요. 사람들의 행동, 말투 등 모든 것이 제게 자극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도 도움이 되었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는데, 그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건가요?
예능을 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어요.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좀 웃기거든요. 남들하고 다른 코드로 웃겨요. 대체적으로 휴머니즘을 담아내는데 19금 코드가 좀 많다는 게 문제예요. 예능에 나가면 들킬까봐 못 나가는 거죠.

남다른 유머는 당연히 눈치 챘죠. 하지만 그 외의 이유도 분명 있을것 같은데요?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다 챙겨 볼 만큼 관심도 많고 좋아해요. 다만 예능에서 너무 큰 색깔을 만들면 선입견이라는 게 생길까봐 걱정이 돼요. 작품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하게 연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작은 디테일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지, 전체적인 틀을 바꿀 수는 없어요. 목소리, 외모가 똑같은데 어떻게 맡는 배역마다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겠어요. 그걸 예능에서까지 소비하게 되면 연기할 때 쓸 수 있는 것들까지 소진되는 거죠.

SNS를 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요?
SNS는 누군가에 대한 환상을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만들어버려요.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 상상하고 꿈꿀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고 가정해 봐요. 그 사람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꾸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환상이 바탕이 되거든요. 혼자서 그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서서히 알아가는 건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인데 SNS는 왠지 그 과정을 없애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보지도 않아요.

어떤 것들이 서른셋의 김재원을 장악하고 있나요?
아무래도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겠죠. 이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 일에 100%가 되어야, 나머지 것들도 다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4년 동안 배우로 살았고, 이제는 뒷걸음질 칠 수도 없어요. 후배들도 보고 있고, 대중들도 저를 보고 있어요. 어느 때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책임감도 커지는 거죠.

쉬는 동안 현장에 나가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요?
예전엔 몰랐는데 촬영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워요. 살아 있는 것 같고,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고‘아. ,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김재원이란 배우가 인정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좋아요.

일탈이라는 걸 해본 적 있어요?
글쎄요. 기준에 따라서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예전에는 낮술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끊었어요.

담배를 끊은 지도 꽤 되었다고 들었어요.
싸이 형은 사람들을 ‘Cheer up’ 시키잖아요.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에너지로 넘치기 때문이에요. 가수뿐 아니라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돼요. 술을 많이 마시면 연기할 때 술 냄새가 나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 니코틴 냄새가 나요. 사람의 기운이란 건 알게 모르게 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전하고 싶은 기운이란 어떤 걸까요?
안방에서 편안히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고, 인생의 가치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한 작품으로 행복한 기운을 전하고 싶어요. 사람은 다 받거든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면 나 또한 행복을 받고, 슬픔과 아픔을 주면 그걸 받는 거예요.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대중을 위해서라도 행복을 주는 게 제일 중요하죠.

촬영할 때는 그렇게 농담도 많이 하더니 인터뷰를 하니, 어느새 너무 진지해졌어요. 19금 유머도 궁금한데 말이죠.
그건 너무 세서 남발해서는 돼요. 하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어떤 거예요?
가족이요. 지금은 혼자 살고 있어서 자주 볼 수 없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제 마음속에는 가족이 있어요.

걸어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어때요?
후회하면 뭐해요.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지금부터 잘하는 게 중요하죠. 아직 살날이 50년이나 남았잖아요.

여름을 좋아해요?
라식수술 부작용으로 여름에는 특히 눈이 부셔요. 눈을 잘 못 뜨긴 하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계절이죠. 여름은. 그런데 저만 배고픈 건가요?

여름이니까 시원한 메밀을 먹으러 갈까요?
제가 군복무를 이 근처에서 했는데 그때 싸이 형이 알려준 맛있는 삼계탕 집이 있어요. 그리로 가서 몸 보신을 하는 게 어떨까요? 저는 오골계를 먹어야겠어요.

    에디터
    조소영
    포토그래퍼
    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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