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영웅!
볼수록 호감 가는 슈퍼 히어로라는 걸 증명한 <어벤져스> 이후, <캡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 달려온 크리스 에반스! 드디어 개봉을 앞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의 캡틴, 크리스 에반스에게 새 영화를 물었다.
초능력을 지닌 캐릭터가 처음은 아니었다. 꽤 성공적인 시리즈였던 <판타스틱4(The Fantastic Four) >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불꽃 남자’의 능력을 얻게 된 자니 스톰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처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은 그런 자니 스톰처럼 착하고 활기 넘치는 청춘인 줄만 알았다.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Scott Pilgrim vs. The World) >에서는 어땠나. 사랑하는 여자 라모나를 위해 7명의 전 남자친구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스콧. 게임 세대의 비주얼 욕망을 충실히 채워주면서 연애를 살짝 비튼 재기발랄한 이 작품에서 그가 평범한 남자친구를 대변하는 스콧 필그림을 맡았냐고? 천만의 말씀. 전 남친 중에서도 초절정 인기를 자랑하는 ‘루카스 리’를 맡아 스콧 필그림의 기를 팍 죽였다. 왜 아니겠는가. 그는 잘생긴 데다 미식축구선수 역을 맡아도 충분할 몸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봉준호 감독도 이야기했듯 크리스 에반스는 미국 게이들의 우상이고, 게이 커뮤니티의 대통령이다(오해는 말길. 그는 게이가 아니다).
그런저런 할리우드 청춘 배우로 소비될 줄 알았던 그는 서른 살이 가까워지며 점점 진지한 필모그래피를 쌓게 된다. 안전 주사기 보급을 위해 대형 의약 회사, 그리고 스스로와 외로운 싸움을 펼치는 마약에 빠진 젊은 변호사를 연기한 <펑처(Puncture) >는 크리스 에반스가 진지한 드라마를 홀로 감당하고도 남는 배우라는 걸 증명했다. 무엇보다 애정을 갖고 연기한 <설국 열차>에서는 진지한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설국 열차>에서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한 분장으로 원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외모를 바꾼 것은 그의 의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놓은 것은 바로 마블코믹스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을 다룬 <퍼스트 어벤져(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비실비실하고 왜소한 군인이 슈퍼 히어로로 거듭났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의 첫번째 시리즈는 다른 슈퍼 히어로들보다 다소 매력이 떨어졌다. 배트맨처럼 어두운 매력도, 스파이더맨처럼 짠한 구석도 없는 ‘미국식 영웅’이었으니까. 도대체 이 남자의 한방이 뭔가 싶었다. 하지만 <어벤져스(The Avengers) >에서는 달랐다. ‘날라리’ 같은 아이언맨과 달리, 오랜 시간 냉동되었다 깨어난 그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인. 아이언맨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존재감이 상당했다. 그러다가도 함께 싸울 때에는 참 잘 싸웠다. <퍼스트 어벤져>가 본래 3부작으로 계획된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후속작에 대한 기대는 더 높아진다. <어벤져스>에도 출연해 캡틴 아메리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톡톡히 알린 터다. 오는 3월 26일 캡틴 아메리카의 두 번째 이야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블랙 위도우, 즉 스칼렛 요한슨도 함께다. <어벤져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에게는 놓칠 수 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캡틴은 날지 않아요. 번개를 쏘지도 않죠. 그저 펀치와 킥을 날릴 뿐이에요. 그런 식의 액션을 더 멋져 보이게 하려면 더욱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해야 해요.” 크리스 에반스는 자신의 캐릭터를 이렇게 소개한다. “<퍼스트 어벤져>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강인함과 힘, 기량을 얻었지만 특별한 훈련을 받진 않았죠. <어벤져스>에서도 다르지 않았어요. 새로운 캐릭터와 그들의 새로운 능력을 설명하고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를 상세하게 묘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초인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를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이 있었을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뱃살이 나온 슈퍼 히어로라니, 그런 안티 히어로는 상상할 수도 없으니까. 그가 선택한 트레이닝은 체조였다. “체조를 배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감독인 루소 형제와 만났을 때 우리가 서로 동의한 것 중 하나가 캡틴의 전투능력을 더 높이자는 거였어요.” 그 결과 영화에서는 캡틴의 진화된 능력과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투 실력을 볼 수 있다. “<어벤져스>로 이 팀이 모두 얼마나 힘이 막강한지 보여줬죠. 캡틴은 펀치와 킥 몇 번보다는 더 멋진 걸 보여줘야만 했죠. 그래서 저희는 전투에 아크로바틱을 응용했어요.” 슈퍼 히어로물처럼 소위 ‘액션’이 중요한 영화에서는 영화 전체를 좌우하는 중요한 액션 신이 있다. 가장 중요한 액션 장면은 엘리베이터에서 촬영했다.“며칠이 걸렸어요. 그 장면 전체를 한 번에 찍을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신났어요. 루소 형제가 액션 시퀀스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안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만약 그 신이 잘 안 나왔으면 다들 자신감을 잃었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냈죠. 모두가 이 영화가 훌륭하게 나올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새로 바뀐 감독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 기대를 모으는 대목 중 하나다. 조 루소와 안소니 루소. 일명 ‘루소 형제’로 불리는 이들은 코엔 형제들 형제 감독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다. <커뮤니티> 같은 독특한 미드와 코미디 영화에 강점을 보여온, 블록버스터 계에서는 ‘풋내기’나 다름없었다. 마블이 이들을 새 영화의 감독으로 지목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주연 배우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블은 항상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해왔어요. 존 파브로가 첫 번째 <아이언맨(Iron Man) >을 연출한 것이나 <토르(Thor) >의 감독으로 케네스 브래너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선택은 대부분 옳았죠. 제가 루소 형제를 처음 만났을 때, 왜 그들이 새 감독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정말 박식했고 원작 만화에도 애정이 있었죠. 다시 시작하기에 굉장히 좋은 기반을 가졌다고 생각했죠. 촬영한 걸 보면서 그들이 레퍼런스로 삼은 다른 영화들의 장면과 비교해보면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졌어요.” 새 영화는 단순한 액션 히어로물이 아닌 ‘정치 스릴러’에 가까워졌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술수가 등장할 듯하다. 영화를 위해 그가 특별히 챙겨 본 영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많은 영화를 봤어요. <프렌치 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 >, <코드네임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 > 같은 영화들이요. 루소 형제는 영화를 아주 잘 만들어냈어요. 마블의 어떤 영화도 이 영화 같지 않죠. 이 영화의 대부분은 핸드 헬드로 촬영되었는데,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는 아주 참신한 접근이에요. 플롯은 정치 스릴러에 가깝지만 그들이 영화를 만든 방식은 굉장히 새로웠어요.”
새로운 파트너가 스칼렛 요한슨과는 호흡이 잘 맞았을까? 블랙 위도우와 캡틴 아메리카의 관계는 영화 속에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와 스칼렛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예요. 마치 남매 같죠.” 크리스 에반스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우리는 이제 네 작품을 함께했는데 카메라 밖에서도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출연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런 관계가 스크린 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캡틴과 블랙 위도우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상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죠.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블랙 위도우와 달리 캡틴은 보이스카우트 같잖아요? 그녀는 거짓말이 직업이지만 캡틴은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인물이고요. 하지만 그들이 다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둘의 관계는 흥미로워지죠.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상대방을 믿어야 하니까요.” 스칼렛 요한슨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등장한다. 코비 스멀더스는 전편에 이어 마리아 힐 요원을 맡았다. 미드 <리벤지>에서 복수의 여신으로 분하고 있는 에밀리 반캠프도 에이전트 13역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팔콘 역의 안소니 마키와 프랭크 그릴로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조연이다. “팔콘을 연기하는 안소니 마키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매우 사교적이고 항상 에너지가 넘쳐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현장에 있으면 모두 웃음이 가득하고, 없으면 다들 어디 갔는지 찾아요. 마키와 프랭크 그릴로가 세트장에 같이 있으면 꼭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아요. 둘 다 정말 웃기거든요. 둘의 호흡도 정말 좋아요. 그릴로도 비슷한 사람이에요. 활기 넘치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면서 훌륭한 배우죠. 카메라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요.”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이해는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특히 크리스 에반스는 ‘진짜’가 되는 법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모든 캐릭터에 현실감이 필요해요. 저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이 섞인 슈트를 입고 있는 남자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슈퍼 히어로들에게는 현실감이 있어야 해요. 자기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하는 일들이 바보 같아 보여요.” 그렇다면 그에게 필요한 현실성은 어떤 것일까? 바로 캐릭터들과의 진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진짜여야만 자신의 능력도 진짜처럼 보일 거라는 똑똑한 계산이다.
“저는 캡틴과 샘의 관계를 좋아하는데 그게 현실적이기 때문이에요. 서로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못하더라도 둘 다 전방에서 싸운 적이 있죠. 전쟁을 목격했고 친구를 잃었어요. 저는 항상 캡틴이 좀 외로운 사람이라고 해석했는데, 왜냐하면 모두가 캡틴을 알고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캡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진짜 의도가 뭔지 늘 조금씩은 의심스러워하기 때문이죠. 저와 팔콘이 등장하는 아주 좋은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면 팔콘이 숨은 의도를 가지고 캡틴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팔콘은 캡틴을 존경해요. 캡틴의 마음을 잘 알고 있고 캡틴도 그 점을 알죠. 그런 게 현실성이죠.” 크리스 에반스는 ‘슈퍼 히어로물’에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책임을 느끼는 중이다. 마치 그의 슈트가 몸에 맞고, 아다만티움 방패가 손에 딱 맞기 시작하는 것처럼. “최근 들어서 그 점을 생각해보기 시작했어요. 제 출연작들 중에서도 이 마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이제 점점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사람들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거나 현실에서 벗어나 즐거워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 좋아요.”
영화는 완성되었고, 이제 관객들과 만나는 일만 남았다. 여전히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놀란다는 그도 촬영이 끝나면, 관객과 같은 입장이다. “촬영 분량을 미리 보는 걸 좋아하거나, 오늘 찍은 게 어떻게 나왔나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그리 크게 놀라진 않겠죠. 하지만 연기에만 집중했다면 최종 결과물을 보고 ‘어, 내가 저 영화에 출연했었네’ 하는 거죠.” 씩씩하고 용감한, 우리의 캡틴 아메리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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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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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Marble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