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김새론뿐
김새론은 처음부터 그랬다. 아역 배우도, 성인 배우도 아닌 채로 홀로 섬처럼 온전했다. 그녀는 영화 <도희야>에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는 일을 자청했다. 이제까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은 김새론의 나이는 이제 고작 열다섯이다.
어제 촬영이 많이 늦어졌다면서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났어요. 아침에는 많이 졸렸는데 이제 괜찮아요.
오늘 촬영 콘셉트가 ‘프렌치 시크’였잖아요.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이번 촬영 때문에 처음 찾아봤는데, 멋있는 언니라고 생각했어요. 오늘 제가 그 느낌을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시크하던데요? 칸에 두 번이나 다녀온 여배우답게요.
5년 전에 <여행자>로 갔을 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어요. 이제는 영화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열심히 촬영한 만큼 많이 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생각한 것처럼 많이 즐기고 왔나요?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도희야>를 촬영한 선배님들, 감독님과 함께 그곳에 있으니 뭔가 뿌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함께 오지 못한 분들도 생각나고,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에요.
<도희야> 상영이 끝나고 난 뒤 눈물을 흘렸다고요. 뭔가 많이 복잡한 감정이었겠죠?
시작할 때 인사하고 끝날 때 다시 들어갔어요.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는데, 그 순간 감정이 복받쳤어요. 그때부터 안심한 것 같아요. 저희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했었거든요. 좋게 봐주셨다는 의미니 안도의 눈물도 포함되었죠.
시나리오로 도희를 처음 만났을 때 도희가 새론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왠지 제가 이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멈칫했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다시 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저와 도희가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리지만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큰, 무섭고 강한 아이이기도 하잖아요. 알 듯 모를 듯한 도희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맞고, 넘어지고, 울고, 악을 쓰고 안쓰러운 장면이 유독 많았어요.
촬영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스태프와 배우 분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힘들지 않게 촬영할 수 있었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방파제에서 춤추는 장면이에요. 도희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춤추는 시간이잖아요. 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싶어 애를 썼던 기억이 나요.
관객 모두가 그 장면을 기억할 거예요. 당신이 평소에 그렇게 춤을 추는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발레 선생님한테 발레도 아니고 현대 무용도 아닌 춤을 배웠어요. 촬영할 때는 제 느낌을 넣어서 췄고요.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말을 많이 듣죠? 어떤 것들을 고민해요?
억지로 뭔가를 찾지는 않아요. 먼저 작품을 보고 그 안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봐요. 그러다 보면 좋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나게 되요. 아직은 미성년자이니 부모님과 상의도 많이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지 못했거나 하기 싫은 걸 한 적은 없어요. 부모님은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해줘요.
계속 어두운 역할을 맡는 당신을 두고 주위에서 걱정하는 시선이 많죠. 역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까봐 말이에요.
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촬영할 때는 그 인물이 되지만 끝나면 바로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편이에요.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요. 도희가 되어 맞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아프고 슬프지만 촬영이 끝나면 툭툭 털고 일어나요. 상처받은 아이는 도희이지, 저 김새론이 아니니까요.
20살이 되면, 19금 판정 때문에 보지 못했던 영화부터 보게 될까요?
그 영화들을 보게 되겠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여행자>는 영화관에서 봤는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자꾸 ‘19금’ 영화를 찍는 바람에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다는 게 좀 아쉬워요.
칸에 다녀오자마자 KBS 드라마 <하이스쿨-러브온> 촬영에 들어갔어요. 밝은 역할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나요?
무겁고 진지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살면서 쉽게 겪을 수 없는, 어쩌면 한 번도 겪기 힘든 일을 겪는 캐릭터가 많았어요. 어려운 캐릭터를 몇 번 연기한다고 해서 100%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역할이라 해도 알고 보면 다 달라요. 그러니까 계속 도전하게 되는 거죠. 일부러 밝은 역할을 찾은 건 아니에요.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어요.
이번 드라마에서는 천사에서 인간이 되는, 밝은 역할이라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슬비 역을 맡았어요. 오랜만에 또래 친구들과 작업하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라 저도 기대가 돼요. 함께 연기하는 우현, 성열 오빠와는 9살 정도 차이 나는데, 예전에 비해 상당히 어려진 거라 할 수 있어요. 20 ~ 30살은 기본이고 50살 넘게 차이 나는 선생님들과도 연기했거든요. 20대 연기자들이 많아 아무래도 선생님들과는 다른 편안함이 있어요.
김새론이 연기하는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캐릭터라니, 기대가 되면서도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심지어 인간도 아닌 천사 역할이라니요!
네. 맞아요.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니 만지고 보고 먹는 모든 것을 다 신기해해요. 그 신기해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실제 제 모습과 비슷한 부분도 꽤 많아요. 시청자들이 이런 저의 모습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죠.
6월 27일 첫 방송이니까, 한창 월드컵 시즌이네요.
제가 월드컵 경기 응원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축구도 재미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나 되어서 응원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재미있어요. 하나의 공통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응원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 촬영 중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꼭 경기를 보면서 열심히 응원하려고요. 잠은 포기해야죠. 하하.
당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폭풍 성장’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따라붙어요. 스스로 보기에도 하루하루가 다를 것 같은데 어때요?
예전 사진을 보면 확실히 키가 컸다는 생각은 들어요. 갑자기 확 크지 않고 조금씩 자주 크는 느낌이랄까요? 지금 키가 163cm인데, 170cm까지 크고 싶어요.
친구들은 새론을 부러워하겠지만 새론은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가끔 있겠죠?
제 나이 때 누리는 것들을 다 누리지는 못하지만 친구들보다 빨리 제 길을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친구들 보면 학교 다니면서 엄청 많은 걸 배우더라고요. 학원도 많이 다니고 저보다 바빠요. 연기를 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저만 힘들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열다섯 김새론은 어떤 걸 좋아해요?
웹툰이나 소설을 좋아해요. <신의 탑>, <노블레스> 같은 판타지 웹툰이 특히 좋아요. 웹툰은 제 삶의 활력소예요. 촬영장에서 웹툰 없으면 절대 안돼요. 또 그 시즌에 나오는 영화는 극장 가서 다 봐요. 영화 팸플릿과 티켓을 모으거든요. 그게 쌓여가는 걸 보면 뿌듯해요.
어머니 생일 때 케이크를 만들었다면서요?
베이킹을 좋아해서 쿠키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들어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해서인지 밥을 못 짓는 어른을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게 맛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좀 더 실력을 키워서 회사분들과 친구들에게도 선물하려고요.
향초도 좋아하잖아요. 여전히 향초를 켜요?
그럼요. 향기도 나고 타닥타닥 타는 소리도 나고 정말 좋아요. 특히 유칼립투스 향을 좋아해요. 밖에 있다가 내 방에 들어갔을 때 좋은 냄새가 나면 기분이 좋아져요.
지난여름은 <도희야> 촬영 덕분에 순천, 여수 금오도에서 알차게 보냈겠네요. 올여름은 어디로 떠나고 싶어요?
금오도는 정말 예뻤어요. 촬영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바닷가에 가서 놀았는데, 그러다가 시커멓게 타서 혼나기도 했어요. 이제는 많이 하얘졌는데 한때는 심각하게 까맸어요. 영화에도 나오는데, 금오도는 노을 질 때 특히 예뻐요.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여러 번이에요. 올여름에도 섬에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섬이 많다고 들었어요.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시점이 있었나요?
모든 작품이 좋았지만 첫 영화였던 <여행자>가 참 좋았어요. 촬영하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거든요. 촬영하면서 스태프 분들이 저를 많이 챙겨주었는데, 앞으로 힘든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이야기해줬어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은 알아요. 첫 작품부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것이 계속 연기를 하고 싶게 만든 것 같아요.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 좋은 것들이 자꾸 생각나서 힘든 건 잊고 또 계속해서 촬영장에 가게 되요.
감당하기 힘들거나, 힘이 빠질 때는 없었어요?
그런 적이 꽤 있어요. 말한 적도 없는데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가 난 적이요. 그럴 때는 힘이 빠져요. SNS를 하지만 거기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억울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친한 몇몇 사람에게만 말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마음이 좀 괜찮아져요.
스무 살을 상상하기도 해요?
주변 분들이 다 어른들이잖아요. 더 친해지고 싶은 분도 많은데 제가 어리다 보니까 따로 만나는 자리가 많지도 않고, 보고 싶어도 “언제 또 봐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좀 더 크면 더 편하게 선배들, 언니, 오빠들한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전에는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요?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촬영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해요. 저의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요. 사랑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쓰러져서 자겠네요?
좀 참았다가 저녁부터 자야 돼요. 안 그러면 새벽에 깨고 촬영 들어가면 힘들어지거든요. 좀 힘들어도 기다렸다가 자야죠. 내일 아침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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