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소년, 이태환을 만나다
진지하고, 순수하다. 데뷔한 지 이제 갓 1년을 넘긴 이태환은 두 번째 드라마를 끝내고 나니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선 굵은 남자를 꿈꾸지만 아직은 스물한 살 소년, 가만 보면 귀엽고, 알고 보면 욕심쟁이인 이태환을 만났다.
1990년대 말, 여학생들의 방 한쪽 벽은 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브로마이드가 차지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과 <타이타닉> 속 그가 앞가르마를 탄 ‘왕자님 머리’를 하고 깊고 푸른 눈으로 사랑을 읊을 때 반하지 않은 여자는 없었고, <바스켓볼 다이어리>에서 점점 말라가는, 마약에 찌든 몸과 텅 빈 눈빛을 드러낼 때 영화 평론가들은 대배우의 창창한 미래를 점쳤다. 예약된 스타,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근성과 욕심을 이제 막 배우로서 날개를 단 이태환에게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깎아놓은 듯 잘생긴 얼굴과 188센티미터의 훤칠한 키를 가진 그에게 디카프리오의 대표작에서 툭 튀어나온 옷을 입히고 소품을 던져주자 그는 하나, 둘 걸치고는 어수선한 촬영장의 백스테이지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얼마나 지났을까, 영민함으로 무장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꽃미남 배우의 카리스마가 이태환의 눈빛에서 읽히기 시작했다.
데뷔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번째 드라마가 끝났어요.
사실 아직도 신기해요. 선배님들, 스태프들, 촬영현장이 여전히 생생한데 이제 끝났구나 생각하니까 뭔가 아쉽기도 하면서 뿌듯해요. 또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요.
오늘 아침까지도 촬영이었죠?
지난 3일 동안 밤새워 촬영했어요. 한 1시간 자고 나왔나…. 그래도 결국 정말로 끝이 났어요.
<오만과 편견>의 강수는 드라마의 열쇠를 쥔 인물이었어요.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신인인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작가님께 매 회 전화드리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캐릭터와 방향성을 잡아나갔죠. 현장에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에는 감독님께서 하나하나 다 짚어가면서 도와주셨어요. 정말로 두 분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라는 기사를 봤어요. 예쁨 많이 받았죠?
하하. 제가 촬영장에서 거의 막내이다 보니까 선배님들께서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실 촬영장의 진짜 분위기 메이커는 최민수 선배님이었어요. 워낙 애교와 장난이 많으셔서 현장 분위기를 밝게 만드셨거든요. 또 제가 잘 모르는 부분, 예를 들면 대본 분석 같은 것들을 도와주시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유독 대선배들과 호흡을 많이 맞췄네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선배님들마다 가르쳐주시는 부분들이 다 달랐거든요. 일단 저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손창민 선배님께서는 호흡과 감정 조절하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셨고, 장항선 선생님은 제가 잘 놓치는 디테일을 짚어내거나 애드리브로 한 컷이라도 더 살릴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그 밖에 다른 선배님들도 가르쳐주신 게 너무 많고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고교처세왕>의 오태석은 까불까불 귀여웠고 <오만과 편견>의 강수는 우직하고 속이 깊은 캐릭터였어요. 실제 성격은 어느 쪽에 가까워요?
<오만과 편견>의 작가님은 “강수라는 아이는 딱 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저도 순수한 면이나 진중한 면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운동 좋아하고 의리 있는 태석이도 저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아요. 사실 두 캐릭터의 좋은 부분만 골라 닮고 싶은 마음이죠.
본인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저는 남자답고 성숙한 외모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그 외모와 다른 순수함, 해맑은 미소가 매력적이라고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태 솔로라는 얘기가 있어요. 정말이에요?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하하. 그럴 수 있죠. 이상형은?
같이 밥도 잘 먹고, 친구처럼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지쳤을 때 같이 있으면 저절로 힘이 나는 밝은 사람이요!
늘어가는 여성 팬들을 위해 로맨스물에 출연할 생각은 없어요?
확 인기를 끌려면 로맨스물을 해야 한다고 주변에서도 많이 얘기하세요.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하겠지만 일부러 그런 역할을 찾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은 좀 더 다양한 연기를 해보는 게 우선이니까요.
바람직한 신인의 자세네요.
사실은 또 현실 속에서 진짜 연애를 한번 경험해보고 연기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웃음)
서강준, 유일, 공명, 강태오와 함께 ‘서프라이즈’라는 배우 그룹의 멤버이기도 해요. 합숙 생활을 한다고 들었는데,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같이 사는 모습은 어때요? 서로 경쟁하지는 않아요?
저희는 정말 가족 같아요. 매일 보는데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거의 매일 밤 거실에 모여서 떠들고 놀거든요. 각자의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도 나눠 먹고, 서로 고민이나 속마음도 잘 털어놔요. 지금 강준이 형이 제일 인지도가 높은데 형이 늘 얘기해요. 자기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한 것뿐, 다들 자기 차례가 올 거라고. 우리가 밤에 수다를 떨면서 항상 하는 말이 ‘다 같이 잘되자!’거든요. 저희는 정말로 경쟁하는 것보다 서로 의지해요. 누구 한 명 외롭지 않도록 서로 응원하고 있고요. 정말로 다 같이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서프라이즈의 첫 번째 싱글이 공개됐어요. 가수를 병행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처음 연기를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을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하다 보니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고 또 저만의 무기가 되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요즘은 가수와 배우의 벽이 허물어진 만능 엔터테이너의 시대잖아요. 지금처럼 트레이닝을 통해 미리 배워놓으면 어디 가서 하나라도 더 보여드릴 수 있으니 다 쓸 데가 있을 것 같아요. 또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기도 해서 노래와 춤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어요. 비록 다른 멤버들이 풍선 인형 같다고 놀리긴 해도요.
어쩐지, 영상을 보니 키가 커서 그런가 팔을 뻗는 동작이 다른 멤버들보다 0.2초가량 늦더라고요.
아… 역시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화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요?
오늘 오마주한 영화 중 하나는 아니지만 그의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해보고 싶어요. 굴곡 많은 인생도 흥미롭고, 한 여자에 대한 순애보도 멋진 것 같아서요. 또 언젠가는 진짜 남자 냄새 물씬 나는 액션 연기도 꼭 해보고 싶어요. 속에 아픔을 간직한, 그런 남자의 누아르요!
꼭 찍게 되길 바랄게요. 다음 계획은 뭐예요?
지금 서프라이즈의 아시아 투어를 돌고 있어서 당분간은 그걸로 바쁠 것 같아요. 홍콩과 일본은 다녀왔고, 앞으로 4개국 더 남았어요.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부터 공항과 팬미팅에 마중 나오는 팬들을 보면 너무 고맙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앞으로 뭐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아, 근데 일단 오늘 저녁에는 <오만과 편견>의 쫑파티에 가야 해요.
에고, 오늘 술 많이 마시겠네요.
괜찮습니다! 정신력으로 버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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