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미디어가 정엽의 이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이. 오히려 초연했던 건 정엽과 정엽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사람들이었다.

재킷은 존 바바토스(JohnVarvatos) 제품.

재킷은 존 바바토스(JohnVarvatos) 제품.

<나는 가수다>의 보이는 의미와 숨겨진 의도와 여러 논란에 대해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가수다>에 나왔건 나오진 않았건, 그들이 원래 훌륭한 가수였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길게 이야기해봐야 수백 번의 동어 반복만 될 테니까. 정엽이 <나는 가수다>의 최대 수혜자라는 말도 들려왔지만, 정엽에게도 정엽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사람들에게도 그런 호들갑은 신기하고 기묘한 일이었다. 그새 더 거만해졌다거나, 더 비뚤어졌거나, 아니면 허파꽈리에 봄바람 잔뜩 든 것처럼 마음이 동동 떠 있기라도 하길 바랐는데 그냥 똑같은 정엽이었다. 느긋하고, 친절했다. 지난 한두 달은 그에게 있어서, 그냥 가장 바쁜 한달이었다. “늘 천천히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쉽게 타오르는 건 쉽게 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서두르고 싶은 것도 없었죠. 브라운아이즈의 후광 효과로 처음부터 어느 정도 주목은 받고 시작했으니 다른 사람보다 출발도 좋았던 편이죠.” 정엽이 벌써 8년 차의 가수라니, 누군가는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소속사 문제로 3~4년 정도 공식 활동이 어려웠던 기간이 있긴 했지만. “그때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난 지금까지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팀 활동과 솔로 활동의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정엽. 아이돌이 아닌 이상, 꾸준히 팀 활동을 하면서 솔로로도 두각을 보이는 뮤지션은 정엽뿐이다. 브라운아이드소울 활동에서 조화에 주력하는 그는 솔로일 때 보다 깊어진다. “둘 다 할 수 있다는 건 뮤지션에게 행운이죠. 솔로는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하니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뭐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요.” 방송 활동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두 새 앨범에 쏟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비로소 정엽의 가성이 아닌 진성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단순하게 답했다. “그동안 내가 단편적인 모습만 보여줬다는 뜻이겠죠.” 정엽은 과대평가되는 게 너무 흔한 음악계에서 오히려 과소평가되어온 뮤지션이다. 정엽은 다른 세 명의 보컬과 함께 그룹으로 데뷔를 했고, 사람들은 처음에 ‘브라운아이즈’로 충분히 훈련된 나얼 외의 다른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가 솔로 앨범을 내면서 정엽이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라는 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노래방에서 <Nothing Better>를 부르다가‘작곡 정엽, 작사 정엽’ 자막을 보고선 깜짝 놀란다. 그가 이 대단한 히트곡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놀라고, 그리고 뛰어난 보컬리스트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감격한다.

<얼루어> 트위터로 정엽에 대해 궁금한 것을 올려달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올라온 질문 중에 하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도대체 누구를 생각하냐는 것이다. “이 곡은 정말 쉽게 만들었어요.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죠. 그게 내 마음이었어요. 멜로디도, 가사도.”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때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는다. “감정은 가지고 있어야 하죠. 하지만 노래할 때 감정 이입을 정말 제대로 하게 되면, 목이 메어서 노래를 못해요. 대신 나는 소리에 아주 예민하게 집중해서 노래를 해요. 조그만 무대라도 사람들은 찾아오니까,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불러요.” 싱어송라이터로서, 다른 사람의 곡이 아닌 자신의 곡이 오랫동안 회자되고 사랑받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것이다“. 꼭 그렇게 비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개그맨이라면 내 유행어가 평생에 기억에 남고 사람들이 계속 써주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그리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 곡이 내게 정말 많은 걸 가져다준 건 사실이죠. 대중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는 사람들의 공감이 필수적이에요. 어떻게 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거든요. 바로 그 고민을 덜어줬어요.” 9월에 발매된 2집 앨범에서는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다. “사람들이 나를 R&B 가수라고 생각하는 걸 알아요. 나는 내가 팝 음악을 하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나는 모든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은 다 할 생각이에요. 다만 지금까지의 짧은 활동 중에 보여준 에디션이 R&B였을 뿐인 거죠.”

    에디터
    피처 에디터 / 허윤선
    포토그래퍼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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