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립의 여행

2년 전 여름, 금발의 가발을 쓰고 하와이로 가자고 노래하던 이아립이 긴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설레는 얼굴을 하고서 네 번째 앨범을 들고 왔다. ‘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 되었네’라는 앨범의 제목처럼 그녀는 지금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1 긴 여행의 출발점에선 이아립. 2 이아립이 직접 디자인한 4집 앨범 커버와 CD.

지난번 하와이 앨범도 여름에 나왔잖아요. 그리고 또 여름, 기다렸다는 듯이 앨범이 나왔어요.
제 음악의 시작점이 된 배우, 리버 피닉스의 생일 8월 23일에 맞춰서 발매했어요.

4집을 준비하는 시간이 꽤 길었어요. 어떤 시간을 보냈어요?
느리게 가는 시간, 빠르게 가는 시간 모두 있었는데 결국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게 흘러버렸어요.

4집은 이제까지의 음악과 어떤 게 같고 또 다른가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 전의 작업들이 저에 대한 착각이나 오해에서 시작된 부분이 있다면 이번 앨범은 그 어떤 것도 ‘나인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담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를 가장 많이 닮은 앨범이에요.

‘다시 시작하자’라는 가사가 많아요.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란 앨범 제목도 거기에서부터 온 건가요?
맞아요. 다시 시작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설렘’이었어요. 설렘 앞에서 말하고 싶은 문장이바로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였고요.

첫 번째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죠. 굉장히 담담하게, 마치 옆에서 불러주는 것처럼 가까이 들려요.
가장 마지막에 만든 노래예요. 원래는 ‘리버 피닉스’를 첫 곡으로 하려 했는데 모든 노래를 만들고 나서도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거예요. 그 때 이 문장을 만나게 되었고, 바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어요. 마침표가 된 노래가 앨범의 시작을 알리게 된 셈이에요. 시작과 끝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당신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에요. 모두 당신의 이야기인가요?
거의 제 이야기죠. ‘서라벌 호프’는 친구의 이별에서 시작되었어요. 가사와 멜로디를 단 한 번 녹음으로 완성했는데, 뭔가의 통로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노래를 녹음할 때 많이 아프고 슬펐는데 이상하게 부를 때마다 아련하게 좋아요. 이런 게 위로인가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난 앨범에서는 엄마의 잔소리를 연기하더니, 이번에는 내비게이션 성우 목소리에 도전했어요. 당신 음악에서 느껴지는 유머처럼 당신도 유머러스한 사람인가요?
무거운 공기를 ‘훅’ 하고 불어 흩트리는 걸 좋아해요. 경계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경계선을 지워버리고 싶어요. 지우개 역할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고요.

가끔 음악에 지칠 때도 있지 않아요?
기댈 수 있기 때문에 지칠 수도 있는 거예요.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받는 느낌처럼요. 아직은 좋아하니까 더 기대고 싶어요. 언젠가 당신이 말했어요. 실체가 없는 음악이 당신을 실체가 있는 존재로 만들어준다고요. 음악을 듣다 보면 이곳저곳에 가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들어요. 때로는 어떤 낯선 공간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야기와 만나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착각이라고 해도 그 시간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정이 있고, 그 시간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죠. 그건 굉장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밤에 글도 쓰고 노래도 만들잖아요. 당신의 밤은 특히 근사해 보여요.
검은색이 모든 색을 포함하듯, 어둠은 모든 것을 사로잡아버리잖아요. 저도 늘 사로잡혀요. 밤의 시간에.

어떤 여름을 보냈고, 또 어떤 가을을 기다리나요?
지난 여름, 그리고 1년 전 여름은 ‘다시, 시작하자’였고, 다가오는 가을에는 ‘설렘’을 기다려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조소영
    포토그래퍼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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