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길가의 꽃이 지는 계절이 아쉬운 3명의 에디터가 플라워 스튜디오로 향했다. 손에 들어오는 핸드타이드 부케, 화분같은 플라워 폼, 벽에 걸어두면 좋은 리스까지. 세상엔 꽃도, 꽃을 만드는 방법도 참 많았다.
정원을 한 손에 가두는 법 | 핸드타이드 부케 만들기
한남동의 한적한 골목 사이에 있는 플로리스트 정희연의 플라워 스튜디오 꼼‘ 마(Com,ma Flowers for Life)’ 문 앞에는 꽃을 가득 꽂은 화병이 보란 듯 놓여 있었다. 계절의 꽃은 늘 시장으로 모이고, 오늘 아침 시장에서 정희연이 쏙쏙 골라 가져온 꽃은 어느 것 하나 탐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우리가 만들기로 한 것은 손에 들 수 있는 꽃다발인 ‘핸드타이드 부케 (Hand-tied Bouquet)’다.
벨벳처럼 보드라운 감촉의 맨드라미와 선명한 붉은 보랏빛의 폼폼달리아. 그리고 크기도 색깔도 조금씩 다른, 블랙뷰티며 줄리엣 등 제각기 이름이 있는 장미. 다양한 꽃과 버실리아 같은 열매식물 그리고 각종 초록 식물을 뜻하는 ‘그린’을 테이블 가득 올려놓고 컨디셔닝(Conditioning)이라고 불리는 전 작업을 한다. 장미처럼 날카로운 가시며 불필요한 잎사귀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매듭을 지은 후 물에 담그는 아래쪽은 잎사귀가 없어야 해요. 그래야 보기도 좋고 꽃이 쉽게 상하지 않아요.”
부케는 단단한 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손 힘에 의해 으깨어지지 않고 힘있게 다른 꽃을 지탱할 수 있다(만들기 시작하면 완성할 때까지 꽃을 내려놓기는커녕 힘을 준 손을 풀 수도 없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딱 봐도 연약한 리시안셔스 대신 강단 있는 장미 두 송이를 X자로 교차한 뒤 왼손 엄지로 교차점을 꼭 쥔다. 이 교차점이 나중에 매듭을 짓는 바인딩 포인트(Binding Point)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꽃을 더하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손에 쥔 부케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계속 한 방향으로만 꽃을 더해야 한다는 것.
“꽃을 더하는 중간중간에 그린을 넣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핸드타이드 부케는 자‘ 연스러운 척’을 하면서 만들어요. 정원에 핀 꽃이 예쁜 이유는 꽃도 있고, 잎사귀도 있고, 열매도 있기 때문이죠. 부케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예요.” 점점 동그란 형태를 유지하면서 꽃과 그린, 열매식물을 더해갔다. “초보자들이 부케를 만들 때 저지르는 실수는 비슷해요. 꽃이 너무 예쁘다 보니 꽃만 계속 더하는 거죠. 그럼 결과적으로 꽃도 예뻐 보이지 않아요. 그린을 넣어주면서 색이나 질감이 어우러지는 꽃끼리 ‘친구’를 맺어주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둥근 돔 모양을 유지하면서 높낮이가 있어야 해요. 그 와중에 어떤 꽃은 다른 꽃에 가려지기도 하죠 .”
형태가 완성되면 삐죽삐죽한 긴 줄기를 손보기 쉽도록 적당히 자르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끈을 고정한 뒤 꽃다발을 돌려가면서 단단히 묶는다. 마지막으로 길이를 정해 줄기를 깔끔하게 자른다. 전지가위를 쓰면 단단한 나무 줄기도 단숨에 잘린다! 그 후에는 부케를 한번 흔들어 꽃과 꽃 사이에 자연스러운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부케의 볼륨이 좀 더 살아난다. 만약 부케 안에서 꽃의 위치를 바꾸거나 높이를 수정하고 싶다면 이때가 마지막 기회다. 제대로 만들었다면 가지는 X 자 형태로 둥글게 뻗어 있을 것이고, 혼자 힘으로 테이블에 완벽하게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자 , 다음은 포장 단계다.
플라워 스튜디오를 서로 구별 짓는 건 플로리스트의 제각기 다른 개성과 감각이다. 그래서 플로리스트들은 꽃을 배울 때, 가장 마음에 드는 꽃을 만드는 스튜디오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사실 그게 꼼마를 찾은 이유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하고,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솔직한 생기가 넘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제 경우엔 아주 어두운 색의 포장지를 주문해서 써요. 그래야 꽃이 좀 더 돋보이거든요. ”정희연이 꽃을 만들게 된 건 아름다운 꽃을 해치는 ‘포장’이 싫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흔히 사용하는 새틴 리본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리본의 광택이 꽃과 부딪치는 게 싫어서 철사 대신 노끈을 쓰고, 새틴 리본 대신 광택이 없는 코튼 리본을 쓰죠.” 바로 그 리본을 손에 들고 부케의 허리에 묶었다. 정원에서 갓 따온 여러 꽃을 자연스럽게 묶은 것 같은, 바로 내가 만들고 싶어 하던 그런 부케가 완성된 것이다. 이때만큼은 누구의 정원도 부럽지 않았다. 에디터 | 허윤선
나를 위한 선물 | 플로럴 폼 만들기
‘한 사람을 위한 꽃.’ 수많은 플라워 숍 중에 ‘이벳르블랑(Yvette le Blanc)’을 선택한 건 이 문장 때문이었다. 이곳의 대표인 최향희 플로리스트가 화분과 화환, 무대 연출, 조경과 인테리어까지 섭렵한 아티스트라는 점도 이벳르블랑에서의 특별한 시간을 확신하게 했다.
“오늘은 우아한 느낌의 플로럴 폼을 만들 거예요. 수업 전에 하나 물어볼게요. 평소에 꽃을 좀 사는 편인가요?” 오늘의 수업을 진행할 김연환 플로리스트의 물음에 “네, 갖고 싶어서 자주 사요”라고 답했더니 예상 밖의 칭찬이 쏟아졌다. “정말 좋은 습관이에요. 꽃을 특별한 날, 누군가를 위해 선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꽃을 사고 가꿀 줄 알아야 해요.” 기대 밖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 오늘 수업에 대한 자신감까지 충만해졌다.
플로리스트는 막 꽃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꽃을 하나씩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비단향 꽃무, 수국, 드럼스틱, 유스토마, 백묘국… 꽃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그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불러주는 대로 소리 내어 따라 부르며 꽃 이름을 외운 후에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일명 ‘오아시스’라 알려져 있는 폼에 꽃을 장식하는 ‘플로럴 폼’은 ‘난이도 상’의 꽃꽂이 방식이다. 책상 위에 놓인 은색 화기의 크기에 맞춰 폼을 조심스럽게 잘라 었다.
“자, 이제 덩어리가 큰 장미부터 꽂아볼게요. 줄기는 비스듬히 잘라서 꽂아야 수분을 많이 빨아들일 수 있어요.” 장미를 잘라 폼 왼쪽의 가장자리에 꽂았다. 다른 방향의 아래쪽에도 세 송이의 장미를 꽂아 넣었다. 폼 안으로 줄기가 미끄러지듯이 꽂히는 느낌도, 그것이 한데 모여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도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꽃을 꽂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리듬감이에요. 전체적으로는 통일감이 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높이가 하나도 같지 않게 꽂는 것이 중요해요. 이렇게 직사각형의 화기에 꽂을 때는 전체적인 꽃의 모양도 직사각형이 된다고 생각하면 되요.”
꽃이 대부분 파스텔 톤이라 진한 녹색의 잎은 떼어내고 꽂았다. 녹색 잎이 너무 부각되면 꽃의 은은한 색감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질감의 장미 옆에는 다소 거친 질감의 백묘국을 꽂았다. 백묘국은 여러 잎을 모아 플로럴 테이프를 붙여가며 꽂았다. 플로리스트는 줄기의 끝 부분을 감으면 수분을 빨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줄기 위까지만 감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줄기 속이 비어 있는 백일홍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뚝하고 부러졌다. 매일 물에 담가놓고바라만 볼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백일홍 옆에는 다른 꽃의 힘있는 줄기를 잘라 꽂아 넣으세요.” 그렇게 하니 연약하던 백일홍 줄기가 다른 줄기의 힘을 받아 폼 안으로 쏙 들어갔다.
다음 차례의 옥시펜타늄을 들고서 줄기를 자르니 하얀 유액이 흘러나왔다. 줄기 아랫부분을 성냥불로 살짝 태우면 좋지만 매번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 물에 담가 유액이 흘러나오지 않게 한 후에 꽂아야 수명이 더 오래간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트위디아를 살 때 분홍색을 띠면 시든 거라고 생각하면 되요. 블루 컬러를 띠는 것이 싱싱한 꽃이에요.” 수국과 장미, 백일홍, 옥시펜타늄을 플로리스트의 말처럼 ‘물이 흐르듯’ 꽂으니 제법 어엿한 폼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제부터는 비어 있는 부분을 메우는 시간. 자유롭게 꽂아보라는 그녀의 말에 화기를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한참을 고민한 후, 비어 있는 부분에 수국 한 송이를 꽂았다. 불쑥 꽃 한 송이가 들어가면 생뚱맞고 지저분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옆에 작은 수국을 하나 더 꽂아 넣었다. 꽃과 꽃 사이의 색감과 질감을 고려해 비어 보이거나 뭉친 곳이 없는지 살펴가며 정성스럽게 꽂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버렸다. 최종 점검하는 플로리스트의 손이 몇 번 왔다 갔다 하자, 플로럴 폼은 더욱 풍성하고 우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장장 세 시간에 이르는 수업을 마치고 화기를 정성스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기를 올려놓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꽃향기를 맡으며 누구보다 이른 가을을 맞이하고 즐길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꽃이 말라가기 시작했지만 그 또한 계절과 시간의 일로 받아들이기로 하니 꽃의 또 다른 표정이 보였다. 다 마른 꽃을 버리기 전에 꽃시장에서 산 꽃을 한아름 들고서 다시 한 번 이벳르블랑을 찾을 생각이다. 에디터 | 조소영
당신의 특별한 날을 위해 | 갈란드 만들기
10년 넘게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로 활약한 조은영이 운영하는 ‘인스파이어드 바이 조조 (Inspired by Jojo)’는 시원시원하고 자연스러운 플라워 세팅으로 이름난 곳이다. 난생처음 받는 플라워 레슨 앞에 긴장해 ‘쉬운 내용으로 부탁드린다’는 나의 전화를 그녀가 기억한 걸까? 내 생애 첫 플라워 레슨의 주제는 ‘갈란드(Garland)’였다. 갈란드는 결혼식장이나 연회장의 기둥, 촛대, 벽 등에 늘어뜨려 장식하는 화환을 가리키는 말. 맨 처음 나를 당황하게 한 건 양팔 너비의 스튜디오 테이블에 가득 펼쳐놓은 재료였다. 테이블 두 개를 가득 채운 광나무, 청지목, 다정금, 담쟁이, 색색깔의 장미, 그리고 과꽃이라니!
“갈란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요. 두 가지만 기억하면 돼요. 전체 부피를 일정하게 맞출 것, 재료를 비슷한 크기로 자를 것.” 조은영의 말에 용기를 얻고 500ml 페트병 크기로 이어진 5개의 폼에 베이스가 되는 청지목을 꽂아나갔다. 짙푸른 이파리가 예쁜, 상대적으로 가격까지 저렴한 청지목은 꽃꽂이의 바탕으로 자주 쓰이는 재료. 부피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틀을 잡은 후 폼의 연결 부분에 빈틈이 보이지 않도록 꽂으면 된다. 놀랍게도 신나게 꽂다 보니 수북이 쌓여 있던 청지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다정금과 담쟁이, 광나무 등 다른 그린 재료를 틈새에 꼼꼼히 꽂으세요. 바탕이 되는 그린의 재료가 풍성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거든요. 하지만 너무 깊게 꽂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폼 하나에 꽂는 재료가 많아 깊숙이 꽂다 보면 폼이 무너지기도 하니까요.” 손 가는 대로 재료를 꽂던 손이 순간 멈칫 했다. 같은 그린이라지만 이파리의 질감이나 광택, 빛깔이 다른 네 종류를 한데 꽂으니 바탕만 만들었는데도 제법 그럴 듯하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꽃인 법! 심지어 주인공답게 세 종류의 장미는 각각 선명한 오렌지, 레드, 핫핑크 빛깔을, 과꽃은 자줏빛을 자랑하고 있다.
이 꽃들이 과연 서로 어울릴까? 내가 미심쩍어하는 걸 그녀도 눈치 챈 모양이다. “한국의 플라워 레슨은 너무 얌전해요. 노란 장미와 흰 장미처럼 무난한 조합을 선호하죠. 이런 것에 익숙하다 보니 수강생들도 화려한 빛깔의 꽃을 사용하는 것을 어색해하고요. 그래서 일부러 더 선명한 색의 꽃을 사용하려고 해요. 자연을 보세요. 온갖 빛깔의 꽃이 섞여 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잖아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 개성 넘치는 꽃들이 어울려 어떤 자태를 자랑할지 문득 보고 싶어졌다.
그린과 달리 꽃은 쉽게 모양이 망가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꽃을 꽂기 전에 준비한 촛대에 갈란드를 감았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모양을 연출하기 위해 갈란드의 중간중간을 철사로 촛대에 고정해 굴곡이 지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꽃들은 하나하나 꽂을 때마다 훌륭하게 어우러졌고, 나는 촛대를 돌려가며 틈새에 색색의 꽃을 꽂아나가면 됐다. 워낙 재료가 많다 보니 나중에는 손으로 더듬어가며 폼의 빈 공간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근사하고 화려한 갈란드가 곧 완성됐다. 갈란드는 사실 호사스러운 꽃꽂이 방식이다. 여러 번 말한 것처럼 재료가 많이 들 뿐 아니라 수많은 재료를 폼 하나에 꽂다 보니 2~3일이면 시들고 만다. 연회나 결혼식 같은 날에 주로 사용하는 갈란드는 그 자체가 특별한 의식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갈란드를 만드는 동안 나는 선물받은 커다란 60색 크레파스 세트로 하얀 4절지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신이 났다. 크레파스 세트에서 마음 가는 색을 골라 칠하는 아이처럼 형식에덜 얽매이는 갈란드는 초보자가 도전하기에 훌륭한 수업이었다. 첫 번째 플라워 레슨 때 가장 필요한 감각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일단 재미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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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안형준, 이주혁
- 기타
- 촬영협조 | 스튜디오꼼마, 이벳르블랑, 듀셀 브리앙, 인스파이어드 바이 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