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우울증

혹시 당신도 우울한가? 전문가들은 우울감과 우울증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우울증이라면? 다음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길.

우울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가족과 갈등을 겪거나, 남자친구와 권태기를 겪어도 우울하고, 비가 와도, 계절이 바뀌어도 우울해진다. 이유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가끔은 이유도 없이 우울해진다. 아마도 누구나 “나 요즘 우울증이야”라는 말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심각한 질병이라는 걸, 진짜 우울증 환자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그럼에도 우울증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한 트위터 친구는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우울증을 겪어보니,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정말 달랐다. ‘밤이 되면 늘 우울해요’라는 말과 다르다. 그러니까 날마다 우울해서 지치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볼 일이다. 병이 아니라 그저 울적한 상태라고 진단이 나오면 홀가분하잖은가.” 맞는 말이다. 또 다른 친구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 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말이야, 병원 문을 여는 순간 확신이 들었어. 난 그저 우울하고 슬픈 거지, 지극히 멀쩡한 상태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진짜 우울증은 어떤 것일까?

우울증,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일명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며 전체 성인의 10~20%가 경험하는 흔한 질환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우울감과 슬픈 감정을 흔히 느낄 수 있죠. 그러나 병적인 우울증은 슬프거나 울적한 감정이, 단지 기분의 문제를 넘어서 신체와 생각의 여러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개인이나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는 상태를 말합니다.”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반건호 교수의 말이다. “우울증은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만으로 벗어나기는 어렵고,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며 다양한 흥미와 즐거움이 사라진 상태. 이것이 우울증 증상이다. 우울증의 진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의 면담과 신체적 질환 검사, 심리 검사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울증은 정도에 따라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나뉘며 그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선 우울증이 신체적 질병이나 약물에 의한 것인지를 감별하고, 정확하게 진단한 후 면담을 통한 원인 규명과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 왜 위험할까
전문가들이 밝힌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생물학적•유전적 요인, 심리적•사회적 요인, 만성 신체질환, 대인관계, 생활사건과 환경적 스트레스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중추신경계에서 세로토닌 또는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생화학 물질의 감소로 우울증이 생긴다. 신경호르몬의 조절 이상으로 생길 수도 있고, 수면 리듬의 이상이나 계절의 변화로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또 스트레스도 원인이 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의 대부분이 우울증 발병 전 생활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11세 이전에 부모를 잃는다든지, 배우자 상실, 죽음, 이별, 실패, 실망, 불화 등의 생활사건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특히 20대 중반은 우울증이 가장 많이 발병하는 시기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우울증의 발병연령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연구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의 약 2/3는 우울증상이 완전히 없어지지만 약 1/3은 부분적으로 없어지거나 계속해서 증상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우울증은 흔히 ‘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부분적으로 회복된 사람들도 다시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번이라도 우울증을 앓았다면 다시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경험하기 전에 우울증 증상보다 심하지는 않더라도 만성적인 우울감을 겪는데, 이런 경우에는 회복률이 떨어진다.
우울증은 인생을 좌우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혼이나 직업 상실, 무단 결석이나 학업 실패 등 학업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고,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을 남용하는 사례도 많다. 특히 우울증에서 주의할 것은 자살 시도다. 우리를 수없이 놀라게 한 유명인의 자살 원인은 대부분 우울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심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15%가 자살에 의해 사망하며, 55세 이상인 우울증 환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에 비해 4배 이상 높다. 특히 만성적인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자살 위험은 더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 환자의 70~80%는 호전될 수 있다.

우울증 치료하기
우울증의 원인이 다양한 것처럼, 그 치료 방법도 다양하다. 생물학적인 원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우울제가 필요하며,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신치료를, 그리고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의 치료적 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치료가 잘되고 재발이 줄어듭니다. 특히 약물치료를 받을 경우에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 복용해야 하죠.” 반건호 교수의 말이다.
항우울제를 복용할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약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약을 복용했다가 중지하는 것이다. 항우울제는 반드시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복용해야 한다. 약물의 효과는 2주가 넘어야 나타나며, 충분한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3주 이상 약을 복용해야 한다. 또한 우울한 기분이 좋아진 후에도 충분히 치료해야 재발의 위험이 줄어든다. 전문의들은 알려진 루머와 달리, 항우울제가 습관성이나 중독성이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최근 개발된 항우울제는 부작용도 적고 치료 효과도 좋아 우울증 치료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항우울제를 사용할 경우 초기 급성기에는 증상과 기능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데 6~12주가 걸리며, 지속기에는 증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동일한 용량의 약물을 4~9개월 사용한다. 이후 단계는 증상에 따라 약물 용량을 조절하여 약 1년간 유지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병이 재발하지 않으면 약물을 중단할 수도 있다. 우울증 치료에는 무엇보다 약물치료가 우선이지만, 우울증이 내적 갈등이나 성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신치료도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행동치료, 인지치료, 대인관계치료 등 여러 가지 정신치료법이 있다.

아무도 모른다
우울증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인생사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의 조언이나 충고다. 햇볕을 많이 보라는 조언은 어떤가. 또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식의 조언은 우울증을 질병이 아닌 개인적인 나약함으로 치부함으로써 우울증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보다는 우울증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워첼이 쓴 <프로작 네이션 >은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자는 미국에서는 제3세대 페미니즘의 아이콘적인 작가 겸 변호사다. <프로작 네이션 >은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한 병적인 우울증을 솔직하게 고백한 책이다. 제목이기도 한 ‘프로작’은 대표적인 항우울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맨 얼굴을 기꺼이 드러낸다. 이 책에서는 개인과 주변 사람까지 망칠 정도로 험난하고 파괴적인 질병인 우울증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고통 받는다. 침대에 누운 채 무력하게 보낸 날들과 자신을 학대하는 위험한 모습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된다. 게다가 우울증 증상의 하나인 자살충동도 계속된다. 그녀에게는 프로작과 같은 의학적인 처방이 도움이 되었다. 비로소 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그녀는 우울증 역시 하나의 비참한 중독 상태이며,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우울 극복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행복을 미루지 않기를 바람>. 언뜻 보면 우울한 삶에 대해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시시한 책 같지만, 저자 정보연 역시 13년 동안 우울증을 앓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저자는 마치 스스로에게 실험하듯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중 하나는 ‘우울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글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연재하는 것이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일어선다면 우울증 따위는 사라질 텐데. 정신과 약에 의지하게 되면 내 이력엔 빨간 줄이 그어질 텐데”라고 오랜 시간을 혼자서 힘들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 발병기를 여러 번 거치면서, 우울증은 뇌의 특정 부위가 파괴되어 생기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상담치료와 명상 등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하게 된다. “몇 달 후 의사 선생님이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셨을 때, 제가 먼저 약을 계속 먹으면 안 되냐고 간청했죠. 약을 끊고 나서도 금단 증세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특히 부작용이 없어져서 정말 행복했어요. 항우울제는 중독증세, 사후 금단증세가 없어요.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기분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불안’은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없었어요.” 실제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주변에 그 사실을 숨기기 급급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터놓는 경험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증상을 안고,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도 우울증이라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도 우울증일까?
아래 9가지 증상 중에서 5가지 혹은 그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직업적 또는 사회적 기능이 심각하게 지장받을 경우에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저하
식욕부진이나 체중감소 혹은 식욕증가나 체중증가
불면이나 수면과다
정신운동성 초조나 지체
피로감이나 기력상실
가치감 상실이나 지나친 죄책감
사고력과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함.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자살사고, 자살기도

    에디터
    허윤선
    포토그래퍼
    이주혁
    기타
    도움말 | 반건호(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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