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떠나보내며
계절을 떠나보낸다는 건 참 쉽지 않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한순간 발걸음을 붙잡히고 만다. 그러나 이번 여름만은 열렬히,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금선사에서의 뜨겁게 차오르던 가슴과 뜨겁게 보고 듣고 맛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금선사로 가는 길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한산을 올랐다. 산과 바위에 둘러싸인 채 흙을 밟고 서 있으니 손가락 사이로 지나는 바람이 느껴진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홀로 산을 오른 건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의첫 번째 템플스테이, 금선사로 가기 위해서였다. 걷다가 멈춰서 바람을 느끼고 또다시 걸어나가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선사를 알리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어떤 소리를 듣게 될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드디어 금선사의 활짝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진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동화를 벗고 평상 밑에 일렬로 놓인 흰색 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잠시 앉아 숨을 돌리고 난 뒤 돌계단을 올라갔다. 법당 사이에 자리 잡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 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온다. 오른쪽 왼쪽으로 바삐 고개를 돌리니 약수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보였다. 빨간 바가지에 물을 한가득 받아 한 번에 들이켰다. “아, 시원하다.”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린 말이다. 약수터 찾은 아주머니처럼 괜히 기지개도 켜보고 팔을 옆으로 뒤로 흔들어보기도 한다. 고무신까지 신었으니 그 모양새가 꽤나 우스웠을 거다.
108배라는 뜨거운 경험
“자, 이제 수련복으로 갈아입으세요.” 1박 2일 동안 템플스테이를 지도해주실 승원 스님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글자가 적힌 흰색 티셔츠와 편안한 분홍색 고무줄 바지로 갈아입으니 드디어 템플스테이가 시작되는구나 싶다. 나란히 줄 맞춰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짝 친구와 함께 온 여대생, 동생과 함께 찾은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연인,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꽤 눈에 띈다. 스님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가장 많이 하게 될 명상을 위해 명상하는 방법과 절을 올리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스님의 지도에 따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꺼운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빗소리가 금산사의 고요한 산자락을 가득 메웠다. 평상 너머의 흙 마당 위로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 묵혀 있던 찌꺼기도 같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빗줄기는 이내 가늘어졌고 스님을 따라 금선사 투어에 나섰다. 2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고 선 장엄한 소나무 밑에 섰다.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고 목구멍 깊숙이 공기를 밀어 넣었다. 소나무를 지나서 긴 계단을 오르니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대적광전 아래에 있는 미타전과 연화당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과 위패를 봉안하는 연화당과 제사의식이 행해지는 미타전, 삼성각과 일주문, 반야전까지 둘러보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마침 저녁 공양 시간이 다 되어 빠른 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하얀 쌀밥과 상추, 고사리와 애호박을 가득 담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후식으로 나온 떡과 과일까지 든든히 먹고 저녁 예불을 위해 반야전으로 올라갔다. 전당 위를 장식한 색색의 화려한 연등이 산속에 찾아온 까맣고 깊은 밤을 유일하게 빛내고 있었다. 금선사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드린 후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108번을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 끝까지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을 했는데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함께 절을 올리는 것이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은 것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인 것을 알게 된 걸 감사하며 절합니다.’ ‘나의 교만함으로 누군가와 악연이 된 것을 참회하며 절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이 또렷해졌고 온몸의 작은 움직임에 더 정성을 쏟으며 절을 올릴 수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뜨거운 마음을 그대로 안고 반야전을 나와 까만 여름밤을 걸었다. 낮과는 또 다른 바람이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반짝이는 여름산의 아침
딱, 딱, 딱, 딱, 스님의 목탁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4시 반.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대적광전으로 올라갔다. 먼저 도착해 예불을 준비하고 계시는 스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예불이 끝난 후 다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대적광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곳에 앉아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경이로운 순간을 온전히 지켜보았다. 비에 젖은 하늘 밑 온 산이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키 큰 나무들과 이름 없는 풀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았고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지저귀는 명료한 새소리를 들었다. 새벽 어스름을 지나 환한 아침이 올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는데도 떠나려 하니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렵사리 마음을 정리하고 법당을내려왔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가서 모두가 함께 먹을 밥과 국, 반찬과 물을 나누어 받아왔다. 발우 공양을 준비하는 것이다. 발우(鉢盂)는 스님이 쓰는 그릇을 말하는데 ‘발’은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라는 뜻이고 ‘우’는 밥그릇이라는 뜻의 한자어다. 두 명의 봉사자가 따라준 청수물로 네 개의 그릇을 헹구었다. 밥과 찬은 남거나 모자라지 않게 받아 소리 내지 않고 먹었다.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낸 후 처음 받았던 청수물로 네 개의 그릇을 돌려가며 씻은 물을 다 마신 후에야 공양이 끝났다. 불교의 정신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중요한 의식인 만큼 모두가 최선을 다해 배우고 따르는 모습이었다. 발우 공양이 끝난 후에는 울력 시간을 가졌다. 조를 나누어 설거지를 하고 이불의 먼지를 털고, 마당을 청소하고 흰 고무신을 닦았다. 1박 2일 동안 우리 손에 닿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해 이곳을 찾을 다음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울력 시간이 끝난 후 상쾌한 기분으로 절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덕분에 산속에서 맞는 아침을 이리도 오랫동안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사방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 산행도 빠질 수 없었다. 다시 스님을 앞세워 씩씩하게 산을 올랐다. 서로 손을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마주 오는 등산객과 인사도 하고 시원한 계곡에 손을 담그기도 하면서 천천히 올랐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한참을 오르다 커다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서니 하늘이 한층 가까워져 있었다. 나긋하고 느긋한 여름산의 냄새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문득, 이대로 여름을 떠나보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밤에 느꼈던 뜨거운 마음이 잊히기 전에, 반짝이는 아침산과 명료한 새소리가 잊히기 전에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고 되뇌며 활짝 열린 금선사의 문을 빠져나왔다.
템플스테이, 이것만은!
묵언하기 묵언은 템플스테이의 중요한 수행이다. 묵언을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우리가 평소에 필요하지 않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지를. 이곳에서만큼은 최대한 말을 줄이는 것이 좋다. 조금씩 마음의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혼자 가기 묵언을 위해서라도 혼자 가는 편이 좋다. 휴식 시간이 주어지면 마치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처럼 수다를 떠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수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조용히 명상을 하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혼자가면 분명 더 많은 게 보일 거다.
휴대폰 두고 가기 휴대폰을 들고 가서 꺼놓는 것보다 집에 두고 오는 편이 낫다. 휴대폰을 안 보겠다고 아무리 결심해도 문득, 날씨라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유혹이 생길테니까. 1박 2일이라 하지만 2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하루 정도는 벨 소리 말고 바람 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어두자.
열린 마음 가지기 불교든, 천주교든, 무교든 이곳에서 당신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종교를 믿기 때문에 108배는 못하겠다는 식이라면 좀 곤란하다. 열린 마음으로 불교의 예절을 따르다 보면 배우고 깨닫게 되는 부분도 더 많아질 것이다.
양말과 손수건 챙기기 법당에는 당연히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여름이라 그런지 양말을 준비하지 않은 이들이 꽤 있었는데 맨발로 법당을 돌아다니는 것은 예의가 아닐 뿐더러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다. 함께 신는 고무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108배와 북한 산행을 대비해 작은 손수건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휴식형 참가하기 계속되는 프로그램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평일에 시행하고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면 된다. 아침, 저녁의 예불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스님과의 개인적인 면담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 곳
흥국사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흥국사의 템플스테이는 사찰예절과 예불, 공양, 참선, 다도와 같은 기본 프로그램과 함께 연꽃 그리기, 미니 연등 만들기 같은 다양한 부가 프로그램이 있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문의 02-381-7970 www.heungguksa.or.kr
길상사 가고는 싶으나 먼 거리가 부담된다면 서울 안에 있는 길상사의 템플스테이는 어떨까. 운치 있기로 소문난 길상사의 프로그램은 매월 셋째 주말마다 불교를 갓 접한 사람이나 수행을 막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신참반을 별도로 운영해 보다 쉽게 접해 볼 수 있다.
문의 02-3672-0036 www.gilsangsa.or.kr
법흥사 ‘몽당연필(夢當緣必), 꿈을 이야기하고 당당한 자신감을 이야기하고 인연을 이야기하며 반드시라는 필연을 이야기한다’. 당당한 자신감으로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 인연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법흥사 템플스테이의 슬로건이다. 꿈, 자신감, 인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필연. 우리 삶에 필요한 궁극의 행복이 여기 다 있다.
문의 033-375-9173 www. bubheungsa.or.kr
마곡사 ‘산사의 여유’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마곡사의 템플스테이는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후, 하얀 백지 위에 자신의 장점을 적어보는 순서로 마무리된다. 자신에 대한 뜻밖의 애착을 발견하는 기쁨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된다. 대학교 교과과정의 하나로 채택될 만큼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문의 041-841-6226 www.magoksa.or.kr
조금 다른 체험을 원한다면
육지장사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육지장사는 스트레스, 비만 해소를 위한 체험형 건강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명상, 육지장사 선식선차, 경락 추나 요법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천연한방재료로 선보이는 찜질은 특히 여성 참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문의 031-871-0101 www.yukjijangsa.org
수도사 전통 사찰음식 만들기와 사찰음식의 주재료가 되는 각종 산야초 가꾸기 및 채취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냉국 만들기와 전통 음청류 만들기, 가을에는 두부 만들기, 겨울에는 메주콩 삶기 등을 배울 수 있다. 텃밭을 직접 가꾸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도 마련했다.
문의 031-682-3169 www.sudosa.co.kr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용주사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는 의미에서 용주사라 불리며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진 사찰로 유명하다. 효심의 본찰답게 ‘부모님의 은혜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의 열 가지 은혜에 대해 익히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문의 031-235-6886 www.yongjoosa.or.kr
금산사 예불, 참선, 신행상담, 다도, 108배를 기본 프로그램으로 하는 금산사의 템플스테이는 차밭 체험 프로그램이 추가로 포함돼 있어 차나무 관리와 거름주기, 찻잎 따기와 다도 등을 함께 체험할 수 있어 소중한 노동의 기쁨을 함께 선사한다. 다른 연계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문의 063-542-0048 sansa.geumsa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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