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말피, 이탈리아의 보석
레몬나무 향이 가득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해안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든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온전한 아말피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숨겨진 비밀의 장소를 담았다.
아말피 해안에는 세련됨과 투박함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공존한다. 호화로운 요트, 기사가 딸린 벤츠 승용차, 5성급 호텔이 있는가 하면 한적한 농촌의 모습도 있다. 절벽을 따라 위태롭게 자리한 마을 곳곳에서 농부들은 작고 가파른 땅을 경작해 농사를 짓고, 아낙들은 치즈를 만든다. 이 두 개의 세계를 잇는 연결 고리는 바로 ‘1천 번 꺾어지는 길’로 유명한 163번 국도다. 나폴리의 국왕 페르디난트 2세의 명으로 1852년에 완공된 이 해안국도를 따라 레몬밭과 작은 마을이 번갈아가며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도로는 두 개의 차선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좁아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없다.
Positano
포지타노가 누렸던 황금기는 12~13세기, 무역 상인들의 배가 아말피를 드나들던 때였다. 이후 몇 세기 동안 계속된 몰락은 18세기 중반, 인구의 3/4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1953년, 이탈리아를 찾은 작가 존 스타인벡은 당시 소수의 이탈리아인에게만 알려졌던 이 작은 어촌 마을에 대한 글을 <하퍼스 바자>에 기고했고, 기사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포지타노에 그야말로 달콤한 인생, ‘돌체 비타(Dolce Vita)’가 찾아온 것이다. 젯셋족이 포지타노를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독일 화가 파울 클레가 “수평이 아닌 수직의 축에서 태어난 지구의 유일한 장소”라고 칭한 포지타노의 인구는 4천 명이 채 안 된다. 여름에는 소렌토, 카프리, 나폴리에서 매일같이 수천 명의 휴양객이 몰려들지만 포지타노는 그 특별하고도 완전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 특별한 관광 명소를 구경하기 위해 포지타노에 오는 사람은 없다. 대신, 환상적인 경치를 즐기며 캄파리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바람에 휘날리는 리넨 의상과 수제 가죽 샌들을 쇼핑하기 위해, 완벽하게 그을린 얼굴에, 어깨에는 캐시미어 스웨터를 걸친 이탈리아 남자들을 구경하기 위해 우리는 포지타노에 간다. 포지타노에서 제대로 된 평지는 해안가의 도로뿐, 그 외에는 지독히 가파른 계단으로 가득하다. 회색 자갈밭이 깔린 마리나 그란데 해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레스토랑과 바, 나무가 즐비하다. 여름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선베드에 빈 자리가 없다. 수영을 하고 싶다면 보트를 타고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작은 해변을 찾는 게 낫다. 라우리토(Laurito) 해변에 위치한 다 아돌포(Da Adolfo)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을 곁들이면 완벽하다. 테이블을 예약하고 부두에서 기다리면 빨간 생선 모양의 돛을 단 다 아돌포의 보트가 당신을 데리러 올 것이다. 수정처럼 깨끗한 물속에서 스노클링에 도전하고 싶다면 세 개의 작고 들쭉날쭉한 섬이 모여 있는 리 갈리(Li Galli)로 향하면 된다. 신화에 따르면 사이렌이 바로 이곳에서 오디세이를 유인하기 위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오디세이는 유혹을 떨치는 데 성공했지만 러시아의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는 그러지 못했다. 이 세 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에 거처를 정한 그는 노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Praiano & La Praia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조용한 마을 프라이아노(Praiano)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새로 지은 호텔이 여럿 있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바 델 솔레(Bar del Sole)를 제외하고는 마을의 중심부라고 칭할 곳이 마땅히 없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돔을 가진 성당, 자갈이 깔린 해변, 350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 라 가비텔라(La Gavitella) 해변은 프라이아노의 큰 자랑거리다. 라 가비텔라에서는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해안가를 따라 눈부시게 내리쬐는 지중해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의 해안 지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다로 나가야 한다. 포지타노나 아말피에서 보트를 탈 수도 있지만 프라이아 해변(Marina di Praia), 또는 줄여서 라 프라이아(La Praia)로 내려가 아기자기한 집들과 뾰족한 절벽, 그 사이에 자리한 작은 해변을 통해 돌아나가는 방법도 있다. 보트 티켓을 살 수 있는 부스와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보트를 타고 서쪽으로 이동하면 소렌토 반도의 거칠고 투박한 끝자락, 푼타 캄파넬라(Punta Campanella)에 다다른다. 그 뒤로는 카프리 섬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아말피를 향해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믿기 힘들 정도로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바다로 나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데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아기자기한 경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화로운 빌라, 바닷가 절벽 아래를 꿰뚫는 크고 작은 동굴, 해적과 전쟁의 잔해를 짐작케 하는 요새, 해수욕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반짝이는 해변의 자갈, 나른한 점심 식사를 즐기기에 제격인 레스토랑…. 들쭉날쭉한 라 프라이아의 해안 중간에 푸로레(Vallone di Furore) 협곡이 등장한다. 바위 표면에 대충 지은 듯한 오래된 오두막과 조그마한 해변이 숨어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의 웅성거림과 이들을 실어 나르는 보트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면 이제 곧 에메랄드 동굴, 그로타 델로 스메랄도(Grotta dello Smeraldo)에 도착하게 된다. 동굴 안 물속에서 비치는 오묘하고도 강렬한 초록빛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잠시 163번 국도로 이동해보자. 웅장한 다리가 푸로레 협곡을 가로지르며 작은 어촌 마을의 조감도가 펼쳐진다. 이 아찔한 도로 구간은‘ 메디터레이니언 컵 하이 드라이빙 챔피언십’이 매년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협곡 위에 자리한 언덕에는 보헤미안의 기운을 간직한 작은 마을 푸로레(Furore)가 있고, 그 뒤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치즈인 타원형 모양의 프로볼로네 델 모나코의 주요 생산지인 아게롤라(Agerola)의 기름진 평야가 자리한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 외에도 언덕에 꼭 올라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마리사 쿠오모의 그란 푸로르 디비나 코스티에라(Gran Furor Divina Costiera) 와이너리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쿠오모와 그녀의 남편 안드레아 페라이올리는 태양과 바다의 깊은 맛으로 칭송받는 코스타 다말피(Costa d’Amalfi) 와인을 생산한다.
Amalfi & Atrani
오늘날 아말피의 주 수입원은 관광업이지만 9세기에서 12세기 사이 아말피는 8만 명의 주민을 거느린 명예롭고 도도한 해운 공화국으로서 베네치아, 피사, 제노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아말피인들은 아랍 무역 상인들에게 종이 만드는 법을 배워 면과 리넨 천을 이용해 두껍고 무거운 밤바지나(Bambagina) 종이를 만들었고, 18세기에 들어서자 좁고 가파른 물리니 계곡(Valle dei Mulini)과 그 근방은 제지 공장으로 가득해졌다. 요즘 아말피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알록달록한 도자기 용품이다. 리몬첼로를 담은 병부터 어디서나 눈에 띄는 ‘투어리스트 메뉴’라고 쓰인 도자기 간판까지 말이다. 하지만 바다와 산맥을 끼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은 근사한 레스토랑과 호텔,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까지 품고 있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마을 중심부에서 벗어나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좁다란 골목길, 아찔하게 가파른 계단길을 탐험하다 보면 중세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마을의 중심부에서는 두오모 광장, 그중에도 안드레아 대성당을 꼭 둘러봐야 한다. 대담한 색상과 줄무늬가 사용된 정면에 노르만-아랍 양식으로 지은 이 대성당은 서로 교차되는 아치와 1066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들어진 청동 문이 웅장한 느낌을 준다.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파스티체리아 판사(Pasticceria Pansa) 레스토랑이다. 여기서 꼭 맛봐야 할 메뉴는 지역에서 난 레몬으로 만든 부드러운 케이크 델레치 알 리모네다. 육즙이 풍부한 아말피산 레몬으로 담근 레몬술 리몬첼로는 식사 후 입을 상큼하게 해준다. 시끄러운 관광객 무리를 피하고 싶다면 작은 어촌 마을 아트라니로 향하는 언덕으로 발길을 돌릴 것. 오밀조밀한 건물들, 좁은 골목과 계단, 숨겨진 맛집 아파란차(A’ Paranza) 트라토리아가 기다리고 있다. 만약 차로 이동한다면 아말피를 벗어났다는 걸 알아채기도 전에 아트라니에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163번 국도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금방이다.
Ravello & Scala
가장 귀한 것일수록 마지막까지 아껴둔다고 했던가? 아말피 해안에서 가장 아껴두고 싶은 보석이 라벨로라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해수면에서 350m 높이 치솟은 산은 부벽으로 지지되어 왁자지껄한 관광지에서 고립되어 있다. 포지타노가 아말피 해안의 매력적인 미녀라면, 라벨로는 고상하고 귀족적인 사촌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말피와 마찬가지로 라벨로 역시 과거에는 지금보다 넓은 영토와 찬란한 부유함을 자랑했었다. 우아한 고성, 조용한 빌라, 예쁘게 가꿔놓은 정원은 영예로웠던 과거에 대한 낭만적인 회상과 더불어 유명 작가와 예술인, 음악가들을 끊임없이 매혹해왔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빠져나간 라벨로의 텅 빈 골목에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묘한 기운이 감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꼭 1박 이상 머물러야 한다. 근사한 호텔들이 즐비하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벨로를 찾는 목적은 두 개의 위대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1880년, 빌라 루폴로(Villa Rufolo)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 <파르지팔>의 영감을 얻었다. 18세기 중반 스코츠만 프랜시스 네빌 레이드가 복원한 빌라다. 또 다른 영국인인 그림소프 경은 1904년, 빌라 침브로네(Villa Cimbrone)를 구입해 황홀한 경치를 갖춘 호사스러운 정원을 가꿨다. 이 빌라는 1920년대 블룸즈베리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이곳에서 사랑을 키웠다. 라벨로는 이 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과 현대적인 건축물의 소유지이기도 하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주는 라벨로 대성당은 11세기에 지어졌다. 아말피 해안에 단 하나뿐인 현대적인 건축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뉴 에너지 오디토리움은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눈부신 화이트 색상에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은 이 건물은 살레르노 만의 일렁이는 바다가 거울처럼 비치도록 고안되었다. 라벨로 바로 뒤편, 용의 계곡(Valle del Dragone) 너머에 활기를 잃은 듯 조용한 마을 스칼라(Scala)가 있다. 이곳은 한때 아말피 공화국의 중요한 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쓰러져가는 고성과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12세기 성당을 보면 그 과거를 짐작할 수 있다. “포지타노는 마음속 깊은 무엇을 앗아간다. 그곳에 있을 때는 꿈같이 믿기 힘들지만 막상 떠나고 나면 짙은 현실로 변해 내게 손짓한다”라는 스타인벡의 말은 아말피 해안 전체에 해당한다. 여름이 뜨거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163번 국도에서 두 개의 관광 버스 사이에 치여 매연 가스를 들이마시다 보면 지친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고 나니 아말피 산타 카테리나 호텔의 개성 넘치는 주인 감바델라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아말피 해안에서 과거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장소에 가야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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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 Oliver Pilcher
- 아트 디자이너
- Illustration | Heather Gatley
- 기타
- 글 | 니키 스월로(Nicky Swal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