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생긴 일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아직 새로운 나라에 발도 디디지 않았는데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화가 난다고 ‘라면상무’가 될 수는 없기에, 항공편을 이용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여섯 가지 상황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을 소개한다. 화내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는 법.

1 수하물을 잃어버렸다
보통 비행기를 한 번 이상 갈아탔을 때 생기는 상황이다. 즉, 주인은 비행기를 탔지만 짐은 비행기를 못 탄 경우다. 이런 경우 공항에서는 짐을 찾아서 바로 다음 항공편으로 배송을 하는데, 해당 항공사에서 승객이 머무는 집이나 호텔까지 배송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인천 공항에서 짐을 잃어버렸다면 집이 강릉이나 부산이더라도 배송해야 하는 것. 짐을 잃어버린 승객은 ‘생존’을 위한 약간의 보상금(Out of Pocket Expenses, OPE)으로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은 50달러,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 승객은 100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또 항공사에 따라 간단한 세면 도구, 속옷 등이 들어 있는 ‘서바이벌 키트’를 지원받을 수 있으니 짐을 신고하면서 물어보길.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항공권을 발권할 때 보딩 패스나 여권 등에 붙여주는 수하물 처리표를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수하물 사고신고서(Property Irregularity Report)를 작성한다. 여행자보험을 따로 들었다면 공항안내소나 경찰서에서 분실신고를 하고 증명서를 받아야 보상받을 수 있다. 또,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갈아탈 때 2시간 정도의 여유 시간을 두고, 연결편항공기를 탑승할 때도 직원에게 짐이 잘 실렸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좋다. 특히 수하물 사고가 높은 유럽행 항공편을 이용할 땐 주의!

에디터의 실제 상황 지금까지 짐을 두 번 잃어버렸다. 두 번째는 심각했다. 항공 여정 중 사라진 짐이 3일 동안 오지 않은 것이다. 항공사는 당장 필요한 속옷, 양말을 사는 용도로 50달러를 보상해주지만, 이것도 요청한 사람에게만 제공한다는 건 몰랐다. 만약 하루 이상 짐이 지연되어 불편과 피해를 겪었다면, 항공사에 따라 추가 보상을 해줄 가능성이 있으니 피해 사실과 그로 인해 소모된 비용을 낱낱이 기록해놓을 것. 한 선배는 파리 드골 공항에서 짐을 분실한 뒤 짐 없이 생존하며 지불한 비용을 첨부해 별도로 200유로를 보상받았다. 공항과 항공사에서는 잃어버린 짐에 대한 리포트를 꼼꼼히 하고 있으므로, 어느 단계에서 짐이 사라졌고 지연되었는지 추적해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2 수하물이 영영 사라졌다
수하물에 관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안에 버킨 백이나 고가의 카메라 장비가 들어 있다고 한들, 바르샤바 협약을 적용하면 항공수하물 규정상 1kg당 20달러밖에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 기준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의 1 인당 허용 수하물은 23kg이므로 최대 배상금액은 많아야 460달러. 수하물 안에 있는 내용물은 물론, 트렁크 값도 안 나오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게 법이다. 그러므로 부치는 짐에는 반드시 주소, 연락처를 적은 이름표를 달아야 하고, 수하물 취급하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여러 장의 잡다한 스티커 또한 제거하길. 또 만일을 대비해 짐을 부치기 전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촬영해두는 습관을 들이길. 짐을 잃어버리면 짐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세히 진술해야 하는데 사진만큼 확실한 진술은 없기 때문이다. 고가의 휴대품이 많다면 탑승 전에 대략적인 수하물의 가격을 신고하고 별도의 종가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는 전액 보상받을 수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디터의 실제 상황 다행히 아직까지 짐을 완전히 잃어버린 적은 없다. 다만 주변 선후배의 경우 항공사에서 못 찾았다고 두손 두발 든 다음에 발견된 경우가 있긴 있었다. 마이애미로 출장간 선배의 사례는 이렇다. 마이애미에 체류하는 일주일 동안 짐이 없었고, 잃어버렸다고 체념했지만 결국 발견된 장소는 마이애미 공항 내 물품보관소였던 것. 특히 이런 수하물 사고를 다루는 사람들의 성의는 나라마다,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3 수하물이 파손되었다
캐나다의 인디 뮤지션 데이브 캐럴이 미국행 유나이티드 항공을 이용한 후 만든 불후의 명곡이 바로 ‘유나이티드 항공이 내 기타를 깨부수네(United Breaks Guitar)’다. 수하물로 부친 테일러 기타가 부서지고 망가졌지만, 9달 동안 싸워도 항공사는 보상해주지 않는다. 그 항의 과정과 울분을 주옥같은 가사로 바꿔 노래를 만들고, 억울함을 무려 3편의 트릴로지 영상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곡. 유튜브에 올린 영상은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 노래가 항공사의 별명이 되고, 나흘 만에 주식 10%가 급락해 주주들이 거액의 손해를 보자, 결국 유나이티드 항공은 그를 찾아가 보상을 약속하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또 이 에피소드는 해당 항공사가 수하물 보상 규정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 훈훈한 마케팅 사례로 쓰이고 있다. 만약 여정 중 수하물이 파손되었다면 항공사 규정에 따라 기한 내에 보상을 신청하길(보통은 7일 이내다). 하지만 가엾은 데이브 캐럴은 그 이후에도 또 유나이티드 항공편에서 짐을 잃어버렸다고.

에디터의 실제 상황 몇 해 동안 충실한 출장의 동반자였던 트렁크의 지퍼가 드디어 망가지고 말았다. 수하물 처리과정에서 모서리 쪽 지퍼의 이가 빠진 것. 매장에 AS를 접수한 결과 3만5천원의 수리비가 발생했는데, 영수증을 첨부해 증빙하자 계좌로 입금되었다. 항공사마다 배상 한도가 5만~10만원 선으로 정해져 있으며,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 대체품을 지급하기도 있다. 이름표나 액세서리처럼 보상을 해주지 않는 파손도 있으니 항공사마다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수하물 파손이나 분실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면 기내용 슈트케이스 한 개만 달랑 든 남자 출장 여행객의 간편한 차림을 본받아라.

4 비행기를 놓쳤다
어떻게 비행기를 놓칠 수 있냐고 하지만, 비행기를 놓치는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해외의 할인항공권 웹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skyscanner.com)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여행자 5명 중 1명은 비행기를 놓쳐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교통 체증이었고, 늦잠과 늦은 출발이 뒤를 이었다. 어쨌든 천재지변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항공편을 놓쳤다면, 어떤 항공권을 구입했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저가 항공이거나 아주 저렴한 항공권의 경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만한 항공권의 경우에는 비행기를 놓치더라도 ~12회까지는 무료로 다음 항공편을 탈 수 있다.

에디터의 실제 상황 인천공항에 폭설이 내린 날, 항공기는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다. 그러나 나리타 공항에서 갈아타야 할 직항편은 이미 떠난 후였다. 다만 선택의 순간은 온다. 공항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같은 항공편을 탈 것인가. 아니면 어떤 것이든 가장 빠른 항공편을 이용할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샌디에이고행 항공편 대신 밴쿠버-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라는 초유의 스케줄로 움직이게 되었고, 지친 몰골로 예정보다 12시간 늦게 샌디에이고에 도착했다. 천재지변이나 항공사의 사정으로 항공기가 장시간지연될 때에는 식사 및 호텔 바우처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으니 역시 물어볼 필요는 있다.

5 원하는 기내식이 떨어졌다
아직도 비빔밥이 떨어졌다고 화내는 사람들이 있다. 스튜어디스들이 쓴 책이나 인터뷰에도 빠지지 않는, 가장 난감한 상황이 바로 손님들이 원하는 기내식이 떨어졌을 때라고 한다. 설마 비빔밥을 먹지 않는다고 죽을까?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글루텐 프리 특별식을 주문하는 걸 깜박했다면, 차라리 탑승할 때 살짝 승무원에게 건강 상태를 알리고 꼭 밥을 먹어야 한다고 언질을 주는 게 낫다. 기내에서는 모두가 예민해지기 마련이지만 밥 떨어졌다고 화내는 것은 가장 없어 보이는 컴플레인이며, 항공사 쪽에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스튜어디스만 난처하게 만들 뿐이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들거나 기내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고장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좌석에 여유가 있다면 다른 자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 하지만 스튜어디스는 정비사가 아니다. 그들도 갑자기 고장난 기기를 고칠 수는 없다. 나쁜 운을 탓하는 수밖에.

에디터의 실제상황 비즈니스 클래스를 탑승한 후 스튜어디스가 미리 식사 메뉴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마침 모두가 한식을 원하는 바람에 한식 메뉴가 동나는 상황이 되었다. 상위 클래스이므로 스튜어디스는 돌아다니면서 다른 옵션을 제안하고, 다른 메뉴를 대신 선택할 생각이 있는지를 정중히 묻게 되는데, 이럴 때 메뉴를 바꿔주면 아주 고마워한다.

6 비행기가 안 뜬다
이륙시간이 지났는데 비행기가 안 뜨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적기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손님의 조급함과 짜증을 익히 알기 때문에 계속 안내 방송을 해준다. “저희 비행기는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중국 항로의 혼잡함으로 잠시 대기 중입니다. ” 우리가 유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국 항로’는 알고 보면 퇴근길 강변북로만큼 막히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항공교통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더욱 혼잡해지고 있다고. 이렇듯 운이 나쁘면 출발 태세를 다 갖추고도 비행기가 안 뜬다. 이 경우에도 짜증을 내봐야 소용없으니, 차라리 잠을 청하는 게 낫다.

에디터의 실제 상황 승객이 탑승을 하지 않아서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탑승 수속을 마친 승객이 오지 않더라도 칼같이 게이트를 닫고 출발하지만, 우리나라 항공사는 마지막 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최대한 기다린다. “저희 비행기는 아직 탑승하지 않은 승객 다섯 명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방송을 한 후에도 승객이 탑승하지 않자, 승객을 찾지 못했으므로 기내에 실린 승객의 짐을 내리고 출발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보안규정상 기내에 탑승하지 않은 손님의 짐을 싣고 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분 뒤 아주 기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탑승하지 않은 승객을 다 찾았습니다. 저희 비행기 곧 출발하겠습니다!”

7 여행자보험과 우아하게 화내는 법
최근 사고 소식으로 여행자보험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항공사고의 경우 보상체계는 아주 잘되어 있다. 항공사들은 철저하게 보험에 가입 되어 있으므로 만에 하나 추락과 같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다면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항공기 탑승이 여행의 전 부는 아니므로, 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간단하게 보험에 가입하길. 휴대품을 도난당하거나 다쳤다면? 갑작스러운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는다면? 혹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 때 이 여행자보험이 도움이 된다. 단, 휴대품을 자신의 실수로 ‘분실’했을 경우에는 보상이 되지 않고, ‘도난’이나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만 보상이 가능한데, 증빙이 꼭 필요하므로 번거롭더라도 경찰서 등에서 도난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공항 대신 인터넷으로 미리 가입하면 보험사마다 약 20% 할인된 가격을 제공한다.

에디터의 실제 상황 만약 항공사의 실수로 명백한 피해를 봤다면, 정식으로 항의 서한을 접수하고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무조건 큰 소리나 거친 표현으로 항의하는 대신, 어떤 피해를 봤는지 조목조목 나열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보다는 “큰 불편을 겪고 이러한 금전과 시간의 손해를 봤습니다”라고 하면서 증빙을 첨부하는 경우 언제나 더 좋은 보상을 받았다. 잦은 여행과 출장으로 항공 여행에 익숙하다면 은연중에 알리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항공사에는 컴플레인뿐만 아니라 칭찬도 할 수 있다. 좋은 서비스를 받았거나, 항의에 대한 대처가 만족스러웠다면 ‘칭송 편지(Thankyou Letter)’를 쓰길. 이것은 당신을 잠재적으로 더 훌륭한 고객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으니까.

만약 사고가 났다면?
교통수단 중 가장 안전한 것이 항공기라지만, 사고가 났을 때 피해 규모는 자동차 사고에 비할 데가 아니다. 얼마 전 일어난 아시아나 항공기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는 스튜어디스가 단지 서비스직이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요원이라는 걸 증명했다. 비행기 사고 직후 90초 안에 대피해야 승객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처럼, 스튜어디스들이 재빨리 승객들을 대피시킨 결과 피해가 줄었다는 것이다. 반면, 대피하면서도 손에 트렁크나 소지품을 든 승객의 모습은 우려를 낳았다. 본래 항공기 사고로 대피할 때에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대피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나의 안전과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인데, 트렁크가 문제일까? 참고로 사고 시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좌석은 비상구 인근 좌석이라고 한다. 빨리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인데, 뒤쪽보다 앞쪽, 창가 쪽보다 통로 쪽 좌석이 생존 확률이 좀 더 높았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허윤선
    포토그래퍼
    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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