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 가장 이른 봄
그들은 각자의 봄을 만나기 위해 숲으로 갔다. 명분도 없이 아련해지다가 거짓말처럼 선명해지던, 온전하지 않아 더 아름다웠던 그 해 3월의 숲.
봄이 오는 발걸음은 느리고 마음은
급하던 3월. 도심에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던 봄이 버려진 노만 성터에
하얀 스노드롭과 함께 와 있었다. 그
숲에서 한참을 걸었다.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았다. – 오경아(작가)
아오모리현 도와다 호숫가의 오후 3시. 이 아름다운 칼데라호의 봄은 천천히 찾아온다.
삼월 중순인데도 벚나무엔 꽃망울만 살짝 맺혀 있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폴라리스의 ‘계절’을 들었다. 밤이 올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었다. – 모레(사진가)
비자림을 돌고 내려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우산은 없었고 카메라
가방만 레인커버를 씌운 채 터벅터벅
내려오다 뒤돌아서 사진을 찍었다.
‘또 와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라니.
맙소사. – 표기식(사진가)
지난해 홋카이도 최북단에 위치한
시레토코를 찾았다. 미니버스를 타고
시레토코의 숲길을 지나다 산책
나온 노루와 마주쳤다. ‘카메라는
내려두고 홋카이도의 봄이나 즐겨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곧
사라졌다. – 최갑수(여행작가)
송말숲은 토착신앙과 풍수, 유교 등의 전통문화가 녹아 있는 인공림이다.
두 아름이 넘을 듯한 느티나무 거목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 속은
어둑했다. 숲을 지나면 진짜 봄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 조남룡(사진가)
젖어 있었다. 덜컥 그 속에
들어갔다가 금세 옷이 다
젖었다. 어느 날 이 사진
속에서 동물을 발견한다 해도
놀라지 않으려 한다. 숲은
들여다볼수록 알 수 없다는 걸,
조금은 눈치챘기 때문이다.
– 장우철([GQ Korea] 피처 디렉터)
‘화산 마을’인 코스타리카의 아레날에서 밀림 트레킹에 나섰다. 에코 투어의 성지로
불리는 나라답게 코스타리카의 숲은 깊고 다채롭고 강렬했다. 계곡의 양쪽을
건너지르는 출렁 다리에서 바라본 숲이 멀고 아득하다. – 노중훈(여행작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어느 하이킹 코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특별할 것 없는 이 숲은 잠시나마
여독을 풀어주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무언가 색다른 풍경을 찾으려 했지만 지금은 그저 평안하고
익숙한 모습이 좋다. 이 평범한 숲처럼. – 이규열(사진가)
9살 때쯤 노을을 받은 맞은편
아파트 옥상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꽤나 멀리
있었는데 분명히 머리 위의
장식과 긴 꼬리를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큰 새는 하늘을
구경하고 있었다. 18년이 지나고
런던의 한 공원을 서성이는
내 눈앞에 그 새가 다시 나타났다.
– 하시시박(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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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조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