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으로 떠난 여행
어디론가 떠나기 위한 정거장쯤으로 여겼던 인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인천공항 대신 주변을 탐험했다. 당신이 모르는 새로운 인천 속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천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소란한 바닷가를 경험할 수 있는 소래포구. 화상들의 손맛과 개화기 모습이 살아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조개구이집으로 성황을 이루는 을왕리 해수욕장과 세계 어느 공항과 견주어도 어깨가 으쓱한 인천국제공항도 떠오른다. 하지만 멀고도 가까운 인천은 계속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그 새로운 장소들이 여행의 목적지가 되어주었다.
네스트 호텔, 인천의 새로운 디자인호텔
지난 9월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네스트 호텔은 디자인&브랜딩 회사인 제이오에이치(JOH) 컴퍼니에서 설계와 디자인을 맡고, 우리나라 최초로 디자인호텔스 멤버로 등재되어 화제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디자인호텔스 멤버가 된 호텔은 여의도 글래드 호텔과 이곳 둘뿐이다. 도시인이라면 한 번쯤 바닷가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 한적한 겨울바다를 향해 앉아서 책 한 번, 바다 한 번 보는 게 오랜 로망이었다. 물론 그 집은 여름에는 시원해야 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야 하며 봄이 가장 먼저 깃드는 곳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바로 네스트 호텔에서 그 꿈을 실현했다. 인천공항에서 차로 겨우 10분 거리에 이런 아늑한 호텔이 숨어 있을 줄이야. 겉으로는 무심하고 견고해 보이는 이 호텔 안은 더없이 포근하다. 가장 좋은 건 바다 전망 디럭스룸의 침대가 모두 바다를 향해 놓여 있다는 것. 포근한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보며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었다. 호텔 안의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있고, 그것조차 귀찮다면 룸서비스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도 있다. 이곳은 게으름뱅이의 천국임이 분명했다. 일상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도피해 며칠 동안 ‘사가독서’식 휴가를 즐기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기’에 도전할 수도 있겠다.
길 하나 건너 위치한 공항회센터를 제외하면 주변에는 온통 바다와 이 호텔뿐이다. 차를 타지 않으면 특별히 갈 곳이 없다는 게 오히려 휴식에 집중하게 만든다. 투숙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 더플라츠와 라운지 쿤스트는 투숙객에게나 방문객에게나 똑같은 편안함을 준다. 계단처럼 층층이 테이블이 놓인 더플라츠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좋은 전망을 약속한다. 쿤스트 라운지에는 땡스북스와 함께 선별해둔 책이 가득해서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늦은 밤, 더플라츠 레스토랑의 한 자리에 앉았다. 넓고 높은 창밖으로 끊임없이 비행기가 오간다. 떠나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이미 네스트 호텔을 여행하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드라이빙
네스트 호텔을 떠나 향한 곳은 을왕리 해수욕장.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이토록 평화로운 바다가 있다. 하지만 ‘평화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전쟁 통 같은 길을 지나야 한다. 바로 을왕리 조개구이집과 횟집의 호객행위 때문이다.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력한 호객행위를 볼 수 있는데, 음식점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모두 자신의 가게로 오라고 몸을 던진다. 바다는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매일을 보내고 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욕망은 제각각이다. 즐기거나, 피하거나.
그 다음에 향한 곳은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다. 축구장 약 30배 크기의 이곳은 BMW 그룹이 독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은 곳이자 아시아 최초의 드라이빙 센터다. 이곳에는 클래식 자동차 전시와 함께 트랙, 오프로드 체험이 가능하다. 평소 도로에서 할 수 없는 드라이빙 경험은 물론, 차의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테마 파크’나 다름없다. 체험이 가능한 인원은 정해져 있으므로 프로그램을 체험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 시간대별로 14인승 전동 카트를 타고 6가지 주행 코스를 둘러볼 수 있는 ‘조이투어’도 무료로 운영 중이다. 드라이빙 센터 안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송도, 밤에 더욱 빛나는 국제도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따금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창밖으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거의 다 왔을까 싶을 때 유난히 새롭고 번쩍번쩍한 신도시 송도와 인천대교가 보인다. 가끔은 공항 버스에서 내려 저 낯선 도시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하면 분주히 출국 수속을 하는 동안 그 생각은 사라져버린다. 이번만큼은 바로 그 송도의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송도는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송도에 사는 삼둥이 가족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딘가 인공적이고 건조한 송도도 역시 사람이 사는 누군가의 집이라는 걸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제도시’가 송도의 대표적 이미지였다면 이제 송도라고 하면 ‘삼둥이가 사는 동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송도는 모래를 쌓고 다져 만든 인공 섬이다. 철저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송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운하, 센트럴 파크와 높게 솟은 주상복합 건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마치 레고 마을처럼 보기 좋게 놓아두었다. 운하도 단지 미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마다 작은 배가 다니며 운하의 정거장마다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해외 비즈니스를 겨냥한 국제도시를 만들려는 포부가 송도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인천공항이지만 송도에서는 겨우 15분이면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비즈니스 여행자는 물론, 해외 출장이 잦은 기업들에게도 송도가 유리한 이유다. 그 덕분에 송도에는 비즈니스 호텔이 많이 있다. 여러 기업의 건물, 호텔, 주거시설이 송도의 성격을 설명해준다. 작은 섬 송도는 어느 길을 선택하든 곧 끝에 다다른다. 또 그 끝마다 바다가 연결되고, 바다와 섬의 경계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송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깨끗하고 한적하다는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잘 닦은 도로는 마치 명절을 기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공동화된 도심처럼 한가롭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아직 송도를 여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송도가 빛을 발하는 건 어둠이 내린 후다. 어둠은 낯선 콘크리트를 지우고, 단지 불빛만으로 도시의 선을 남겨둔다. 인천은 오늘도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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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정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