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부엌 습격 사건
도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세 명의 에디터가, 주방바지를 빌려 입고 펜 대신 칼, 향수 대신 밀가루를 뒤집어써가면서 부엌에 침투했다. 그날, 레스토랑의 백스테이지에서 벌어진 소란한 일들. 과연 초콜릿 공장에는 비밀이 있었을까?
연회가 시작됐다
눈앞에 480개의 스테이크가 열 맞추고 줄 맞춰 누워 있다. 480인분의 수프도 강렬한 김을 뿜어내며 끓고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아는 사람만 알고 손님 중 그 누구도 들어가본 적 없는 비밀의 문을 열었다. 오늘도 잔치다!
연회는 까다롭고 예민해야만 한다. 세계적 코즈메틱 브랜드의 신제품 발표회부터 돌잔치, 일생에 한 번이라는(한 번이어야 하는) 결혼식도 모두 연회에 속한다. 예전부터 손님의 배 속을 섭섭하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연회음식은 대접하는 사람과 대접받을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해야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실패할 확률은 높다. 셰프들이 부엌에서 만난 크고 작은 사건과 일화를 기록한 <세기의 쉐프, 세기의 레스토랑>의 원제는 ‘집에서 따라 하지 마시오(Don’t Try This at Home)’다. 엘 불리의 페란 아드리마, 팻덕의 헤스톤 블루멘탈 등 세계적 레스토랑의 셰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찔한 순간을 털어놓는데 신기하게도 대부분 사건은 ‘빅 나이트(Big Night)’에 일어난다. 냉장고가 고장 나서 수백 마리의 바닷가재가 부질없이 운명하고, 만들어둔 드레싱은 망가지고, 굳어야 할 디저트는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부엌의 악몽이 벌어진다.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손님이 많아질수록 잘못된 확률은 정비례하지만 누구나 할수 없기에 더 매혹적인 연회. 커다란 부엌, 많은 셰프, 많은 서버, 노련한 주방장과 지배인. 그리고 수십 번 손발을 맞춤으로써 축적된 노하우와 모든 구성원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연회장의 백스테이지가 될 부엌에 모여 있다.
9월의 어느 토요일, 호텔을 몇 번씩 오가면서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로비의 뒤편, ‘Associates Only’의 문을 처음으로 열었다. 그곳에 비밀의 부엌이 있었다. 입장권을 지불하듯, 중간 문 앞에 있는 손소독기 속에 손을 넣어 알코올 세례를 받은 다음 정갈한 손과 떨리는 마음으로 부엌에 들어섰다. 초콜릿을 휘젓는 움파룸파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유쾌하게 오가고 있었다. “연회장을 취재하겠다는 요청은 처음이에요. 여기를 책임지는 과장님들의 반응은 딱 그거였어요. 우리를? 도대체 왜?”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의 홍보실 안주연 계장이 말했다. “우리를? 여기를? 도대체 왜?”라는 질문은 주방에서도 줄곧 이어졌다.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폴더 인사는 아니지만 나는 그 커다란 주방의 한 바퀴를 돌며 인사하랴 구경하랴 무척 바빴다. 코너를 돌면 ‘콜드 주방’, 다시 자동문을 열면 ‘베이커리 주방’, 그 옆엔 ‘부처(Butcher) 주방’. 꼬불꼬불 다양한 조리실이 이어진다.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의 부엌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건, 이곳에 들어와본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 복도를 지나면 마치 우주선의 허파 같은 거대한 통 속에서 각종 스톡이며 수프가 끓고 있고, 100명이 서 있어도 남을 것 같은 크고 넓은 조리대가 있다. 흰색 조리복에 빨간색 스카프, 흰색 조리사 모자를 쓴 셰프의 구역 곳곳에서 무엇인가 맛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연회장으로 나가는 문 앞에 위치한 다른 한쪽의 분위기는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다. 화이트보드를 앞에 둔 스승님과 지상 최대의 강의를 듣기 위해 도열한 제자들을 방불케 한다. 이곳은 검은 재킷, 검은 팬츠, 검은 신발을 신은 ‘연회 서비스 팀’의 구역이다. 연회 서비스팀은 차질 없이 서비스하기 위한 사전 점검이 한창이다. 화이트보드에는 연회장의 투시도가 그려 있고, 동선을 알리는 화살표와 직원들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다. “직원 1명이 테이블 1개를 관리해요. 모두 각자 담당 테이블이 있습니다. 지금은 배정된 테이블을 익히고, 음식 코스와 동선, 순서 등을 확인하는 중이에요. 연회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신랑 신부가 미리 내려와서 리허설을 할 텐데, 그때 연회 서비스팀도 리허설을 합니다.” 아직 연회가 열리는 5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직은 느긋한 시간이다.
오늘의 연회는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이다. 예정된 하객은 440명. 연회음식은 코스 형식의 토대 위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전날 저녁에 열린 한 자동차 브랜드의 연회 메뉴는 성게알 미역국과 은대구 조림, 너비아니 구이와 진짓상이 나오는 한식 연회였다. 오늘의 신랑 신부 역시 모든 코스를 하나하나 꼼꼼히 골랐다. 테이블에 보기 좋게 세팅된 메뉴를 들여다보니 흠잡을 것 없는 구성이다. 그런데 정작 신랑 신부는 이 음식을 먹지 못한다니. “연회를 예약하면서 미리 음식을 테이스팅을 하니, 아예 못 먹는 것은 아니죠.”
“하루 만에 준비할 수는 없어요.” 손태교 주방장은 말했다. “연회 이틀 전에 재료 발주를 합니다. 다음 날 재료가 차례대로 도착하면 재료를 손질하죠. 이것을 ‘전처리’라고 부릅니다.” 하루 전에 손질된 440인분의 재료는 방금 요리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 깔끔하다. 아스파라거스, 가지 같은 싱그러운 것부터 안심 스테이크에 이르기까지 모두 준비 태세를 갖췄다. 이제 요리를 하고 담고 서빙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가장 먼저 내야 하는 전채와 샐러드 등 찬 요리를 맡는 콜드 주방의 손이 먼저 분주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공기는 다른 구역보다 더 시원한 것 같다. 들어오는 문도 나가는 문도 자동문으로 꼭 닫혀 있는, 완벽하게 분리된 또 하나의 부엌이나 다름없다. 다른 부엌에서 셰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수화기를 들길. 콜드 주방의 주방장이 심각하게 전화를 받는 모습은 상부의 지령을 받는 잠수함의 함장과 흡사하다. 맛은 물론 보기에도 좋아야 하기에, 콜드 주방의 셰프들은 세심하게 애피타이저 탑을 쌓는 데 여념이 없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전복과 성게알을 올리고 완성된 음식은 가장 맛있는 온도에 맞춰 차게 보관한다.
콜드 주방을 빠져나오니 영화 <친구>의 모범생 배우를 닮은 셰프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삶은 새우 수백 마리를 썰고 있다. “이건 수프의 고명이 될거예요.” 셰프의 어깨너머로 엄청난 수증기가 뿜어 나온다. 또 다른 셰프가 허리까지 오는 솥에 가득 담겨 출렁거리는 연둣빛 시금치 수프를, 사람 키만 한 블렌더를 이용해서 갈고 있다. 블렌더가 다이슨 청소기보다도 크다. “440인분 정도면 솥 하나로 충분하죠.” 연회장의 스케일은 역시 달랐다. 다른 셰프들도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느라 여념이 없다. 떡을 담고, 작은 볼에 국수사리와 고명을 올리는 셰프도 보인다. 테이블 세팅부터 음식, 서빙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양식을 따르면서도 잔칫집에 떡과 국수가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만은 여전하다. 신랑 신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흰 국수처럼 순수하게, 국수발처럼 길고 길게, 수십 가닥의 국수 가락처럼 대대손손 자식도 많이 낳고. 이런 사람들의 소망이 들어 있으니까. 모든 음식은 겉이 마르지 않도록 재빠르게 덮어놓는다.
주방 안에는 벽걸이형 TV가 바깥, 연회장의 상황을 생중계해준다.그렇다. 이 연회장에는 손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CCTV가 있어서 시시각각 변하는 연회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버진 로드를 걷는 신부의 모습, 주례가 끝나고 하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등이 차례대로 보인다. 연회 서비스팀이 ‘웰컴 빵’이 수북하게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가면 이때부터 주방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2배속, 아니 4배속쯤? 모두가 고대하던 식사 시간이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연회장의 두 입구 쪽에 펼쳐진 두 개의 조리대 위에 440개의 음식이 놓이기 시작한다. 셰프가 마지막 손을 보고 확인이 떨어지자마자 서비스팀은 접시를 들고 연회장으로 직행. 이 과정을 마지막 요리가 나갈 때까지 반복한다. 참, 중간에 물도 더 줘야 하고 피클도 줘야 한다. 또 늦게 온 손님도 챙겨야 한다. 서비스팀이나 조리팀이나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욕설은 커녕, 격앙된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숙련된 요리사로서의 여유와 자부심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메인 디시 전의 모히토 셔벗까지 서브되었다. “연회 음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타이밍이죠.” 손태교 주방장의 말처럼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또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스테이크는 늘 요리의 마지막이죠. 맛을 생각하면 미리 구워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연회의 꽃은 메인 디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스테이크다. 연회장 스테이크의 룰은 분명 존재했는데, 손태교 주방장의 답은 명쾌했다. “미디엄, 결혼 연회는 미디엄 웰.” 물론 이유가 있다. “결혼 연회에서는 고기에 피가 비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 어른들이 그래요. 그래서 핏물이 보이지 않도록 좀 더 굽죠.” 440인분의 스테이크를 동시에 그릴에 굽는 장면은 꽤 황홀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50m쯤 되는 그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연회의 스테이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익어간다. 먼저 올리브오일을 듬뿍 두른 그릴 팬에서 팬 프라이. 진지한 표정의 셰프가 반듯하게 도열한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한다. 이 스테이크는 다듬고 준비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안심 스테이크다운 동그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셰프의 오른손이 이 스테이크를 딱 한 번 뒤집는다. 뒤집힌 면에는 프라이 자국이 선명하다. 팬프라이가 끝나면 스테이크를 오븐으로 옮기고, 오븐 속에서 완전히 익힌다. 그 사이 다른 셰프는 접시 위에 깍지콩으로 만든 퓨레를 예쁘게 올린다. 그릴에 구워서 예쁘고 멋지게 돌돌 말아놓은 계절 야채가 퓨레를 살짝 베고 눕는다. 오븐에서 막 나온 스테이크도 접시 위에 올린다. 손태교 주방장과 수석 주방장들이 그린 페퍼를 넣은 소스를 뿌리면 완성. 서비스팀은 각자 들 수있는 만큼의 접시를 들고 연회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조리장들은 숨돌릴 틈도 없이 440개의 잔치국수를 말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냄새가 끝내줬다. 저 바깥쪽에 앉아서 맛볼 수만 있다면! 셰프들도 음식 앞에서 눈을 빛내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들도 나를 먹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다. 주방에서는 그 누구도 음식을 먹을수 없다! 이건 곳곳에 써 있는 ‘칼 도마 소독 관리 지침’이나 ‘6단계 손 씻는 법’만큼이나 명쾌한 주방의 룰이었다.
이윽고 칸칸이 겹쳐 있던 디저트까지 하나둘씩 사라졌다. 셰프들의 몫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검은 옷의 서버들만이 커피와 차가 가득 담긴 은색 주전자를 들고 오간다. 표정도 한결 여유가 있다. 커피와 차를 서브하면 이제 이들의 역할도 대부분 끝난 것이다. 물론 또 커피를 더 달라는 손님도 있고,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손님도 있겠지만….
“오늘, 98명이 더 왔어요.” 수첩을 뒤적이며 조성완 지배인이 말했다. “440명으로 예약되었는데, 중간에 테이블을 더 놔서 480명까지 늘렸어요. 그게 저희 연회장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죠.” 그래서였나. 아까 음식을 서브하는 동안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팅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식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처음 440명의 예약은 480명으로, 다시 578명으로 늘어났다. “연회장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수용하고 2층으로도 모셨지만 나머지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럼 연회장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나. 호텔의 뷔페 레스토랑인 아리아로, 중식당 홍연으로, 나인스게이트 그릴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렇듯 연회장과 손님의 인원을 체크하고, 조율하며 넘치는 손님을 각 레스토랑에 배분하고 조율하는 것 역시 조성완 지배인의 몫이다. “연회에서는 늘 준비해야 하는 일 중 하나죠. 이건 절대로 미리 준비할 수없는 일이지만 가장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기도 해요. 몇 명이 초과될지는, 오늘의 주인공도, 혼주들도 몰라요.” 늦게 도착한 이들은 다행스럽게도 모두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안내받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최고의 연회 음식을 놓쳤다는 것이다.
소스팬 속에 가득한 소스처럼 펑펑 터지며 끓어올랐던 주방이 어느새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하얀 조리복도 아니고 검은 슈트도 아닌건 나 혼자였다. 회색 티셔츠와 쇼츠에 뱀가죽 플랫 슈즈를 신고서, 무균질한 부엌의 유일한 불균질 요소로 주방에 서서 내가 지켜본 건 한 편의 발레 공연 같았다. 몇 사람의 뛰어난 솔리스트, 그 솔리스트를 보좌하는 훌륭한 조연들과 수많은 군무를 추는 수많은 백조를 봤고, 그들의 딱 맞는 솜씨와 유려한 동선이 어우러지는 명장면을 봤다. 설거지팀과 리넨팀처럼 묵묵한 무대 스태프도 있었다. 그들이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한 대로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자신의 몫을 마친 셰프들이 하나둘 무대를 떠나기 시작했다. 손님이 떠난 자리에는 냅킨이라도 남건만, 셰프가 떠난 자리에는 물방울 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짓말처럼 고소하고 뜨겁고 향기로 움이 뒤섞인 냄새만 남았다. 만찬은 끝났다.
에디터 | 허윤선
파인 다이닝 표류기
5년째 서래마을을 지키는 ‘줄라이’는 가장 자주 언급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중 하나다. 그렇기에 애교 있게 “예, 셰프!”를 외치는 로맨스가 피어나기보다는, “이 멍청이들아! 뭘 하는 거야, 빨리빨리 움직여!” 정도의 욕설은 오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헬스 키친(Hell’s Kitchen)’의 고든 램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지겹다는 걸 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유독 괴팍한 셰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주방’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곳이란 사실이다. 셰프 인터뷰와 숍 촬영차 100번도 넘게 레스토랑을 찾을 때에도 주방은 내가 감히 넘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겁주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전류가 흐르는 전기 울타리 주변에 얼씬하지 않는 개처럼, 나 역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기류를 느꼈다고나 할까. 그런데 주방을 ‘기사’를 핑계로 하루 동안 자유롭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좋아, <본> 시리즈의 유능한 정보요원이 된 듯 매의 눈으로 샅샅이 살펴주겠어’ 하고 다짐했다.
줄라이의 오너셰프인 오세득 셰프는 르 코르동 블루 출신으로 프랑스 요리를 바탕으로 한 컨템퍼러리 다이닝을 선보인다. 푸아그라와 라타투이, 퓨레가 메뉴에 오르고, 정돈된 코스 요리만 선보이는 줄라이는 확실히 ‘헬로’보다는 ‘봉주르’가 어울리는 곳이다. 프랑스에서 온 이름을 단 음식들 사이로 한치와 모시조개, 곶감과 도라지 같은 한국의 식자재들이 함께 어우러진다. 계절에 따른 재료의 빈부 차이가 명확한 나라에서 한국의 제철 음식을 선보이려 노력하는 이 성실한 셰프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저 정말 끈질기게 옆에 붙어 있을 거예요!” 하고 전화로 엄포를 놓은 어느 아침, 그렇게 나는 노량진 수산시장 앞에 서 있었다. 생선 비린내는 잠이 덜 깬 몽롱한 후각을 사정 없이 흔들고, 시장 바닥에 고인 비릿한 물이 샌들 틈새로 스며들어온다. 초등학교 시절을 서해안의 어촌에서 보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찰나, 오토바이를 탄 오세득 셰프가 등장했다. 기종은 늠름한 풍채의 피아지오 엠피스리. 웬만한 소형차보다 더 무게감 있어 보이는 바이크 뒤쪽에는 장바구니를 담을 바스켓도 달려 있었다.
“오늘 뭐 사실 거예요?” “이것저것 사려고요. 전어가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가을 전어가 맛있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아침 시장의 한복판에서 계절이 변한 것을 느끼며 별 다른 흥정도 없이 찬 거리를 사는 그의 뒤를 쫓았다. 볼락, 성게, 전어, 토란…. ‘수산’ 시장인줄만 알았던 노량진 시장에 바구니 가득 채소와 나물을 담아가지고 나온 아주머니들이 있을 줄이야. 이 중에서 오늘 줄라이의 식탁에 오를 재료도 있을까? 40분 남짓의 짧은 장보기를 마치고 도착한 아침의 줄라이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10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막내 요리사 두 명이 벌써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야채를 닦고, 양파를 까서 썰고, 토마토를 자르고, 포카치아를 개량하고, 생선을 담을 얼음을 나른다. 이런 손길들이 하나하나 모여 줄라이의 요리가 탄생하는 거겠지. 문득 주인 할아버지가 잠든 새 근사한 구두를 완성해놓은 요정들이 나오는 동화가 떠올랐다.
난생처음 들어가본 파인 다이닝의 주방은 ‘실험실’의 풍경에 가까웠다. 수비드 조리기, 핫 텁, 컨벡션 오븐, 거대한 환풍기와 가스레인지, 도통 이름을 짐작할 수 없는 조리도구들과 미세한 눈금이 그려진 각종 계량컵까지. 잎에서 곧 물이 떨어질 것 같은 파릇파릇한 야채와 맨질하니 잘 닦인 토마토나 고기는 어디로 간 거지? “오늘은 평일이라 점심에 손님이 별로 없어요. 장 보러 이태원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신나게 따라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예전 여자 스태프가 입었다는 조리복 바지를 허겁지겁 원피스 밑에 받쳐입은 꼴로 오토바이 조수석에 올라 15분 만에 도착한 곳은 이태원의 ‘포린 푸드 마켓(Foriegn Food Market)’. 이태원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며 수입산 식재료를 파는 슈퍼마켓의 수도 늘어났지만 오세득 셰프의 단골집은 이곳이다. 파스타와 꿀, 소스 등 다른 가게에서 보기 드문 브랜드를 파는 것이 이곳을 꾸준히 찾는 이유. 레몬그라스와 고야 같은 야채를 허름한 이태원의 식료품점에서 팔 줄은 몰랐다. 이태원 장보기를 마친 오토바이는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새 스패출러를 사기 위해서다. 기껏해야 북창동 순두부찌개나 국수를 먹으러 남대문을 찾았던 나는 처음 보는 남대문 지하상가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모피와 의류, 각종 영양제와 수입식품들 틈새를 지나 도착한 곳은 주방용품 전문점.
“인터넷에서 사면 3만원이 넘는데 여기는 1만 8천원에 파네요. 미국에서 사는 거랑 가격이 거의 비슷해요” 하고 자랑하는 오세득 셰프를 보니 장보기 파트너로서 어깨가 으쓱하다. 은호식당의 소꼬리곰탕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레스토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2시 반.
“지금부터 좀 쉬어야 해요. 우리는 하루에 열두 시간씩 일하잖아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그도 잠시 테이블에 엎드린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이 이렇게 중요한 것일 줄이야. 얼마 전 ‘3시까지만 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2시쯤 도착해 3시 30분까지 머무르며 떠들었던 한 레스토랑에서 저지른 만행이 떠올랐다.
하지만 휴식도 잠시. 느슨했던 주방의 분위기는 4시 30분을 넘기며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투를 앞둔 병사들이 든든하게 배를 채우듯, 디너 시간을 앞두고 줄라이의 스태프들 모두 저녁 메뉴인 떡볶이를 급식판에 담아 선 자리에서 그대로 먹어 치웠다. 홀을 담당하는 스태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수트가 무색할 정도로 식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주방을 채운 긴장감의 근원은 날카로워진 성격의 셰프 때문도, 실수투성이 막내 요리사 때문도 아니었다. 직급과 경력에 상관없이 그곳에 있는 모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A La Carte)’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재료의 비율과 조합을 어떻게 할지, 접시에는 어떤 식으로 내놓을지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예약 손님이 도착하기까지 한시간 남짓을 남겨둔 주방이었다.아침에 산 전어는 어뮤즈 부시로 간택됐다. 살균소독제를 뿌린 도마 위에서 깨끗하게 살을 발라낸 전어에 레몬즙과 소금, 식초 등으로 간을 한다. 모든 도구와 재료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레몬은 레몬즙짜개에, 식초는 스포이트를 이용해 정확히 방울을 떨어뜨린다. 이 짧은 과정에도 최적의 도구가 사용되는 것이다. 얇은 고무 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지는 셰프의 손이 연구원이나 집도의의 손처럼 보인 것은 그래서다.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지만, 모두가 셰프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입을 열면 수 셰프는 돌아가던 믹서를 멈추고 그의 말을 들었고,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모두가 바로 그 다음 일에 착수했다. “말린 토마토 있어?” “페스토 있으면 말린 토마토를 올려서 내보내면 어떨까요?” “걔네만 내면 너무 없어 보이잖아. 거기에 마늘 튀긴 것도 올리자” 라고 하면 누군가가 바로 도마를 꺼내 마늘을 자르기 시작하는 식이다. 과일을 어떤 모양, 어떤 크기로 잘라내야 한다는 세세한 부분도 상의 끝에 결정된다. “4등분하면 어때?” “무화과가 크지 않아서요, 2등분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 와중에도 설거지통과 조리대에 무언가가 쌓이는 일은 없다. 손질이 끝난 음식은 재빨리 알맞은 용기에 담아 선반으로 옮기고, 재료가 묻은 조리대 위의 천장, 방금 재료를 간 믹서, 심지어 저녁 식사를 갓 마친 급식판까지도 바로 치우기 때문이다. 홀 스태프들도 분주했다. 가장 정중한 태도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테이블을 세팅하는 틈틈이 거울을 보며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점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홀과 주방 양쪽을 오가며 손님과 주방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주방의 한복판에서 셰프의 역할은 지휘자에 가까웠다. 수 세프가 메인인 치마살 스테이크를 굽고, 또 다른 요리사가 리소토와 브로콜리를 익히는 동안 그는 상황을 관장하고 지시했다. 대신 주방이 고요할 때면 그는 내일, 혹은 그 다음 날의 요리를 준비했다. 그 전날 만들어둔 오리 테린이 오늘 줄라이의 특별 메뉴로 올라간 것처럼, 아침에 장을 본 성게를 손보고 미트소스의 재료가 될 소의 심장을 다지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성게 가시를 자르고, 잘 익은 밤을 까듯 성게를 반으로 쪼갠 뒤 고인 바닷물을 버린 후 속살을 긁어내는 이 번잡한 과정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대야 하나 크기의 성게를 부지런히 손질해도 그릇에 차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소 심장을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믹서에 갈면 행여 소 심장의 풍미를 잃을까 일일이 심장의 비계 부분을 자르고, 피를 씻어내린 후 남은 고기를 네모썰기 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사람 머리통만큼 거대했던 4개의 소 심장을 가지고 한 병짜리 미트 소스를 만드는 일이 그랬다. 접시 위에 오르는 모든 음식은 이러한 성실함의 소산인 것이다. 반복과 압축, 그리고 협력. 아침을 시장에서 시작해, 주방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그곳에 관람객으로 서 있는 것이 문득 어색해졌다.
‘매의 눈’ 운운하기에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없었고, 마치 한 개의 몸통에 달린 여러 개의 팔다리처럼 움직이는 그들 틈에서 나는 주방 입문을 허락받은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느꼈다. 시계가 오후 8시를 향함과 동시에 하루의 절정으로 치닫는 주방의 한복판을, 그래서 조용히 인사를 하고 떠났다. 줄라이에 머물렀던 그 열두 시간 동안 배운 것은 파인 다이닝에서는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쓰는지, 혹은 그럴싸하게 써먹을 만한 레시피 같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가슴은 다른 감흥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가 내 앞에 놓이는 음식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감동이었다.
에디터 | 이마루
바게트 굽는 시간
이태원의 포플러나무 안쪽으로 하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간판 안에 ‘오월의 종’이라는 이름을 어찌나 작게 적어놓았는지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이따금 부는 바람이 문에 걸려 있는 종을 미세하게 흔들고 있다. 아침 6시, 이곳에서 베이커 정웅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하루를 시작한다. 가게에 들어서니 내부도 간판만큼이나 간솔한 차림이다.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벽 위에는 아무것도 그려 있지 않은 하얀 캔버스를 액자처럼 걸어놓았다. 간혹 눈에 띄는 바게트 빵, 높은음자리표가 그려진 그림은 직접 그린 것인데 그의 분위기와 썩 닮았다.
‘Maybell’이라는 글자가 박힌 하얀색 제복으로 갈아입는다. 캡 모자를 쓰고 편안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면 본격적인 베이커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예약된 빵의 양과 빵이 나가야 하는 시간을 체크하고 나면 세 명의 베이커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 일산에서 가게를 연 건 9년 전, 지난해에야 새로운 식구가 한 명 들어왔고 세 명이 함께 빵을 만든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자꾸 손님이 들어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빵을 만들어야 했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이런 호강이 없다. 세 명이 해도 쉴 틈이 없는 저 일을 혼자서 어찌 했냐 물으니 “닥치면 다 하게 돼요” 하고 멋쩍게 웃어보인다.
커다란 반죽 덩어리를 잘라 일일이 저울에 올려 양을 조절하고 손바닥으로 치고 가르고 말고 손끝으로 꾹꾹 누르니 금세 호밀빵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한 명은 반죽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빵 모양을 내고 또 한 명은 오븐에 집어넣는다. 그러다가 또 자리를 바꾸어서 일을 하기도 하는데 좁은 주방 안을 이동하면서도 한 번 부딪히는 일도 없다. 한참을 뚝딱뚝딱 하더니 아침 7시, 드디어 첫 번째 빵인 앙금빵이 나왔다. 앙금빵을 시작으로 소보로, 크루아상, 초코데니시, 치즈볼이 차례차례 완성되니 금세 고소한 빵 냄새가 가게 안에 가득 퍼진다. 손 글씨로 정성스럽게 눌러쓴 이름표를 꽂은 바구니에도 빵이 하나둘씩 채워진다. 주방의 도구는 일렬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반죽을 하는 테이블 위에는 그가 처음 빵을 배우던 시절부터 쓰던, 10년도 더 된 녹색 저울이 놓여 있다. 그 위로는 이것저것 기록해둔 메모지가 붙어 있는 데 이 모든 것이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머무른 듯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빵이 들어가고 굽혀 나오고 다시 들어가고 나오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바구니에 빵이 가득해진 오전 11시, 마지막 순서인 바게트 빵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가게의 문이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첫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단골 손님인지 고민도 없이 몇 개의 빵을 집어 계산대에 가져다 놓는다. “오랜만이네요. 휴가 다녀오셨나 봐요”, “네, 좀 멀리 다녀왔어요”, “날씨가 제법 쌀쌀하죠.” 오월의 종의 계산대에는 빵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늘 이렇게 대화가 오간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그의 말에는 빵을 만들 때와 같은 진심이 담겨 있다.
처음 오월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을 때, 파는 빵보다 버리는 빵이 더 많은 날도 있었다. 여느 빵집에서는 맛보기 힘든 특유의 빵 맛과 투박하고 밋밋한 모양 때문이었지만 그는 빵을 만드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자신이 좋아하고 먹고 싶은 빵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예쁘게 만들고 장식을 하는 시간에 깊이 있는 빵 맛을 내는 데 더 집중했다. 그의 고집은 이태원으로 가게를 옮기면서 빛을 보게 된다. 특히 우연히 가게에 들어왔다가 맛을 본 외국인들은 매일 아침 발도장을 찍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찾지 않던 크랜베리 바게트는 이제 오월의 종을 대표하는 메뉴가 되었다. 허브, 곡물, 플레인 사워, 건자두 등 호밀빵의 종류만 해도 몇 개나 되는데 들어가는 재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모양과 맛을 낸다. “재료의 원산지에 민감하고 알레르기가 있는 외국 손님이 많아 몇 개의 빵을 제외하고는 우유와 달걀을 넣지 않아요. 대신 모든 빵의 반죽에 직접 발효시킨 효모종을 넣어요. 종류에 따라 특성화된 이스트를 만들어주는 셈이죠. 단맛이 적은 대신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나요.” 효모종을 직접 발효시키는 것은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가게를 처음 연 날부터 고수하는 방식이다. 그 흔한 베이커리 레스토랑도 아니고 해외의 어느 유명한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지만 오롯이 빵 맛 하나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크게 늘었다.
젊은 청년이 들어와 “잡지에서 보고 궁금해서 와봤어요” 하며 말을 건넨다. “아,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빵이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요.” 처음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빵을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한다. 단순히 빵을 만들고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빵을 먹는 사람들이 알고 이해하고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얼마 후 하얀 제빵 옷을 입은 사람이 가게로 들어왔다. “저 근처 빵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천연효모 발효시키는 방법 좀 알려주셨으면 해서요.” 그러자 검은색 파일을 꺼내주며 사진을 찍어가라한다. 그렇게 쉽게 공개해도 되는 거냐 물었다. “워낙 환경의 변수가 많아 미세하게 조절하는 건 본인에게 달려 있어요. 레시피 보여달라는 분이 꽤 있는데 저는 다 보여드려요. 그거 뭐 대단한 거라고 안 보여주나요. 허허.” 손님이 연이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빵이 성큼 줄었다. 정신없이 오전 시간이 지나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점심을 먹기 위해 주방 안쪽으로 들어섰다.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나가봐야 하기 때문에 근처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켜 서둘러 먹었다. 1시 이전에 반이상의 빵이 팔려나가기 때문에 그 이후에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은 그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쏟아낸다. 손님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미안하지만 만드는 빵의 양을 늘리지는 않는다. 이 정도가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빵이 다 팔리는 시간이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빵이 팔린 오후 5시, ‘Sold Out’이라 쓰인 푯말을 문에 걸었다.
문을 닫은 오월의 종은 또다시 분주해진다. 주방과 홀까지 깨끗하게 청소한 뒤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내일 아침 제 시간에 빵을 내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끔씩은 이 시간 오로지 자신을 위한 빵을 만들기도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호사스러운 선물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빵을 만들어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의 노곤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곳은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가장 엄격한 공간이에요. 어느 때에는 빵 만들기가 싫어 아침에 문을 열다 말고 발길을 돌리기도 해요. 그러고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빵을 만들고 싶어 뛰어서 돌아와요.” 잘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른이 넘어 시작한 일이다. 주위에서 하나같이 말렸지만 그는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냈다. 이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빵집의 사장님이 되었지만 셰프나 사장님이라는 말에는 손사래를 친다. “저는 그냥 빵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의 바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저 오래오래 빵을 만드는 것이다. 가게를 넓힐 생각도, 빵을 많이 만들 생각도 없다. “처음 빵을 만들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 설렘이 다였는데 이제는 그걸 넘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시도 쉬지 않고 바삐 움직이던 몸이 밤 10시가 되어서야 조금씩 느려진다. 하얀 제복을 벗어 책상에 올려두고 의자에 앉았다. 긴 하루의 일과를 메모하는 그의 얼굴에 평화로운 고단함이 묻어난다.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고 이른 아침보다 더 고요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에디터 | 조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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