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에서 구웠네
수백 도에 달하는 화덕에서 피자가 구워지는 시간은 1~2분에 불과하다. 한 판 한 판 화덕 피자를 굽는 것은 매번 진검 승부를 펼치는 것과 같다. 그 진검 승부가 꽤 능숙한 서울의 화덕 피자집 6곳.
스파카 나폴리
스파카 나폴리의 이용우 대표가 화덕 피자를 처음 맛본 것은 친구를 만나러 이탈리아에 갔을 때였다. 처음의 감상은 ‘이런 피자도 있네’ 정도. 본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던 화덕 피자를 가리켜 이탈리아의 한 작가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걸맞은 오물 덩어리’라고 평했다니 이해할 만하다. 그런 그가 ‘피자욜로(Pizzaiolo)’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다시 찾은 이탈리아에서 진짜 맛있는 화덕 피자를 맛본 이후다. 피자 학교를 두 군데나 다닌 것도 모자라 튀김 피자를 공부하기 위해 또 한번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다. 스파카 나폴리는 피자를 특별 제작한 도기 워머에 올려 내온다. 치즈가 굳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폴리의 유명한 피체리아 거리, 스파카 나폴리. 그 활기찬 거리를 담은 한쪽 벽에는 아리따운 이탈리아 여인과 웃고 있는 이영우 대표의 사진이 붙어 있다. 처음 이탈리아를 찾게 했던 바로 그 친구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가격 디아볼라 1만9천원, 감베리니 에 마이스 1만8천원 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13-2 문의 02-326-2323
소이22
태국 음식점인 줄 알았던 소이22가 화덕 피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전 주인이 화덕을 남겨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애물단지가 된 화덕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탤리언 셰프를 영입해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길승미 셰프는 피자에서 재료만큼 중요한 것이 도우를 펴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묘한 공존이 존재하는 이곳과 어울리는 피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톰얌쿵 피자. 태국 고추인 갈랑가, 다진 새우, 버섯 등 톰얌쿵 재료가 그대로 들어간 육수를 도우에 살짝 뿌려 화덕에 굽는다. 고르곤졸라 치즈를 잘게 으깨고 꿀을 뿌린 후 구운 고르곤졸라 피자는 태국 음식을 먹은 손님들이 디저트처럼 찾는 메뉴. 태국 요리를 잘 먹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사이 좋게 찾는 곳이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가격 톰얌쿵 피자 2만4천2백원, 고르곤졸라 피자 1만9천8백원 주소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22-16 문의 02-3445-8867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피자의 세계에 토마스 켈러나 제이미 올리버 같은 스타 셰프가 존재한다면 단연 살바토레 쿠오모일 것이다. 전 세계에 수십 개의 매장을 가진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는 2009년 국내 상륙한 이래 여전히 최고의 화덕 피자를 선보이고 있다.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의 자랑거리는 바로 화덕. 이탈리아 화산재로 현지 최고의 화덕 장인이 만든 화덕은 1톤에 육박하는 무게, 비용 및 설치 조건 때문에 고민하는 다른 피체리아들의 질투를 살 만하다. “장작은 가마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죠. 두 종류의 참나무를 사용해요. 사이즈와 굵기에 따라 온도와 수분을 달리해야 하는 게 어렵죠. 500℃에 가까운 고온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강우석 셰프의 말이다.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D.O.C 피자를 먹는다. 2006년 세계 피자 대회에서 우승한 이 화려한 경력의 피자는 체리 토마토와 향긋한 바질, 치즈, 그리고 올리브 오일로 단순하게 맛을 살린 메뉴다. 나폴리 피자의 상징과도 같은 마르게리타를 닮은 구석도 있다. 하지만 D.O.C 피자만 기억하기엔 아쉬운 메뉴가 많다. 해산물 토핑이 아직은 낯선 우리나라에서 드물게도 뱅어와 바지락을 피자에 올리고, 매년 여름에는 ‘제주 페어’를 연다. 딱새우, 한라봉, 유채잎과 아티초크 등 제주에서 올라온 식재료들이 피자, 파스타, 칵테일에 쏙쏙 들어가는 잔치다. 그러니 허리를 꼿꼿이 펴고 메뉴판을 꼼꼼히 읽을 것!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가격 D.O.C 피자 2만2천원, 프로슈토 에 루콜라 2만8천원 주소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46-2 문의 02-3447-0071
알렉산더 맨션
성북동의 고급 주택가에 사건이 발생했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알렉산더 맨션’의 등장이다. 저택의 주인은 설치미술가 알렉산더 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어머니와 함께 골조만 남은 저택을 천장, 벽, 바닥, 하다못해 문고리까지 재탄생시켰다. 알렉산더 맨션은 식재료도 최상의 것만 사용한다. 시그니처 메뉴인 클라시카는 야생 루콜라와 프로슈토가 그야말로 산을 이루는데, 도토리만 먹고 자란 돼지로 만든 산 다니엘레 프로슈토를 사용한다. 듬뿍 뿌린 바질 페스토는 루콜라의 향긋함을 더하는데 일조한다. 황금송이를 비롯한 네 종류의 버섯에 최고급 송로 오일로 마무리한 풍기 피자도 호사스럽긴 마찬가지. 제법 까다롭기로 알려진 성북동 주민들이 선뜻 줄을 서는 이유를 알 만하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외치는 것 같은 알렉산더 맨션의 자신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개인의 취향이 이토록 또렷한 공간이 드물기 때문이다. 위트와 럭셔리를 가뿐하게 넘나드는 이 레스토랑 덕분에 성북동이 오랜만에 시끄러워질 것 같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가격 풍기피자 2만8천원, 클라시카 3만7천원 주소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321 문의 02-765-7776
꼬또
여의도 IFC몰과 함께 등장한 ‘꼬또’는 ‘나폴리식 화덕 피자’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세 개의 화덕은 피자뿐 아니라 스테이크와 안창살도 굽는다. 삼겹살과 비슷한 독일의 전통햄 포르게타, 파채가 토핑이 되고, 꿀호두를 통째로 피자에 올리며, 꼬릿한 냄새는 고르곤졸라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맛과 향이 부드러워 거부감이 덜한 프로볼로네 치즈를 대신 사용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2년이 넘는 연구 기간 동안 꼬또가 가장 고민한 것은 도우와 온도의 관계다. 480℃에서 1~2분을 굽는 대부분의 나폴리 피자와 달리 300℃ 남짓한 온도에서 15분가량 느긋하게 구워낸 도톰한 꼬또의 도우는 가래떡 도우라고 불린다.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을 피자 도우에 적용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기포층이 많은 도우는 쫀득하면서도 가벼운 식감이다. 피자를 주문하면 올리브 오일, 토마토 소스, 꿀이 함께 나온다. 피자 끝 부분을 습관처럼 남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조각 피자를 테이크아웃해 바로 앞의 영화관으로 가져가 먹을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우리 마음을 잘 아는 곳이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가격 프로볼로네, 꿀호두, 펜넬 2만원, 포르게타, 크러쉬 페퍼, 파프리카, 파채 1만9천원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23-1 IFC몰 지하 3층 문의 02-6137-5260
볼라레
볼라레의 벽에는 숫자 ‘386’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나폴리 피자 협회에서 인정한 ‘베라피자(Vera Pizza)’ 라이선스를 받은 386번째 가게라는 뜻이다. 협회에서 ‘베라 피자’ 라이선스를 받은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와 볼라레 두 곳뿐이다. 18세기에 문을 연 나폴리 최고의 피체리아인 브랜디(Brandi)에서 근무하며 화덕 피자를 공부한 정두원 셰프의 피자는 정직하다. 나폴리 피자의 조건을 온도부터 반죽, 발효 시간까지 엄격하게 지킬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식재료를 사용하고, 100% 참나무 장작을 사용해 피자를 굽는다. 장작을 사용하는 것은 하루 종일 불을 때고, 아침에 다시 불씨를 붙이는 일을 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화덕 피자 레스토랑 중에는 돌로 만든 가스오븐을 사용하는 곳도 많아요. 무엇이 더 낫다는 건 아니지만 전 나폴리 피자의 전통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젊은 셰프가 이토록 화덕 피자의 매력에 빠진 이유가 뭘까? 알고 보니 피자가 귀한 1970년대부터 피자를 만들었던 레스토랑 ‘장미의 숲’의 오너가 정원영 대표의 아버지라고 한다. 볼라레의 피자 종류는 딱 다섯 가지. 그것도 마르게리타와 콰트로 포르마지오처럼 나폴리를 대표하는 가장 기본적인 피자들이다. 흰색 모차렐라 치즈와 붉은색 토마토, 바질의 녹색이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은 피자를 좋아한 이탈리아의 여왕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이제 제법 알려진 사실. 모두 아는 메뉴를 제대로 내놓는 것, 그게 바로 볼라레의 자존심이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자정까지 가격 마르게리타 2만2천원, 콰트로 포르마지오 2만9천원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107-2 문의 02-53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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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이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