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맛을 찾아서 <2>

매운 갈비찜과 곱창. 대구의 식탁을 상징하는 몇 개의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다른 대구의 맛을 들여다보았다. 파인 다이닝의 코스 요리부터 프랑스식 파티세리와 커피까지. 대구의 맛을 찾아 떠난 여행. 

1 김광석 거리에 자리한 선댄스 팜. 버려진 주택을 증축한 공간에서 각종 티와 간단한 요리를 경험할 수 있다. 2 83층에서 애프터눈티를 맛볼 수 있는 83 그릴 바이 애슐리. 3, 4 삼남매가 운영하는 로컬 카페, 마이 커피컬 로맨스. 계절 메뉴로 망고 와플을 기획했다. 5, 6 1964년에 지은 주택의 분위기를 살린 살롱 드 1964는 대구 유일의 싱글몰트 바다. 7 83 그릴 바이 애슐리의 입구에 전시된 나탈리 우드의 의상.

대구는 커피를 사랑해

대구야말로 커피의 고장일지도 모른다. 강릉이 커피축제를 열며 떠들썩하게 커피의 고장으로서 이미지를 다졌다면, 대구와 커피의 본격적인 인연은 1990년, 경북대 후문에 ‘커피명가’가 문을 열며 조용히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로스팅 머신까지 개발한 커피명가의 안명규 대표는 국내 1세대 커피 장인으로 꼽힌다. 국내 최다 커피 산지 탐사자라는 기록에 걸맞게 현재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콜롬비아의 커피 농장으로부터 스페셜티 원두를 공급받고 있는 커피명가는 전국적으로 40개에 가까운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에는 원두를 키우는 로스팅 공장 라 핀카의 문을 열기도 했다. 전국에 1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인 ‘다비치 커피’와 ‘슬립리스 인 시애틀’ 역시 대구에서 출발한 커피 브랜드. 현재 2호점을 준비 중인 ‘류 커피’의 류지덕 대표의 경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로스팅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심판하는 커핑심판관으로 활약한 화려한 경력은 좀처럼 보기 드무니 말이다.

‘마이 커피컬 로맨스’는 대구에서 자연스레 발전한 카페 문화를 현대식으로 풀어내는 카페 중 하나다. 사전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는 ‘마이 커피컬 로맨스’라는 이름은 눈치 챘듯 지금은 해체한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재미있게 비튼 것이다. 류 커피 바로 옆의 본점을 비롯해 얼마전 수성못에 2호점의 문을 연 마이 커피컬 로맨스도 처음에는 동성로 카페 골목에서 테이블 6~7개의 작은 카페였다. 남매가 함께 카페를 꾸렸는데, 둘째 누나인 백은진 대표는 본디 운동선수였다. “운동을 그만두면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커피와 베이킹에 재미를 붙였죠. 회사를 다니던 남동생도 함께 해보고 싶다고 해서 생각보다 빨리 가게를 시작하게 됐어요. 지금은 인테리어나 로고가 그럴싸해 보일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어설펐나 몰라요.” 마이 커피컬 로맨스에서 눈에 띄는 건 재기발랄한 메뉴다. ‘망고와플’이라고 쓰고, ‘맹고와플’이라고 읽는 와플은 직접 와플 반죽을 만들어 주문을 받고 나서야 오븐에 구워낸다. 휘핑 크림도 일일이 손으로 거품을 쳐내며, 망고 하나를 전부 얹는 후한 인심까지 발휘하니 맛있을 수밖에!

대구의 다음 거리

대구에도 ‘뜨는 거리’가 있을까? 물론이다! 김광석 거리가 있는 대봉동은 지금 가장 빠른 변화를 보이는 거리 중 하나다. 김광석이 나고 자란 대봉동과 방천시장 근처에 있는 70~80년대에 지은 한옥과 양옥 중간 형태의 가옥을 개조한 카페, 그리고 작은 개인 작업실이 들어서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서울과 굳이 비교하자면 일제 강점기 무렵 지은 가옥이 잔뜩인 서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직은 변화가 진행 중인 이 거리에, 그래도 꼭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선댄스 팜’을 보기 위해서다. 170평 규모로, 본디 집 네 채의 터전이었던 땅을 일부 가옥의 형태는 살리고, 터전의 일부는 마당으로 전환해 탄생한 널찍하고 근사한 공간이다. 11년 동안 대구에서 ‘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운영했고, 파리와 뉴욕에 머물며 패션업계에도 종사한 김희정 대표는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난 뒤, 느긋하게 선댄스 팜을 꾸려나갔다. “이곳의 폐가를 발견했을 때 생각하던 공간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난해부터 개인적인 공간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차근차근 꾸몄죠. 봄에는 정원에 메타세콰이어를 심고, 여름에는 완성되지 않은 카페 마당에서 파티를 즐기면서요.” 샐러드와 티에 사용되는 각종 허브와 빵을 굽는 화덕의 땔감으로 사용하는 참나무가 가득 쌓여 있는 정원은 이미 무성했다. 옛 집의 천장을 완전히 뜯어내 지붕의 골조를 고스란히 드러낸 널따란 공간에 툭툭 놓여진 오래된 진공관 앰프, 빈티지한 탁자, 벽에 걸린 타이포그래피와 팝아트 작품은 공간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선댄스 팜은 기본적으로 티하우스를 지향한다. 김희정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로네펠트 티를 고르게 맛볼 수 있는데, 사람들의 요청에 못 이겨 티포트와 티워머 등 티 문화를 즐기는 데 필요한 소품도 폭 넓게 취급하게 됐다. “오랫동안 레스토랑을 운영해서인지 재미있는 제안이 많이 들어와요. 대구 근교로 귀농한 지인이 직접 담근 고추장, 그리고 밤꿀 같은 로컬 푸드도 판매하죠.” 김희정 대표 역시 대구의 변화를 느낀 다. “지금까지 대구는 관광지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김광석 거리, 근대문화 골목 투어가 개발되면서 도시 전체에 생기가 돌고 있어요. 대봉동뿐 아니라 앞산 쪽에도 레스토랑, 카페가 늘어나고 있죠.”

김광석 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행정상으로는 같은 대봉사거리 길목의 거리에는 대구의 힙스터들이 모여든다. 개성 있는 간판과 요리를 내건 소규모 개인 술집이 꾸준히 들어선 덕분인데, 지난겨울 문을 연 ‘살롱 드 1964’는 대구에 처음 등장한 싱글몰트 바다. 근처에 자리한 ‘모던술상’의 김정환 대표와 패션업계에 종사한 조힘찬 매니저가 함께 이끈 ‘살롱 드 1964’는 1964년에 지은 건물을 살롱으로 재해석했다. 치과와 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의 외관은 살리고, 내부는 심플하게 꾸몄다. “서울의 경리단길처럼 새로운 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거리예요. 대구에 20대 초반이 놀 곳은 많은데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놀만한 취향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스키 시음회도 하고, 재즈 파티도 열며 어른들의 놀이 공간으로 만들려고 해요.” 서울패션위크를 오가며 한남동과 경리단길의 싱글몰트 바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조힘찬 매니저의 바람은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대구의 많은 것이 그랬다.

대구 사람이 추천한 대구의 맛

고담 디스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인 대표의 감각이 듬뿍 묻어나는 카페 겸 라운지 바다. ‘고담 시티’라는 대구의 또 다른 별명을 위트 있게 사용한 감각도 돋보인다.” – 조힘찬(살롱 드 1964 매니저)

끼니 “최근 대구에는 프리 픽스 가격에 짜임새 있는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편안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 ‘서가앤쿡’ 대표가 오픈한 끼니는 가정식에 가까운 이탤리언 요리를 코스로 조금씩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한식 코스인 오오다이닝도 인기며 두 곳 다 예약은 필수다.” – 백은진(마이 커피컬 로맨스 대표)

투웰브 키친 앤 바 “카페와 레스토랑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앞산의 유기농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할 뿐 아니라 메뉴의 선정과 분위기도 수준 높다.” – 김상환(삐에뜨라 오너셰프)

빠빠뻬로 “이탤리언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그야말로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모둠빵, 수프, 미트볼 파스타 등 현지 가정식에 가까운 이탤리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보물 같은 곳이다.” – 김상환(삐에뜨라 오너셰프)

비 인 “파리에서 공부한 오너가 최근 근처에 오픈한 커피숍이다. 꽤 훌륭한 디저트를 선보이는데, 크렘브륄레와 샤케라토가 그중 하나. 인테리어도 근사하고, 브런치 메뉴도 먹을만하다.” – 양태호(트항뜨트와 33 오너셰프)

상주식당 “대구 토박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추어탕 전문점이다. 70대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대표가 2대째 운영하고 있는데 추어탕과 백김치만 내놓는데도 맛이 기가 막히다. 매년 1~2월에는 제주를 비롯해 전국 등지의 배추를 둘러보기 위해 가게 문을 닫는다.” – 전혜경(파이 앤 크로셰 대표)

대동반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대구 하면 짬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가게나 들어가도 서울의 웬만한 곳과는 국물의 진하기부터 다르다. 맛은 개운한 한편 국물은 되직한 편인데 대동반점과 수봉반점을 자주 찾는다.” – 장원영(더 키친 노이 오너셰프)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마루
    포토그래퍼
    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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