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운이 궁금하세요?

새해가 되면 괜히 더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다. 새해 내 운은 어떨까? 좋은 일과 나쁜 일 중 어떤 게 더 많을까?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뒤숭숭한 게 나뿐일까? 겨울이 긴 탓에 길어진 밤도 심란하고, 본격적인 불황이 시작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도 무섭다. 새로운 대통령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년에도 월세는 또 오를지 등 초조한 나날들이 이어지자 문득 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 누군가 내게 내년에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준다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일을 피할수 있다면!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엔 타로와 사주는 나름의 세계관이 있다. 두툼한 역술서나 상징적인 그림과 문자로 가득한 타로 카드는 제법 운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상은 또 어떤가. 허영만 작가의 <꼴>을 보면 관상보다 더 정확한 건 없는 것 같았다. 타로와 사주가 초급편이라면 관상은 중급, 신점은 고급편에 속했다. 유명세를 핑계로 기본 금액이 지나치게 높은 곳은 일단 피하고 후기로만 정보를 공유하는비공개 카페,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알음알음 모았다. 자, 이제 직접 물어볼 일만 남았다. “올해 내 운세가 어떨까요?”

타로를 보러 가다 점술이나 운명론에 대해 거부감이 큰 사람도 타로는 부담 없어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치는 카드점이라는 인식이 많고, 전체운에 대해 풀이하는 사주와 달리 타로는 6개월 내의 미래만 볼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로를 볼 때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언제 결혼할 수 있을까요?’가 아니라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를 묻는 게 올바른 타로 질문법이다. 총 78장으로 이루어진 타로 카드는 22장의 메이저카드와 56장의 마이너카드로 나뉜다. 왕, 은둔자, 죽음, 태양 등 굵직굵직한 메이저 카드가 상황을 전반적으로 진단하면, 그에 따라 마이너카드를 해석한다고 보면 된다. 여러 가지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질문을 골랐다. 올해 상반기에 남자친구와는 잘 지낼 수 있을지, 직장 상사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기로 했다.

타로 마스터가 테이블에 펼친 카드 중에 메이저카드 세 장을 뽑았다. 내가 점괘의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도 타로의 특징이다. 어쨌든 간에 내 선택에 결과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나온 것은 여왕 카드와 수레바퀴가 여러 개 그려진 카드였다. ‘여왕처럼 대한다’, ‘수레바퀴가 반복된다’는 해석이 합쳐져 ‘남자친구가 나에게 잘해준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봐도 알 도리가 없는 한자투성이의 주역과 달리 그림과 뜻이 그려진 타로는 이해하기가 쉽다. 커피 마시듯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카드를 뒤집는 순간 해석이 끝나기 때문에 다소 허무하긴 하다.

사주 카페 사용법 한의학 덕분인지 화, 목, 수, 금, 토의 음양오행은 우리에게 친숙한 편이다. 사주 카페는 주역과 사주역학을 바탕으로 한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온 곳이 됐지만 흔해진 만큼 미덥지 않은 곳이 많은 것도 사실. 신촌, 강남, 홍대, 동대문 등 온갖 사주 카페를 전전한 끝에 마음에 맞는 사주 카페를 찾는 데 성공했다.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매년 바뀌는 남자친구와의 궁합을 볼 게 아니라면 매년 카페를 찾을 필요는 없다. 타고났다는 사람의 사주가 순식간에 바뀔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사주 카페는 처음 갔을 때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어떤 기운을 타고났는지, 어떤 면이 있는지 듣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계속 과거의 일만 맞히려고 하거나 성격을 진단하려고 하는 곳은 권하고 싶지 않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일뿐더러 이미 일어난 일을 자꾸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고등학교 3년 동안 부모님과 트러블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사람들이 새해면 어김없이 사주 카페를 찾는 이유는 확신이 필요해서다. ‘넌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 말이다. 원래 이직할생각도 없었지만 역술가에게 ‘지금 회사와 잘 맞으니 계속 다니라’는 말을 들으니 애사심이 솟구쳤다. 현재 고민을 바탕으로 일의 해결 방법을 묻는 것이 사주 카페를 이용하는 노하우다. “남에게 맞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결혼을 할 수 있을까?”는 ‘결혼을 못한다’는 악담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점을 되짚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려면 어느 정도 자신을 희생해야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콕 짚어 이야기해주는 곳은 별로 없지 않나. “고민 해결 팍팍!”을 외치는 무릎팍 도사의 해결법도 결국에는 두루뭉술한 조언이다. 사주 카페도 그렇다.

얼굴을 읽어라 “외국 갈 거예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 얼굴을 본 역술인이 말했다. “놀러 다니는 게 아니라 일로 많이 다닐 관상이네.” 출장이 많은 까닭에 그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사람의 인상이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복스럽게 생겼네’, ‘남자가 꼬일 상이야’ 같은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들었나. 이를 체계화된 학문으로 만든 것이 관상학이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 사주팔자가 다 똑같다면 말이 되겠어요? 그래서 관상을 봐야 하는 거예요”라는 역술가의 설명에 어느덧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건 이렇게 호언장담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이었다는 거다. 내 미간을 보더니 “아들, 아들. 아들만 둘이네”라고 하고,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이 친구는 34살 전에는 결혼을 못하는데 아가씨는 그 전에 결혼운이 있으니 둘이 맞겠냐며 묻지도 않은 남자친구 관상까지 봐줬다. 노후는 어떨 것이며, 직장은 언제 그만둔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이미 인생을 다 산 기분이었다. 성형 수술로도 얼마든지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세상에 관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지만 고치기 쉬운 눈의 크기나 길이, 코 높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역술인의 설명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눈빛하고 목소리예요. 그리고 얼굴 골격이죠. 눈썹 사이의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입매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이런 건 바뀌기 어렵거든요.”

다시 끄덕끄덕. 내가 과연 서른 한 살에 김재원을 닮은 남편을 만나서 다음 해 결혼을 할지, 아들 둘을 낳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관상은 내 전체적인 인생을 읽어줬지만 나는 몇 년 뒤의 미래보다는 당장 올해의 운세가 궁금했다. 그러니 나처럼 막연하게 가기보다는 연인이나 동업자 등 중요한 미래를 함께할 사람과의 궁합이 궁금할 때, 그때 관상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내림 받은 사람 드디어 최종 관문인 신점에 도달했다. 행여나 내가 그동안 귀신을 업고 다녔다는 사실이라도 알게 되면 어쩌나, 두려워하며 신당으로 들어섰다. 제단 앞을 비롯 곳곳에 사탕과 과자 등의 먹을거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빼면 가정집 같은 분위기에 일단 안심! 맞혀볼 테면 맞혀보라는 태도로 입을 다물고 있어봤자 좋을 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회사는 못 다니게 생겼다’는 말에 잡지사에 다녀서 일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여기까지는 편안했다. 하지만 역술인이 내 손을 꼭 잡고 딸랑딸랑 방울을 흔드는 순간, 그냥 혈색 좋은 아주머니처럼 보이던 역술인이 정말 무녀처럼 보였다. 갑자기 굉장히 무서워지면서 여기 온 것이 후회되었다. 자기 얼굴에 나온 운만 볼 수 있다는 관상과 달리 가족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물을 수 있는 것은 좋았다.

비록 미래가 닥치기 전에 알 수 없는 일인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부모님께 잘하라, 어디 가서 입바른 소리 너무 많이 하지 말라는 등 어른들이 할 법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는 결혼 전까지는 피임에 신경 쓰라는 참신한(!) 조언도 들었다. “낙태라도 하면 살이껴! 팔자 다 말아먹는 거야”라는 위협적인 문장에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주눅이 들었다. 신점에서 이야기하는 미래는 훨씬 단정적이다. 정해진 일은 반드시 일어나니 미리 막는 게 좋다는 식인 것. “35살 이전에 몸에 칼을 댈 사주가 있네. 차라리 사고가 나기 전에 쌍꺼풀 수술로 그 수를 막아버리면 어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쌍꺼풀 수술을 권유받을 줄이야! 동생이 몸이 안 좋아 걱정이라고 하자 부적을 추천했다. 원래대로라면 한 귀로 흘렸겠지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무녀가 이사한 시기를 ‘작년 여름’이라고 정확히 맞히는 통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마 내가 더 절박했더라면 부적을 진짜로 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래서 부적을 쓰고 굿을 하나 보다. 어쨌든 ‘알고 나면’, 후회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 아닌가. 이미 상황이 안 좋을 때라면 말할 것도 없고.

믿을 것인가, 잊을 것인가 네 군데의 점집을 돌았다. ‘몇 년도에 악수가 있으니 한국을 떠나라’는 등, ‘주변에 누구를 조심하라’는 등 거창한 경고는 듣지 못한 채 모두 평탄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실망한 내가 ‘사주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긴 있는 거냐’고 묻자 관상을 보는 역술가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남자와 궁합을 보러 온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무녀는 끝없이 돈 들어가는 시댁 때문에 찾아온 손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 내 직전에 찾아온 손님이었다. 결론은 기운이 안 좋은 이들이 있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기껏 점을 보러 와서도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의 조언이라고 귀 기울일까? 사실 역술가들의 말은 대부분 상식에 기반한 권고에 가깝다. 어디를 가나 한결같이 들었던 ‘남자 잘못 만나면 팔자가 꼬인다’는 소리만 봐도 그렇다. 가족과 친구를 제외하면 애인과 남편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텐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질 것은 너무 당연하다.

‘동거는 왜 하려고 하느냐, 여자가 손해다’, ‘부모님은 내 딸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키웠을 텐데 부모님 맘에 안 차는 남자를 만나면 네 팔자라고 좋겠냐’ 같은 말 역시 뻔하지만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의 인생을 듣고, 마주했을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실제로 타고난 기운이 있을 수도 있고, 학습을 통해 우리보다 세상의 비밀을 조금쯤은 더 알 수도 있다.

이들이 예측한 미래가 맞건, 틀리건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나에게 주어진 30분 동안은 내 고민을 실컷 들어준다는 것, 바로 그 사실 아닐까?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기억해두고, 나쁜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된다.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는 말은 결국 내 운명은 내 손에 달렸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마루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 허은정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