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녀오겠습니다

TV가 직장인의 서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TV가 직장인의 서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첫 전파를 탄 <오늘부터 출근>은 실제 회사에 직장 생활과는 인연이 없던 연예인들을 밀어 넣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공채 아나운서로 직장 생활을 했던 김성주처럼 회사 생활에 익숙한 출연진도 있었지만, 프로그램이 기대를 거는 것은 은지원과 박준형이다. 워낙 자유분방한 이들이 회사 생활을 잘해낼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오늘부터 출근>의 본심은 결국 이거다. “어때? 막상 해보니까 힘들지?” 그리고 이런 일을 매일 겪는 직장인들이 대단하다며 출연자의 입을 빌려 힘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연예인의 군생활 체험기인 <진짜 사나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는 어설픈 출연자를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훈수를 둔다. “아,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하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를 “신에게는 아직 열두 개의 업무가 남았어요”로 변형하는 <개그 콘서트>의 코너 ‘렛잇비’는 직장인의 애환을 개그로 풀어낸 코너다. 모두가 아는 비틀스의 노래 ‘Let It Be’의 후렴구를 “야근해, 야근해”로 바꿔 부르는 ‘렛잇비’를 보면서 웃다가도, 다음 날이 월요일인 것을 떠올리면 한숨 짓게 된다. TV 속 야근해는 내일, 나의 현실이 될 테니까.

그리고 화제의 중심에 선 <미생>이 있다. 지난 10월 17일, 1.6%의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11월 1일 방영된 7화에서 최고 시청률 6.2%를 기록했다. 웹툰의 인기를 감안하더라도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꽤 훌륭한 성적표다. 평생 바둑만 뒀던 20대 중반의 청년 장그래(임시완). 바둑판을 벗어난 세상에 난생처음 던져진 그는 ‘낙하산’으로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 영업3팀에 인턴으로 배속된다. 처음에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입사한 동기 인턴들에게 비난 어린 시선을 받고, 상사인 오 과장(이성민)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지만 차츰 ‘우리 애’로 받아들여지는 장그래를 중심으로 직장의 최전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눈이 언제나 새빨갛게 충혈된 오 과장,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선 차장(신은정), 슈퍼 신입이지만 언제나 과중한 업무에 허덕이는 안영이(강소라) 등 <미생>에 등장하는 직장인들은 각자의 극한까지 일한다. 일 때문에 웃고, 일 때문에 우는 것이 당연한 <미생>의 세계에 대해 어떤 이들은 일에 모든 것을 소진하는 우리 사회의 ‘번 아웃(Burn Out)’ 증후군을 당연하게 그린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미생>의 직장 생활은 결국 판타지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주어진 업무의 상황은 고달플지언정, 오 과장처럼 합리적이고 훌륭한 상사, 그리고 동료를 만나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이 <미생>에 환호한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외대의 김수환 교수는 월간 <안과 밖>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생>이) 현실의 적나라한 묘사를 공감으로 끌어올린 포인트는 따로 있다. 그건 <미생>의 인물들이 이런 출구 없는 노동 사회의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가능한 의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핵심은 노동 사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 피로 자체가 아니라 그 피로의 ‘의미’에 놓여 있다.” 피로하고 때로 소모되는 느낌이 들지언정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때의 소속감, 조직과 업무에서 거둔 성과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미생>은 직장인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낙하산일지언정 유능한 장그래도 아니고, 영업 3팀처럼 완벽한 팀워크를 갖고 있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미생>의 판타지는 ‘나도 저렇게 일하고 싶다’는 건강한 환상이다. 그리고 개연성 있는 촘촘한 극의 전개, 납득이 가능한 등장인물들은 이런 판타지가 어쩌면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만든다. 오늘도 <미생> 안에서 일하는 나를 보게 되는 이유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마루
    Photography
    Courtesy of SBS, MBC, JTBC CJ E&M, Wikicom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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