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현장 취재!
“정말 맛있어요!” 요리를 맛본 출연자가 감탄사를 날릴 때, TV 앞에 앉아 매번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요리 프로그램 촬영장에는 과연 맛있는 냄새가 가득할까? <냉장고를 부탁해>와 <올리브쇼 2015>의 스튜디오를 습격했다.
SCENE 1<냉장고를 부탁해>
스튜디오는 5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에 들어서자 대기실에 붙은 이름들이 보였다. ‘게스트 OOO 님 대기실’, ‘MC 김성주, 정형돈 님 대기실’ 등 다른 대기실 문이 꽉 닫혀 있는 가운데, 오직 셰프들의 대기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마침 복도에 나온 비스트로 차우기의 정창욱 셰프가 보인다. 프로그램 작가와 PD와 인사를 나누고 촬영장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설명을 들었다. 이제 스튜디오에 들어설 시간. 녹화 중임을 알리는 붉은 불이 들어와 있는 ‘On Air’표지판이 주는 무게감은 대단했다. 오늘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녹화가 있는 날. 커다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서른 명에 가까운 스태프가 자기 자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프로그램 촬영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하단 말이야?’ 녹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는 스태프도 있었고, 몇몇은 이방인인 기자와 사진가에게 의문 섞인 시선을 보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머물다 갈 손님이어야 했다.
촬영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모두가 운동화를 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운동화가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소리 내지 않고 걷기 위해서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굽 낮은 앵클 부츠를 신고 온 내가 걸을 때마다 구두 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고, 어느새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네 개의 벽을 세워 만든 세트장이 있고, 세트장 벽을 따라 설치된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면 세트장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스레인지와 조리대, MC와 셰프, 게스트들이 곧 착석할 커다란 테이블,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냉장고! 벽 옆에 설치된 계단에 앉아 있으니 “김성주 씨 오셨습니다!” 하는 스태프의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이어서 목을 푸는 소리가 들려온다. “냉장고, 냉장고를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오전 10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방송에서 듣던 김성주의 목소리 그대로다.
게스트를 제외한 MC와 셰프들이 자리에 앉고, 본격적인 녹화에 들어가기 전 농담이 오간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활기찬 분위기다. “녹화 들어가겠습니다!” 방송 분량은 5~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게스트가 등장하기 전 MC와 셰프의 근황 토크만 해도 한 시간가량 이어진다. 토크를 주도하는 건 MC인 김성주와 정형돈이었다. 방송에 익숙한 최현석 셰프의 ‘허세’ 콘셉트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계속됐다. “시청자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내가 나를 낮추고 요리를 높인다는 걸.” 홍석천의 추임새도 끊이지 않는다. MC 쪽 테이블 안에 부착된 모니터 스크린과 정면에 걸린 두 개의 TV 화면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질문이나 진행 순서가 뜨고, 대본도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MC들의 진행은 놀랍도록 매끄럽다. 게스트가 자신의 집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에 가져오면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 셰프들이 음식을 만들고, 게스트의 평가에 따라 승부를 판가름한다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의 규칙이다. 대결에서 이긴 셰프에게는 ‘별’이 지급되는데, MC들은 어떤 셰프가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지, 누구와 대결을 펼쳤는지 등을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간이 2층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녹화를 총괄하는 PD와 작가들은 재미있는 멘트가 터질 때마다 전문 방청객처럼 큰 웃음을 보내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한층 활기차게 만들었다.
이제 게스트가 등장할 순간. 하지만 정형돈의 멘트가 채 끝나기 전에 게스트가 등장하는 문이 열려버렸다. 물론 큰일은 아니다. “다시 갈게요!” 이 한마디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냉장고를 부탁해>의 사전녹화는 방송 일자보다 꽤 여유를 두고 진행되는 편이었다. 그러니 게스트가 두 명의 여자 아이돌이었다는 점만은 밝히겠다. 세트장에 놓인 냉장고 두 대가 똑같이 생긴 것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두 사람의 냉장고가 ‘빌트인’ 형식인 탓에 프로그램에서 따로 냉장고를 빌리고, 내용물만 고스란히 가지고 왔던 것. 게스트의 등장 이후 촬영장은 더 시끌벅적해졌다. 아, 몇몇 셰프의 시선은 촬영 내내 두 게스트에게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녹화는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됐다. 틈틈이 녹화를 끊어서 갈 때도 채 10분도 되지 않아 바로 촬영을 다시 시작할 정도였.다 녹화 시작부터 쉬지 않고 말을 하기 시작해 어느덧 점심시간인 오후 1시를 훌쩍 넘겼는데도 여전히 활기 차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두 MC의 에너지가 신비하게 느껴졌다. 정작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게스트의 냉장고가 공개되는 중간 쯤, 근처 식당으로 향한 것은 나와 사진가였다. 어쩜 그렇게 재료 하나하나 할 말이 많은지, 두 대의 냉장고 속을 공개하는 데에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게스트가 여자 아이돌이어서인지 냉장고에서 일본 과자가 나올 때면, “남자친구가 일본 다녀왔나 봐요”, 알코올이 함유된 초콜릿이 나오면 “알코올 중독이에요?”라고 되묻는 식으로 ‘몰이’가 시작됐다. 재료나 보관 방법에 대한 셰프들의 지식도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냉장고 음식물 냄새를 빨아들이는 초콜릿은 냉장고에 두면 맛 없어진다는 것, 양념된 반찬이라도 따뜻한 상태에서 냉장고에 넣으면 쉽게 상한다는 것 등. 식재료에 대한 셰프들의 상식은 깊고도 넓었다. 본격적인 요리 대결이 펼쳐진 것은 오후 3시, 이미 녹화가 시작된 지 다섯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휴식 시간 없는 녹화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태프들도 조금씩 지쳐갔다. 샌드위치, 김밥, 삼각김밥 등 간식 거리로 재빨리 요기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대결을 펼칠 만화가 김풍과 정창욱 셰프가 드디어 조리대 앞에 섰다. TV 화면으로 볼 때처럼 조리 과정이 상세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MC들의 설명에 의존해 라디오로 경기 중계를 듣듯 15분의 대결 과정을 지켜봤다. 그래서 누가 이겼냐고? 방송으로 확인하길. <냉장고를 부탁해>는 매주 월요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된다.
SCENE 2<올리브쇼 2015>
<올리브쇼>의 녹화 스튜디오를 찾았다. 단층의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을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올리브쇼>의 현장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은 불과 열흘 전. <올리브쇼 2015>의 출발을 알리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던 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자들을 위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던 자리를 한 줄은 카메라맨들이, 또 한 줄은 작가와 스태프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냉장고를 부탁해> 녹화 때도 느꼈지만 방송국의 성별 구성은 명확하다. 카메라와 조명 등 기술 장비 쪽은 남자, 대본과 스크립트를 비롯 세세한 상황을 담당하는 건 여자로 거의 완벽하게 역할이 나뉘어져 있는 것.
해마다 조금씩 구성을 달리해온 <올리브쇼>의 2015년 진행자는 김지호와 홍진호다. 요리를 좋아해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던 남편 김호진과 함께 평소에도 요리에 관심 많기로 소문난 그녀이니 놀라울 건 없다. 의외는 홍진호다. ‘셰프님들이 요리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신비롭다’며 출연 소감을 밝혔던 홍진호는 요리를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요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기자 간담회 때도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낸 건 셰프 대표로 나선 최현석 셰프의 요리 시연에서 서툴게 요리를 보조하던 홍진호였다.‘켜켜이’ 재료를 쌓고, ‘체를 밭치라’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최현석 셰프로부터 ‘조리 용어가 홍진호 씨를 만나서 험한 꼴을 겪고 있다’ 는 농담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프로그램 시작 전, 기나긴 토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촬영 스탠바이 시간인 오후 1시를 살짝 넘겨 스튜디오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이미 요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올리브쇼>의 주인공은 ‘요리’였던 것이다. 오늘의 출연 셰프는 누구인지 살폈다. 일단 조리대에 서 있는 이는 로네펠트 티하우스 부티크의 이현오 셰프다. MC인 홍진호와 김지호 옆에는 줄라이의 오세득 셰프, 테이블 스타의 남성렬 셰프, 그리고 낯선 얼굴이 있다. 서둘러 검색해보니 경리단길 입구에 있는 이자카야 아자쓰의 오너셰프 김소봉 셰프다. 안주가 맛있어서 자주 가던 술집인데! 알고보니 <올리브쇼 2014>에 출연했을 때도 간장게조림, 고등어간장조림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은 적이 있었다.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이날의 주제는 닭봉과 가장 어울리는 소스를 찾는 것이었다. 닭봉은 닭날개 위에 붙어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영어로는 ‘윙 스틱’이라고 부른다. 조리대와 MC석이 바로 앞에 있어서인지 음식 냄새가 금세 스튜디오로 퍼져 나갔다. 재료인 닭봉을 두고 셰프들의 이야기가 오간다. 평소 방송에서 아웅다웅대던 최현석 셰프가 녹화장에 없었던 이날 가장 말을 많이 한 이는 오세득 셰프다. 중간중간 홍진호의 반응을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현오 셰프가 계속 쉽다고 하는데 홍진호 씨가 봐도 쉬워 보여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닭을 손질하는 것은 조금 어려워 보이는데 다른 것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데, 그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제법 길다. 요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식을 하고 시식평을 나누는 과정까지 하면 셰프 한 명당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요리하랴, 설명하랴 계속 조리대에 서 있던 이현오 셰프는 여러 번 땀을 닦아내야 했다.
완성되고 남은 요리는 어디로 갈까? 정답은 스튜디오 한켠에 따로 마련된 요리 촬영 세트다. 프로그램 중간에 완성된 요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메뉴의 사진 촬영이 따로 진행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요리 전문 촬영 스태프가 대기 중이고, 완성된 요리가 사진 속에서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도록 다시 데우고, 튀기는 조리대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촬영할 때 고기가 조금 더 기름져 보이도록 참기름을 바르기도 하고, 식재료를 보이게 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국물을 걷어내본 경험이 있지만 이토록 본격적인 광경은 처음이었다. 음식 사진을 위해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연출에 사용하는 도구만 수십 개가 넘다니! “우리나라에서 음식 촬영 조명을 제일 잘 치시는 분이세요.” 스태프 한 명이 은근슬쩍 조명 자랑을 건넨다.
토크보다 음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일까? MC들에게 진행을 거의 일임한 <냉장고를 부탁해>와는 다르게 중간중간 스태프의 구체적인 지시가 오갔다. 요리를 할 때 자연스레 나는 ‘지글지글’ 소리만 별도로 녹음하기 위해 잠시 손을 멈추기도 하고, 언제 누구에게 먹어보라고 권할지, 요리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지 제시하기도 했다.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들이 메뉴를 개발하는 데는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주제가 제한되어 있는 데다가 쉬운 요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방송 경험이 적은 김소봉 셰프는 무려 한 달 넘게 개발한 소스를 선보였는데, 맛을 본 출연진 모두가 ‘신기한 맛이다’, ‘처음 보는 맛이다’ 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0~40분 동안 요리 하나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을 지켜보는 일은 더더욱! 하지만 ‘빵빵’ 터지는 웃음 대신 <올리브쇼 2015>에는 메뉴에 대한 셰프들의 진지한 연구가 있었다. 셰프들의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매주 화요일 오후 9시, 올리브 채널을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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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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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