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를 섭렵한 6인의 스타 <2>
어느 누구도 개그맨은 아니다. 가수, 셰프, 모델, 작가, 아나운서 출신의 이들이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황광희 | 밉지 않은 깐죽거림
2010년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데뷔한 황광희는 일찍이 예능감을 드러내며 멤버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알렸다. 임시완과 박형식이 연기자로 뜨기 전, ‘제국의 아이들’의 인지도를 책임졌던 멤버는 황광희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정글의 법칙>에 출연하면서 ‘예능돌’로 자리를 굳힌 그는 최근 4년간 출연해온 <스타킹>과 2년 4개월간 MC를 맡아온 <인기가요>에서 하차했다. 악재가 터졌냐고? 아니다. 더할 나위 없는 호재이다. <무한도전> 새 멤버로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10년 넘게 장수하며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다. 길과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하면서, 5명의 멤버로 꾸려지던 <무한도전>이 6번째 멤버를 뽑는 식스맨 프로젝트를 가동했을 때, 그 자리를 탐내지 않은 연예인은 없었다. 그러나 멤버 선출 과정은 총리 인선 과정보다 혹독했다. 7주에 걸쳐 프로그램 안팎에서 검증이 이루어졌다. 그 바람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장동민이 하차하고, 최종후보 4명 중 황광희가 뽑혔다. 기존 멤버 5명 중 3명의 표를 얻었으니, 무려 과반 득표이다. 황광희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스타킹>에서 정신없이 떠들다가 순간적인 재치로 예측불허의 발언을 쏟아내며 강호동을 당황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는 깐죽거리며 상대를 디스하지만 밉지 않은 캐릭터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전유물인 성형고백을 통해 자신을 희화화하는 등 ‘셀프 디스’를 하기 때문이다. 황광희에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성인남자 같지 않은 면모이다. 황광희는 엄마가 “가수는 잘생겨야 한다”며 성형을 시켜주었노라 말한다. 그에게는 외모 가꾸기의 애환에 대해 함께 수다를 떨고 싶은 자매 같은 이미지와 엄마 말 잘 듣는 아들 같은 이미지가 있다. 즉 여성스러움과 아이스러움을 갖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귀엽고 만만하며 친근한 매력을 특화해 어린이, 뷰티, 요리 분야의 프로그램 (<난감스쿨>, <뷰티 바이블 2015>,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했다. <무한도전>의 식스맨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패션황’도 이러한 그의 재능을 살린 것이다. 패션 테러리스트들을 찾아 다니며, 패션 센스를 조언해주는 그의 프로젝트는 재미와 호평을 낳았다. 황광희의 <무한도전> 합류에는 난관이 있었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인 <스타킹>에 출연하는 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광희는 이러한 곤경을 스스로 언급하며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스타킹>에서 이별을 암시하는 강호동에게 “아직 이별하면 안 된다. 그쪽에서 오더가 안 났다”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어찌나 우습던지. 황광희는 적절한 시기에 <스타킹>에서 하차하면서, 강호동에서 유재석 라인으로 갈아탔다. 황금인맥을 섭렵한 확실한 ‘예능돌’이 된 것이다. 아직 병역 미필이라는 아킬레스건만 잘 해결해나간다면, 예능강자로서 황광희를 능가할 인물은 없어 보인다. – 황진미(칼럼니스트)
장위안 | 뻔뻔한 자신감
영화감독 장진은 그를 두고 배우의 얼굴이라 했다. 그 ‘잘생김’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어서 예능의 동료들로부터 야유가 쏟아지든 말든 ‘유덕화 닮았다는 얘길 좀 듣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는 눈치가 없고, 돌려 말하는 기술이 없다. 외모에 대한 고민을 화두로 토론을 진행하던 날, <비정상회담>의 G12 모두 외모 때문에 선발됐음을 인정하라고 했다. 타일러처럼 언어에 능하고 토론에 밝은 캐릭터도 있지만 사실 대다수는 잘생겨서 멤버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타일러가 생겼다는 뜻이냐며 반문이 쏟아지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장위안은 이렇게 뻔뻔하다. 그리고 그 뻔뻔함이 밉지 않아 그걸로 좌중을 웃길 수 있는 드문 캐릭터다. 예능이 딱히 미남미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특수 예능 출신이다. <비정상회담>은 고급 한국어 회화가 가능한 외국인이 둘러앉아 외모로 인한 사회적 차별은 당연한가 부당한가 같은 민감한 주제로 토론하지만, 결국 예능이기에 “G12의 최고 미남은 누구?” 같은 속된 설문을 곁들이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출연자 가운데 한국어 수준이 가장 낮다. 그리고 그는 중국인, 때때로 꽉 막힌 전형적인 아시안이고, 그래서 열띤 논쟁의 한복판에서 유럽 멤버들의 진보적인 입장과 자주 충돌한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가 유일하게 프로그램에 대한 자아비판을 한다. 외모 차별은 당연하다고, 그건 우리부터 돌아볼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나운서 출신이다. 중국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한국 젊은 아나운서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아나운서는 <비정상회담>의 진행자 전현무가 그랬듯 ‘방송국 공채 직원’의 품격은 최소한 유지하되, 언제든 예능에 투입되어 몸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융화되는 ‘방송인’의 자질이 요구된다. 그의 품위란 슈트와 얼굴에서 나오고, 그런 옷을 입고 그런 얼굴을 하고 가끔 노래를 부른다. 그는 발전 가능성이 없는 심각한 음치다.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친구를 걱정하면서 눈물을 왈칵 쏟아내기도 한다. 녹화가 없는 날이면 그는 입시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친다. 선생이란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여야 하거늘 어쩐지 아이들이 민망해할 것 같은 방송을 한다. 누구보다도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던 에네스는 결국 그 유창한 말 때문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줄리안은 말 많다고 매번 까이고 독일 다니엘은 재미없는 멤버로 성격이 굳혀졌다. 반대로 너무 말이 없던 호주 다니엘은 돌연 사라졌다. 그 와중에 가장 언어능력 떨어지는 장위안은 한 번도 기죽지 않으며 격렬한 토론장을 파고들었고, 그러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얼굴을 내밀었고 중국판 <비정상회담>의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았으며 파고다 어학원의 얼굴이 되어 2호선 신촌역을 점령했다. 이건 말이 아니라 진솔하고 본능적인 감정 표현으로 이룬 일이다. – 이민희(칼럼니스트)
하니 | 누구보다 예쁘고 누구와도 다른
하니는 예쁘다. 너무 당연해 굳이 지면을 낭비해가며 반복할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사실은 중요하다. 만약 하니가 예쁘지 않았다면 2014년 10월 18일, 한 팬의 카메라가 그녀에게 렌즈를 고정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예쁘지만, 예뻐도 너무 예쁜 사람들로만 가득 찬 정글 속에 묻혀 있던 그녀를 ‘발굴’한 건, 놀랍게도 한 직캠(팬이 직접 현장을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었다. 흔하디흔한 파주의 행사장, 사랑받지 못해 슬픈 유행가 ‘위아래’에 맞춰 EXID가 등장했고, 렌즈는 운명처럼 하니에게 고정되었다. 관객의 환호성에 맞춰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유기생명체 같은 하니의 몸짓과 눈빛은 곧 인터넷을 통해 수천 수만 갈래로 퍼져나갔고, ‘위아래’는 음원 차트 집계사상 다시 없을 놀라운 속도로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무명에 가까웠던 걸 그룹 EXID는 발매된 지 석 달도 넘은 곡으로 가요 프로그램 1위 자리에 올랐다. 모두 하니가 예쁜 덕분이었다. 만일 이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을 맺는다면, 조금 독특한 디테일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저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느껴져도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하니는 예쁘다. 그리고 다르다. 훤칠한 키와 글래머러스한 몸매, 뇌쇄적인 눈빛으로 무대 위를 점령하는 직캠 속의 하니가 그룹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준 존재라면, 이후의 이야기를 책임지는 건 커다란 헤어롤을 말고 코를 골며 숙면을 취하는, 심지어 트림까지 서슴지 않으며 유재석으로부터 ‘대단하다 하니야!’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하니의 몫이다. 무대 위 섹시, 무대 아래 청순을 모토로 한 수많은 아이돌에게 훈장처럼 달리곤 했던 ‘털털하다’라는 단어는 하니 앞에서는 그저 무용지물일 뿐이다. 팔자걸음,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버릇, 목이 다 보이도록 고개를 젖히는 웃음, 여기에 교복 같은 검은 패딩과 바지 위로 올려 신는 양말. ‘고치려고 하는 데 잘 안 된다’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이 정감 넘치는 알파걸이 <런닝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돌 육상 대회> 등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기대한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 여기에 네이티브에 가까운 중국어 실력과 900점이 넘는 토익 점수,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심리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가수 활동과 심리학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게임은 여기서 끝난다. 그녀는 지금 기획사와의 7년 계약이 끝나고 나면 연예인을 준비하는 어린 친구들을 돕는 ‘엔터테인먼트 심리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예쁘고 누구와도 다른 하니. 그녀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을 때, 우리는 분명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예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김윤하(칼럼니스트)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조소영
- Photography
- Courtesy of Studio K, Akiii Classic, Koen St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