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짜증났던 여자 주인공

내 여자친구가 이럴까 두렵다는, 남자들이 질색하며 고른 영화와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

1 <아내가 결혼했다>, 주인아
술에 취해 연락두절되는 것은 그렇다 치자. 휴대폰 착발신 이력을 모조리 지워놓고 난데없이 다른 남자랑 잤다고 말하는 그녀. 심지어 유부녀 신분은 안 중에도 없는 듯 그를 사랑하게 됐다니! 결혼도 하겠다니! 아무리 손예진이라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새로운 애정관을 제시한다는 미명하에 ‘사랑은 나누면 커진다’는 괴상한 논리를 들고 오다니. 그런 나눔은 유니세프에게 전임하라지! – 박한빛누리(<맨즈헬스> 에디터)

2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지지
그녀는 연락과 데이트 신청은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는, 글로 배운 연애에 꽁꽁 사로잡혀 있는 스타일이다. 심지어 소개팅 이후 무려 몇 주 동안이나 연락 없는 남자를 보고 ‘밀당’을 하는 중이라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녀. 영화를 보는 내내 혀를 끌끌 차느라 입천장이 다 까질 지경이었다. 그 남자는 그냥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 거라고! – 박한빛누리

3 <여기보다 어딘가에>, 수연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심지어 돈까지 없는 암울한 청춘. 증명할 수는
없지만 대단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인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유학 보내달라고 징징대다가 그 무력감과 짜증을 죄 없는 가족들에게 와장창 쏟아붓고는 동성친구한테 돈 빌려서, 자신에게 마음 있는 게 뻔한 이성친구네 자취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그녀.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 남달현(영화감독)

4 < 미드나잇 인 파리>,
젤다 피츠제럴드 재능 있고 매력적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곁에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여자들이 있다. 젤다는 그 원형이다. 자기 내키는 대로 다른 남자랑 술을 마시러 나가버린다든가, 망상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다든가 하는 짧은 에피소드로도 충분히 남편, 스콧 피츠제럴드의 곤란함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저 여자가 자넬 망치고 있어.” – 남달현

5 < 은교>, 은교
은교의 악의 없는 악행은 순수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적요(박해일)에게 다가갔고, 늙은 소설가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었지만, 거부하지도 못했다는 게 그의 비극이다.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게 됐고, 제자를 잃게 됐고, 끝내는 파멸하게 됐다. 그래도 은교를 사랑했으니 후회는 없지 않냐고? 세상에 후회 없는 사랑은 없다. – 김상호(드라마 PD)

6 <500일의 썸머>, 썸머
썸머는 톰과의 관계를 확정짓지도 않고, 희망과 좌절을 교차시킨다. 운명을 믿었던 톰에게 그런 건 없다고 했다가는, 이제 자기는 운명을 믿는다고 한다. 썸머는 최악의 여자이지만, 더 최악인 것은 그 사실을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헤어지자는 통보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톰을 향해 썸머는 한마디를 보탠다. “톰, 자긴 아직도 좋은 친구잖아”.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했는데! – 김상호(드라마 PD)

7 <내 아내의 모든 것>, 연정인
그녀는 시한폭탄이다. 그녀는 자신의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남들을 재단하지만, 자신에겐 관대하다. 같은 조언이라도, 자신이 하면 충고고 남이 하면 참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와 연애를 하기 위해 남자는 “네 말이 맞아”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온몸에 자기방어를 위한 가시를 달고는 안아주지 않는다며 우는 여자. 도망갈 궁리를 한 이두현(이선균)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비겁한 방법이긴 했지만. – 무한(연애 칼럼니스트)

8 <가을의 전설> 수잔나
처음에는 막내와 약혼한 그녀는, 막내가 전쟁터에서 죽자 둘째의 아내가 된다. 둘째가 떠나자 그녀는 첫째와 결혼한다. 그러다 둘째가 돌아오자 그에게 “아직도 가끔씩 당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꿈을 꾸죠”라고 한다. 막내를 사랑했다고 하기도 하고, 둘째에게 영원히 기다리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첫째의 부인으로 남는다. 그저 가장 빨리 오는 버스만을 갈아타는 사람은, 결국 행복할 수 없다. – 무한

9 <써니>, 임나미
임나미는 선한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이 정상적이고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때로 짜증스럽다. 딸을 괴롭힌 여학생들을 직접 나서 두들겨 패고도 아무런 가책 없이 그걸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부른다. 술집 작부로 일하는 옛 친구를 찾아낸 다음 가게 주인에게 ‘이 아가씨 접대비까지 낼 테니 아줌마가 써빙하라’고 큰소리친다. 딸과 옛 친구는 임나미의 이런 호의를 진심으로 고마워했을까? – 올드독(일러스트레이터)

10 <스파이더맨>, 메리 제인 왓슨
슈퍼히어로 옆엔 항상 미녀가 있는 법. 하지만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자꾸만 다정하면서도 쓸쓸한 얼굴로 우리의 순진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를 응시한다. 그런 다음 돌아서서 누가 봐도 뻔한 위험 속으로 폴랑거리며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세계 평화를 위해 제일 먼저 처단해야 할 대상은 고블린이나 닥터 옥토퍼스 등등이 아니라 그녀일지도 모른다. – 올드독

    에디터
    피처 에디터 / 허윤선, 피처 에디터 / 조소영, 피처 에디터 / 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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