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이별하지 않은 것처럼
비틀스는 해체했고, 존 레논은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갤러거 형제가 여전히 냉전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마이클 잭슨은 1주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계속 우리를 맴돈다. 마치 한 번도 이별하지 않은 것처럼.
비틀스의 오래된 흑백사진이 실려 있는 DVD. 멤버들은 세트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링고 스타는 좀 더 멀찍이 떨어져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더 비틀스’라는 글씨 옆 네모 사진 속에선 주름진 아저씨가 활짝 웃고 있다. 그렇다. 그가 바로 에드 설리번 쇼를 진행한 에드 설리번이다. 20세기 음악계의 위대한 순간. 아니 20세기 사건의 위대한 순간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것이 바로 비틀스와 에드 설리번 쇼다. 영국을 점령한 비틀스는 에드 설리번 쇼를 시작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하고, 미국까지 점령해버린다. 당시 에드 설리번 쇼는 최고의 TV 음악 프로그램으로, 이미 8년 전에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미국의 영웅을 배출한 곳이었다. 결과는 황홀했다. 무려 7천3백만 명이 시청해 미국 최고 시청률 60%를 기록했고, 비틀스가 출연하는 날이면 범죄율이 급감한다는 기사가 났다. 미국은 비틀스 광풍에 휩싸였고, 소녀들은 멤버가 밟고 간 잔디 앞에서도 기절했다. 비틀스 역사학자로 유명한 마틴 루이스에 따르면, 프로그램 방영 당시 인구 대비 시청률을 살펴보면 역대 시청률 20위 안에 비틀스의 에드 설리번 쇼가 2위와 3위, 16위를 차지하고 있다(1위는 TV 시리즈 <매시>, 나머지는 대부분 슈퍼볼 결승전 중계방송이다). 비틀스는 에드 설리번 쇼에 총 4회 출연했고, 20곡을 연주하며 전설이 되었다. 유니버설 뮤직에서 출시한 <비틀스: 에드 설리번 쇼(The 4 Complete Ed Sullivan Shows Starring The Beatles)>에는 이 4번의 공연과 비틀스 인터뷰, 미공개 영상이 실려 있다. 4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비틀스의 위대한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 덧붙여 존 레논의 유년 시절을 영화화한 <노웨어 보이>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비틀스는 여전히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오아시스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체했다(고 한다). <Time Flies…1994-2009>는 동명의 앨범에 수록된 싱글의 모든 뮤직비디오 및 라이브 실황 38편이 담긴 DVD로, 각 비디오별로 갤러거 형제의 코멘터리를 수록했다. 지난 15년 동안 7개의 넘버원 앨범을 내놓고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한 놀라운 밴드가 사라진다니. 아직 공연도 직접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볼 수 없다면 이 DVD라도 꼭 붙들고 꺼내볼 수밖에.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화제를 모으는 건 마이클 잭슨의 새 앨범일 것이다. 6월 25일이 6.25전쟁이 발발한 날일 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기일이기도 하다는 게 머리에 꽉 박혀 있는데 그의 신보가 나온다? 생전에 만들었던 미공개 레코딩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지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이 작업했으나 세상을 떠남으로 땅 속에 가라앉을 운명이었던 미완성 곡들이, <마이클(Michael)>이란 앨범으로 세상의 빛을 본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공개된 싱글 ‘Breaking News’는 2007년 뉴저지에서 녹음한 곡으로 사후에 완성된 곡이다. 마이클 잭슨은 유명한 완벽주의자였다. 음악, 무대, 퍼포먼스 등 완벽하지 않으면 내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이클 잭슨 자신은 세상을 떠난 후 발매되는 새 앨범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걸출한 팝스타를 잃은 팬들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위로가 될 것이다. 새 앨범의 커버는 화가인 카디르 넬슨(Kadir Nelson)이 그린 유화 작품으로, 마이클 잭슨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을 담았다. 또 새 앨범을 발표하기 전 11월 23일에는 마이클 잭슨의 모든 비디오를 모은 4시간 30분 분량의 마이클 잭슨의 DVD <Michael Jackson’s Vision>이 발매된다.
끝으로 세상을 떠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고 이진원의 명복을 빈다. 그의 부고가 트위터 타임라인에 올랐던 11월의 날들은 슬펐다. 그럼에도 마음껏 슬퍼할 수 없었던 건, 나 역시 그의 CD 한 장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가고 노래만 남았다. 많은 아티스트의 흔적이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편집되고 다듬어져 세상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 그의 노랫말을 유고 시집으로 묶어 내줬으면 좋겠다. 그는 시인 기형도를 떠올리게 한다. ‘나를 연애하게 하라.’ ‘361버스 타고 집에 간다’ ‘스끼다시 내 인생’ 등 그가 세상에 타전한 단어들은 모두 시였다.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 태어난 그는, 그래서 가난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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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안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