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쓴 시

1 Poltrona di Proust, Geometrica 2 Anna. G

1 Poltrona di Proust, Geometrica 2 Anna. G

“삶은 아름다운 것과 연결되어 있고, 그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살아 있는 거장,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말이다.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눈에 익은 와인 오프너 ‘안나 G’를 떠올리면 더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와인을 따는 동안, 두 손을 우아하게 올려 발레 동작을 취하는 아이디어라니! 이 오프너는 발레리나였던 그의 부인 안나 질리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걸작으로 꼽힌다. 매년 다른 옷을 입은 한정판이 꾸준하게 출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독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디자인에 장식을 하는 리디자인뿐이다”라는 운동을 벌인 것도 그다. 의자에 인상주의 화가 폴 시냐크의 점묘를 찍어 고전과 현대, 기품과 키치가 결합된 작품 ‘프루스트 의자’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태양과 달, 지구라는 우주의 조화를 담은 조명 ‘라문 아물레또’ 역시 그의 손길로 완성했다. 사랑하는 손자의 눈 건강과 꿈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만든 행운의 램프다. 원형의 LED 램프가 빛을 사방에서 비추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실용성이 디자인에 우아하게 배어 들었다. 세계적인 안과 병원과의 협업을 통한 하이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접점이라 평가받으며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인간적인 감성을 물감 삼아 디자인이라는 시를 그린다. ‘건축과 디자인은 무엇보다 그 기능을 우선으로 한다’는 독일의 기능주의가 널리 퍼져 있던 1960년대에는 아주 획기적인 시각이었다. 철저한 기능주의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한 디자인에 대한 반발로 멘디니는 기능보다 심미성에 중심을 둔 ‘회화적인 디자인’을 창안했다. 획일적인 직선의 단색 가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총천연 색으로 뒤덮인 ‘프루스트 의자’는 확실히 충격적인 행보였다. 이후, 그가 주도한 이탈리아의 감성 디자인 물결은 독일의 기능주의를 대체했다. 그는 디자이너이자, 밀라노에서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의 건축, 디자인 잡지 <도무스>, <모다>, <카사벨라>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했다. 물론 안목은 탁월했다. 자하 하디드, 필립 스탁, 한스 홀라인 등 현재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많은 건축 디자이너를 발굴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교되는 디자인계의 장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과거부터 현재를 담은 <알레산드로 멘디니>전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10월 8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열린다. 한국으로 물 건너온 전시작 600여 점의 무게를 선뜻 짐작하긴 어렵지만, 국내 디자인 전시 중에서는 여러모로 역대 최대 규모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여전히 왕성한 호기심으로 창작활동에 혼을 태우는 그가 직접 전시를 진두지휘했다. 유머와 변신, 협업과 색채 배합의 마술사로 불리는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대부의 실체를 이제 눈앞에서 확인할 차례다.

    에디터
    박소현
    Photography
    Ilmin Museum, Seoul Museum of Art, Songeun Art Space.org, Daejeon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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