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더 기대되는 두 사람, 박소담과 지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쁜 단어로 이름 앞을 수식하고 싶은 두 배우가 <얼루어>의 카메라 앞에 함께 섰다. 2015년보다 2016년이 더 기대되는 두 사람, 박소담과 지수다.
박소담은 2015년의 발견이다. 영화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 속 연덕을 우리는 박소담의 맑은 눈과 가늘고 하얀 팔다리, 그리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기억한다. 아주 잠깐 등장한< 베테랑>과 <사도>에서조차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봤다. 그리고 <검은 사제들>에서는 악마를 몸에 꼭 잡고 있어야만 하는 고등학생 영신을 팔다리가 묶인 채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러니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배우 후보에 그녀의 이름이 올라간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박소담은 말한다.아직 보여준 게, 믿음을 줄 만한 일을 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많은 일이 일어난 한 해였죠? 요즘은 뭐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학교를 졸업한 후에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서 지금은 그나마 좀 쉬는 중이에요. 다음 주부터는 연극 <렛미인> 연습에 들어가요.
공연까지 두 달이 채 안 남았어요. 원래 좋아하던 영화였나요?
사실 영화는 연극 오디션 공고 이후에 봤어요. 저는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신비롭고 맑던 소녀가 뱀파이어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 이 아프기도 했고요.
<경성학교>를 보고 당신을 기억하게 됐어요. <여고괴담> 시리즈가 떠오르더군요. 여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가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선을 그렸다는 점에서요.
저도 그 감정선이 재미있었어요. 단편영화를 열다섯 편 정도 촬영했는데 한 작품을 제외하고 늘 고등학생 역할이었어요. 교복 좀 그만 입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그 시절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왜 그렇 게 행동했는지 이유가 보이는데, 그런 게 좀 귀엽기도 하고요.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 그 당시를 잘 연기할 수 있는 건지도 몰라요.
제가 여고를 다녔어요. <경성학교>가 동성애 코드를 다룬 거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질투가 꼭 연인 관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얘랑은 스티커 사진 찍었는데 왜 나랑은 안 찍어? 이런 사소한 걸로 토라지고 싸우는 일이 그 나이 대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흔하니까요.
처음으로 상업 영화 촬영장에 간 날은 기분이 달랐을 것 같네요.
<베테랑> 촬영장이었어요. 대사가 없는데도 무척 긴장했죠.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감독님이 케이크를 주시며 수고했다고, 꾸준히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돌아가는 길에 손과 마음이 좀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은 게 생각나요.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모두 후보에 올랐지만 상을 받지 못했어요. 아쉽지는 않아요?
받았으면 그것대로 너무 좋았겠죠! 안 그래도 <검은 사제들> 무대 인사 때 시상식이 다가오니까 김윤석 선배님이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소담아, 인생에 상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 제가 상을 못 받으면 상처 받을까봐 그러신 것 같아요.
주변에서 오히려 걱정했군요!
부모님도 못 받아도 속상해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는 상 못 받는다고 서운할 것 같진 않았어요. 지난 2년 동안의 결과물이 올해 다 나왔고, 또 많은 분들이 그걸 알아주셨는걸요. 그런데 윤석 선배님도 한마디 하시긴 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예쁘게 하고 가!”
<검은 사제들>을 스크린으로 봤을 때 어땠어요? 사실 전 놀랐어요. 빙의 전의 맑고 예쁜 영신의 모습도 많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무섭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촬영 현장이 유쾌했기 때문에 정작 저는 모니터링할 때도 잘 몰랐어요. 특수분장을 받고 침대에 묶인 상태에서 정말 여러 각도로 촬영했는데도요.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요. 한국에는 없던 영화잖아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영신아, 네가 다 했다’라는 대사에 걸맞은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중국어, 러시아어, 사자 목소리, 개 짖는 소리 다 직접 연기하기 위해 원어 연습과 목소리 훈련만 세 달 정도 한 것 같아요.
드라마 <처음이라서>에서는 또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어요.
현실감 있고 밝은 캐릭터는 처음이었죠. 촬영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스무살들의 이야기다 보니 극에서 못한 게 많아요. 다음엔 조금 더 성숙한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성숙한 멜로 연기라… 예를 들면 어떤 영화가 있을까요?
제가 <국화꽃 향기>를 참 좋아해요. 학교 수업에서 극한의 슬픔을 연기할 때 그 작품을 참고한 적도 있고, 얼마 전에도 다시 봤는데 역시 좋았어요. 장진영 선배님을 보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남은 모습을 보면서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게…. 마음은 아프지만요.
상대 남자 배우도 박해일 씨가 맡은 역할이면 좋겠어요?
네.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행동을 하잖아요. 제가 남자 배우여도 해 보고 싶은 역할이에요.
당신이 연애를 할 때도 그런 스타일이 좋을까요?
좋죠. 솔직하게 표현을 서로 주고받는 거요.
먼저 마음을 고백한 적도 있어요?
누가 좋으면 신호는 계속 줘요. 저는 그냥 티가 난대요.
한예종 출신 젊은 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띄어요. 원래 연기를 할 생각이었나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수시를 다섯 군데 떨어지고 매일 울던 차에 처음 정시로 응시한 게 지금 학교였죠.
동기나 선후배,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겠어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다들 고민이 많죠?
안 힘든 친구가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이 택한 길이지만 또 힘드니까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거든요. ‘엄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속상해’ 하고 친구한테 울면서 전화가 오기도 해요. 그리고 한편으론 알아요 . 친구지만 경쟁자라는 걸. 그러다 보니 다들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대요. 다만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길 바라는 거죠.
처음에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집에서 반대하지는 않았어요?
심했죠. 우리 유전자와 연기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셨대요.
지금은 뿌듯해하시겠어요.
VIP 시사회에서 아빠가 엄지를 ‘척’ 올리는 걸 보고 울 뻔했어요.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해 보여서 좋다고 하세요.
주변 반응도 달라지는 걸 느껴요?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레드 카펫 밟은 게 생각나요. 그 길이 너무 길게 느껴졌는데 제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긴장이 탁 풀렸어요. 전 댓글도 많이 봐요. 아직 저도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르거든요.
직접 찾아보기도 한다고요?
사실 그보다 주변에서 알려주는 게 많아요. 좋은 댓글 있으면 저한테 엄청 보내주거든요. 아, 그중에 친구들이 저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뭔데요?
쌍꺼풀 수술 안 하길 잘하지 않았냐고요. 하하, ‘무쌍’의 시대가 생각보다는 빨리 온 것 같아 다행이에요.
큰 키 때문에 모델이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지만 지수의 시작점은 연극 무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섰으니 일찌감치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한 셈이다. 하지만 드라마 <앵그리맘>과 <발칙하게 고고>, 그리고 지금 촬영 중인 <페이지 터너>까지 정작 데뷔 이후 교복을 벗을 일은 별로 없었다. 류준열, 수호와 함께 출연한 영화 <글로리데이>에서도 군입대를 앞둔, 20대 초반 청춘을 연기한다.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젊음이 또 다른 젊음을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단한 눈빛과 흔들림 없는 목소리를 가진 지수, 자신이 있다.
커플 화보 촬영은 처음인가요?
<발칙하게 고고>에서 함께한 이원근 형과 둘이서 남남 커플로 촬영한 적은 있지만 여배우와 촬영한 것은 처음이에요.
요즘 드라마 <페이지 터너> 촬영이 한창이죠? 이번에도 고등학생 역할인데 성장물을 꾸준히 선택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물어보세요. 그런 역할에 끌리는 건 사실이지만 ‘행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별적인 선택이죠. 그때마다 선택할 이유가 있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요?
지금의 저와 많이 차이 나지 않잖아요. 후배 또는 또래 이야기다 보니 당연히 공감할 수 밖에요.
<페이지 터너>의지 정차식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앵그리맘>의 고복동과 <발칙하게 고고>의 서하준은 어두웠었죠. 하지만 차식이는 긍정적이고 유쾌해요. 전의 캐릭터들이 과거의 사연 때문에 그늘이 있었다면 이 친구는 더 밝게 행동해요. 더 어른스러운 거죠.
처음 연기학원에 등록할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올라갈 무렵,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아요. 마침 학원을 다니던 친구를 보면서 ‘아, 저런 걸 배울 수도 있구나’ 하고 마음이 열렸죠.
시작은 어쩌면 막연했던 셈이네요.
맞아요. 그런데 연기학원 선생님이 극단을 시작하시면서 함께 연극을 하게 됐고, 하다 보니 진지해졌어요.
친구들도 선택에 놀랐을 것 같아요.
신기해했어요.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죠. 진로를 찾은 것 자체에 대해서요.
호기심이 진지함으로 바뀐 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뭔가를 배우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잖아요. 학교 밖에서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직접 무대를 하면서 배우는 재미에서 ‘하는 재미’로 바뀌었어요 . 이 일을 할 때 내가 참 행복하구나, 내가 진짜 좋아하는구나,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차츰 하게 됐죠.
데뷔는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담근 셈이네요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괴리감은 없었나요?
전 오히려 두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게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어른들을 빨리 만났죠. 일종의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의 질서가 있고, 규율이 있다는 것도 빨리 알았고요.
사람들이 당신을 ‘유망주’라고 불러요. 주목은 받지만 아직 뭔가를 확실히 이룬 상태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유망주라는 말이 어깨를 무겁게 하지는 않아요?
글쎄요. 그 단어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는 것 같은데…. 음, 제가 초등학생 때 유도를 했어요. 그리고 그때 정말 유망주였어요. 되레 그때가 무거웠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이었는데도요?
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입학할 무렵까지 했는데 진짜로 오늘 지면 죽는다, 혼난다 같은 압박이 있었어요. 어렸지만 그런 압박감이 정말 컸거든요.
그런데도 오래 했네요.
재미있을 때는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이기면 기분이 좋았고, 사범님이 ‘우리 유망주입니다’ 하고 소개하시는 것도 좋았어요. 그렇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는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 배우로서 또 유망주라고 불린다면 … 감사한 일이죠. 그렇지만 그런 말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작품을 통해서 잠깐 기대를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다 흘러가는 거라고 생각해서요.
오래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생각이 드나 봐요.
계속 연기할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역할을 계속 해낸 한 해를 보낸 것 자체가 복이죠. 배우는 취업의 연속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저는 쉬지 않고 작품이 결정되고 있으니까요.
주목받는 만큼 주변에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들은 칭찬 중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눈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칭찬이요. 정말 과분한 칭찬이라는 걸 알지만 기분 좋았어요.
평소에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영화 보는 걸 워낙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영화가 대체 내게 뭔지 생각해봤어요. ‘꿈’ 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됐죠.
꿈이요?
네, 정말 잠잘 때 꾸는 꿈이요. 좋은 영화를 보면 좋은 꿈을 꾼 것 같고, 끝이 찝찝하거나 분노하는 영화를 보면 악몽을 꾼 것 같죠. 현실과 착각할 정도로 몰입해서 보는 영화도 있고, 자각몽처럼 꿈인 걸 알고 꾸는 얄팍한 영화도 있잖아요.
그리고 도무지 꾼 것 같지도 않은 꿈도 있고요.
맞아요. 그건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를 본 거죠. 아, 며칠 전에 <크림슨 피크>를 봤는데 비현실적인 세계가 정교하게 구축됐다는 점에서 정말로 꿈 같은 영화였어요. 아름답고, 재미있는 꿈이었죠.
영화 주연을 맡은 톰 히들스턴도 눈빛이 참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 배우예요.
죽이죠. 그런데 전 그보다 미아 와시코브스키. 참 좋아합니다.
처음으로 받은 방송 출연료는 어디에 사용했나요?
어머니와 반으로 나눴어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맛있는 걸 많이 사줬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쓴 셈이네요? 왜 그랬어요?
전 주변 사람의 좋은 점을 많이 배우려고 하는 편이에요. 제 주변에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형이 있어요.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여유가 있으면 베푸는 데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 형한테도 쐈어요.
뿌듯했겠네요. 그럼 다가올 2016년을 맞이하며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월 개봉 예정인 영화 <글로리데이> 꼭! 극장에서 봐주세요. 아, 그리고 부모님 사랑한다고, 이 말도 써주시면 안 돼요?
그건 부모님께 직접 말씀드려도 될 것 같은데요?
저 평소에도 자주 말해요. 특히 어머니한테는 매일 말해요.
- 에디터
- 이마루, 김지후
- 포토그래퍼
- 이수진
- 헤어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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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시스턴트
- 김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