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읽는 작가
좀처럼 잠들기 쉽지 않은 여름밤을 알차게 보내는 하나의 방법은 한 작가의 세계에 푹 빠져버리는 것이다. 문체가 지문처럼 남아 있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들.
1 장강명 지금 가장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 소설가인 장강명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다.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한 그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있다. 청년실업 문제를 유머와 냉소를 뒤섞어 써 내려간 <표백>,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한국이 싫어서> 역시 ‘헬조선’ 탈출을 꿈꾸는 젊은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잘 지은 제목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하다. 곧바로 발표했던 소설 <댓글부대> 역시 한국 사회의 상층구조를 음모론에 가깝게 그렸다. 각종 국내 문학상을 싹쓸이하고 있는 작가는 지난봄, <알바생 자르기>로 제 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2 가쿠다 미쓰요 온다 리쿠나 미야베 미유키처럼 국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다채로운 문체로 풀어가는 것으로는 그녀들에 뒤지지 않는다. 나오키상, 가와바타 야스나리상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휩쓴 가쿠다 미쓰요는 일상에 ‘범죄’가 침범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인간의 악의 자체를 테마로 한 <죽이러 갑니다>, 그리고 엉켜버린 주부의 삶을 그린 <종이달>이 그렇다. 풍부한 표현력은 에세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모가미 사치코의 귀여운 일러스트가 더해진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에서 그녀가 묘사한 50가지 행복의 맛을 함께 탐미해보길!
3 나쓰메 소세키 영문학 교수였던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밝군요’라고 번역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점잖지만 은근히 수다쟁이인 아저씨처럼, 소세키의 소설은 별것 아닌 일상의 풍경과 감정을 길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재능이 있다. 집고양이가 관찰한 일상을 500여 페이지에 걸쳐 써 내려가는 재주를 보라! 하지만 그 느긋함과 여유야말로 긴 여름밤과 잘 어울린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롯 <문>, <산시로> 등 대표작이 현암사에서 시리즈로 묶여 나왔다.
4 라이오넬 슈라이버 소시오패스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관점에서 써 내려간 <케빈에 대하여>는 어느 모로 보나 좋아하기 힘든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상황과 이야기를 집요하고 냉정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장기이며, 그녀의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든 이유다. 암에 걸린 아내로 인해 재정적으로 파괴되어가는 <내 아내에 대하여>, 그리고 비만 환자였던 친오빠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최근작 <빅 브러더>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효하다.
5 황정은 호흡이 짧은 황정은의 문장은 ‘간결하다’, ‘시크하다’는 표현으로 종종 평가받는다. 그러나 짧은 문장이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갖게 되는 소설 전체의 흡입력은 무시하기 힘들다. 2005년 단편소설 <마더>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황정은은 <야만적인 앨리스씨>, <백의 그림자> 등 삭막하고 황폐한 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한다. 2014년 발표된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짧은 문장과 행간 속에서 얼마나 인물들이 생생하게 호흡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6 요 네스뵈 스티븐 킹의 소설을 쉴 틈 없이 읽어 내려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400~500페이지에 달하는 요 네스뵈의 소설도 두껍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형사 헤리 홀레가 등장한 시리즈물로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로 등극한 요 네스뵈의 책은 형사 캐릭터인 해리 홀레를 내세운 시리즈로 유명하다. 주인공과 설정을 공유하면서도 <박쥐>, <데빌스 스타>, <스노우맨> 등 작품마다 다른 장르처럼 느껴지는 것이 독특한 지점이다. 지난여름 해리 홀레 시리즈는 국내에 미니북 세트로도 출시됐으며, 시리즈를 벗어난 최근작 <미드나잇 선> 역시 호평받았다.
7 다니엘 켈만 2005년 데뷔와 함께 독일이 사랑하는 신예로 등극한 다니엘 켈만. 첫 번째 발표한 장편소설 <세계를 재다>는 독일 서점가에서 <다비치 코드>와 <해리 포터>를 누르고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바 있다. 그러나 ‘베스트셀러’라고 간단히 품평하고 지나가기에 대중적인 흥미만 노린 작품은 아니다.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얽힌 <명예>, 이중적인 모습을 안고 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에프>는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됐다.
8 제임스 설터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쉽게 읽힌다. 치밀하게 뒤얽힌 설정보다는 유려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의 능력 덕분이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데뷔작 <사냥꾼들>을 제외하면 불륜에 처한 가정, 강렬한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보다 아름다운 문장은 없다’는 평을 들은 대표작 <가벼운 나날>과 에로티즘적인 요소를 강조한 <스포츠와 여가>, 그리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작가의 마지막 작품 <올댓 이즈> 등이 모두 마음산책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던컨 한나의 작품을 입은 표지도 아름답다.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름이 올 초, 국내에서 부지런히 거론된 것은 영화 <캐롤>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캐롤>뿐 아니라 수많은 영화의 원작자다. 데뷔작인 <열차 안의 낯선자들>은 무려 히치콕에 의해 영화로 옮겨졌으며, <리플리> 시리즈인 <재능있는 리플리씨>는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가 출연했던 <리플리>의 원작이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냉소적인 문체를 가진 그녀의 글에 가장 쉽게 접근하고 싶다면 <동물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을 집어 들 것.
10 가즈오 이시구로 일본 태생으로 영국에서 자란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체는 흐릿하고 엷다. <창백한 언덕풍경>과 <나를 보내지 마>의 주인공들은 슬퍼하거나 치열하게 분노할 때도 정갈한 인상을 줄 정도다. <남아 있는 나날>이 그에게 부커상을 안겨줬다면, 키이라 나이틀리와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나를 보내지마>는 <타임>지 ‘100대 영문 소설’로 꼽히며 그를 대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파묻힌 거인>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등이 국내에도 꾸준히 작품이 출간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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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