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소현
“첫 연기가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재미있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해요.” 가늠할 수 없는 기억의 저편부터 김소현은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읊었다. 1999년생,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된 김소현은 배우의 꽃을 피운다.
우리가 마론 인형과 블록을 가지고 놀 때, 김소현은 드라마 대본을 손에 쥐고 촬영장을 누볐다. 어려서부터 연기자로 활동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학창시절의 평범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서운함은 없을까? 또래 여배우들과의 경쟁은 힘들지 않을까? 남을 걱정하는 것 만큼 피곤하고 쓸모 없는 일도 없다. 김소현은 이렇게 말한다. “배우는 게 싫어지면 배우의 연기 인생은 끝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아요. ” 새로운 배움이 싫증나거나 잘안다고 여기는 순간, 배우로서의 발전은 더 이상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사는 열여덟 살 배우. 갓 피어난 장미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조근조근 말하는 소녀. 김소현은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확신이 그 누구보다 분명하고, 또렷하다.
한창 촬영 중이라 정신이 없죠? 7월 10일, 드디어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의 방영이 시작돼요. 흔치 않은 귀신 역할이 어렵진 않아요?
제가 맡은 김현지는 원작인 웹툰에서 강한 누나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드라마에서는 설정이 바뀌면서 고등학생의 발랄한 성격이 강조돼요. 다부진 면도 강하고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테니스공 같은 친구예요. 맡은 역이 귀신이다 보니,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번거로움은 좀 있어요.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드라마예요.
어떤 번거로움인가요?
특정인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라 제가 있는 장면과 없는 장면을 각각 따로 촬영해야 해요. 하지만 순간이동처럼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서 좀 더 자유롭게 연기하고 있어요.
현지라는 캐릭터는 본인과 얼마나 비슷한가요?
한 70% 정도요. 평소 친구들과 놀 때의 모습과 비슷해요.
다른 30%는요?
현지는 귀엽고 애교가 많아요. 제게 그런 면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청률 5%가 넘으면 상대배우 옥택연 씨와 함께 강남역에서 막싸움을 하겠다고 선언했죠. 공약이 재미있는 걸 보니 유쾌한 촬영장 분위기가 감지되는걸요.
이제까지 촬영하면서 제일 많이 웃는 것 같아요. 배우들끼리 호흡이 잘 맞아서 행복하고요.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리느라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했거든요. 다행히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그 모든 걱정은 무용지물이 될만큼 순식간에 친해졌어요.
2007년 <행복한 여자>가 데뷔작이라는 기사가 있고, 2008년 <전설의 고향>이라는 인터뷰도 있어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나요?
그 훨씬 전부터 단역으로 연기를 해왔어요. 비중이 있는 역은 <전설의 고향>이 처음이라 인터뷰에서는 그때를 데뷔로 말해요.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일, 또 떨어져서 엉엉 울었던 일이 다 기억나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방법은 모르겠고, 계속 불합격하니까 답답해서 속상했던 기억이요.(웃음) 현장에서 많이 혼나면서 연기를 배웠어요. 운이 좋아서 계속 작품을 하니까 조금씩 몸으로 익혔던 것 같아요. 연기를 정식으로 배운 건 회사에 들어오면서니까, 중학교 1학년 즈음부터예요.
<해를 품은 달>로 얼굴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그 즈음인가요?
그땐 저 혼자 했고, 이후부터 선생님께 연기를 배웠어요. 연기는 공부하기가 정말 애매해요. 선생님의 연기를 그대로 따라 하면 안 되거든요. ‘대략 이런 느낌일 거다’라는 정도만 알려주세요. 연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잘못 배우면 따라 하는 습관만 몸에 배어서 조심해야 했어요.
이를테면, 오디션 참가자들이 종종 탈락하는 이유가 원곡자를 모창한 것과 같은 거군요.
네, 맞아요. 연기는 캐릭터를 스스로 해석해야 해요. 같은 이유로 감독님들이 제가 연기를 배우는 걸 싫어하셔서 초기에는 발성과 캐릭터 분석법을 중심으로 공부했어요.
2008년부터 따지면 올해로 벌써 10년 차네요. 회사로 치면 과장님이나 그 이상의 직함이 붙는 연차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때요?
정말 많이 달라요. 예전에는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그래서 대체로 기가 죽어 있었어요. 어른들의 세상에서 눈치를 보고,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성격이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촬영장은 신기해요.
어떤 식으로 성격이 바뀐 것 같아요?
4년 전, <보고 싶다>를 촬영할 때만 해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어요. 낯을 가려서 다른 배우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어요. 작년 <후아유>부터 함께 호흡하는 또래 배우가 늘어나다 보니까,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려고 노력했죠. 그러면서 조금씩 활달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주연배우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는 위치에 섰어요. 연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던가요?
네, 긴 호흡으로 많은 촬영분을 소화해야 하니까요<.후 아유>를 촬영하면서 강한 체력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초반에 체력이 바닥나서 힘들었거든요. 정신이 없으니 대사가 외워지지 않고, 몸은 붓고요. 극을 이끄는 배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어요. 필라테스와 EMS 운동, 액션 연습을 병행하고 있어요.
액션에 소질이 있던가요?
몸 쓰는 데 소질이 없지만 재미있어요. 꾸준히 하면 나중에 연기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주연 배우로서 생긴 또 다른 고민도 있을까요?
현장 분위기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어요. 분위기 메이커인 택연 오빠를 보면서 많이 느껴요. 사소한 농담이 현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큰 힘이 된다는 걸요. 저도 많이 노력하려고요.
어린 나이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죠. 본인이 느끼는 장단점은 뭔가요?
장점은 남보다 일찍 배우는 게 많다는 거예요. 단점도 같아요. 지나치게 빨리 성숙해져요. 너무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조숙한 것 같다고, 그래서 너무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걱정을 많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진 않았어요. 원래 제 성격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예닐곱 살의 배우들이 연기하거나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전혀 그 나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느끼곤 해요.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고, 말과 행동이 어른스
러워요. 이제는 나이답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것 같아요. 저도 어른 눈에 그렇게 비췄겠구나 싶어요.
요즘은 또래 배우 김유정, 김새론과 함께 차세대 트로이카로 지칭하는 기사가 자주 올라오죠.
비교 대상이 될 땐 조금 힘들었어요. “실제로 친하니?” “어때? 누가 더 나은 것 같아?” 이런 짓궂은 질문을 많이 받아요. 라이벌이라는 인식은 조금 속상해요. 어릴 때부터 함께한 친구들을 경계하거나 견제하고 싶진 않잖아요. 함께 잘 크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서로 연기 색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 이제는 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응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다행이에요.
당신이 보기에 각자의 연기 색은 어떻게 다른가요?
새론이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유정이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요. 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대체로 단정한 분위기, 공부 잘할 것 같은 모범생 이미지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역할을 자주 해서 그런가 봐요.
그들과 고민을 나누기도 해요?
자주 만나진 않아요. 간혹 안부를 묻는 정도죠. 자주 연락하면 만나고 싶을 텐데 아무래도 집 밖에서 노는 게 쉽진 않아요. 셋이 모여서 지금까지 느낀 걸 다 털어놓는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깊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은 배우 김환희를 아역이 아닌 성인 배우로 대했다고 해요. 같은 배우지만, 아역과 성인의 연기를 가르는 현실이 섭섭하진 않아요?
아역이나 성인 배우나 똑같이 연기를 하는 거니까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음… 아역과 성인의 연기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발성인 것 같아요. 신체가 성장해도 목소리가 앳되면 아역의 느낌이 강하게 나거든요. 연기는 항상 어려워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느낄 땐 언제예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으로 표현이 안 될 때요. 감정 표현에 있어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어려울 때가 있어요. 특히 사랑에 대한 감정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설레는 시선을 섬세하게 끄집어내지 못할 땐 아쉬워요. 그래서 사랑에 관한 영화와 책을 많이 보면서 간접 경험을 하려고 노력해요.
직접 경험해야 풀리는 문제 아닌가요?
아직 기회가 없네요.(웃음)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죠.
집순이라 그런가 봐요.
무얼 하느라 집에서 안 나와요?
책 읽고, 영화 보고, 그림 그리면서 되게 재미없게 살아요.
홈스쿨링을 한다고 들었어요. 쉬운 선택은 아니었겠죠?
중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시작했어요. 연기에 집중하면서 일반고등학교에 다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출석일수를 채우려면 연기 활동을 그만두어야 했는데, 눈 가리며 아웅 하는 식으로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작품을 할 땐 연기에, 학업을 할 때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이 곁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홈스쿨링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좀 그래요. 늘 완벽하지 않다고 여겨요. 남들이 잘했다고 칭찬해도 부족한 점만 계속 생각나요.
롤모델이 있나요?
어려서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하고 싶어서 하는 연기인데, 못하면 속상하잖아요. 지금도 잘하고 싶어요. 한동안은 롤모델로 손예진 언니를 떠올렸어요. 최근에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영화를 자주 봤고요. 밝고 예쁜 웃음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거든요.
그런 배우를 꿈꾸나요?
네, 한순간 반짝이다 지는 별이 아니라 꾸준히 함께하는 배우,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요. 워낙 어릴 때 들어서 어느 선생님께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배우는 게 싫어지면 배우의 연기 인생은 끝난다”는 말씀을 잊지 않아요. 새로 배우는 게 싫증나거나, 이미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배우로서의 발전은 더 이상 없다고 이야기하셨어요. 항상 가슴에 되새기고 있어요.
당신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를 품어요?
다양한 인생을 그리는 예술가 같아요. 그러니 척하거나 흉내만 내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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