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삼시세끼 <1>

고창 황토밭엔 돌만 심어도 작물이 자란다. 고창의 비옥한 땅을 가리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모든 게 가장 무성한 계절, 그 풍요로운 땅을 밟았다. 튼튼하고 건강한 고창식 삶의 방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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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고 쨍한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고창의 첫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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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하농원 내에 자리한 카페젤라또. 누군가의 거실을 닮은 인테리어가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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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하농원 햄공방의 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상하키친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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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농원회관에서는 다양한 지역 농산물을 판매한다.

‘싸목싸목’. 고창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고창에 머문 1박 2일 동안 이 단어를 여러 번 생각했다. 이 조용하고 느긋한 동네와 참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삼시세끼 고창편>에 등장하며 느닷없이 고창이 친근해진 건 나뿐이었던 걸까? 일단 떠나려고 보니 가야 할 곳, 볼 것이 너무 많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우선 선운사가 있다.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의미를 가진 선운산에 자리한 이 절은 백제 위덕왕 때 지은 천년 고찰이다. 단풍이 드는 가을에 가장 인기가 높긴 하지만 동백꽃이 피는 봄, 계곡물이 흐르는 여름 역시 아름답다. 봄에 푸른빛 절정을 맞이하는 청보리밭은 가을이면 하얀 메밀꽃밭으로 변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47개의 고인돌도 있다. 여기까지 들으면 산과 평원이 펼쳐진 곳인가 싶겠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다. 서해와 맞닿은 고창 갯벌은 바지락도 유명하며, 고창의 명물 ‘풍천장어’ 역시 민물에서 자라던 실뱀장어가 바다로 돌아가기 전 잡힌 것이다. 수달과 삵, 말똥가리 등 549종 이상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 운곡습지와 겨울이면 수백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날아드는 동림저수지. 그리고 복분자, 수박, 땅콩, 천일염, 배, 쌀, 고구마, 칠산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고 자란 해풍고추까지. 고창은 땅도 바다도 풍족하다.

새로운 농원
고창의 비옥함을 일찌감치 눈치 챈 이들이 있다. 지난 4 월, 고창 상하면에 문을 연 ‘상하농원’의 목적은 분명하다. 상하농원의 주축을 이루는 세 기둥은 지역 주민과 고창군, 그리고 매일유업이다. 고창 땅에서 난 농산물과 생산품을 식당과 카페, 매장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농원이다. 일본 미에현의 모쿠모쿠 농장을 롤모델로 9년 이상 공을 들여 탄생한 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근사하다! 농원 탐방은 농원회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상하농원 공방에서 제작된 제품과 고창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수박, 잼, 식빵, 쌀, 얼린 복분자와 블루베리 등 보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우리 아이들에게 채소나 과일이 어디에서 오는지 물으면 대형마트와 편의점 이름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본연의 재료를 보고 만지며, 음식으로 만드는 다양한 기회를 선사합니다’. 상하농원의 체험교실 앞에 걸려 있는 이 말은 상하농원 같은 공간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이다. 그러고 보니 TV의 육아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이가 정육점에 걸린 소와 돼지를 보고 곧바로 ‘고기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저 아이는 살아 있는 돼지나 소, 닭을 본 적이 있을까? 궁금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고 먹는 건 필요한 일이니까. 고기 반죽을 직접 만지며 소시지를 만들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치즈, 밀크빵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체험 교실 외에도 계절에 따라 주말이면 꽤 살뜰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농원에 심어놓은 고추를 따거나, 벼를 심어보고, 허브를 만지는 것들이다. 농원에는 작은 동물농장도 있다. 산양, 면양, 미니 돼지, 그리고 소가 있다. 첫날 들렀을 때 젖이 잔뜩 부풀어 있던 어미 산양은, 그 다음 날 다시 갔을 때는 아기 산양 두 마리를 낳은 뒤였다. 아직 촉촉함이 남은 새하얀 털과 가까스로 선 네 다리가 어찌나 신기하던지!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각종 공방시설은 어른들이 더 좋아할 만한 공간이다. 한식당인 농원식당은 신선한 쌈채소와 직접 담근 장, 솥밥, 구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1만원에 다양한 반찬과 국을 곁들인 한 끼를 먹을 수 있기에 인기가 많다. 식당의 2층에 꾸며놓은 텃밭에서는 매일 신선한 허브와 쌈채소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길. 상하키친은 상하농원 햄공방의 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상하농원의 통목살 베이컨을 그대로 구운 목살 스테이크, 프랑크 소시지를 토핑으로 올린 특제 피자가 있는가 하면 고창 앞바다의 신선한 바지락으로 맛을 낸 오일파스타, 고창의 농산물을 활용한 블루베리 에이드와 유자 리코타 치즈 샐러드도 있다. 카페젤라또는 오래 머물기에 좋다. 원목 소재의 테이블과 소품, 그리고 화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디자인이 훌륭할 뿐 아니라 오직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판매한다. 고창의 보리나 복분자로 만든 젤라토와 고창 수박주스, 다양한 과일을 이용한 프라페와 에이드까지. 하지만 마냥 앉아 있기에는 아직도 볼거리가 남아 있다. 과일, 빵, 발효공방에서 난 먹거리를 한곳에 모아둔 농원상회 구경이다. 실한 달걀, 검증된 고창의 순돈육을 열두 시간 이상 염지한 베이컨 등 집 안 냉장고에 넣어두고 싶은 물건이 가득하다. 상하농원 홈페이지에서 모든 제품을 구매 가능하다니 다행이다. 스파와 숙박시설이 있는 파머스 빌리지가 내년에 모습을 드러내면 이 모든 것을 즐기기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는 기쁜 소식도 전한다. 농원에 들른 김에 가까운 구시포 해변에 잠깐 들렀다. 물이 빠져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 오후, 사람들은 갯벌에서 또 다른 생명을 캐내고 있었다.

    에디터
    이마루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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