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 스포티즘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덕목인 현실 감각은 실용적인 액티브 웨어를 불러들였다. 여기에 미래를 관통하는 낙관이 더해져 날카롭게 재단된 날렵한 형태의 미래지향적 스포티즘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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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즘은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트렌드이다. 21세기에 들어서 고상함과 우아함을 주장해온 하이패션은 실용성의 욕구를 받아 들이면서 스포츠 웨어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 패션이 부의 상징 그 이상의 것을 갖고자 하니, 일상의 것들이 패션 속으로 걸어 들어와 ‘쿨’이라고 불려졌다.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세련되고 유연한 사고방식은 스포츠가 하이패션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실용주의의 본거지인 뉴욕을 거점으로 알렉산더 왕, 랙 앤본, DKNY, 후드 바이 에어 등이 스트리트를 기반으로 한 스포티즘을 쏟아냈다. 물론 이전부터 스포티즘은 프
라다나 발렌시아가가 사랑한 주제였지만 그렇게 스포티즘은 스치는 유행에서 시대를 정의하는 하나의 사조로 진화했다.
현재 가장 ‘핫’한 디자이너인 발렌시아가의 수장 뎀나 바잘리아는 첫 데뷔 무대인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 히든 카드로 스포티즘을 사용했다. 그는 하이킹을 할 때 비가 오면 입는 정강이 길이의 후드가 달린 풀 오버 파카인 카굴을 활용했다. 입는 사람의 움직임을 계산한 입체 재단을 통해 쿠튀르적인 형태로 탈바꿈시키며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 평범한 집업 등산복처럼 보이지만 머리와 목 뒷부분이 곧추서도록 재단된 바로 그 파카 말이다! 이 파카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뎀나 바잘리아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정신을 이어 새로운 실루엣을 창조했고, 그 바탕에는 더욱 접근 가능한 을 원하는 뎀나 바잘리아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원하는 현실감각이자 이 시대를 정의하는 실루엣과 소재의 밑바탕에는 스포츠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건축적인 실루엣 덕분일까? 몇 시즌에 걸쳐 환영받던 스트리트풍의 스포티즘은 더욱 기능적이고 미래적인 형태로 중심을 옮겨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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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 바잘리아의 선임이자 지금 루이 비통의 수장인 니콜라 제스키에르 역시 스포티즘을 요리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 루이 비통은 최근 몇 시즌 동안 디지털 세상의 여자를 위해 줄곧 공상만화에 등장할 법한 미래적이면서도 몸을 자유롭게 하는 스포티브 의상을 선보였다. 올 시즌에는 거울 기둥이 세워진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배경으로 건축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의상을 마련했다. 팔에 레이싱 줄무늬를 넣은 재킷과 스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아우터, 컬러 블로킹으로 인체의 강인함을 드러낸 니트 드레스, 플라스틱 소재의 가방과 하이킹 부츠에 매치한 실키한 드레스와 시퀸 장식, 몸을 드러내는 과감한 커팅으로 관능을 부여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옷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관능적인 스포티즘을 선보인 베르사체의 무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섹시하고 강인한 여성의 전도사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쿨한 여자와 현실의 여자를 섞고 싶었어요”라고 말했고, 쿨과 현실의 시각적 언어는 단단한 소재의 스키 팬츠, 경쾌한 스트라이프 집업 스웨터, 스키를 탈 때 입는 알파인 패턴의 오버사이즈 스웨터 등으로 표현되었다. 젊은 디자이너 마시모 지오르제티를 영입하여 급진적인 젊음을 얻은 에밀리오 푸치 역시 베르사체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중반의 상류층 스키 웨어를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단순하면서 세련되게 풀어냈다. 마시모 지오르제티는 피부에 딱 달라붙는 점프슈트, 스키용 스트레치 팬츠, 몸을 따라 흐르는 추상적인 알프스 산맥의 프린트, 은빛으로 빛나는 벨벳 소재 집업 톱, 보머 재킷을 나열하며 ‘새 시대엔, 스포츠 웨어를! ’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미래지향적인 헤리티지를 지닌 브랜드 쿠레주를 이끄는 세바스찬 메예르와 아느로 바양은 막연하게 꿈꾸었던 디지털 우주 시대가 실제로 도래한 지금이야말로 스포츠와 미래적인 요소의 결합이 중요한 때임을 알려준다. 몸에 밀착하여 활동이 편하고 가벼운 니트 웨어, 반질반질한 페이턴트 소재의 재킷과 함께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의상을 선보인 것이다. 아이폰 충전기로 충전할 수 있는 작은 배터리가 달린 코트를 상상해보라. 버튼을 누르면 어깨를 지나 등을 따라 주머니까지 따뜻해지는 것이다! 먼 미래가 아닌 오늘의 우리를 위해 스포츠와 테크놀로지가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확신이 곧 일상생활에도 조용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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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털 장식 귀고리는 30만원대, 크리스토퍼 케인 바이 분더샵(Christopher Kane by Boon the Shop). 2 메시 소재 레이스업 부츠는 2백만원대, 루이 비통(Louis Vuitton). 3 메탈 소재 시계는 1백98만원, 펜디 바이 갤러리 어클락 (Fendi by Gallery O’clock). 4 솜과 나일론 소재 패딩 점퍼는 1백37만원, 이자벨 마랑 에뚜알(Isabel Marent Etoile). 5 아세테이트 소재 선글라스는 가격미정, 디올(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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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스코스 소재 드레스는 2백만원대, 베르사체(Versace). 7 소가죽 소재 부티는 가격미정,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8 소가죽 소재 체인백은 3백만원대, 베르사체. 9 나일론 소재 레깅스는 9만9천원, 아디다스 트레이닝 (Adidas Training). 10 실크 소재 블라우스는 1백11만원,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11 폴리에스테르 소재 백은 65만원, 겐조(Kenzo).

    에디터
    남지현
    포토그래퍼
    InDigital, James Cochrane, Lee Soo Kang
    어시스턴트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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