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아티스트들의 꿈의 무대
전 세계 헤어 아티스트들의 꿈의 무대.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에서 주최하는 헤어쇼에서 차홍 원장이 메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헤어쇼 준비부터 메인 무대와 백스테이지까지 <얼루어>가 동행했다.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가 매년 주최하는 비즈니스 포럼은 세계 각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헤어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이다. 지난 10월 24일부터 사흘간 리스본에서 진행된 2016년 비즈니스 포럼에도 전 세계 50개국에서 3천여 명의 헤어 아티스트가 참석했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개최되는 비즈니스 포럼은 헤어 트렌드와 헤어 살롱 경영에 관한 클래스와 메인 무대에서 진행되는 헤어쇼로 구성된다. 비즈니스 포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헤어쇼 무대는 헤어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고 싶은 꿈의 무대로 꼽힌다. 오직 소수의 톱 헤어 아티스트만이 설 수 있는데, 그마저도 헤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을 제외하면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바로 이 무대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차홍 원장이 파이널 무대를 장식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리허설
리스본으로 떠나기 하루 전, 논현동에 자리한 차홍 아카데미를 찾았다.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아카데미 건물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카데미 지하에 자리한 스튜디오에서는 이번 헤어쇼를 함께 준비한 차홍 아르더의 차홍 원장과 한필수 원장, 하민 원장, 백운진 부원장, 이루나 실장이 모여서 마지막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는 태양과 지구, 수성, 금성, 화성 등 행성을 촬영한 사진이 일렬로 붙어 있고, 각각의 사진 앞에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가발이 세워져 있었다. “이번 헤어쇼의 주제는 바로 행성이에요. 헤어쇼를 준비하면서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던 중에 NASA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행성의 사진을 보게됐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각각의 행성이 가진 오묘한 색채와 패턴을 헤어 스타일로 재해석해 표현하기로 했죠.” 탁자 위에는 메이크업 시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마치 하나의 패션쇼를 준비하듯 헤어 스타일뿐만 아니라 메이크업과 의상, 무대 연출과 음악, 모델 워킹까지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헤어쇼는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와 런웨이를 합쳐놓은 무대가 될 거예요. 열 명의 모델을 동시에 무대에 세우고 한 명씩 번갈아가며 헤어 스타일을 연출하는 거죠. 스타일링이 끝난 모델은 패션쇼를 하듯 런웨이 위를 워킹하고요.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열 명의 스타일링을 직접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 같아요.” 자신감 넘치는 차홍 원장의 모습을 보자 헤어쇼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리스본 현지 리허설
헤어쇼를 하루 앞둔 지난 10월 24일, 리스본에 있는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 아카데미에서 차홍 원장을 비롯한 차홍 아르더 팀과 재회했다. “오늘은 모델 캐스팅이 있는 날이에요. 가발을 씌우는 모델 세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 명은 모발에 직접 스타일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발의 컬러와 텍스처, 길이와 숱을 모두 고려해서 캐스팅해야 되죠.” 헤어가 중요한 쇼인 만큼 모델을 선택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침 일찍 시작된 캐스팅이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끝이 났다. 곧바로 다음 날 열릴 헤어쇼 리허설을 위해 모델들과 함께 메오 아레나로 이동했다. 리스본 타구스 강변에 자리한 메오 아레나는 돔 형태의 대형 공연장으로, 잠실실내체육관 못지않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공연장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됐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이세요.” 힐을 신고 있던 모델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봐왔던 헤어쇼 모델들은 하나같이 아찔한 킬힐을 신고 ‘파워 워킹’을 하며 무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흘러나온 무대음악도 기존 헤어쇼와는 확연히 달랐다. 템포가 빠른 댄스 음악이 아닌 공상과학영화의 오프닝 음악처럼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원래 공상과학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이번 쇼도 한편의 공상과학영화처럼 꾸미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상의 첫 부분에 달이 뜨는 장면을 넣고 마지막은 여러 행성이 공전하는 모습을 담았죠. 모델 워킹도 마찬가지예요. 무대에서 헤어 스타일링이 모두 끝나면 열 명의 모델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데, 각자 자유롭게 걷다가 한 명씩 무대 밖으로 사라질 거예요. 행성이 공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죠” 기. 존 헤어쇼의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무대다 보니 리허설 도중 전체 쇼를 총괄하는 무대감독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패션쇼 무대는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지만 헤어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에요. 특히 한 명의 헤어 아티스트가 모델 한 명을 전담해 헤어 스타일을 변신시키는 전형적인 연출에 익숙하다 보니 무대감독과 조율이 쉽지 않았어요. 마지막 무대에서 모델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걸으라고 했는데 무대감독이 동선을 미리 정확히 정해야 된다며 반대 의견을 냈죠. 어렵게 설득한 끝에 결국 처음 기획한 대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15분간 열 명의 모델에게 차례로 스타일링을 하려면 시간 배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밤늦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고, 리허설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헤어쇼 당일, 숨가빴던 백스테이지
다음 날, 아침 일찍 메오 아레나에 집합했다. 헤어쇼는 저녁 8시 무렵에 시작되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기본 헤어 스타일링을 완벽히 끝내야 하기에 시간이 촉박했다. 백스테이지에 도착하자마자 차홍 아르더 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잘 짜인 각본처럼 움직이는 이들을 보며 지난 개4월간 얼마나 많이 연습을 해왔을지 상상이 됐다. 순식간에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각자 한 명씩 모델을 맡아 헤어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한필수 원장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태양을 맡았다. 폭탄머리처럼 부풀린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U자 모양의 고리에 모발을 소량씩 일일이 감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백운진 부원장은 모발을 실처럼 꼬아 작은 구슬을 하나하나 꿰는 일을 담당했다. 헤어 스타일이 어느 정도 진행될 무렵 이날 쇼의 메이크업을 총괄하는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미앙 뒤프렌이 백스테이지를 찾았다. “모델의 얼굴을 행성의 표면처럼 표현하고 싶어요. 모래알이 반짝이는 토양처럼요.” 차홍 원장의 설명에 따라 다미앙 뒤프렌은 눈썹을 밝게 탈색하고, 밝은 톤의 파운데이션으로 피부를 창백하게 표현한 다음 하이라이터로 은은한 반짝임을 연출했다. 헤어 스타일링이 절반쯤 끝났을 무렵 본무대에서 최종 리허설이 시작됐다. 전날 자정까지 반복해서 연습한 덕분인지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맞게 착착 진행됐다. 최종 리허설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던 차홍 원장의 표정도 밝아졌다. 다시 백스테이지로 돌아와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이어갔다. 쇼를 30여분 앞두고 차홍 아르더팀은 모델들 머리에 스타킹 같은 모자를 씌우고, 의상 위에 삼배 천으로 만든 가운을 입혔다. “무대 위에서 모자를 자르고 헤어 스타일링을 한 다음 가운을 벗기면 모델이 무대 앞으로 걸어나갈 거예요. 하나의 무대가 백스테이지인 동시에 런웨이인 셈이죠.” 곧이어 모든 준비를 마친 차홍 원장과 차홍 아르더 팀, 그리고 열 명의 모델이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패션쇼를 연상시켰던 헤어쇼 무대
“코리안 헤어 아티스트, 차홍!”이라는 소개와 함께 차홍 원장이 모델들과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객석에 모인 3천여 명의 헤어 아티스트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모자를 자르는 경쾌한 가위 소리가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굽슬굽슬한 웨이브를 넣은 오렌지색 헤어를 쿠션 브러시로 빗을 때마다 금색 가루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모발이 솜사탕처럼 한껏 부풀어오르자 모발로 모델의 얼굴을 감싸고 목에 끈을 둘러 태양처럼 둥근 형상을 연출했다. 가운을 벗은 모델이 무대 앞으로 걸어나가자 고요했던 객석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푸른 지구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옴브레 기법을 사용해 금발과 푸른빛으로 물들인 가발을 쓴 모델의 차례가 됐다. 차홍 원장은 앞머리를 즉석에서 잘라 얼굴을 반쯤 가린 뱅 헤어로 연출하고, 그 다음 모델에게는 모발을 꽈배기처럼 말아 모발 끝을 앞머리처럼 표현하는 업스타일을 선보였다. 스타일이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애시 컬러와 버건디 컬러의 투톤으로 염색한 가발을 삼단으로 커팅한 마지막 스타일링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되자 모델들이 원을 그리며 무대 한가운데로 모였다. 빅뱅을 뜻하는 음악과 함께 무대 주변으로 흩어진 모델들이 한 명씩 무대 밖으로 사라지는 피날레 무대까지 완벽하게 끝이 났다.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4개월간의 긴 여정을 함께한 차홍 아르더 팀이 무대에 올랐다. 큰 무대를 성공리에 마친 이들의 얼굴에서 감격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쇼가 끝나면 몸이 아프고 피로가 밀려오는데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에요. 사실 이번 쇼를 앞두고 부담이 컸어요. 헤어 하면 영국,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떠올리는데 전 늘 우리나라 헤어 아티스트들이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어요. 남들을 따라 하면 아류가 되지만 우리 스스로 창조하면 일류가 될 수 있다고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우리만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 쇼를 통해 더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 기뻐요.” 차홍 원장은 이번 쇼를 계기로 헤어 아티스트라는 본업에 더욱 충실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는 본업으로 돌아가서 헤어 살롱에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헤어 디자인과 헤어 트렌드에 대한 연구와 회의도 활발하게 할 계획이에요.”
- 에디터
- 조은선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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