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한 달
정유년, 닭의 해가 무색하게 오늘도 수십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이라는 운명을 마주한다. 공장에서 태어나 땅속에서 떼죽음을 당할 때까지, 닭의 처참한 생에 관하여.
#1 나는 오늘 세상에 나왔다. 비록 엄마 품은 없지만, 빛을 본 게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미처 탄생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수평아리로 태어난 내 친구는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폐기처분이라는 운명에 놓인다. 그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암평아리인 나는 삶을 기대해도 될까?
#2 나의 집은 이 작은 철창 한 칸이다. 이마저도 대여섯 명의 친구와 나눠 써야 한다. 가로세로 50cm인 집에서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A4 용지의 3분의 2 정도. 작은 날갯짓은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다. 여기서 나는 매일 알을 낳는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알을 낳는 기계일 뿐이다. 나는 알을 낳고, 이곳은 컨베이어벨트처럼 끊임없이 굴러간다.
#3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이상행동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의 미래를 직감한 건 그때부터다. 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환기가 되지 않는 이 지옥에서 나와 친구들은 매일 시름시름 앓는다. 사료에 섞인 항생제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우리에게 내일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
#4 온몸이 간질거린다. 몸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을 떼어내고 깃털을 고르기 위해서는 모래에 이리저리 몸을 비벼야 한다. 우리는 그저 갈구할 뿐, 모래 목욕을 향한 욕구는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이 좁은 케이지 안에서 목욕과 유사한 행위를 헛되이 반복한다. 이곳을 떠나 넓은 모래 위를 구르는 나와 친구들을 상상하면서.
#5 오늘은 한날 함께 태어난 친구들이 죽음을 맞는다. 우리는 고작 한 달 전에 태어났을 뿐인데, 닭고기가 되기 위해 죽어야 한다. 죽음을 앞둔 친구들은 덤덤하다. 드디어 지옥 같은 케이지를 벗어날 수 있으니까. 죽음만이 우리의 삶을 구원한다. 나는 아직 알을 낳아야 하기에 공허하게 친구들의 죽음을 바라본다.
#6 죽음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근처 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으니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하고, 그러기에 반경 3km 이내의 닭과 오리는 죽음에 처해진다. 우리는 큰 트럭에 갇힌 채 함께 죽음을 향해 이동한다. 차는 멈췄고, 우리는 일제히 어느 구덩이 속으로 쏟아진다. 마침내 도착한 땅속은 어둡고 차가웠다. 이곳은 우리의 종착지이자, 케이지 밖을 나와 처음으로 맛본 바깥 세계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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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정지원
- 그림
- 전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