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스타일의 비밀 <2>
전 세계 많은 여성이 추앙하는 ‘프렌치 시크’. 왜 우리는 프랑스인의 스타일에 매력을 느낄까? 정말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아도 멋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것일까? 그 안에서 찾은 몇 가지 법칙에 대하여.
문화에 대한 관심
프렌치 스타일에 대한 여러 책이 스타일에 대한 공허한 찬미처럼 느껴진다면 <파리는 여자였다>를 읽어보길. 주나 반스, 거트루드 스타인, 마리 로랑생 같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후원자, 당대의 셀러브리티들이 어떻게 파리라는 도시를 여성으로 살아냈는지 담은 이 책은 한 권을 통틀어서 말한다. 파리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 살롱이었으며, 그 주인공은 바로 여성이었다고 말이다. 특히 1920~1930년대를 주도한 당대의 여성 모더니스트들은 파리 좌안을 뜻하는 ‘레프트뱅크(La Rive Gauche)의 여자들’로 불렸다. 그들은 작가이거나, 화가이거나, 기사를 쓰거나 출판을 했다. 아직까지 이름이 남은 예술가 외에도 편집인인 브라이어와 앨리스 B . 토클라스,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히프, 저널리스트 재닛 플래너가 있었다. 책에는 303점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책장이 마지막을 향할수록, ‘레프트 뱅크의 여자들’은 점점 나이 들어간다. 그러나 형형한 눈빛과 의지가 가득한 입매는 그대로다. 이들의 직업과 상황은 제각기 달랐고, 누군가는 부유했지만 누군가는 가난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그들은 항상 하나일 수 있었다. 삶은 예술을 통해 더욱 아름답다.
삶과 예술의 어우러짐을 보여주는 아네스 바르다의 영화는 어떤가. 아네스 바르다는 누벨 바그를 이끈 감독 중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1990년 작고한 자크 데미, <쉘부르의 우산>과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만든 영화감독이 그녀의 남편이다. 아네스 바르다는 <아네스 바르다의 해변>이라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80세 생일까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변에서 메가폰을 잡고 있는, 할머니가 된 그녀는 도트 무늬 원피스 차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프랑스적이다. 프랑스 출신 헤어 스타일리스트 오딜 길베르는 말한다. “프랑스 패션 스타일은 프랑스만의 삶의 멋과 일맥상통한다. ‘맛 좋은 와인, 푸짐한 음식,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이라는 프랑스 문화, 프랑스 문화 유산 및 교육과 따로 떼어서 설명할 수 없다.”
나다울 것
몇 해 전, 제인 버킨의 서울 공연과, 그 전에 서면으로 오간 인터뷰를 잊을 수 없다. 그저 블랙 팬츠에, 풍성한 실루엣의 화이트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단추는 마구 풀려 있어서, 언뜻 그녀의 윗가슴이 보였고 굳이 말하자면 브래지어를 안 했다. 생각해본다. 우리나라 여성 가수가 브라를 하지 않은 채 2시간여의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바로 ‘관객 모독’이니, ‘충격’이니 하며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이냐”부터 “저만 불편한가요?”라는 게시글로 댓글이 폭주할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치마 속도 속바지를 입냐, 안 입냐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곤 하니까. 어쩌면 그게 한국 스타일과 프렌치 스타일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결국 프렌치 스타일이 멋진 것은 ‘나 자신을 위한 패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소개팅 룩이라거나, 남자들은 이런 패션을 좋아한다거나, 스스로 이건 입어도 되고 입으면 안 된다는 룰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패션 룰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피시넷 스타킹을 좋아해서 포갈과 월포드, 프라다의 스타킹을 여럿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몇년간 신지 않았다.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는 게 싫어서였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나는 30대 중반이 되었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피시넷 스타킹을 멋지게 입을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것은 아닐까, 문득 후회가 된다. 프랑스 스타일에 대한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데님에 블랙 스틸레토나 발가락 골이 보이는 발레리나 슈즈를 신으라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최근 나온 프랑스 스타일에 대한 책은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가득 싣는 것이 유행이다. 만약 당신이 책을 읽고 싶지 않다면, 휙휙 넘기며 사진을 보라. 프렌치 스타일은 이래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대신 아주 자유롭고 멋지다. 어떤 여성은 우아하게, 어떤 여성은 보헤미안처럼, 어떤 여성은 단순하게 입는다. 하지만 제각기 어울리며 행복해 보인다.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는 스타일의 중요성을 말한다. “옷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표현법 중에서 가장 확실한 도구다.” 프렌치 스타일의 미덕은 나 자신을 주장하는 것,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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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허윤선
- Illustration
- Heo Jeong 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