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관태기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때마다 친목 모임을 갖는 것도 버겁다면, 당신은‘ 관태기’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관태기’란 무엇인가?
역대 최장기간의 연휴라 꼽히는 이번 추석에 본가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반가움을 느낀 건 24시간을 넘지 않았다. 난 이내 자발적 히키코모리가 되어 밥만 먹고 내 방으로 들어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 주변 사람들에게 의례적으로 하던 추석 인사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생략 했다. 밥 먹고 졸리면 자다 깨서 스마트폰만 만지다, 다시 밥 먹고 자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 와중에 내 방문을 두드리는 가족들이 불편해졌다. 3일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마치고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롯이 혼자가 되니 외롭기는 해도 가장 마음이 편했다. ‘관태기’라는 신조어는 지난해 만들어졌지만, 실상 나는 꽤 오랜 시간 관태기를 겪고 있었던 것 같다.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직업이지만, 사적으로 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다. 일적인 관계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 끊임없이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라며 자책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만나면 어색함이 감도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웠고, 그런 만남 후에 허무함을 느꼈다.
한 매체에 따르면 20대 남녀 중 4명에 1명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응답자의 80%는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에 회의적인 감정을 느끼는 ‘관태기’ 증상은 다음과 같다. 완벽히 현재의 나다.
불필요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싫다.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로 혼자 스트레스를 푼다.
가급적 사람이 많은 모임은 피한다.
전문가들은 관태기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삶에 여유가 없어서다. 취업을 앞둔 20대나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30~40대의 삶을 보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걱정하고,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면 과중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에 치인다. 노력해도 ‘금수저’를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회의감과 절망감에 빠지다 보니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둘째, SNS다.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시공간에서 타인과 관계 맺기가 가능한 SNS만으로 소통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좁고 깊은 관계 대신, 넓고 얕은 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경험상 관태기형인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는 복잡한 상황에 좀처럼 얽히지 않는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도 훨씬 적다. 상대도 알아서 거리를 둔다. 그러나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하다. 인간관계를 맺으며 거리를 두기는커녕 아예 회피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태기를 제대로 활용하면, 나의 인간관계를 정립하는 데에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관계를 맺는 동물들이고, 완벽히 혼자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관태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누가 뭐래도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꾸만 관계를 회피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진정한 ‘고독력’을 키운다 ‘혼밥’, ‘혼술’만 잘하면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타인의 인정과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고독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쇼핑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들 뿐이다. 이왕이면 혼자 있는 시간에 자신에게 집중하고,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갖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전한 개인주의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을 만드는 것이 좋다.
타인에 대한 판타지를 품지 않는다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가족, 친구, 애인 등과 같은 타인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면서 시작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스트레스도 느끼지 않는다. 관계가 힘들어지는 건 진짜 그 관계가 불행해서가 아니라 화목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가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조차도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때마다 연락처를 정리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관계에 의욕이 없는 관태기 시기야말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있을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진짜 나의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이들이다. 3개월, 6개월, 1년 정기적으로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연락처를 정리하며 관계를 재정비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관계 안전선을 만든다 타인의 부탁이나 기대를 충족시키려 애쓰다 보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피곤한 일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정 욕구 때문에 내가 무리 하는 건 아닐까?’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서는 건 아닐까?’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다. 타인이 부당한 요구를 했을 때 즉각적으로 수락하는 일 없이 적절히 맺고 끊는, 자기만의 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SNS를 잠시 멈춘다 알고 싶지 않고, 몰라도 되는 타인의 근황을 알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경우가 많다. 쓸데없이 그들의 화려한 일상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자존감만 떨어진다. 덩달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도 자신감이 없어진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SNS 앱을 켜지 않는 것으로 해방감을 느껴보자. 그동안 SNS가 타인과의 소통이 아닌 나의 고통이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관태기’라는 증거
☐ 처음 만났거나 친분이 없는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한 적이 있다.
☐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어색한 관계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대화가 끊겼을 때 불안하다.
☐ 집 밖에 있으면 빨리 집에 들어오고 싶어 하며, 쉬는 날에는 하루의 1/4 이상을 혼자 시간을 보낸다.
☐ 가족, 친구들과 친목을 다지는 모임보다는 목적이 분명한 모임을 더 선호한다.
☐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지인들의 수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전화보다는 문자, 메신저 등으로 소통하는 게 편하다.
☐ 주로 3명 이하의 소규모 모임을 더 좋아한다.
- 에디터
- 전소영
- Illustration
- Jo Seong Huem
- 참고서적
-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21세기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