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요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2>
데뷔한 지 25년이 넘은 중년 개그맨 김생민이 때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그 성공의 이유가 단지 ‘그레잇’, ‘스튜핏!’이라는 유행어 때문일까? 그가 던진 메시지 때문에 변한 우리의 일상을 말한다.
단순하고 명료한 돌직구
심두보(<부자의 돈 공부 빈자의 돈 공부> 저자 겸 <머저마켓> 선임기자)
금융 전문 기자이기에 돈을 이야기하고, 돈을 생각하고, 돈에 대한 글을 쓴다. 그래서 돈에 관한 한 어느 정도 자신만만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기 전까진. ‘아끼자’보다는 ‘더 벌자’가 나의 재테크 모토였다. ‘YOLO! 나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그러니 써야 한다. 아끼다 똥 된다’는 생각. 그리하여 구두쇠나 자린고비는 피해야 할 캐릭터였다. 어쩌면 마음속에 그것들은 ‘쿨’하지 못하다고도 생각한지도 모른다 . 멋진 인생은 풍요로운 소비에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김생민의 한마디가 나의 머리를 때렸다.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그는 아픈 곳을 찔렀다. 위세가 대단했던 대기업을 무너뜨린 것도 다름 아닌 빚이 아니던가. 이들은 부채 때문에 원치 않은 구조조정을 했다. 계열사를 팔고, 직원을 해고하고, 마침내 경영권을 내놓아야 했다. 곳간이 비어 있으면 위기에 무너지기 쉽다. 기업만의 일은 아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자료를 보면, 글로벌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에 그친다. 우리나라의 많은 소기업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다. 잘나간다고 방심하는 순간 위기는 이미 다가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기업은 항상 비용과의 전쟁을 치른다. 욜로라고? 당신이 은둔자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욜로족의 삶에는 돈이 든다. 어쨌든 우리는 삶의 시간 속에 소비를 해야 하며, 행복은 상당 부분 소비와 정비례한다. 젊은 날에 써버린 돈 때문에 늙은 날에 쓸 돈이 없다면? 수입이 거의 없는 노년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진실은 단순하다. 절약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아내를 위한 것이며, 나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미래에 위기에 빠질지 모를 우리를 위한 것이다. 나는 이제 스타벅스 커피를 사먹는 대신 출근할 때 1회용 컵에 집에서 내린 커피를 담는다. 그럼에도 김생민은 한마디 할 것이다. “1회용 스튜핏!”
N포 세대에게 희망을
김송희(<미운청년새끼> 저자 겸<씨네21> 기자)
1980 년대생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부터 빚을 안고 시작했다. 부모 세대는 허리띠 졸라매고, 알뜰하게 살면 평범한 직장인일지라도 서울 내 집 장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80 년대생들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는다. 당장 생활이 불안정하니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게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N포 세대’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당사자인 나는 이런 동정도 썩 반갑지만은 않다. 그런데 요즘 끊임없이 ‘스튜핏’이라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작게 시작하라고 잔소리하는 김생민의 등장이 반갑다. 10 년 전부터 돈 모으라고 하는 엄마의 잔소리는 들리지도 않더니, 그의 말엔 마음이 동한다. 왜일까? 그 답은 타이밍에 있다. 연예계에서 짠돌이로 알려진 김생민은 자신의 재테크 노하우를 모아 책 <만만한 재테크를> 2008년에 출간했다. 그때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아껴 쓰기 전략이, 2017년에는 유용하게 들린다. 우리는 더 이상 요행수를 바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동네에 투자해 2배 이상 자산을 불렸다는 얘기는 풍문으로만 들었다. 아니, 전설과 도 같다. TV드라마는 스토리보다 PPL 상품을 보여주는 데 더 공을 들이고, 인터넷에서는 짧은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면서도 51 초 짜리 광고를 의무적으로 보라고 권한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네 월급 털어 이거사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유혹의 홍수 속에 돈 쓰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저축하라고 잔소리하는 40 대 중반 아저씨의 말은 달리 들린다. 드라마 속 뻔한 대사 같은 한마디가 절로 나온다. “(엄마 말고)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현재를 즐기는 삶이 멋지다고 말하는 ‘욜로’적 삶과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된다며 좌절하는 자포자기만이 남아 있던 현실에 김생민이 끼어든 것이다. 그와 무관하게 나의 월급은 여전하고, 아무리 아껴도 20 년 안에 서울에서 집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 안에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 반대로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으니 미래를 긍정해야 한다. 김생민은 ‘돈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대비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포기하는 대신 단호한 결의를 하며, 미래를 준비하기로 했다.
- 에디터
- 전소영
- 포토그래퍼
- Kim Myung 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