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tage <2>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무대에 선다. 캐릭터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작품을 표현하면서.
빈틈없는, 강동호
배우 강동호는 부지런히 작품을 하는 배우 중 하나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온 후 <쓰릴미>, <키다리아저씨>, 그리고 <이블데드>를 거쳐 현재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에서 류 요이치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은 이번이 초연이에요. 초연 작품은 부담감이 남다른가요?
부담이 있죠. 우선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초연에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초연에서 관객들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하고 그래서 재연, 삼연을 진행하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니까요.
혹시 영화를 봤어요? 공연에서는 어떤 점을 더 강조했나요?
영화에서는 마츠코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일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편이라면 뮤지컬은 조금 더 사실적으로 해석했어요.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간결하고 심플하게 툭툭 던지는 편이에요.
연기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어떤 거예요?
제가 맡은 류 요이치라는 인물이 영화에서는 조금 더 명확해요. 더 야쿠자스럽고, B급 코드도 있는데 뮤지컬에서는 류 요이치의 외로움,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는 거에 무서움을 느낄 정도로 폐쇄적인 성격을 표현했어요. 지독하게 외로운,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던 사람의 마음을 열게 된 유일한 인물이 마츠코거든요. 마츠코를 평생 동안 사랑해요. 사실 우리가 작품에서 캐릭터로 만나면 ‘아, 그렇구나’ 하더라도 사실 그게 일상에서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일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 캐릭터에 타당성을 부여해야 하니까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을 평생 동안 사랑하는 마음은 뭘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세요?
어릴 때는 제가 외로움을 안 느낀다고 생각했요. 외롭다고 친구들한테 놀아달라고 하는 성격도 못 되고요. 서른 살이 넘으니 내가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전까지는 저도 폐쇄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을 하게 되면서 제가 가진 외로움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아이비와 박혜나, 두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상대역으로서 두 배우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많이 달라요. 아이비 누나는 영화 속 마츠코와 굉장히 닮았어요. 원작에서의 마츠코와 색깔이 비슷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요. 혜나 누나 같은 경우는 원작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마츠코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요. 제가 생각할 땐 더 현실적인, 그래서 좀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마츠코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요. 사실 원작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거든요. 원작과 다른 마츠코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데 누나는 설득을 해요. 그래서 이게 ‘우리 뮤지컬만의 마츠코다’라는 느낌을 줘요. 사랑 앞에서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다채롭게 변화하는 마츠코인 것 같아요.
관객들이 눈여겨봐줬으면 하는 장면은?
마츠코가 부르는 ‘스트로베리 봉봉’이라는 넘버가 있어요. 마츠코의 여동생이 아프다 보니까 아버지가 마츠코는 굉장히 엄하고 냉정하게 대하면서 여동생은 한없이 상냥하게 대하고 사랑해줘요. 그래서 스트로베리 봉봉이라는 맛있는 사탕을 동생인 쿠미한테만 사 줘요. 마츠코는 그걸 보면서 ’그래, 네가 아프니까 먹어야지. 근데 그거 알아? 나도 사실 스트로베리 봉봉 좋아해’ 하고 노래를 불러요. 노래가 예쁘고 선율도 통통 튀거든요. 그런데 가슴 아프고 슬퍼요. 제 장면 중에 제일 강렬한 건 류의 밑바닥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마약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목이 ‘Storm’인데 음악도 폭풍처럼 몰아치거든요. 그 장면도 눈여겨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첫 무대를 기억하나요?
2006년에 남경주 선생님이 연출하신 <비밀의 정원>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어요. 최정원 선배님의 뮤지컬 배우로서의 일생을 그린 갈라 콘서트 형식의 작품이에요. 그 작품에서 데뷔부터 정원 선배님과 듀엣을 하고 솔로 곡도 부르는 영광을 누렸죠.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때의 제 모습을 보면 되게 귀여웠을 거 같아요. 당시 스물한 살이었는데 저랑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같이 했어요. 춤 쪽으로 이름을 날린 분들이었죠. 제가 춤을 잘 못 추는데 선배님들과 같이 무대에 서야 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위기감을 느끼고 무서워서 미친 듯이 연습을 했어요.
처음 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에서 카인즈 역할을 한 적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강한 작품이고 제가 했던 카인즈라는 역할도 그랬어요. 하인인데 주인 마님을 사랑하거든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거죠. 그러다가 이제 주인 마님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 장면이 좀 슬펐어요. 관객들이 많이 울더라고요. 제 연기에 공감하는 거잖아요. 그 순간, ‘연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래서 연기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너무 짜릿하죠. 사실 그 느낌이 좋아 아직도 연기를 하는 거 같아요. 한번은 퇴장하는데 7살짜리 아이가 무대 앞으로 뛰쳐나와 울면서 ‘카인즈 죽이지 마!’ 하고 외치는 거예요. 저도 나가면서 엄청 울었어요.
맡은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한데, 본인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쪽이에요?
어릴 때는 숫기가 없고 어리바리한, 풋풋한 모습이 많았어요. 그래서 순수한 역할이 저한테 잘 맞았어요. 하지만 배우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가에 따라 본래 성격에 영향을 받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젠 제 안에 다양한 모습이 생겼어요.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겠어요. 이 캐릭터를 만날 때는 이 모습이 있고 다른 캐릭터를 만나면 또 그 모습이 있어서 어떤 역할이 나한테 잘 맞는다기보다는 재미있게 한 작품이나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있죠.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 했던 네 개의 작품은 다 애착이 가요. <쓰릴미>도 그렇고 <키다리아저씨>는 작품을 하면서 인생이 행복해졌어요.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고요. <이블데드>는 제일 재미있게 했던 작품이에요.
뮤지컬 배우로서 언젠가 연기해보고 싶은 배역은?
시대극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제가 도시적인 느낌이 있어서인지 시대극이나 사극을 아직 안 해봤거든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일단은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게 목표예요. 길게 가는 배우가 되는 게 첫 번째 목표고 관객들에게는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게 최고 아닐까요? ‘믿보배’죠.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떠오르는, 박강현
박강현은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으로 데뷔했다. <베어 더 뮤지컬>, <인 더 하이츠>, <나쁜자석>, <이블데드> 등으로 경험을 쌓다가 최근 <팬텀싱어2>에 출연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12월부터는 <광화문 연가>에 젊은 명우 역할로 출연한다.
<광화문연가>는 고 이영훈 작곡가의 곡으로 구성되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가 있나요?
다 좋아해요. 특히 ‘광화문연가’와 ‘가로수 그늘 아래서’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어요. ‘소녀’도 좋아하고.
80~90년대 노래가 대부분이에요. 이 시대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요?
노래 자체가 시대의 감성을 담고 있잖아요. 저는 그냥 노래에 몸을 맡기려고 해요. 원곡 자체의 힘이 크기 때문에 원곡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죠.
<팬텀싱어2>가 얼마 전에 끝났어요. 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소감을 이야기해준다면?
공연은 연습도 서너 달 하고 같은 공연을 수십 번씩 하잖아요. 방송은 새로운 걸 계속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은 어렵기도 했지만 힘든 만큼 행복했던 추억들로 마음속에 많이 남은 거 같아요.
우승을 못해서 아쉽지 않아요?
아쉽기는 한데 네 명 모두 무대에서 행복하게 마지막 노래를 불렀거든요.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창법이나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이 호흡을 맞추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저 빼고 다 성악가였으니까 노래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사실은 관건이었죠. 일단 목소리 톤도 다르니까 이게 잘 섞일까? 걱정했는데 무난하게 잘 섞인 거 같아요. 다들 많이 맞춰주기도 했고 저도 창법을 달리 해본 적도 있고. 그런 시도들이 의미 있고 뜻깊었어요.
방송 출연 전후에 자신에게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예술이라는 건 끝이 없고 정답도 없다는 걸 깨달았고,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정말 일하는 거 말고 다른 생활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바쁜 게 즐거워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듯이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달려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새로 했죠.
방송 출연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뭐예요?
선곡이요. 사실 곡만 나오면 연습이 어떻게든 되는데 곡을 고르는 과정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느낌이었어요. 우리에게 맞는 곡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넷 다 좋아하면서도 우리의 이미지와 음색에 잘 맞는 걸 찾기가 힘들었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노래는 어떤 거예요?
‘Feelings’라고 제일 마지막에 했던 노래요. 곡 자체가 가진 힘이 있어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그런 메시지를 잘 전달해줬어요. 그러면서도 절망적이지 않고,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에요. 노래 자체도 좋고 부르면서도 감정이 벅차 올랐고요.
당신의 첫 무대를 기억하나요?
고등학생 때 연기학원에서 <그리스>를 했거든요. 제 솔로곡을 시작해야 되는데 정전이 됐어요. 사람들이 그때 플래시를 켜줘서 그 조명 받고 노래를 했는데 상황이 워낙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처음 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제가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이에요. 한번은 연기학원에서 독백 파트를 주더라고요. 그걸 외워서 발표를 했거든요. 처음에는 모든 것에 서툴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부끄러웠는데 막상 사람들 앞에서 하니 연기하는 내 자신이 신기하고 느낌이 짜릿했어요. 그리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연기를 했을 때 그게 사람들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 보는 사람들도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에 되게 큰 매력을 느꼈던 거 같아요.
무대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은 뭘까요?
피드백이 바로 온다는 거죠. 관객들이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저는 배우와 관객이 같이 호흡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시간으로 연기를 볼 수 있고 또 살아 있는 리액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리액션이 저조할 때 영향을 받지는 않나요?
사실 반응이 좋건 나쁘건 신경 쓰지 말자는 주의예요. 제가 할 거에만 집중하고, 제가 정확히 감정을 짚으면 그게 전달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해요. 흔들리지 말자.
수많은 무대에 섰을 텐데 기억나는 것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어떤 공연이든 커튼콜마다 느껴요. 일단 보러 와주신 것도 감사한데 고생했다고 박수까지 쳐주시니까 감사하죠. 어떻게 보면 저는 제가 할 일을 한 거잖아요. 일의 특성상 누군가는 제 연기나 노래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느낄 때 뿌듯해져요.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
연극 <나쁜 자석>이요. 마지막 장면에 꽃비 기계가 터져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응축되었던 감정이 터지면서 눈물이 났는데 아직까지도 그 감정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뮤지컬 배우로서 언젠가 연기해보고 싶은 배역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노래도 좋고 유다라는 캐릭터가 누구보다 지저스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저한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도 해보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준비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나요?
무대 오르기 직전에 잡생각이 뒤엉킬 때는 머리를 비우려고 해요.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있더라도 시각과 청각, 후각, 그 순간의 공기에 집중해요. 눈앞에 책상이 있으면 그 책상에 집중한다거나.
드라마나 영화처럼 다른 장르에 도전하고 싶기도 해요?
그럼요. 영화를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한 거고 또 연기 전공이어서 당연히 하고 싶어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영화가 여러 개 있는데 하나 꼽자면 <시네마천국>이에요. 영화 자체가 따뜻해요. OST도 너무 좋고 감동적이에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는 공감을 못하면 안 되거든요. 보는 사람이 저의 연기에 대해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으면 슬플 거 같아요.
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배우로서 널리 알려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걸 위해서 살아가진 않는 거 같아요. 그건 사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잖아요. 살아가면서 저를 아는 사람이 줄어들진 않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크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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