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Colored Be Glam
마음껏 화려해져도 되는 12월. 모피를 입는다면 과감한 색과 그래픽적인 컬러 블로킹에 충실해야 한다. 붉디붉은 빨강부터 푸른빛을 띠는 보라까지 색다른 퍼를 입을 것. 그것만이 올겨울 모피를 제대로 입는 길이다.
퍼를 선택하는 데 있어 이제 여우인지, 밍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체형을 고려한 실루엣을 탐색해야 한다는 제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터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모피를 잘 입는 방법은 오로지 색 선택에 달려 있다. 2007년 가을/겨울 프라다가 테디 베어를 연상케 하는 색색의 인조 모피를 선보인 이래로 패션 하우스들은 10년간 털복숭이 괴물을 연상시킬 만큼 풍성하고 윤기 나는 질감과 과감한 색을 사용하며 과감한 스테이트먼트 모피를 선보였다. 이는 마치 모피의 성장과정을 보는 듯했다. 프라다가 테디 베어 시리즈를 선보일 즈음 나는 모피 스타일에 대한 칼럼에서 현실적으로 모피를 고르는 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과감한 색의 퍼는 진정 퍼의 고수만이 넘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지금은 밝고 강렬한 색을 입으라고 제안한다. 고수가 아니더라도 ‘빨주노초파남보’의 스펙트럼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색과 모피에 관대해졌다.
이는 ‘Faux’, 인조모피가 진짜의 매력을 뛰어넘으며 이룩한 페이크의 승리였다. 동물 보호와 환경에 관한 이슈라는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인조모피는 경제적인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나 진짜보다 낫다. 동물의 죽음 없이도 염색과 가공에 한계가 없고 쉽게 럭셔리하면서 젊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게다가 접근성까지 뛰어난 인조 모피를 하이패션 하우스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덩달아 리얼 퍼 역시 압도적인 볼륨과 색을 얻었다.
그래서 올겨울 퍼 트렌드는 색으로 귀결된다. 곱슬곱슬한 아스트라칸처럼 보이는 형형색색의 인조모피(그들은 이를 에코퍼라고 부른다)로 컬렉션을 가득 채운 미우미우가 그 선두주자이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다는 미우치아 프라다는 특히 현대식 관능에 집중했다. 이는 과장된 형태와 색을 통해 이루어졌다. 모델들은 대부분 거대한 털 뭉치처럼 보이는 빨강, 샛노랑, 라벤더, 짙은 파랑, 초록색과 주황색 체크, 레몬색의 퍼 모자를 썼고 라벤더와 머스터드의 조합, 주황과 갈색의 조화, 세 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한 멀티 체크 등의 모피 코트를 입고 등장했다. 클러치백의 스트랩과 부츠, 샌들에도 색색의 모피를 사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피로 치장한 호화롭고 또 호화로운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눈으로 보기엔 어떤 것이 진짜 모피이고 가짜 모피인지 모를 만큼 다양한 질감과 색을 뒤섞어 ‘모던 글램’을 완성한 것이다. 니나 리치는 과하게 부풀어오른 오버사이즈의 핑크색 양털 코트를 네이비와 블랙 드레스, 캐멀 코트 사이에 배치했고 안야 힌드마치, 블루 마린, 에밀리오 푸치와 MSGM 등 다수의 브랜드가 밝고 경쾌한 컬러로 물든 모피를 사용했다. 이러한 룩들은 마치 12월 파티를 위한 친절하고 명쾌한 안내문 같았다. 판매 시기에 맞추어 2월과 9월 컬렉션을 선보이는 버버리는 2017년 9월 컬렉션을 위해 연보라, 연분홍과 민트 등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 모피를 선보였다. 컬러는 사랑스럽되 실루엣은 오버사이즈로 디자인하여 모던한 글래머러스에 대한 정의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무엇보다 달달한 분홍색 퍼에 영국 태생의 스트리트 무드를 드리우는 체크 패턴의 볼캡과 커다란 쇼퍼백, 아가일 패턴의 양말을 더한 그 쿨한 스타일링이란! 현란한 색을 입은 모피가 스타일링에서 담당한 역할이 무엇인지 이제 간파했는지. 길거리에서 온 쿨내 진동하는 것들을 럭셔리와 연동하는 유연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 이러쿵저러쿵 더하고 장식해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 것, 그리하여 화려함이 곧 사치의 증거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미우치아 프라다가 고민했다던 현대식 관능인 것이다. 그리고 색으로 물들어 키치하게 변형된 퍼는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매우 유용한 매개체이다.
모피를 다루는 데 따라올 자가 없는 펜디는 여타 다른 브랜드들이 과장된 형태에 열광할 때 퍼를 다루는 기교를 드러내기보단 모피의 기본에 충실했고 윤기 나는 질감에 집중했다. 기하학적인 패턴과 꽃 모양으로 퍼를 잘라서 그림을 그리듯 이어 붙인 기술은 펜디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하고 수준 높은 것이었지만 이를 과시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고 우아함 속에 스며들도록 했다. 그렇게 기본에 충실한 펜디 역시 색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깊이 있는 빨간색과 청록색으로 말이다. 그러니 펜디가 보여주듯 형태의 과장보다는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시켜줄 자신만의 색을 찾는 것이 올겨울 퍼 스타일링의 지침이다.
- 에디터
- 남지현
- 포토그래퍼
- Cho Hee Jae, InDigital, James Cochane
- 어시스턴트
- 조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