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 안티 롱 패딩 시점

한 사진가는 롱 패딩을 입고 음식점 앞에 있다가 손님의 차키를 받은 적이 있다며 그 뒤로는 아무리 추워도 절대 롱 패딩을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성을 죽이느니 차라리 추위를 택한 케이스. 나도 조금은 비슷하다. 롱 패딩 신드롬에 빠진 한국. 주변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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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는 타미×지지 컬렉션(Tommy×GiGi Collection). 데님 팬츠는 렉토(Recto). 모델이 입은 카키색 패딩 코트는 버버리(Burberry). 모델이 들고 있는 하얀색 롱 패딩은 슈퍼콤마비(Supercomma B). 후드에 모피를 장식한 핑크 롱 패딩과 검은색 롱 패딩은 모두 디스커버리(Discovery), 하늘색 롱 패딩은 휠라(Fila).

나에게 롱 패딩은 한겨울 야외촬영 나갈 때 스태프들이 즐겨 입는 필수 방한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하나 있긴 있다. 2015 KBO 포스트 시즌 때 너무 추워서 구입했다. 그것도 응원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 추운 경기장에 출석도장 찍으며 응원하기 위해 산 것이지, 안 그래도 큰 덩치가 더 부해 보이는 롱 패딩 따위를 그저 춥다고 고분고분 살 리가 없었다. 나는 그랬다.
다시, 요즘처럼 추운 날에 야외촬영을 나가면 스태프 열에 아홉은 롱 패딩을 입고 있다. 살을 뚫고 뼈가 에는 날씨라면 열 명 모두라고 봐야 한다.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모델에게는 수시로 걸치고 있다 슛 들어가면 바로 벗어내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 A컷을 기다리며 주야장천 카메라 옆을 지켜야 하는 사진가 이하 전 스태프에게도 롱 패딩은 히트텍과 더불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최고의 원투 펀치다. 촬영장에서는 그랬다.
원래 롱 패딩은 야외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 선수들의 벤치 코트로 활약했다. 추운 날에도 격하게 땀을 흘려야 하는 그들이기에, 땀이 식어 감기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고, 벤치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의 몸을 보호하며, 선수들과 팬들에게 해당 팀에 대한 소속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벤치 코트 중 등에 스우시(나이키 대표 로고)가 큼직하게 그려져 있고 길이가 발목 근처까지 오는 나이키 롱 패딩은 오래 전부터 ‘연예인 패딩’이라는 별칭으로 인기를 모았다. 몇년 전 나이키 직원으로부터 품절된 아이템이라 더는 나오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는데 그 뒤로도 패션에 관심 좀 있다는 아이돌이나 스타일리시하다는 소리 좀 듣는 배우들은 꼭 그 스우시가 그려진 롱 패딩을 입더라. 최근에는 데상트와 디스커버리 롱 패딩이 ‘연예인 패딩’이라는 별칭을 이어받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폼 나지 않는 롱 패딩에 열광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평창 롱 패딩이 뭐길래 ‘안티 롱 패딩’주의자로서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어리둥절 그 자체다. 여기도 패딩, 저기도 패딩. 거리가 온통 롱 패딩으로 가득 찼다. 그동안 한국인들이 패딩 없이 어떻게 겨울을 보냈나 의구심이 들 정도. 이 현상에는 ‘평창 롱 패딩’ 마케팅이 크게 한몫했다.
평창 롱 패딩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공식 파트너인 롯데백화점에서 자체 기획한 상품이다. 한 중소기업에서 전량을 사들여 중간 유통 없이 직접 판매해 시중 모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솜털과 깃털의 비율이 80대 20인 꽤나 훌륭한 롱 패딩을 14만원대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또 ‘한정 판매’라는 유혹적인 옵션이 더해져 가성비와 희소성 면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 전량 판매가 된 것은 물론 백화점 측은 기세를 몰아 ‘평창 스니커즈’를 기획. 또 한 번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모두 입으니 나도 입고 싶다’ 집단동조화 현상까지 벌어지니 이제는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품귀 현상이 벌어진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림픽 공식 후원업체가 아닌 기업들은 규제를 교묘히 피해 마케팅을 펼치는 앰부시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소셜 커머스가 내놓은 ‘팽창 롱 패딩’, 대형 마트가 기획한 음료 ‘평창’ 등이 그런 예다. 원래 롱 패딩을 판매하던 스포츠웨어 브랜드, 아웃도어 브랜드도 가만있을 수만은 없다. 유명 모델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다. 스포츠 브랜드만의 높은 기술력과 비싼 모델의 몸값이 더해졌으니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그러나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백만원을 호가하는 롱 패딩도 없어서 못 사는 게 현실이다. 집단 본능이 있는 십대들은 나만 롱 패딩이 없다며 부모를 조르기에 이르렀다. 형편만 된다면 나만 없다고 우는 아이에게 사 주지 않을 부모가 누가 있으랴. 자연히 롱 패딩은 한때 바람막이 점퍼와 같이 ‘신등골브레이커’로 등극했다. 이 지점에서 다시, 15만원이 안 되는 평창 롱 패딩이 인기를 모으게 된 결정적 이유, 가성비에 있음이 드러난다. 자, 그럼 이쯤에서 묻자. “롱 패딩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좋은 건데?”

롱 패딩 부대에 물었다 롱 패딩 마니아들의 답변 중 영순위는 단연 따뜻하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은 교복 하나로 너무 춥고, 직장인들은 코트가 주지 못하는 안락함을 롱 패딩에서 얻는다. “겨울에도 블라우스와 스커트, 재킷 등 포멀하게 입어야 하는 직업인데 스타킹 하나 신고는 버틸 수가 없다. 그럴 때 몸 전체를 덮는 롱 패딩이 최고다.” 20대 후반 직장 여성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이번 겨울 대학가의 풍속도 롱 패딩과 함께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스타디움 점퍼 스타일의 ‘과잠’(학과 점퍼)만을 고집했는데, 요즘에는 롱 패딩으로 대신하거나 추가로 제작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 이들은 패딩에 학교와 학과 엠블럼을 붙여 그들만의 소속감을 즐긴다(돈 주고 사는 소속감, 학연주의 부작용 등은 논외로 하자). 따뜻하다는 의견 다음으로 편하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안에 얇게 입어도 패딩 하나만 걸치면 춥지 않으니까. 또 잘 차려입은 날에는 잘 차려입어서, 못 입은 날은 못 입어서 안을 다 가려주는 패딩이 요긴하다고. 30대 지인 한 명은 “패션은 무조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딩을 입은 날에는 어느 눈밭에 굴러도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롱 패딩의 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대부분 선호 브랜드에 따라 선택할 뿐 디자인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게 중론.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쇼트 패딩을 입으면 위에만 커 보이고 아래는 작아 보여 비율이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롱 패딩은 다르다. 전체적으로 비율이 맞아 더 자연스럽다.” 4년 차 패션 기자의 설명이다. 또 “처음에는 너무 추워서 선택했지만, 그 안에 레이어드하는 옷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히트텍까지 껴입는다는 한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에 더해 “지금 당장 롱 패딩 안 입는다고 큰소리 치지 마. 한 해 한 해 달라서 언제 또 롱 패딩 없으면 못 산다고 할지 모르니까!” 조언까지 곁들였다. 그런 날이 올까봐 조금 섬뜩해지는, 영하 12℃의 어느 겨울 날이다.

롱 패딩 마니아들의 답변 중 영순위는 단연 따뜻하다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은 교복 하나로 너무 춥고, 직장인들은 코트가 주지 못하는 안락함을 롱 패딩에서 얻는다. 그뿐 아니라, 대학생들은 롱 패딩을 과잠으로 선택해 그들만의 소속감을 즐기기도 한다.

    에디터
    김지은
    포토그래퍼
    Shin Sun 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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